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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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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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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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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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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헤이우드 알랜 감독 영화 뭐 추천해주고 싶은 거 있어?”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 번>.”


류지호는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싸가지 없는 공다연을 골려주고 싶었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 번>은 헤이우드 앨런의 희곡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에서 헤이우드 앨런은 원작자와 배우로 참여했을 뿐.

감독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공다연은 작은 탄성을 터트렸다.


“와~ 나 알아!”


류지호가 다시 한 번 영화 속 대사를 읊었다.


“토요일 날 뭐하실 거죠? 자살이요. 금요일 밤에 만날래요?”

“벌써 애프터 신청하는 거야?

“그 영화 속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야.”

“......!”


공다연은 진심으로 놀랐다.

VCR이 귀한 시절이다.

구하기도 힘든 예전 영화를 보고 대사까지 암기하고 있는 고등학생은 흔치 않다.

인천, 아니 전국을 뒤져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까.


탁!


공다연이 손바닥으로 가볍게 테이블을 쳤다.

숫제 테이블을 뛰어 넘어 류지호에게 달려올 기세다.

그 박력에 류지호가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을 정도다.


“영화 정말 좋아하나봐?”

“음, 그런 건 아닌데...”

“그럼 싫어해?”

“꼭 그런 건 아닌데, 뭐랄까.....”


류지호는 자신이 공다연을 놀렸음을 밝히려고 했다.

헌데...


“그럼 좋아하는 걸로 해. 호호호.”


공다연은 멋대로 답을 내리고는, 손을 가리고 웃었다.

분명 가식적으로 웃는 거다.

왠지 밉지가 않다.

순간 류지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도도하고, 과시욕만 넘칠 줄 알았는데 에너지도 넘치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사람이 있다.

류지호의 눈앞에 있는 그녀가 딱 그러했다.

분위기를 휘어잡고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사람.

비록 싸가지 없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공다연이지만, 이목을 집중시키는 능력, 그런 것이 있는 듯 했다.


‘무당 팔자... 그도 아니면 딴따라 팔자.’


공다연 같은 캐릭터에 대해 유명한 원로 연극배우가 한 말이다.

어쨌든 평범하게 산다면 친구도 없고, 따돌림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캐릭터다.

미팅 분위기가 류지호와 공다연 두 사람의 대화에만 너무 집중됐다.

다른 친구들을 배려해서 김윤주가 나섰다.


“이제 조금 편해진 것 같은데 파트너 정하죠.”


진명여고 방송부 여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소지품으로 할게.”


공다연이 브로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선언하듯 말했다.

브로치는 꽤 비싸보였다.

이어 신소연과 나머지 여학생들도 각자의 소지품을 꺼냈다.

신소연은 만년필을 꺼내놓았다.

이철웅은 연신 공다연을 훔쳐봤다.


“흥.”


공다연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지금 이철웅의 표정은 수많은 남자들에게서 봐 온 것이다.

미모에 푹 빠져 그녀와 말이라도 한 번 섞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짓는 얼굴.

최원석부터 김석민, 박상은 순으로 빠르게 소지품을 집었다.

신소연과 공다연 둘만 남았다.

이철웅이 공다연과 브로치를 번갈아 보며 갈등했다.


“고민되면 내가 먼저 고를게.”


류지호가 손을 뻗자, 이철웅이 그의 손을 쳐냈다.


‘넌 공다연이 감당 못해, 인마.’


류지호가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뭐 집을 거야?”


공다연이 류지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도도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눈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눈빛이다.


“빨리 골라.”


류지호가 브로치를 선택했다.

헤이우드의 영화를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기에.


“아, 씨...”


이철웅은 당황해 인상을 구겼다.

덩달아 신소연의 얼굴에 수치심이 물들었다.


‘에휴, 내가 어린애들하고 뭐하는 짓인지.’


파트너가 정해지고, 자리가 재배치되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였다.


“계속 빵만 먹을 거야?”


공다연은 슬슬 지루했다.

공다연이 류지호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향긋한 샴푸 향이 류지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여기 좀 답답한데, 시원한데로 갈래?”

“그럼 웨이브 갈까? 소연이는 어때?”


이철웅이 공다연에게 시선을 둔 채 자신의 파트너 신소연에게 물었다.


“웨이브? 날라리들 가는데?”


신소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철웅이 슬쩍 류지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빌리지가 옷 파는 가게지 날라리 노는 데는 아냐.”


류지호는 적당히 장단에 맞춰주었다.

빌리지는 날라리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옷들을 파는 곳이다.

건물 옥상에 커피숍이 있었는데, 역시 날라리들이 자주 이용했다.

류지호의 기억대로였다.

실외 파라솔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몇 녀석이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류지호와 일행은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공다연과 신소연이 화장실로 향했다.


“신포고 애들 어떤 거 같아?”

“글쎄, 다들 착한 거 같아. 저기 메뉴판 받는 애 빼고.”

“류지호란 아이?”

“쟤는 좀 이상해.”


신소연이 심통 난 얼굴로 말했다.


호호...


공다연이 작게 웃었다.

신소연이 화제를 돌렸다.

더는 류지호를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까무잡잡한 애가 너 마음에 있는 모양이더라?”

“흥! 꼴에 남자라고..... 어디 없어서 저런 애를 갖다 대니? 내 취향 아니야.”


공다연이 코웃음을 치며 쌀쌀맞게 대답했다.

신소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으로 감당이 안 되는 친구다.

테이블로 돌아온 공다연이 메뉴판도 보지 않고 주문했다.


“난 파르페.”


파르페는 아이스크림 위를 과일이나 과자, 시럽, 생크림 등으로 장식한 후 숟가락으로 조금씩 섞어가면서 먹는 빙과류로 무척 비싼 메뉴다.

고등학생 용돈 수준으로 감당될 리가 없다.


“소연이 너도 파르페 먹을 거지?”


공다연이 마치 '이런 것도 계산 못해'하는 눈으로 류지호를 쳐다봤다.

이철웅이 메뉴판 가격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학생 신분에 뭘 이런 비싼 걸 시켜하는 표정이다?”


공다연이 빈정거리듯 말했다.


“여기요, 파르페 2잔 하고요. 너희들은 뭐 시킬래?”


왠지 공다연은 두 남학생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류지호가 물었다.


“철웅아, 팥빙수 어때?”

“그, 그래.“

“저 여기요? 팥빙수 2개......”


이철웅이 재빨리 류지호의 말을 막고, 자신이 대신 주문했다.


“아니요. 팥빙수는 하나만 주세요.”

“아이 참, 쪽팔리게...... 구질구질 하네.”


공다연이 독설을 여과 없이 날렸다.

이철웅이 창피함에 귓불이 붉게 달아올랐다.

덩달아 류지호의 얼굴도 굳었다.


“계산은 내가 할게.”


류지호가 이철웅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공다연에게 따끔하게 한 말 하려고 했다.

그때 계단을 올라온 남학생이 공다연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다연아~“


남자는 제법 훤칠한 외모에 온몸을 메이커로 도배하고 있다.

남자치고는 뽀얀 피부가 고생을 모르고 자란 태가 났다.

테이블로 다가 온 남학생이 류지호와 이철웅의 외모를 품평하듯 훑었다.


“지금 가도 돼?”

“그럴걸?”

“옷 사줄게.”

“여기서 파는 옷은 날라리 옷이야.”

“예쁘면 됐지. 날라리 옷이 따로 있냐?”

“그럼, 그럴까?”


공다연이 반색했다.

류지호는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기만 했다.


“미안해. 사촌 오빠를 오랜만에 만나버렸네?”


그녀의 행동은 꽤나 모욕적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이철웅은 다음을 기약하며 한숨을 내 쉴 수밖에 없었다.


“난 먼저 일어나야해.”

“그래.”


류지호는 상관없었다.

오랜만에 십대시절 풋풋한 미팅을 경험한 것으로 만족했다.

사실 이곳까지 올 생각도 없었다.

류지호의 계획은 빵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까지였다.

이철웅이 공다연과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일부러 자리를 옮긴 것이다.

배드 엔딩이 되고 말았지만.


“소연아, 내일 학교에서 보자.”


싸가지가 없고, 제멋대로였지만 배시시 웃는 그녀의 외모는 확실히 최고다.

류지호조차 그녀의 웃는 모습에 잠깐이지만 가슴이 흔들릴 정도다.


‘여우 짓은 타고 났네 타고 났어.’


류지호는 그녀를 더 이상은 볼 생각이 없었다.


“언제 또 볼지 모르지만, 잘 살아라.”


류지호가 심드렁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공다연은 류지호가 불쾌한 감정을 내비칠 줄 알았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왠지 자신이 진 것 같다.


“파르페 나오면 대신 맛있게 먹어.”


공다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묘하게 뼈가 있다.


“오빠, 가자.”


공다연은 도도하게,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남학생을 따라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가 힐끔 류지호를 돌아봤다.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자신에게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 모습이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아이씨! 찝찝하네.”


미팅 내내 느낌이 요상했다.

마치 삼촌과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는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음흉한 시선을 보내지 않아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분했다.


‘고자인가?’


공다연은 자신의 방식대로 결론을 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는 듯.


“어디 가?”

“학교 올라가서 땀 좀 빼려고.”

“소연이는?”

“...집에.”


잔뜩 풀이 죽은 이철웅은 학교로 돌아가 농구를 하겠다고 했다.

신소연은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가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떠났다.

홀로 남은 류지호로서는 텅 비다시피 한 지갑을 확인하며 입맛이 매우 썼다.


“미팅 몇 번 하면 허리가 휘겠네.”


한편으로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헤어지기 전의 공다연과 신소연의 눈빛이 어딘지 묘했다.


“설마, 아니겠지......”


연락처도 교환 하지 않고 그냥 헤어졌다.

방송반이니 앞으로 만날 일은 제법 있을 터.

그것도 2학년까지다.

한순간 스쳐가는 인연.

그런데 왠지 길게 이어질 것 같은.

그런 인연이 될 거란 예감이 든다.


‘소연이는 사랑은 아니었던 모양이네.’


애매한 관계로 기억되던 신소연이다.

함께 빵도 먹고 카페도 갔지만 어떤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다.


류지호는 미팅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다.

풋사랑이라 할 만한 연애 경험이 기억나지 않았다.


‘자영이 누나가 있었구나.’


중학교 시절 롤러장에서 알고 지낸 두 살 연상의 누나.

추자영.

류지호의 첫사랑 이름이다.

뭔가 가슴 따뜻해지는 사연 따위는 없다.

류지호와 고우찬은 중학교 2학년 때 터미널 근처의 롤러장을 뻔질 나게 드나들었다.

그 곳에서 추자영이라는 고등학생 누나와 친해졌다.

그녀는 롤러스케이트를 굉장히 잘 탔다.

매주 함께 롤러스케이트도 타고 디스코타임에 춤도 추면서 짝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어느 날 홀연히 추자영이 사라졌다.

아니 소식이 끊겼다.

나중에 들린 소문에 의하면 그녀가 인천을 떨쳐 울리는 칠공주 날라리 누님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지 못한 채 잊혀졌다.


‘추자영.’


역시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남들은 첫사랑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데.

류지호에게는 해당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그녀가 첫사랑이 아니었거나.


✻ ✻ ✻


신포고 방송부에게 여름방학은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다.

9월에 열리는 학교 축제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신포고에는 무수히 많은 동아리가 존재했다.

그 중 유일하게 단독으로 이벤트를 벌이는 동아리는 방송부가 유일했다.

바로 방송제다.

류지호가 방송제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비디오 영상물을 제작해 처음으로 틀었던 때가 내가 입학하기 전이었던가? 학교 소개하고 뮤직비디오 하고 또 뭐가 있었더라.....’


이 당시 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 방송제까지도 라디오 방송과 라이브 공연 위주로 프로그램을 짰다.

시낭송을 하고, 라디오 드라마 배역을 연기하고,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식이다.

TV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 당대 유행어를 곳곳에 집어넣어 청중을 웃겼고, ‘마지막 잎새’ 같은 슬픈 라디오 드라마를 연기해 눈물샘을 자극했다.

동문 연예인과 타 학교 방송부의 축전을 소개하고, 고등학생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음악을 틀어주는 것과 함께 미니 토크쇼가 일반적인 공연이었다.


‘동문 선배들이 비디오카메라를 기증한 게 작년. 아마 방송제부터 비디오 영상을 상영했을 거야. 그 덕분에 나는 2학년 때 날라 다녔었고.’


신포고는 86년 인천 최초로 뮤직비디오를 찍어 방송제에서 상영했다.

비디오카메라는 고등학교 방송부 예산으로 도저히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사치품이다.

여전히 라디오가 주류 콘텐츠였던 이 당시, 신포고의 동영상 방송제는 타 학교 방송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류지호는 2학년 때 뮤직비디오 PD, 촬영, 편집 등 전 분야에 관여했었다.

기술파트였기 때문이다.

동기들 중에서 가장 많은 비디오 촬영 경험을 보유했고, 편집까지 전담했던 류지호가 자연스럽게 방송제 영상제작을 지휘했었다.

방송제에서의 활약이 알음알음 알려지게 되었고, 인천지역 내 방송부 사이에서 류지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고 해야 할지.

특기를 찾았다고 해야 할지.

류지호는 방송제를 준비하면서 영상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리고 운명처럼 방송제를 계기로 영화계로 삶의 진로를 정했다.

결국 영화계에 뛰어들게 되었고....


‘영화판에서 삼류로 굴러먹었지...’


영화라는 직업의 삶을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아쉬울 뿐이다.

비록 삼류일지언정 더 재밌고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축제준비위에서 방송제 날짜와 시간을 배정했다.”


한수호 선배가 1,2학년을 모아놓고 본격적인 방송제 준비에 돌입할 것을 알렸다.

이미 테이블 위에는 지난 방송제 팸플릿과 매뉴얼이 놓여있었다.


“자, 올해 방송제 프로그램과 역할분담을 해보자.”

“수호가 국장이니까 당연히 PD일 테고. 뭐부터 정할까?”


전체 방송제를 컨트롤해야 하는 PD는 대부분 국장이 맡는다.


“조명하고 믹싱은 재호가 맡을래?”

“그럴게. 지호 붙여줘.”


다소 통통한 체격의 이재호 선배는 한수호와 함께 엔지니어 파트였다.

방송제의 기술적인 부분을 모두 책임질 예정이다.


“시낭송에 쓰일 시는 문예부에서 추천 받을 예정이고, 축전은 작년에 MBS에 계신 선배님께 도움을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KBC에 계신 선배님들께 부탁드리자.”


방송부 졸업생 중에 KBC와 MBS 방송국에 근무하는 언론인이 몇 명 있었다.

신포고 전체로 보면 연예인도 있고 공중파 방송국 PD도 있었지만, 방송부는 언론계에 종사하는 직계 선배들을 더 선호했다.

뿔테 안경을 쓴 작은 체구의 이명한이 물었다.


“연예인 축전은 누굴 받으면 좋을까?”


평범한 인상의 아나운서 파트 조인환이 입을 열었다.


“<사랑이 영그는 나무>에 동문 선배님 없나?”

“없어.”

“아무래도 우리 선배들은 주로 보도국에 계시니까.”


한수호의 회의 진행에 따라 주로 2학년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류지호는 약간 설레는 기분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드라마 대본은 작년부터 수호가 준비한 것으로 할 거지?”


한수호는 신문방송학과로 진로를 이미 정했다.

언론계보다 방송계로 나가길 희망하고 있다.

작년 겨울부터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써왔는데, 20분 분량의 라디오 단막극이었다.


“회의 끝나고 나눠줄테니까 모두 읽어봐.”

“3학년 형들은 수호 네가 직접 찾아가서 드려.”

“물론이지.”


한수호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역할을 놓고 격렬하게 부딪치기도 했다.

방송제의 스타는 누가 뭐라 해도 진행자다.


“메인 MC는 수호가 딱 인데.....”


오철규가 장난스럽게 나섰다.


“수호는 PD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으니까.... 내가 할까?”

“넌 얼굴 때문에 실격. 원석이라면 모를까.”


방송부원의 시선이 최원석에게 쏟아졌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최원석은 딴청을 피웠다.

한수호가 테이블을 탕탕 두드려 주의를 환기시켰다.


“회의가 샛길로 샌다. 다들 집중해.”


오철규가 류지호에게 물었다.


“너희 담임이 연정훈 선생이지?”

“예.”

“너네 담임이 여학생들에게 꽤 먹힐 만한 외모더라. 대담 프로그램에 초대하면 좋을 것 같아.”


대담은 일종의 토크쇼다.

인기투표로 뽑힌 신포고 교사를 무대로 불러 MC와 응답을 주고받는 프로그램이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웃음을 유발해 청중을 즐겁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매년 짬 많은 중년 아저씨 앉혀놓고 했잖아. 젊은 남자 선생으로 가보는 건 어때?”


한수호가 지호에게 물었다.


“너희 담임 썰 좀 푸냐?”


류지호가 뜸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학생들하고 격의 없이 지내기는 하는데, 입담이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수업시간에는 어때?”

“그냥 진지하게 수업하세요. 가끔 드립을 치는데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네요.”

“드립? 드립이 뭐냐?”

“애드리브이요.”

“외모로는 우리 학교 탑 쓰리 안에 들겠더라.”


오철규가 계속해서 연정훈 선생을 대담 프로 게스트로 밀었다.

가장 나이가 어린 남자 선생일 뿐.

연정훈이 외모가 썩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설문조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기투표 순위 보고 그때 가서 결정하시죠.”

“나도 지호 말에 동의해. 당장 결정하진 말자.”


대담 프로 게스트 문제는 그렇게 결론이 났다.

방송부의 회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주로 라디오 방송 위주의 프로그램이 논의 되었다.

류지호는 회의 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영상 관련 내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드라마 대본 나눠 줄 테니까 일단 읽어보고, 다음 주 안에는 배역 정해서 연습 들어가야 돼.”


한수호가 길었던 회의의 종료를 선언했다.

긴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있었던 방송부원들이 한껏 기지개를 켰다.

그때.


“저, 선배님들......!”


류지호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2학년 선배들이 일어서서 삐걱거리는 몸을 풀다가 류지호에게 시선을 던졌다.


“올해 뮤직비디오 안 찍어요?”

“무슨 뮤직비디오?”


한수호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작가의말

댓글이 참 많이 달렸던 에피소드였습니다. 그때 댓글 반응이 지금 쓰고 있는 배우물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있습니다. 당장 피드백이 소설에 반영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글에 알게모르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밌는 경험들이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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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3) +11 22.01.01 11,449 245 22쪽
23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2) +8 21.12.31 11,727 231 16쪽
22 오늘 넌 영화감독 같았어! (1) +8 21.12.31 12,492 240 24쪽
21 우리는 가족입니다! (3) +13 21.12.30 12,381 256 24쪽
20 우리는 가족입니다! (2) +12 21.12.30 12,421 258 20쪽
19 우리는 가족입니다! (1) +11 21.12.29 13,186 236 21쪽
18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4) +10 21.12.29 13,158 260 23쪽
17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3) +13 21.12.28 13,121 263 16쪽
»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2) +7 21.12.28 13,514 24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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