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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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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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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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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Goodfellas.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며칠이 흘렀다.

그 사이 류지호는 고등학생 신분과 학교수업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교감에게 빠따를 맞지 않나, 양아치들에게 삥도 뜯겨봤다.

그 외에도 이러저런 자질구레한 사건들이 많았다.

교감에게 매를 맞을 때는 정말이지 끔찍하게 아팠다.

몸과 마음 모두 다쳤다.

체벌이 일상화 된 시기고 학교폭력이 빈번한 시절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학기에 경험할 만한 사건과 사고를 단 며칠 만에 두루 경험한 셈이다.

마치 과거로 돌려보내 준 초월적인 존재가 PTSD(외상후스트레스 장애)나 미래와 현재 사이의 정신적 육체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정신없이 사건을 터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종의 경고인가? 하긴 머리가 좋아진 것도 아니고, 초능력 같은 것도 생기지 않는 것 보니까 그냥 평범하게 살라는 뜻일 지도 모르지.’


류지호는 뭔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아니지. 미래를 안다는 건 삶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지식인 거잖아.’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건 그 어떤 초능력보다 강력한 능력일 수 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준비하고, 누구보다 먼저 선점할 수 있다.

단 계획하고, 노력한다는 전제하에.

막연한 낙관만으로는 전과 크게 달라질리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성공 근처에도 못가보고 쓰러지는지.

류지호는 그런 경우를 똑똑히 목격했었다.


‘난 할 수 있어.’


류지호는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냈다.

패배주의는 지긋지긋했다.

모든 일에 성공을 거두고, 실패가 없을 수는 없다.

류지호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성공한 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그런데 실패만 경험한 사람에게는 실패가 정말 두렵다.

실패를 두려워해 더욱 성공을 욕망하다가 더욱 깊은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바꿀 수 있다!


류지호가 겪었던 수많은 실패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류지호는 어떤 도전도 해본 적 없는 17살의 평범한 고생학생일 뿐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지?’


가장 먼저 할 일은 현재를 진단하는 것이다.

류지호는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방송부 생활과 날라리 생활을 병행하며 아웃사이더로 지냈던 것 같았다.

2학년 2학기 즈음 학교축제가 벌어졌을 때 방송제를 준비하다가 방송연예과에 다니는 졸업생 선배와 친해졌다.

그때부터 방송부 출신 연극영화과 선배와 방송연예과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었다.


‘다시 영화를 해야 할까?’


솔직히 완벽하게 실패한 영화인의 인생을 다시 걸어가기가 겁이 났다.

무시무시한 재능을 가진 천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을 생각하니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도 같다.

아무리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일지라도 대기업의 상업주의 아래서는 연출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잊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 현실을 류지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선뜻 영화감독 세계에 뛰어들기가 망설여졌다.


‘그렇다면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사업을 해야 하나?‘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염연한 현실이다.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의 기억을 모아 놓자. 기억나는 건 아무리 사소한 것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모아 놓는 거야. 만약 기억과 똑 같은 역사가 반복된다면 그건 나에게 엄청난 기회니까.‘


이제 몸과 마음은 순수한 십대대로 머리는 지천명의 연륜으로.

새롭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한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분명 전보다 만족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고민이 깊으면 용기가 사라진다고 했다.


펄럭.


류지호는 빈 공책을 폈다.

공책에 기억하는 것을 두서없이 적어 내려갔다.

일단 올해 1987년부터.

다음 달이면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다.

이 일로 말미암아 5.16 군사정변으로부터 시작된 27년 군부 독재는 끝나고 이름뿐이었던 민주주의가 회복된다.

내년에는 88서울올림픽이 치러진다.

88올림픽은 IMF와 함께 대한민국 경제의 커다란 변곡점이다.

강남에 땅이나 건물을 사놓으면 20년 후에는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

신도시로 개발되는 분당이나 일산, 용인, 판교, 세종 등에 땅을 사는 것도 좋다.


‘그때까지 뭘 먹고 살아야 하나를 생각해보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지.’


부동산 투기보다는 차라리 주식 투자가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식도 단기 투자는 불가능했다.

류지호에게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회사와 망하는 유명한 회사는 대충 기억해 낼 수는 있다.

매킨토시나 파인소프트, IBT 같은 전도유망한 미국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도 좋다.


‘상장 된 회사 리스트를 볼 기회가 있다면 현재에는 저평가 되어있지만 미래에는 승승장구하는 기업을 고를 수 있을지 몰라.’


4대 일간지 아무거나 사서 확인해보면 된다.

이 당시는 일간지에서 그날그날의 주가변동을 실어주니까.

류지호는 성인용 영화대본을 쓰고, 시답지 않은 영화를 연출한 삼류감독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멍청이는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대강이나마 알고 있다.

그가 살았던 미래에 누구나 알고 있던 유명한 회사주식을 미리 살 수만 있다면 대박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뭐가 있을까....?’


오성전자 주식이 현재에는 3만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사서 30년 동안 팔지 않으면 2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 수 있으니 엄청난 차액을 벌 수 있다.

그것뿐만 아니다.

파인소프트, 매킨토시, 구굴, 아마조너스컴, 페이스노트 등등 미국 기업의 주식을 사놓기만 하면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내가 외국의 주식을 살 수 있는 건가? 그리고 그럴 만한 자본금도 없다는 것도 문제지.’


주식 투자도 이때는 컴퓨터가 아닌 증권회사 창구에 직접 가서 해야 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집에서 일반인이 주식 투자를 할 수 없는 시기다.

열심히 주식을 공부해서 주식투자에 뛰어든다고 치자.

개인이 아무리 용쓰는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거대 투기자본 앞에서는 개미처럼 밟힐 것이 뻔했다.

자본금도 없지만, 나이도 걸린다.

류지호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다.

미성년자에게 증권회사 계좌를 개설해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젠장, 미래를 알고 있어도 금방 부자가 되기는 힘들구나.’


류지호는 주식을 해본적도 없고, 사업을 해본적도 없다.

그리고 IT계통이 미래의 유망한 분야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스마트폰을 쓸 줄은 알아도 전문지식은 전무했다.

다만 앞으로 30년 동안의 미래의 큰 사건과 기술 발전 방향과 흐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

류지호가 이것을 선점하면 앞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직접 사업을 해보는 것도 생각해 볼 만 했다.


‘가난한 집안 사정과 겨우 고등학생 신분인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사업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지. 시간은 내 편이야. 미래의 기억을 바탕으로 지금부터 죽도로 공부해서 경영학과나 경제학과에 진학해?’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장남인 류지호의 대학입학을 간절하게 원하셨다.

당신들이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한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이 대학을 나와야 출세한다는 믿음이 강했다.


“휴우~”


류지호는 짙은 한숨을 쉬고, 빈 공책을 끌어 당겼다.


‘일단 까먹기 전에 기억나는 대로 메모를 해놓자.’


류지호는 빈 공책에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앞으로 30년간의 대통령, 국책 사업, 유명한 기업,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 강남 개발, 신도시. IMF, 월드컵4강, 송도 국제도시, IT 관련 산업, 바이오산업, 한류, K팝, 중국시장, 반도체, 주가, 금값 등등.

기억이 희미한 것들은 나중에 보충할 생각으로 간략하게 써놓았다.

이어 디지털 영상 문명, 멀티플렉스, 대기업의 엔터테인먼트 장악, 흥행한 영화, 뜨는 배우와 연예인, 타임리와 NAP 코믹스, LOG 컴퍼니, 투자배급사, VFX, CG, 3D, 4D영화, VR, OTT, 웹드라마, 뜨는 케이블 드라마,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 애니메이션, 웹툰 등등.

기억을 떠올리며 써나가다 보니 엔터테인먼트 산업 특히 영화와 드라마 쪽에 편중 되어 있었다.


‘평생 영화판에서만 굴러먹었더니 나는 사회를 잘 몰랐구나.’


류지호는 부정적인 생각을 애써 털어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밤을 새워가며 빈 공책을 채워나갔다.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이상 류지호는 단 한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나 순호가 보게 되면 위험해. 일기장이라면 다를 거야.’


다음날.

류지호는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동인천 번화가에 다녀왔다.

동인천역 부근은 8,90년대 인천 최고의 번화가였다.

인천의 거의 모든 시내버스가 경유하는 교통의 허브였고, 여덟 개의 초중고교가 밀집해 있던 스쿨존이었다.

지하상가의 출입구에 위치한 대한서림은 신포동과 인현동 유흥가를 들락거리던 청춘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학교도 많고, 휴일이 되면 인천 전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대형문구점을 비롯해 체육사와 학원, 화방, 탁구장, 분식집등이 한데 모여 성업을 이뤘다.

류지호는 동인천의 대형문구점으로 향했다.

류지호가 들어간 곳은 1층에는 문구점과 화방, 체육사 그리고 2층에는 DJ가 있는 분식집으로 구성된 말 그대로 백화점이라 불릴 만한 복합 상가였다.

이곳은 1년 내내 학생들로 붐볐다.

특히 3월 신학기를 앞둔 며칠 전부터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인천 전역에서 학생들이 학용품과 체육복을 새로 구입하기 위해 몰려들기 때문이다.

류지호는 1층 문구점 코너를 돌아봤다.

류지호는 일기장으로 쓸 만한 노트를 골랐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 세련되어 보이는 노트를 골랐다.


“비싼 공책 사서 뭐하게?”

“일기 쓰려고.”


고우찬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국민학생이냐? 일기를 쓰게.”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어.”


고우찬이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이틴스타들의 사진을 책받침으로 코팅해주는 매대로 가버렸다.

다른 이들에게 일기가 과거의 기록 혹은 추억의 기록이겠지만, 류지호에게는 미래를 대비한 아이디어 뱅크가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류지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빈 공책에 적어놓았던 메모를 일기장에 옮겨 적는 일이다.

페이지 앞쪽에는 일기를 썼다.

일기 중간에 미래 지식을 섞어 적어놓기로 했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할 생각이다.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꺼내 볼 생각이다.

혹시 분실하거나 실수로 다른 사람이 볼 경우 내용을 알아 볼 수도 있다.

그를 방지하기 위해 약간의 트릭을 넣는 것도 중요했다.

앞으로 이 일기장이 류지호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자 마법서가 될 것이다.


❉ ❉ ❉


류지호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새벽 다섯 시가 되면 어김없이 눈을 떴다.

따로 운동복이 없기 때문에 신포고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집을 나왔다.

그는 처음에는 수봉산을 쉬지 않고 올랐다.


헉헉!


정상에 도달할 때쯤엔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버렸다.


후우우읍!


그는 현충탑을 몇 바퀴 돌고, 정상에 있는 정자에 앉아 한차례 단전호흡을 했다.

말이 단전호흡이지 실제로는 복식호흡이다.

무협지처럼 내공이 생기거나 하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 허황된 생각 따위를 품지도 않았고.

대신 명상을 하는 효과를 기대했다.

류지호가 명상을 하겠다고 앉아있으면 5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억지로 복식호흡을 하다보면 어느새 5분을 훌쩍 넘겼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력은 향상 된다고 했으니까.’


류지호는 신문이나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보류했다.

당장은 중간고사 준비가 급선무다.

식습관도 바꿨다.

이 당시 입에 대지 않던 우유, 콩자반, 시금치, 멸치를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내심 기특한 생각에 심영숙은 도시락 반찬 메뉴에 멸치볶음을 추가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점심시간과 체육, 교련시간을 제외하고는 수업에 집중했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했다.

최소한의 방송부 활동을 제외하고 온종일 시험공부에 열중했다.

야간자율학습만 되면 학교 담을 넘어 함께 당구장과 만화방을 순회하던 사인방이었다.

친구들은 류지호의 변화에 처음에는 당황했다.

하지만 시험이 코앞에 닥쳐 유난을 떠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호야, 라면 먹고 가자.”

“안 돼. 빨리 집에 가서 공부해야 돼.”

“시험공부는 당일치기지.”

“지금부터 하면 시험 당일에 어차피 다 까먹어.”


류지호는 한심한 눈으로 사인방들을 쳐다보았다.

사인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라면 값은 준우가 내는 거야?”

“시험 끝나면 뭐 할까?”

“연하대 가서 준우가 사는 걸로.”

“아네모네?”


아네모네는 연하대 후문의 후미진 곳에 위치한 술집이다.

학기 초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주민등록증을 확인하지 않는 것을 알고 사인방이 다니기 시작한 술집이다.

한번은 단속이 있을 지도 모르니 나이 확인을 해야겠다며 여사장이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사인방은 고3이라고 거짓말을 치며 버텨보았다.

뜻밖에도 여사장은 웃으며 사고치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주겠다며 넘어가 주었다.


“아네모네고 아~세모네고 간에, 일단 중간고사는 잘 보고 생각해 보자.”


류지호가 나름 아재 개그를 구사했다.

사인방의 반응은 썰렁했다.

그보다 류지호가 시험에 목을 매는 모습이 낯설고 신기했다.

황재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류지호를 응시했다.


“왜 또 그런 눈으로 보는데?”

“너 지호 진짜 맞냐?”

“그럼 내가 황재정이겠냐?”

“며칠 전부터 내가 알던 그 류지호가 아닌 것 같아서.”

“막차 시간 온다. 가자.”


속으로 뜨끔한 류지호가 말을 돌렸다.


“이상해. 딴 사람 같아. 혹시 <미래로 돌아가기>처럼 저 놈 미래에서 온 거 아냐?”


영화 <미래로 돌아가기>(85년)는 고등학생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 과거로 가 젊은 부모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SF코미디 영화였다.

류지호는 시험 끝나고 놀자며 친구들을 겨우 달랬다.


‘재정이 저 놈은 쓸데없는 데서 예리하단 말이야.’


❉ ❉ ❉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책을 읽고 단박에 이해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꾸준히 책을 보는 끈기 있는 사람?

그도 아니면 순간적으로 책에 파고드는 집중력이 높은 사람?

남들보다 특출하게 기억력이 좋아서 공부를 잘하는 걸 수도 있다.

류지호는 나이가 들수록 이해력은 증가하나 암기력은 떨어지는 것을 실감했었다.


‘나이를 먹으면 이치를 이해하기는 쉬워지지만 기억력이 감퇴하지.’


류지호는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야 자신이 집중력이 좋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무언가를 외우는 머리는 있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목표의식을 가지고 교과서를 보다보니까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 경험을 하곤 했다.

영어 숙어, 단어 암기와 암기과목 성적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류지호는 일단 무식하게 외우고 또 외웠다.


‘다행히 시험범위가 좁아 충분히 외워 볼만해.’


류지호는 중간고사 기간 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시험을 준비했다.

이런 생활이 일주일간 반복되었다.

류지호를 보는 급우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본래 류지호는 방송실에 콕 처박혀서 방송부끼리만 어울렸다.

방과 후에는 다른 반인 사인방 친구들과 어울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갑자기 류지호가 쉬는 시간에도 문제집과 참고서를 풀기 시작했다.

급우들은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곧 시험이라 그러려니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마침내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가 치러졌다.

예상대로 류지호는 수학에서 대부분의 문제를 감에 의지해 찍었다.

대신 영어와 국어는 나름 선방했다.

암기과목은 시험문제 구간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단단히 준비한 덕분인지 만족할 만한 점수가 기대되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쉽지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 난 천재가 아니잖아.’


류지호는 집중력이 올라가고, 책상에 좀 더 오래 붙어있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첫 시험이서 그런가? 학생들 배려를 너무 했네..... 너무 쉬워서 변별력이 없잖아.”


김석민이 난이도가 낮았다며 투덜거렸다.

당연히 방송부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했다.

김석민은 같은 말을 해도 재수 없게 들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하암~’


류지호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밤잠을 줄여가며 시험공부를 한 여파가 몰려왔다.

과거로 돌아온 후 치른 첫 중간고사가 끝났다.

후련함보다는 한편에서 지겹다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류지호는 학생들이 빠져나가 한산한 교정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시험을 보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인지 학교를 다니니까 시험을 치루는 것인지 원...’


앞으로 졸업하기 전까지 수차례 시험을 보아야 한다.

1년 동안 4번의 내신반영 시험을 치른다.

중간에 모의고사도 치러야 한다.

교사에 따라 개별적으로 쪽지시험을 보는 과목도 있다.

대학입학시험을 위해 3년 동안 20회 이상의 시험을 보아야 한다.

시험을 통해 학업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대학에 붙을 점수를 받기 위한 연습만 시키는 것이다.

생각의 힘이 중요해지는 현대사회에서 1960년대와 큰 차이가 없는 교육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특출한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을 보면 용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고 문명이 발전하면 그에 따라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모두가 동의한다.

그런데 안 바뀐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피하고 싶다.”


그것이 류지호의 솔직한 심정이다.

10년만 지나면 지식 과잉의 시대, 무한 정보의 시대로 들어선다.

얼마나 많이 아는지 지식의 양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고 필요할 때 원하는 지식을 찾아내 활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다.

그런 면에서 류지호는 준비된 미래의 인재다.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알고 있었으니까.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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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우리는 가족입니다! (2) +12 21.12.30 12,421 258 20쪽
19 우리는 가족입니다! (1) +11 21.12.29 13,185 236 21쪽
18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4) +10 21.12.29 13,158 260 23쪽
17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3) +13 21.12.28 13,121 263 16쪽
16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2) +7 21.12.28 13,513 243 18쪽
15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지네... (1) +6 21.12.27 14,048 27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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