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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87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1.01.19 11:24
조회
413
추천
5
글자
7쪽

제 1 부 운명 (10)

DUMMY

-6-


그와 덕관은

다른 지역의 ‘동류’들과 붙은

몇 번의 큰 싸움들을 이기고 나서,


이젠 마포나루를 넘어

한양 전체에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왈짜가 되었다.


그가 칼이나 창에 흥미를 가진 것도

아마 그 무렵일 것이다.


그는

점점 더 병장기 다루는 것에 심취해

독자적인 ‘기술’을 연습하고

실전에서 경험을 쌓으며

‘도성 최강의 사내’로 성장해갔고


그런 그의 뒤에는

듬직한 동생 덕관이

그의 등을 지키며

항상 굳건하게 서있었다.


그가 스물 셋이 되었을 때,


이제 그들을 밤의 세계로 끌어들인

박장호조차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박장호는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을 부탁하러 오는 처지’가 되었다.


그의

‘내일 따윈 고민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인생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와 덕관,

둘의 사이에서만 보자면,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패배를 안겨준 사내가

덕관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 흔한 사소한 다툼조차 없었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고,


낯선 이들과 싸움이 붙을 때도

언제나 같은 편에 서서 싸워준

동생이었기에,


그와 덕관이

진지하고 심각하게

서로에게 주먹질을 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사내아이들끼리 흔히 하는 놀이로든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된 후에

정식으로 붙은 시합으로든,


씨름에서만큼은

그는 덕관을 이길 수가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수십 차례 붙어보았지만

단 한 번도 이기질 못했다.


단순히 ‘싸움’이라고 한다면

종합적인 강함이나 실전경험에서야

그가 덕관보다

훨씬 더 나았을지는 몰라도,


씨름만큼은 이길 수 없었던 이유를

그는

스물이 되어서야 납득하게 되었다.


덕관은

그해 열린 한양의 가장 큰 씨름판에서

겨우 열아홉의 나이로,

모래판에 남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멀리 외방에서 올라와

출전한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로

참가자만 삼백 명이 넘었던

큰 씨름판이었음에도,


만만찮은 실력자들부터

조선팔도에서 이름 좀 알려졌다는

백전노장의 장사들까지


덕관의 앞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상품으로 내려지는 소 한 마리를

한성부의 나리에게

덕관이 받아온 그날,


그는 덕관을

‘지켜주고 돌봐줘야 할 동생’이 아닌

‘같은 길을 가는 대등한 동료’로서

기분 좋게 인정했다.


아니,

마음 속 깊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7-


아무튼 그렇게

이규석과의 인연으로

‘지리산 추설’의 사람이자

검계 ‘홍방’의 일원이 된 그들은,


이규석의 지시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그들처럼 뽑힌

‘지리산의 젊은 동지’들과

팔도를 돌아다니며

‘군도의 일’을 정식으로 배워갔다.


삼 년 정도의 방랑수련을 마친 그들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면,

덕관에게 짝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홍주장터의 주막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미순이란 처녀가


보부상들에게 희롱을 당하며

곤혹을 치르던 것을

덕관이 물리쳐주면서 인연이 맺어졌고,


홍주성에서 세 달 정도 머무르며

덕관이 일을 배우던 동안

서로 연심이 싹텄다.


덕관이 홍주성을 떠나는 날,

결국 미순이 가벼운 행장을 꾸려

일행을 따라나섰고


한양으로 돌아온 후

이규석의 주관으로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덕관은 미순을

평생의 배필로 맞아들였다.


그렇게

옛날 그들의 부모가

한집에서 같이 살았던 것처럼,


그동안 운영이 홀로 지켜왔던 집에서

그와 운영, 덕관과 미순은

일 년 정도의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도탑게 정을 쌓았다.


이듬해 봄,

방주 이규석의 지시로


그가

홍방 전체의 연락과 정보관리를 맡는

접주로 올라서고,


덕관이

‘지리산’의 지시로 전국 장터를 떠돌며

‘판막음’ 일을 맡아 하게 되면서

아내와 함께 한양을 떠났다.


그들의 따뜻했던 두 번째 동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정확히 오늘로부터 일 년 전

그 불길했던 밤에,


그가 머물고 있던 기방의 사랑채로

오빠를 찾아온

창백한 표정의 운영을

다시 만나던 날까지


삼 년이 넘도록 그는,


피를 나눈 여동생도

마음을 나눈 의동생도

만나지 못했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어서야

접주가 된 후부터

워낙 바쁘기도 했다고

스스로에게 변명도 해보았지만,


솔직히 그냥 핑계에 불과했다.


맡은 일 때문에

조선 팔도 곳곳을 떠도는

덕관이야 그렇다 쳐도,


같은 한양에 살고 있던 여동생을

매월 사람을 시켜

생활비조로 쌀이나 보내주면서

직접 만나러 가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의 게으름과 불편함,

어색함과 귀찮음 외엔 설명될 수 없는


그저

‘피붙이의 무관심’일 뿐이었던 것이다.


내가 만약,

덕관이 부부가 한양을 떠난 뒤에도

운영이와 같이 지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운영이가 저렇게

고통스럽게 죽을 일도 없었겠지....


길고 안타까운 회상에서

돌아온 그가

슬픈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동생의 갸름한 턱을 닮은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또 다시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슬픔이

조금씩 기어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꾹 참으며

혼잣말을 했다.


“가까이 살 때 일주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너를 찾아가 얘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냈다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텐데...

정말 미안하다. 운영아,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고요하던 하늘이

갑자기 거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천둥이 짧게 지나간 후,

사내의 등에 빗방울 몇 개가 떨어졌다.


사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센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고하듯,

하늘의 색깔이 심상치 않았다.


사내는 다시 마을 쪽으로 돌아가

버려진 집들을 드나들며

무언가를 찾아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각쯤 지나

빗줄기가 서서히 굵어지기 시작할 무렵,


짚단 여려 겹을 새끼줄로 엮어 만든

우장(雨裝)으로 온몸을 감싼 사내가

다시 우물 앞에 나타났다.


그의 머리에

낡은 삿갓이 하나 덮여있어

얼굴을 반이나 가린 탓에

사내의 표정은 보이질 않았고,


그의 등에 메어져있었던

단창(短槍) 한 자루가

사내의 오른손에 들려있었다.


사내는

우장 안으로 손을 넣어

자신의 가슴팍에 매달린 강보를

구석구석 만져보며

문제가 없는지 천천히 살폈다.


다행히 빗물이 스며들지 않아

강보는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의 코에서

작은 숨결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까지

확인을 끝낸 그는,


여인의 시신이 숨겨져있는

우물을 한 번 돌아보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창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를 악문 채

우물을 바라보고 있던 사내는

발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버려진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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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 1 부 운명 (12) 21.01.23 369 5 7쪽
11 제 1 부 운명 (11) +1 21.01.21 384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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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 1 부 운명 (9) 21.01.16 447 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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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 1 부 운명 (6) 21.01.09 565 4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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