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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85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3.09 01:56
조회
83
추천
1
글자
9쪽

제 4 부 개화(開花) (69)

DUMMY

-12-


이정훈이 방어를 맡은 좌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3인 1조의 동시공격과

독화살의 조합은

실로 공포 그 자체였다.


김태균이 연노를 꺼내들었지만,

흑랑의 살수들이 근접거리에서

동지들 사이를 휘저으며

워낙 빨리 움직이는 탓에

섣불리 쏠 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동지들이 맞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우현과 좌현의 방어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송진우도


장종훈처럼

원각사의 유령들과 싸웠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빈민들에게 살법을 가르친 것이

이들임을 그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원각사의 유령들과는

아예 힘과 속도와 정밀도가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없었던

또 한 가지 치명적인 것이 더해졌으니,

엄청난 위력의 각궁이었다.




송진우는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최대한 집중력을 높여

동지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였다.


다섯 번째의 동지가

독화살을 허벅지에 맞고 넘어지자,


드디어 송진우는

화살이 날아오는 곳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송진우가 살아남은 동지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서쪽 산등성이다.


모두 요사채의 동쪽으로 몸을 피해라!


여기서는 안 된다.


사방이 뚫려있는 곳에선

저걸 막을 수가 없어!"




송진우의 외침을 들은

살아남은 자들이

싸움터를 벗어나

요사채의 동쪽을 향해 달렸다.


그 모습을 본 흑랑의 살수들이

사냥감을 쫓는 이리처럼 달려들었다.


정민철과 장종훈, 이정훈이

사력을 다해 그들을 막아섰으나,

죽이기는커녕

제압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독화살 때문에

제대로 자세조차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때,


어느 정도 적의 궁사의 위치를 가늠한

송진우가

평상시엔 잘 쓰지 않는

대궁을 들어올렸다.


보통사람들은

시위를 당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엄청난 무게와 반발력을 가진

커더란 강궁이었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송진우가

활에 화살을 걸고

깍지를 낀 손가락에 힘을 주어

시위를 끝까지 잡아당겼다.


반발력의 최대치를 받을 만한 팽팽함이

손끝과 어깨에 느껴지자


송진우가

서쪽 산등성이를 향해

세차게 화살을 날렸다.




송진우가

강궁을 집어 들기 바로 전까지,


사냥개 부대의 희생을 발판삼아

적진을 와해시키는

흑랑 살수들의 활약을

멀리서 지켜보는 두 사내가 있었다.


서쪽 산등성이에서

흑랑의 최정예 아홉 명을

뒤에 대기시켜놓고

간간히 독화살을 쏘던 일랑과


자신의 수하들이

덫과 함정에 처절하게 죽어나가며

화살받이로 쓰이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안현수였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성공한 공격을 바라보는

두 사내의 표정은

무척이나 대조적이었다.


복면 밖으로 드러난 두 눈에

유쾌한 웃음기가 가득한 일랑이


곰쓸개를 씹은 것처럼

씁쓸한 표정의 안현수에게 물었다.


"안행수, 안행수도 활 좀 쏘시오?"


마치

자신의 활솜씨를 뽐내기라도 하듯,


도망치는 적을 향해

다시금 각궁을 겨눈 일랑이

안현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화살을 날렸다.


시위를 날아간 독화살이

목표물의 등에 꽂히는 순간,


갑자기 날아온 화살 하나가

일랑의 왼쪽 뺨을 스쳐 지나며

바로 옆에 있는 커더란 소나무에

쾅 소리를 내며 박혔다.


화살의 힘과 속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거대한 노송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부르르 떨리며

솔방울이 우수수 땅으로 떨어졌다.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가늠한

송진우가

동지들의 퇴각을 돕기 위해 날린

강궁이었다.




깜짝 놀란 일랑이

뺨에 흐르는 피를 닦을 틈도 없이

재빨리 자세를 낮추며 혼잣말을 했다.


"저 쪽에도 만만찮은 궁사가 있구나...


활로는 더 이상은 안 되겠군."


천천히 몸을 일으킨 일랑이

뒤에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이제 내려가자.


먼저 내려간 애들과 합류해서

일을 마무리해야겠다."


"넷!"


일랑의 명령에

아홉 명의 살수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일랑이 고개를 돌려

안현수에게 물었다.


"안행수는 어쩌시겠소?"


안현수가

여전히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난,


요사채의 뒤로 돌아간

우리 애들 쪽으로 가겠소.


이따가 합류합시다."


일랑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럽시다.


그럼...안행수도 고생하시오."


그 말을 끝으로

일랑과 그의 부하 아홉 명이

재빨리 산을 내려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안현수가

갑자기 싸움터를 향해

두 손 모아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더니

입을 열었다.


"나중에 꼭 수습해주마. 기철아.


미안하다."


다시 고개를 든 안현수도

곧바로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화살받이로 쓰인

부하들의 명복을 빌어주듯

짧게나마 전한 안현수의 기도는,


아마도

너무 늦게야 알게 된

기철의 진심에 대한

그의 작은 사과였을 것이다.






-13-


평상시엔 잘 쓰지 않는 대궁을 잡고,

송진우가 산등성이를 향해 날린

한 발의 화살 덕에,


검계 연합과 보현사의 생존자들은

겨우 안전지대로 퇴각할 수 있었다.




칠성각 요사채의 동쪽은,


지붕의 끝자락이 길게 드리워

방패처럼 위를 막아주고,


단단한 화강암의 절벽을 따라

적당한 공간을 확보한 채

벽이 새워져있어,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와 같은 지형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와 나가는 출구는

두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로

좁았지만,


제법 길고 널찍한 안의 공간은

양 옆이 막혀있는데다가


지붕의 처마가

머리 위까지 덮어주는 모양새였다.


마치

단단한 바위로 만들어진 굴과 같은

요사채의 동쪽 벽은,


앞뒤의 출입구만 단단히 지켜내면

그 누구도

쉽게 들이칠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독화살이

비로소 멈추자,


정민철을 선두로 한

장종훈과 이정훈의 움직임이

확연히 달라졌다.


김태균과 송진우가

동지들을 인솔해

동쪽 벽으로 퇴각할 동안,


그 세 명의 조장은

거세게 진격해오는

흑랑의 살수들에 맞서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제일 처음 돌격을 감행한

사냥개부대의 갑사들 중 생존자는

겨우 다섯 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 둘은 큰 부상을 입어

전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결국 흑랑의 살수 열여덟과

정민철과 장종훈,

이정훈의 싸움이었다.


처음에는 흑랑 특유의 살법인

3인 1조의 연속 찌르기나


시간차를 두어

상하좌우를 공격하는 기술을 펼쳤으나,


그들의 앞을 막아선 세 명의 조장은

그간 그들이 상대했던 적들과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저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셋은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뽑아내

공방을 펼쳤고,


공격해 들어오던 흑랑의 살수들 중

죽은 사람은 아직 없었지만,

큰 부상을 입은 자는

벌써 넷이나 나온 상황이었다.




3인1조의 살법을

정면에서 받아친 것은,


세 조장이 즉석에서 합을 맞춘

연속기였다.


정민철이

주먹을 내지르거나 발로 걷어차

상대를 뒤로 물러나게 만들면,


장종훈이

도끼와 편곤을 휘둘러

상대의 중심을 흐트러트리고,


이정훈이

철선장을 장창처럼 찔러 넣어

상대의 뼈나 살을 부쉈다.


정민철이 방어와 간격을,

장종훈이 허점과 틈을,

이정훈이 공격과 적시타를 맡아


즉석에서 합을 맞춰 만들어내는

연속기에


흑랑의 살수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다섯 명 째 흑랑의 사내가

이정훈의 지르기에

명치를 가격당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묵직하고 둔탁한 타격음에

장종훈이 휘파람을 불며 농을 던졌다.


"이가 너, 아직 안 죽었구나?


이번건 제대로 들어갔다. 야."


이정훈이

내지른 선장을 다시 거두며 입을 열어

농담으로 맞받았다.


"장가야,


이게 바로

이 몸이 떼꾼 시절에

수적 놈들 수백 명을

물고기 밥으로 만든

노 지르기라는 기술이다.


잘 봐둬라."


"하...그놈 참 허세는...수백은 무슨..."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장종훈과 이정훈의 농담에 비해,


철선장 지르기에 맞은 부상자는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못했다.


급소에 직격으로 꽂힌 철봉은

사내의 호흡을 자르고,

복면으로 가려진 입 위에

허연 거품을 뱉어내게 만들었다.


자신의 동료 하나가 그렇게

사지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자,


서로 꽤나 친했던 사이인지


또 한 명의 살수가

무척이나 흥분한 듯 큰 소리를 지르며

단도를 뽑아

크게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때,


사내의 움직임을

한 번에 멈추게 하는 큰 소리가

바로 뒤에서 울려 퍼졌다.


"구초야!!! 지금 뭐하는 거냐!!!


살수의 기본은

베기가 아니고 찌르기라고

하지 않았더냐!"


소리를 지른 사람은,


마지막 남았던

아홉 명의 살수들을 데리고

산등성이를 내려와

막 싸움터에 합류한 일랑이었다.


자신들의 부조장 일랑이 나타나

고함을 지르자,


부상자 다섯을 제외한

나머지 열세명의 살수가

침착함을 되찾고


곧바로 뒤로 물러나

다시 전열을 정비했다.




그 모습을 본 정민철의 눈에

당혹감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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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제 4 부 개화(開花) (84) 22.04.13 78 1 7쪽
189 제 4 부 개화(開花) (83) 22.04.11 75 1 8쪽
188 제 4 부 개화(開花) (82) 22.04.08 79 1 6쪽
187 제 4 부 개화(開花) (81) 22.04.06 82 1 7쪽
186 제 4 부 개화(開花) (80) 22.04.04 81 1 6쪽
185 제 4 부 개화(開花) (79) 22.04.01 89 1 6쪽
184 제 4 부 개화(開花) (78) 22.03.30 76 1 6쪽
183 제 4 부 개화(開花) (77) 22.03.28 79 1 8쪽
182 제 4 부 개화(開花) (76) 22.03.25 80 1 11쪽
181 제 4 부 개화(開花) (75) 22.03.23 77 1 8쪽
180 제 4 부 개화(開花) (74) 22.03.21 85 1 7쪽
179 제 4 부 개화(開花) (73) 22.03.18 85 1 7쪽
178 제 4 부 개화(開花) (72) 22.03.16 86 1 8쪽
177 제 4 부 개화(開花) (71) 22.03.14 81 1 8쪽
176 제 4 부 개화(開花) (70) 22.03.11 84 1 7쪽
» 제 4 부 개화(開花) (69) 22.03.09 84 1 9쪽
174 제 4 부 개화(開花) (68) 22.03.07 8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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