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비시즌에 생긴 일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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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를 마지막으로 국내의 KBO 일정이 모두 끝나고, 연말까지 야구 관련으로 남은 가장 큰 행사였던 APBC 대회마저 끝난지 어느덧 한 달이 넘게 흘렀다.
내후년에 나를 MLB에 보내기 위해 꾸려진 가칭 ‘원펀치 팀’이 활동을 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됐으니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그사이 야구계에선 매해 시즌 종료 후 반복되는 통과의례처럼 스토브리그가 시작됐고, 많은 변화가 연이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변화의 신호탄을 쏜 곳은 뉴월드 스파이더스였다.
단장부터 새로 바뀌었는데,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일원이자 한 공중파 스포츠 방송의 인기 해설위원이 단장으로 취임하며 전격적으로 1군과 2군 감독이 교체됐다.
모기업의 부회장이던 구단주가 잇따른 주력 사업의 경영실패를 책임지고 자숙의 의미로 맡고 있던 모든 직을 내려놓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그의 부친인 그룹 회장이 구단주 겸 사장으로 전문 경영인을 임명하며 시작된 내부로부터의 대대적 개혁이었다.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PG 타이탄스도 변화가 있었는데, 중요 코칭스태프와 핵심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코치나 선수 중 일부 중요 선수를 포함한 몇 명도 벌써 다른 팀에 거액을 제시받고 이동했다.
그리고 올해 투수와 야수 각 부문 최고의 실력을 기록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스토브리그 기간에 전력 강화를 꾀하는 구단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영입 대상이 된 선수들은 구단과 선수, 구단과 구단 간에 치열한 협상 속에 하나하나 그들의 소속과 자리를 바꿔나갔다.
가장 상위 팀 최고 선수들의 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도미노처럼 퍼진 변화와 이동의 흐름은 내가 속하게 된 MC 드래곤즈도 피하지 못했다.
1군과 2군의 몇몇 코칭스태프가 자리를 물러나 다른 팀으로 떠났고, 그 빈자리는 다른 팀에서 영입한 새로운 코치들로 메꿔졌다.
다행히 나를 2군에 받아들이느라 구단 프런트와 그때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던 2군 감독님은, 승진의 의미인지 2군 감독에서 1군 수석코치로 자리를 이동했다.
물론, 1군 감독님도 구단 사장님의 든든한 신임을 받아 다시 또 1군 사령탑을 맡게 됐고, 나를 모기업의 모바일 야구 게임 캐릭터로 디저털 상품화해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냈던 프런트의 홍보팀장님도 1군 운영부장으로 승진했다 하니, 나하고 친분이 있는 MC 구단 분들은 다들 자리를 안전하게 보전하거나 잘 풀린 셈이다.
전에는 이런 야구계 전반의 변화 흐름을 알기는커녕, 나 자신이 방출 통보받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다가 당일 아침에나 알았던 때와 비교하면 이것도 또한 엄청난 변화라면 변화다.
물론,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런 정보를 내가 빠르게 알게 된 건, 화려한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는 2군 매니저님, 아니 이젠 ‘트릴리온 코퍼레이션 코리아’ 소속의 주니어 에이전트가 된 홍승범 형님이 피터 형의 지시를 받아 끊임없이 사람들과 연락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새롭고 중요한 정보를 나하고 피터형에게 계속해서 알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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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형님! 한방이 체력 훈련프로그램 아직 다 안 끝났어요?”
언제 들어왔는지 승범이 형의 목소리가 스포츠센터에 크게 울렸다.
“어, 거의 다 끝나가는데, 왜?”
가칭 ‘원펀치’ 팀이 꾸려진 이후 트레이닝을 담당한 최진철 코치님과 스포츠센터에서 매일같이 새벽 5시부터 곡소리가 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소화하길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원래 예정했던 체력 강화 운동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면 최진철 코치님의, “한방아 그대로 하나만 더 해보자. 옳지 잘한다. 하나만 더. 옳지 그렇게 하나만 더! 좋아! 할 수 있다! 더! 더! 잘한다, 한방이! 하나만 더!”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이끌려 매일 속으면서 나는 곡소리가 절로 날만한 엄청난 운동량을 꾸역꾸역 소화하고 있었다.
오늘도 벌써 예정된 프로그램 종료 시간보다 20여 분을 더 넘겨 운동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스포츠센터로 승범 형님이 들어온 것.
“한방이 오늘 수석코치님 큰아들 결혼식에 참석해야 해요.”
아! 맞다.
류선일 감독님의 부탁을 받아 나를 여기 2군 C팀에 받아줬던 고마운 분이라 청첩장 받았을 때 꼭 간다고 말씀드렸었다.
“결혼식이 몇 신데?”
“늦었어요. 한방이 지금 얼른 씻고 옷 갈아입고 창원역 가서 KTX 바로 타야 해요.”
“그래? 아, 오늘은 어제 기록을 못 깼는데? 아쉽긴 하지만, 사회생활도 중요하지. 그래, 오늘 훈련 여기서 종료하자, 자! 한방아 얼른 가 봐라.”
연신 아쉬워하면서 나를 보내주는 최진철 코치님.
후들거리는 다리를 손으로 짚으며 간신히 버티고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개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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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범이 형을 따라서 예나와 함께 KTX를 타고 서울 강남의 예식장으로 향했다.
시즌 일정 중에는 서로가 바빠서 선수들은 대부분 비시즌에 결혼식을 올린다.
안 그러면 원정경기 중인 친한 동료들의 결혼식 참석은 포기해야 한다.
그건 선수 본인의 결혼은 물론이고, 오늘 수석코치님처럼 코칭스태프의 자녀 결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은혜는 두 배, 원한은 열 배로 갚으라던 피터 형의 말이 생각나 축의금은 우리 형편에 비해선 좀 크게 했다.
왜냐면, 요즘 우리 집의 지갑 사정이 꽤 여유롭기도 하고, 함께 예식장에 온 예나와 승범이 형까지 세 명의 호텔 식사 비용을 생각해서다.
전세 빼면서 빚 갚고 남은 돈, 예나의 퇴직금과 위로금, 내가 MC 드래곤즈 1군 계약하며 받은 계약금, 그리고 MC 드래곤즈의 모기업 모바일 야구 게임 속 내 캐릭터 판매 수익과 계약금 등을 합하니 총 2억 5천이 넘었다.
집세와 관리비는 레이나와 피터 형의 덕분에 해결되어 식대 외에는 특별히 크게 들어가는 돈이 없으니 조금씩 차곡차곡 쌓여가는 통장을 보며 요즘 예나와 나는 몹시 행복한 상황이다.
게다가, 아직 시즌이 안 됐기에 아직 받지 못했지만, 시즌 중에는 10개월에 걸쳐서 매월 나눠 받을 연봉 수입도 있고, 피칭머신의 머신 볼을 때리며 받는 돈도 다른 계좌에서 달러로 받아 모으고 있다.
심지어 총 32억의 인센티브 계약도 있기에, 시즌 중에 부상 없이 전 경기에 나와 리그 MVP 급의 활약을 해주면 32억도 내 돈이 될 수 있다.
저절로 웃음이 난다.
“자기야, 일어나. 이제 내려야 해.”
“어~어.”
“뭐야? 또 호텔 뷔페에 혼자만 들어가서 다 먹는 꿈을 꾸고 있었어?”
“응? 무슨 말이야?”
“자기가 자면서 막 웃는 표정이, 뷔페 들어가면 입구에서 보이는 그때 웃음과 똑같아서.”
예나의 말에 승범이 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는다.
“그래, 한방이 너 진짜 엄청나게 먹더라. 만약 나중에 야구 그만두면 먹방 유튜버 하면 크게 돈 벌겠더라.”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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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늦지않게 결혼식 장소에 도착했다.
강남의 한 5성급 호텔 대연회장인데 큰돈을 썼는지 결혼식장은 굉장한 양의 꽃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입구에는 수많은 선수와 코칭스태프 그 밖의 야구인들이 보낸 화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신랑 측으로 가서 수석코치님과 사모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수코님의 큰아들 되는 분과 인사 나누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 잡고 앉았다.
2군 선수들은 자주 어울렸으니 대부분 잘 알고 지냈지만, KBO 1군은 평소에 만날 일이 없었던 관계로 TV에서나 보던 선수들을 예식장에서 만나도 아는 척을 할 수 없어서 인사도 못 나누고 뻘쭘하게 있었다.
그런데...
“저기, 김한방 선수 맞죠?”
누가 나를 불러서 앉은 자리에서 옆을 돌아보는데 MC 드래곤즈 프랜차이즈 스타급인 양민호 선수였다.
1루수를 맡은 주포로서 올해 2할대 중후반 타율에 홈런 26개를 쳤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내 옆에 앉은 승범이 형이 귓속말로 귀띔을 해줬다.
“MC 주전 1루수 양민호 선수야. 올해 주장이었고 나이는 너보다 한 살 많은 선배. 올해 타율 2할 7푼 2리, 홈런 26개에 94타점이야, 1루수 골든글러브 아깝게 놓친 걸 무척 아쉬워한다고 해. 친해지면 도움도 되고 많이 편해질 거야.”
승범이 형의 조언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민 양민호 선수의 손을 잡고 악수한 후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양민호 선배님. 김한방입니다.”
“오! 날 알아보네요?”
“그럼요. 1루수에 주장을 맡고 계시고, 올해 타율 2할 7푼 2리에 홈런 26개 타점 94개 아닌가요?”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승범이 형이 알려준 구체적인 수치를 말하자 표정이 더욱 밝아진 양민호 선수다.
“아! 이거 너무 기분 좋은데요? 내 기록을 다 외우고 있었어요? 하하하.”
“아, 제가 이번에 합류하게 되면서 여러 선후배님들과 동료 선수들에 대해 미리 알아두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루수 골든글러브는 정말 아까웠습니다. 말도 안 되는 거죠. 저는 당연히 양민호 선배님이 받으실 줄 알았거든요.”
살짝 후회했다.
요즘 체력 강화 훈련에 지쳐서 평일엔 예나와 부부관계조차 꿈도 못 꾸고 곯아떨어질 정도로 많이 피곤하다.
그 바람에 승범이 형이 스프링캠프 들어가기 전에 구단 내부에 대해 알아둬야 한다고 미리 정리해서 준 노트를 다 외우질 못했다.
아무리 졸려도 자기 전에 5분씩이라도 외워둘 걸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다.
다행히 양민호 선수의 표정을 보니, 그래도 내가 점수를 제대로 잘 딴 듯싶다.
“오! 올해 같은 팀에서 뛰게 되어 반갑다는 인사 전하고, 주장으로서 도울 수 있는 거 도울 테니 편하게 다가오면 좋겠다는, 그 인사하려고 아는 척했던 건데, 와~! 김한방 선수 덕분에 살짝 감동했어요. 하하하. 우리 올해 멋지게 뛰어 봅시다.”
“네, 선배님”
내 손을 잡은 양민호 선수의 손에 따듯하다고 느껴졌다.
그때 우리 테이블 근처로 또 다른 선수들이 오고 있었다.
“영주, 진용이, 거기 우진이도 이리 잠시 와 봐라.”
양민호 선수가 부르니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고 두리번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던 세 명의 선수가 우리 쪽으로 오더니 양민호 선수에게 먼저 인사한다.
“선배님, 일찍 오셨네요?”
“어, 너희 이리 와서 인사 나눠라. 김한방 선수도 이 친구들은 알고 있죠?”
올해 성적은 제대로 다 못 외웠지만, 이름과 포지션은 알고 있었다.
“네, 압니다. 2루수 김영주 선수, 포수 이진용 선수, 그리고 이쪽은 중견수 천우진 선수죠.”
역시나 이번에도 흐뭇하게 웃는 양민호 선수다.
“너희도 이 대단한 체구와 잘생긴 얼굴 보면 누군지 단번에 알겠지? 앞으로 우리 팀에서 함께 할 김한방 선수야. APBC 대회 MVP.”
2루수 김영주만 표정이 조금 이상했고 나머지 둘은 반갑게 나하고 인사를 나눴다.
포지션이 경쟁이라 그런가?
“어! 정필이랑 진성이, 잠시 이리 와 볼래?”
양민호 선수가 두 명의 선수를 더 불렀는데, 하필이면 전부 나하고 포지션 경쟁을 해야 할 선수들이었다.
공교롭게도 MC 드래곤즈의 주전 1, 2, 3루수와 유격수 그리고 경쟁하게 될 내가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완전히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
저들 중에서 김진성 선수의 표정이 가장 안 좋았다.
APBC 대회 베스트 9의 유격수 부문에 뽑혔던 나이기에, 아마도 자기 자리를 위협한다고 생각 하나 보다.
별로 반기는 표정은 아닌데, 어색하게 웃으며 뚱하게 손 내미는 선수들과 악수하며 양민호 선수의 소개로 서로 인사 나눴다.
이들이 다들 자기 자리로 간 뒤, 또 다른 선수들도 간혹 먼저 인사하며 다가왔는데, 그때마다 승범이 형이 간략 정보를 귀띔해줘서 더 친밀하게 인사 나눌 수 있었다.
1월 말에 있을 스프링 캠프에서 처음 만나 인사하며 어색하게 합숙 훈련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먼저 얼굴을 보이고 서로 가볍게 인사라도 한 번 나눈 게 나중에는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포지션 경쟁자와는 어색하고 불편한 만남이었지만, 피터 형과 승범이 형 말대로 수석코치님 큰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건 아주 잘한 결정 같다.
하지만...
결혼식이 시작되고 신랑의 입장 이후, 아빠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따라 신랑에게 걸어가는 흰 드레스의 여신 같은 신부를 보며 마음이 아파왔다.
그래서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해서 옆에 앉은 예나의 옆얼굴을 보는데, 예나 역시 내게 들킬까 봐 조심하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동안은 둘이서 함께 남의 결혼식장에 갈 일이 없어서 몰랐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괜히 결혼식장에 함께 데려와서 예나 마음만 아프게 만들었다.
신부드레스도 입어보지 못했고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던 예나는 지금 이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를 보며 얼마나 부러워하고 있을까?
연락을 끊고 집을 나온 이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친정 식구들이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울까?
집을 나와서 나하고 혼인 신고만 한 채로 동거하게 된 예나에게, 늦게라도 예쁜 드레스 입혀서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예나에게 친정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가족을 되찾아 주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꼭 성공해야 겠다.
더 열심히 훈련해서 다가오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확실하게 주전 자리를 차지해야겠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시 또 굳은 각오를 다지고 또 다진다.
예나의 손을 꼭 잡아줬다.
내 마음을 아는 건지, 손을 잡힌 예나가 내 어깨에 천천히 머리를 기대어온다.
그래, 힘들고 지칠 땐 언제나 내게 기대어도 돼.
나 반드시 꼭 성공할게!
조금만 더 기다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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