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메뉴미뉴의 서재입니다.

나는 빌런을 흡수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메뉴미뉴
그림/삽화
bing create
작품등록일 :
2021.12.15 10:59
최근연재일 :
2022.02.11 23:50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100,687
추천수 :
2,025
글자수 :
283,127

작성
22.01.12 15:45
조회
1,648
추천
31
글자
12쪽

영국 (2)

DUMMY

중앙의 맨 우측자리.

눈에 잘 띄지 않는 무난한 곳.

그곳에 귀여움을 조각한듯한 금발의 소녀가 앉아있었다.


엘리아 홀랜드.


‘아빠···. 오늘도 안 들어오셨지.’


다만 그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기숙사가 아닌 통학 때문에 다크서클은 기본이었으며,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빠를 걱정하며 입꼬리가 주저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야?”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기가 세 보이는 여학생.

그녀는 같은 과에서 가장 어두운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델라인···.”

“너 이번 주 내내 표정이 왜 그래? 학점 못 채웠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어.”

“···왜, 무슨 일인데.”


공부벌레 아델라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학점을 못 채운 것보다 심각한 일이라니.

안 그래도 베일 것 같은 눈매인데, 이런 표정을 지으니까 무서웠다.


엘리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주위에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지금 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맞을까?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몇 번이고 다시 삼켰다.

아델라인은 그런 그녀의 대답을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실···.”

“야! 오늘 새로운 강사님이라면서!”


한 남학생의 외침이, 그녀의 말을 도로 집어넣었다.


에휴. 남자애들은 도대체 언제 철든대.


“엘리아, 편할 때 알려줘. 언제든 들어줄게.”

“응, 고마워.”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엘리아가 의기소침할 때에는 입 모양을 보면서 대화해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수업 준비를 하며 남자애들의 이야기에 조금 귀를 기울여보았다.


“이번에는 아시안이라는 말이 있던데.”

“아시안···. 아시안 중에서 마법이라면, 설마 윤현진 헌터···?”

“···.”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델라인은 제 이마를 짚었다.

아니나다를까.


빠악!


그 실언을 내뱉은 녀석은 뒤통수를 시원하게 두드려 맞았다.


“왜 때리는데!?”

“모르면 더 처맞아야지.”

“야. 야. 됐고. 신고식 해야지, 신고식.”

“우리 중에서 캐스팅 가장 빠른 애 누구지?”

“나.”

“응, 그건 아닌 것 같고. 데이비드가 가장 빠르지 않아? 가장 빠른 게 몇 초 정도 걸려?”

“영창만 미리 해놓으면 캐스팅은 1초 이내로 끝나.”

“오 개 쩔어. 더 빨라진 거 아니야?”


힐끗.

아델라인은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먹히려나?’


아델라인도 흥미가 생겼다. 그렇지만 직접 할 생각은 아니다.

이런 건 내가 하는 게 아니니까 재미있는 거다.


봉사 시간을 준다고 해서 잠깐 했던 통역.

그때의 대화로 이번 강사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종강한 교수님의 실력도 마찬가지. 저 단상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괴물뿐이다.


그 사실은 저 남자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반년 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마법이 어디까지 통할까.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저벅 저벅


복도에서 두 명의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들린다!”

“빨리 앉아, 빨리! 방심시켜야지!”


곧이어 김선우 헌터가 강의실에 들어섰다.

학생 중에서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헌터에 관심 있는 녀석들도 능력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랭커들 밑으로는 잘 안 외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아직 A급인 모양이라,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툭툭


누군가 데이비드에게 신호를 주었다.

영창을 중얼거리던 데이비드는 마법을 캐스팅했다.


두 명이 함께 들어와서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아시안은 한 명.

그 사람이 강사일 것이다.

그를 중심으로 아이스 스피어를 발동했다.


‘쟤는 수업 어떻게 들으려고 벌써 마나를···.’


게다가 다중마법.

세 개의 마법진이 김선우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1초 이내 캐스팅이 끝난다는 게 허풍이 아니었는 듯, 곧바로 마법이 발동되었다.

예리하게 벼려진 얼음 창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와장창


하나의 얼음 창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으며, 다른 두 개는 산산이 흩어졌다.

무슨 마법을 사용한 거지? 트릭이 보이지 않았다.


후웅!


김선우는 창을 공중으로 내던졌다.

엉뚱한 학생을 향해 날아들었다.


“으아아악!”


그 학생은 비명을 질렀지만, 괜찮았다.

공중에 나타난 마법진이 그 창을 흡수했다.

그리고 그 창은.


차라락-


데이비드의 주위를 둘러싼, 서른 개가 족히 넘어 보이는 모든 마법진의 중앙에서 나타났다.

세 개의 얼음 창이 열 배로 되돌아온 셈이었다.


데이비드의 코앞에서 마법이 멈추었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습이었음에도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후두두둑


공중에 멈추었던 창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강사는 분필을 잡고 칠판에 무언가를 적어 내렸다.


처음에는 한글.

그 다음은 영어였다.


“김선우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영어가 아니었다.

한국어였다.

옆의 남자가 그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김선우는 노트북을 영사기에 연결하며 말했다.


“마법진에 관한 기본 원리만 배웠다고 들었는데, 방금 학생의 마법을 보니 제가 여러분을 과소평가한 것 같군요.”




그리고는 가방에서 책들을 꺼냈다.

스프링으로 간단히 제본되어있는 책이었다. 직접 만든 것 같았다.


“필기할 것이 너무 많을까 봐 간단한 교재를 만들어 왔습니다만···.”


화르륵


그런 것을 미련없이 불태워버렸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화면에 강의 자료가 띄워졌다.

첫 페이지에는 앞으로 무엇을 배우게 될지. 오리엔테이션이 준비되어있었지만.


달칵 달칵 달칵 달칵


“초급 부분은 넘어가고.”


셀 수도 없이 많은 페이지가 빠르게 지나쳐갔다.

그리고 열 개의 마법진이 화면에 떠올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포함된 술식이 많고 복잡했다.


“오늘은 이 마법진들의 술식을 하나하나 분해해 보고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마나만 있으면 높은 등급의 헌터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마법진들이니 꼭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김선우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코리안 주입식 교육 들어간다. 필기해라.



***



아카데미의 가장 높은 곳.

경비병들의 감시초소.

그곳에서 경치를 내려다보았다.


영국왕립 아카데미.

설계를 누가 했는지, 노을 질 시간이 되면 절경이었다.

붉게 물든 풍경 속에서 하나둘 켜지는 가로등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기 충분했다.


그 사이에서 길게 늘어진 학생들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도서관으로 향하거나, 뒤늦게 식당이나 매점을 찾는 학생들이 많았다.

일과를 마치고 기숙사로 향하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통학을 하는 학생도 가끔 한두 명 보였다.

기숙사 건물 정도면 학생들 전부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통학생들도 있구나.


김선우는 경비원에게 물었다.


“기숙사도 돈이 들어?”

“당연하지. 정부 지원금이 모든 걸 해 줄 수는 없어.”


저녁을 먹은 뒤, 경비병과 잡담을 나누며 해 질 녘의 경치를 구경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덕분에 영어 실력이 늘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려운 단어는 못 쓴다. 최대한 간단한 단어들을 배열할 뿐이었다.


“그럼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은 돈이 부족한 거야?”

“그런 경우도 있어. 대부분은 집이 가까워.”


경비원도 김선우의 영어 실력에 맞춰 쉬운 영어로 답해주었다.


“그렇구나.”


김선우는 정문으로 향하는 금발의 여학생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해가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갈 시간이다.”

“그러네.”


해가 저물면 그들은 헤어진다.

경비원은 곧 교대시간이며, 김선우는 교수실로 돌아가 마저 강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것이 그들의 일과였다.


그렇지만 오늘 김선우의 일정은 조금 달랐다.


“아마 이 친구였지?”


강의 준비를 하는 대신, 출석부를 펼쳐 들었다.


“엘리아 홀랜드.”


그녀는 일주일 내내 마나가 불안정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영국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일주일마다 시행되는 정신건강진단 덕분에 마인화는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걸 왜 네가 가지고 있는 거니.”


그녀의 손가락에 있던 반지.

김선우가 찾고 있던 아티팩트였다.



***



일요일이 되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네.”


총장이 오늘 아침 건네준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강의 첫 번째 주 만족도 설문 조사 결과]

마법학 | 실전 마법의 분석 및 이해 ? 김선우

만족도 : 0.92


1점 만점의 만족도 조사에서 0.92가 나왔다.

그런 수업의 어디가 좋은 건데.


그 아래의 세부 평가를 확인해보았다.


[술식의 원리와 필요성을 상세히 알려준다. 기초적인 질문은 받지 않으나, 깊은 탐구에 도움이 되는 질문에는 성심성의껏 답해준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필기만 완벽하게 되어있다면 스스로 마법을 탐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 만족스럽다는 답변이 다수였다. 강의를 들을 때 머리보다 손가락이 아픈 것이 단점. 이는 1학년부터 졸업반인 4학년까지 모두 동일했다.]


아카데미에는 괴짜만 모인다더니,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손가락 아픈 것보다 머리 아픈 게 더 좋다니.


김선우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이제 뭘 가르쳐야 하나.”


가르칠 게 없어서 고민인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가르칠 게 너무 많았다.

평소에 자신이 숨 쉬듯이 사용하는 마법들을 놈들에게 완전히 이해시키려면 1년 내내 강사로 있어야 할 판이다. 그렇기에 그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고.

최대한 간단한 것들만 뽑아서 알려주고 있긴 한데. 여기서 난이도를 더 올리면 못 따라올까 걱정이었다.


“···고민을 왜 해. 나 강의하러 온 거 아니라니까.”


그깟 난이도. 조금 올리고 애들 울먹이는 얼굴이나 보지 뭐.

다시 마우스를 잡는 순간이었다.


“···오늘이 그날인가 보구나.”


추적 마법을 심어놓았던 녀석들이 단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전기가 끊긴, 어둡고 눅눅한 집.


“···.”


엘리아는 손바닥 위에 놓인 알약들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머, 먹어야겠지···?”


마나 억제제.

금요일에 늘 하던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더니 위험군이 나왔다.

이 약은 정부에서 보내준 것이다.

이걸 먹으면 이성을 잃고 날뛰는 마인화를 예방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엘리아는 아카데미의, 그것도 마법학 전공 학생이었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실습을 할 수가 없다.


물론 1학기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긴 하지만, 새로 오신 강사님의 강의를 듣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실습은 안 했지만, 언제 하게 될지 모르니까···.’


자꾸만 불안했다.

이것 또한 내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일까.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그랬었지.”


아델라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밤이 늦긴 했지만, 그래도 아델라인이라면 명확한 답을 내려줄 것이다.


뚜르르르-


전화 연결 음이 몇 초.


-여보세요?


아델라인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아델라인···.”

-무슨 일이야?

“사실 이번 정신건강 설문조사에서···.”


엘리아는 힘들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먹어야지! 안 먹으면 너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고! 난 친구 잃기 싫거든?

“역시 그렇겠지?”

-그래, 마법은 이론으로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을 수 있어. 김선우 강사님 수업은 더 그렇잖아? 그러니까 너 자신을 좀 더 아껴.

“응, 고마워. 덕분에 한결 편해진 것 같아.”


그때였다.


달칵-


열쇠로 잠가놓았던 문이 열렸다.


“···아빠?”

“아빠는 무슨.”


쿠당탕-


전화 너머로도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엘리아, 괜찮아? 엘리아! 엘리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 빌런을 흡수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지 22.02.12 226 0 -
52 독도 게이트 (4) +2 22.02.11 372 10 12쪽
51 독도 게이트 (3) +1 22.02.09 503 16 12쪽
50 독도 게이트 (2) 22.02.08 543 14 12쪽
49 독도 게이트 (1) 22.02.07 642 16 12쪽
48 제레드 레이건 (2) 22.02.06 740 17 12쪽
47 제레드 레이건 (1) +1 22.02.05 787 18 13쪽
46 환원회 (6) +2 22.02.04 789 22 12쪽
45 환원회 (5) +2 22.02.03 815 22 13쪽
44 환원회 (4) 22.02.02 862 19 12쪽
43 환원회 (3) 22.02.01 922 22 12쪽
42 환원회 (2) 22.01.31 907 22 12쪽
41 환원회 (1) 22.01.30 1,013 21 12쪽
40 헌터과 평가전 (3) 22.01.29 1,007 24 13쪽
39 헌터과 평가전 (2) +1 22.01.28 1,042 23 12쪽
38 헌터과 평가전 (1) +3 22.01.27 1,113 28 12쪽
37 이집트 대붕괴 (3) +1 22.01.26 1,126 23 12쪽
36 이집트 대붕괴 (2) 22.01.25 1,171 25 12쪽
35 이집트 대붕괴 (1) 22.01.24 1,270 26 12쪽
34 신입생 평가 레이스 (4) 22.01.23 1,222 28 12쪽
33 신입생 평가 레이스 (3) 22.01.22 1,222 31 12쪽
32 신입생 평가 레이스 (2) +2 22.01.21 1,304 26 12쪽
31 신입생 평가 레이스 (1) 22.01.20 1,388 27 11쪽
30 겨울방학 22.01.19 1,436 29 11쪽
29 아티팩트 쟁탈전 (2) 22.01.18 1,500 30 12쪽
28 아티팩트 쟁탈전 (1) 22.01.17 1,510 31 13쪽
27 영국 (5) 22.01.15 1,531 33 12쪽
26 영국 (4) 22.01.14 1,559 30 12쪽
25 영국 (3) 22.01.13 1,594 31 12쪽
» 영국 (2) 22.01.12 1,649 3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