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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 님의 서재입니다.

축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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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
작품등록일 :
2012.01.17 20:33
최근연재일 :
2011.05.12 00:14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98,321
추천수 :
367
글자수 :
197,150

작성
11.05.06 00:02
조회
3,416
추천
14
글자
23쪽

축구 이야기 #9

DUMMY

"뻥~~~!!"


"다음!"


숨이 찬다. 이게 몇 명째인지 모르겠다. 열 명은 확실히 넘었는데 그 뒤로는 세기가 어려워져 그저 이 애들이 달려오면 막고 또 멀리 차버리고, 달려오면 막고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쉬지 않고 몸을 계속 집중해야 하다 보니 땀도 조금씩 나면서 옷이 달라붙었다. 이제는 그럴듯하게 줄까지 서가며 자기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나도 사람이고 체력이 무한한 건 아닌데 조금 쉬었다 하면 안 될까? 아니, 거기 코치 놈. 너만 음료수 마시지 말고 나도 좀 주지? 나도 주면 잘 마실 수 있거든?


"ㅅㅎㅅㄱ ㅎㄳㅎㄳ! ㄷㅎㄳㅎㄱㄱㅎㄳ!!"


"우~!!!!!"


"뻥~~~~!!"


이번엔 꽤 아깝게 공을 뺏겼다고 생각하는지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며 발광을 한다. 전혀 아닌데. 고놈…. 키도 쪼끄만 게 승부욕 하나만큼은 알아줘야겠다. 나도 지금 여기서 공을 뺏고 다가오지 못하게 막고, 페인트를 걸기도 하며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 같다. 처음처럼 체력분배 없이 최고 속도로의 급가속, 급정지 같은 부담이 많이 가는 행동보단 살짝 페인트를 걸어주고 흔들어 빼앗는다든가 아니면 그냥 유리한 신체조건으로 밀어버린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사실 저기 저 아이들이 저렇게 줄을 서게 된 것도 처음 다섯 명 정도 까진 실력이 좋은 놈들이 줄줄이 덤벼드는 바람에 막판에 아슬아슬하게 뚫릴 뻔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그 다음번 기회에 내가 공격을 하기로 해서 사포로 공을 띄우고 녀석이 공을 잡지 못하게 내 몸으로 진로를 벽처럼 막아서 그대로 내려온 공을 슛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단단히 삐친 건지 내가 두세 놈을 관광시킨 후에 다시 덤비려고 하기에 순서를 지키라고 했더니 자기들끼리 알아서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아~참 소심하기까지 한 놈이다.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그래도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저기 멀리 있는 골대로 공을 차 넣는 것! 이것마저 없었다면 나는 진작 퍼져서 기어 다니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처음엔 골려줄 생각으로 시작한 똥개훈련이지만 지금 생각으론 그건 정말 오늘 내가 가장 잘 선택한 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좀 천천히 갖고 와라. 뛰지 좀 마, 쫌!


"후후후."


그래도 군대에선 볼 수 없던 여러 가지 드리블 기술들을 직접 겪어보자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피식~.'


하긴 그때는, 거기서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축구는 초등학교 때 축구왕 슛돌이라는 만화를 TV에서 했을 때 잠깐 해본 게 다였는데 이등병 때 골키퍼가 되어서 절대로 골을 먹으면 안 되는 위치가 되었을 때. 얼마나 난감했었나. 그리고 작은 골대라고 무시하며 대충 하다가 멋모르고 골을 먹었을 때의 그 미친 듯한 갈굼과 째림. 졌을 때의 그 모든 뒷감당. 하아…. 한 번의 실수로 일주일 내내 그 당하던 괴롭힘…. 미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꼬박꼬박 시합에 나가야 했던 이유는 축구에 미친 김 일병 때문에….


그렇게 6개월이 지나 일병이 되고 수비수로 다른 소대의 고참 선임들을 몸으로 막아야 했고 악착같이 행동해야 했다. 선임들의 그 정신공격 역시…….


'어쭈, 막아? 너 많이 컸다. 전 일병. 내가 누구지?'


'야! 너 나랑 있다가 야간 근무지? 죽고 싶냐? 안 비키냐?'


'야 이 새끼야! 멍하니 서서 뭐하는 거야! 너 때문에 골 먹었잖아. 미쳤냐? 군 생활 하기 싫어?'


'야야야! 나 네 소대장이야. 어디 감히 일병 딱가리가. 에잇.'


'…!!!'


"………!!!'


"…!!!!"


…….


막아도 힘든 군 생활이었고 뚫려도 힘든 군 생활이었지만 절대로 뚫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날 내 분대 선임 김 상병이 취침시간 내내 옆에 누워서 잠도 안자고 나를 갈궜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짬만 어느 정도 되면 절대로 축구는 절대로 안 한다고 다짐했었는데…. 왜 그 생각을 바꿨더라? 아…….


어느덧 중대에서 가장 수비를 잘하고 열심히 뛰는 일병이라는 평가와 공을 몰고 적당한 패스를 찔러준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짬을 먹어갔고 상병이 되어 병장 군번들이 대거 휴가를 가거나 자리에 없을 때부터 간간이 공격수로 뛰어봤던 그때. 나와 같은 공격수이자 선임들이 골을 넣게 하려고 어시스트 공부를 했더랬다. 완벽한 찬스를 만들고 골키퍼와 일대일의 상황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패스. 하지만, 처음엔 무작정 패스를 하려다 보니 하는 족족 상대 떼거지 수비에 막혀야 했고 그러면 또 들어오는 갈굼……. 내 밑에 후임이 몇 명이 생기든, 쪽팔리지만 모두 보는 앞에서 받아야 하는 갈굼. 그게 힘들었더랬다.


‘그랬지. 후후….’


그래서 다시 밤낮으로, 시간이 나는 모든 짬에 머릿속으로 축구 전술을 짜보고 체력단련시간엔 동기의 단백질 보충제를 얻어 먹어가며 쉬지 않고 운동을 했다. 살기 위해서였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지금 이 아이들처럼, 지금은 클 만큼 커버린 놈들도 보이지만. 축구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서, 혹은 좋아하는 축구선수를 따라 같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같은 낭만적인 계기가 절대로 아니었던 거다. 김 상병, 그때는 김 병장이 전역하기 전까진 나는 절대로 축구를 그만둘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우리 소대는 공격만큼은 최고라는 소리를 들었었다. 지는 건 죽어도 못 참는 김 병장과 그에게 기회를 찔러주는 내 활약으로 다른 소대와의 축구시합은 항상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어이쿠~.'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 내 깊숙이 파고든 녀석의 행동에 대응 못 할 뻔했다.


"엇. 어어! 어딜?"


나는 자세를 숙이며 옆으로 팽이처럼 180도 돌아 축이 되지 않은 발로 공을 옆으로 살짝 밀고 그 다리를 그대로 축으로 삼아 다시 몸을 돌려 옆으로 빠진 공을 잡았다. 이 정도면 진로방해 판정까지 받진 않겠지? 바로 옆으로 빠졌으니까.


"아~~~!!!!!!!"


여기저기에 아이들이 큰소리로 탄식한다. 뭐야. 이것들, 왜 응원하고 있는 거야. 나는 이 한 몸 불살라서 너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을 내리고 있구먼. 하여튼 외국 놈들은 다 이기적이다. 고마운 줄을 몰라. 쯧쯧쯧…. 나를 거의 뚫을 수 있던 던 소년을 바라본다. 얼굴에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 가득 이다. 자식, 다음번엔 할 수 있다는 뜻이냐?


"너. 몇 번 했냐?"


"음……. 네 번이요."


"그래. 마지막이다. 다녀와라!"


"뻥~~~!!"


뭐가 저리 급한지 차기가 무섭게 달려간다. 이거 나도 집중을 해야 하는데…. 그래, 김 병장이 전역할 시간이 다가오자 좋아하던 축구도 하지 않고 반납할 군장을 깨끗이 빨거나 물려줄 판초우의를 칫솔로 때로 벗기는 미친 행동을 하자 나도 더는 축구를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지만 나는 축구를 계속해야 했다. 김 병장의 자리에서…. 그리고 그전의 내 위치에서 나만큼 잘하지 못하던 후임의 자리까지. 수비도, 패스도, 공격도 모든 위치에서 가담해야 했다. 미치는 줄 알았지. 이렇게 쉬운 걸 왜 그렇게 못 하는 걸까 싶어 갈구기도 했다.


그래도 한정된 내 월급으로 소대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이나 쿨피스라도 하나씩 돌리기 위해서는 이길 수만 있다면 다른 소대와 내기 축구를 하는 방법이 가장 만만했기도 하고 아무튼 그랬었다. 지면 쪽박 차는 거지만…….


그리고 잊을 수 없던 김 병장의 전역 날. 우리 소대는 김 병장의 전역 전날 중대 전통으로 저녁 8시부터 과자와 음료수를 다 같이 사와 축하해주기도 하고 서로 한마디씩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미운 정이라는 걸까? 아무리 무섭고 성질 나쁜 선임도 마지막에는 항상 전역을 축하하고 잘 지내라는 말을 하거나 웃으며 마주할 수 있던 자리…. 물론 그 자리엔 나도 있었다. 그리고 취침시간이 되자 김 병장이 담배를 피우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야 전상병. 너 나 나가니까 시원하지?"


"아닙니다."


"야~아니긴. 솔직히 말해도 돼. 그리고 말도 편하게 해도 되잖아. 크크."


"괜찮습니다."


"아, 짜식~. 그렇게 나오기냐? 너는 내가 많이 미울 거다. '왜 이런 사이코한테 걸렸나.' 그런 생각 하지 않냐."


"아닙니다."


"그래. 말해줄까? 내가 너한테 왜 그렇게 했는지 말이야."


"……."


이 새끼.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사실 말이야. 네가 1분대로 왔을 때 난 솔직히 막막~했다. 같은 날 소대로 신입이 세 명이 왔는데 왜 하필 네가 우리분대로 왔는지 말이야. 킥킥."


"야, 솔직히 안 그렇겠냐? 넌 완전히 관심병사였잖아. 표정도 만날 무표정이지, 언제 자살하거나 사고 칠 놈 같아서 아주 짜증 났단 말이야. 에이씨, 내 말년 꼬이는 거 아닌가 했지."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까도 했지만 후우~그것도 아니었단 말이지~. 내가 딱 보니까 너는 너밖에 모르고 공동체 같은 건 엿이나 먹으라고 생각하는 놈이었거든. 아니냐? 아니면 말해봐."


"……."


"그래도 어쩌겠냐. 씨발. 미우나 고우나 결국 넌 이년 가까이 나랑 지낼 분대원이고 나는 네 선임인데. 내가 머리는 안 좋아도 존나 짱구를 굴려봤다 이거지. 니 동기 한승기. 네가 봤을 땐 어떠냐? 그 자식은 쫌 놀다 온 놈에다 서글서글해서 일병 때부터 나나 다른 선임하고도 형 동생이라고 부를 정도였잖아. 그래서 인기도 많고 소대 안에선 그놈 말이라면 일단 먹어주고 보지 않냐?"


"……."


"그리고 3분대로 간 최상연. 그놈 봐봐. 연세대 다니다가 온 놈이라 학벌도 소대에서 제일 좋고 집도 그 정도면 웬만큼 살잖아. 일 년 넘게 기다려주는 여자 친구도 있고 말이야.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빨라서 일하나 시키면 깔끔하게 해놓고, 밑에 후임들도 잘 챙겨줘서 잘 따르잖냐. 최상병 하면 '아! 그 연세대?' 할 정도로 다른 소대에도 유명하고 말이야. 안 그래? 너랑 좀 친하니까 잘 알 거 아니야."


"……. 그런데 넌 뭐냐? 응? 넌 씨발, 하하. 그런 게 하나도 없어. 뭐 그래~. 너같이 뭐 하나 잘하는 거 없고 남들이랑 친해지려고도 전혀 안 하고 너 혼자 잘난 것 같은 애가 꼭 있어. 소대 안에 니 후임 중에 들어온 애중에도 있지. 너도 나중에 존나 짜증 날 일이 생길 거다. 선임 알기를 뭐같이 알지. 말도 더럽게 안 듣고, 두고 봐라. 크크……."


"그런데! 나는 내 분대 후임이 어디 가서 무시당하는 게 졸라게 싫었다 이거야. 진짜 나도 너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거 생각하면 아오……. 내가 너 기 세워주려고 이유도 없이 그 두 놈 갈구고 그런 건 아냐? 알 리가 없지. 야~그리고, 그래서! 내가 있지도 않은 니 장점을 만들어 준거야. 알아듣냐? 그게 뭘까?"


"안 그랬으면 너는 '체력단련시간이 왜있나?' 하는 놈이잖냐. 좋아하는 운동 하나 없고 구석에 짱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고 말이야. 니가 그래, 축구라도 안 했으면 소대 애들하고 어떻게 어울릴래? 누가 널 껴주기나 한데? 니 후임 중에 널 정말로 좋아하는 애가 누가 있을 것 같아? 니가 날 욕하듯이 똑같아. 너는 니 후임에게 좆같은 놈일 뿐이야. 착각하지 마라. 크크. 요새 애들 조금씩 갈구더라? 아 물론 잘하고 있는 거라고. 크크크."


"……."


"내가 니 생각을 맞춰볼까? 이 새끼 이제 전역하니까 축구 같은 건 때려치우고 나 하고 싶은 거나 해야지. 이거 아니냐? 맞지? 어떻게 알았냐고? 너 같은 놈 생각은 뻔~하거든. 야야, 그래도 마지막으로 해주는 말이니까 좀 더 들어봐라."


"내 생각은 그래. 그러지 마라……. 같은 군번 동기 세 명이 한 소대에 있으면 이제 짬좀 된다고 설치고 싶거든. 그러면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 그럴 때 제일 먼저 무시당하고 좆되는게 너고. 왜? 넌 뭣도 아닌 놈이니까. 아하하. 병신같이 찌그려져서 작년에 조용히 전역한 이 병장 그 새끼 꼴 나는 거야, 너는. 같은 동기라도 같은 게 절~대 아니거든. 힘의 우위가 다 있는 거야. 넌 그런 것도 모르지?"


"그렇다고 너희 셋이 죽고 못 사는 사이도 아니고 말이지. 그런 널 살려주는 게 뭐? 축구지. 넌 그거밖에 없어 새끼야. 남들이 인정해주는 거. 좋아해 주는 거. 남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게 넌 그거 하나라고."


"내가 밉냐? 아니야. 넌 그냥 병신이야. 사실 축구 같은 거 못해도 군대 생활하는데 지장하나 없어. 하지만, 너는 일 년이 넘도록 다른 방법을 하나도 찾지 못했잖아. 크크크……. 진짜 깝깝~하다. 쩝…. 그냥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하고 한번 생각해봐. 나는 개인적으로 너한테 아무 원한 같은 게 없었다는 것만 알아주고. 그렇다고 너무 새겨듣진 말아~. 그냥 전역하는 놈 헛소리라고 생각해라. 니가 알아서 무시하겠지만 말이야. 나 먼저 간다. 잘 있어라."


"까이이익…………쿵."


"………………."


"………….'


"……."


그래.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에게 이런 얘기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김 병장의 말처럼 그 뒤로도 축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즐겁지 않았다. 골을 넣으며, 이기면서 즐거운 척했지만 즐거울 수 없었다. 내가…내가 고작 작은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이 고작…. 이것 하나라는 게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이 공을 지금 넣지 못하면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할 것 같아 더욱 거칠게 축구를 했고 가끔 장교, 부사관들이 함께하는 시합에 낄 때는 하나의 실수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소대 내에서도 내 인식이 그렇다면 나와 같이 생활하지도 않는 그들의 눈에는 더욱 하찮게 보일 나였기에…….


'하루, 하루 끔찍한 날이었지. 웃고있어도 속으로는 웃어본 적 없는 날뿐이었어.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슬퍼서 전화로 누나에게 더욱 기대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 이렇게 다시 공을 만지고 있다니……. 또 지금 이 상황이 싫지만은 않다니 정말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놈은 발전이 없는 놈이네. 다섯 번 다 왼쪽으로 파면 한번은 내가 오른쪽으로 막을 줄 알았나? 이거 바보 아냐?


"뻥~~~!!"


"다음!"


시간을 계산해본 건 아니지만, 분명히 한 시간 넘는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 붙잡고 있다. 옷은 이미 땀에 절어서 축축해 죽겠다. 그 1군 코치라는 놈은 왜 안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비와 함께 있는 남자무리가 다섯 명이 되어 있다. 새로운 얼굴이 보이는 것을 보니…이미 와 있었던 것 같다. 뭐야? 와 있었던 건가? 그러면 진작 나를 불러야지. 뭐하자는 거야?


'이크크…….'


이런 치사한 놈들! 이젠 내가 뒤를 보고 있을 때 달려든다. 허 참. 이거 너희 코치가 그렇게 가르치디? 본받지 마라. 저거 저 나이에 여자 친구도 없이 외롭다고 친구 갈구는 놈일 뿐이야. 닮아 봐야 좋을 거 하나 없어~. 어라, 이 녀석?


‘으음…. 그러고 보니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아니 더한 거 같은데?’


내게 계속해서 도전하는 놈이다. 승부욕 하나만 인정할 만한 놈. 물론 이번에도 나를 제치지 못했지만 말이다.


"헤이~. 힘 좀 내봐. 너무 못하는 거 아니야?"


훗. 상대방을 도발해서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것은 전술의 기본이다. 꼬마야, 너는 그것도 모르지? 흐…. 작은 편인 녀석이 또 달려드는데 확실히 속도 하나도 인정해 줘야 할 것 같다. 이 주력에다 내가 모르는 기술을 섞어 넣은 것에 뚫릴 뻔한 게 몇 번이나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어!"


"아~~~~~~~!!!!!!!"


나도 이번엔 완벽히 깔끔하게 막진 못하고 살짝 밀어낸 공을 놈이 뛰어가 잡는다. 어라? 다리가 무거워 졌나? 다시 온다! 녀석이 그 속도 그대로 뛰어오다 자세를 낮추어 오른발로 차던 공을 왼쪽으로 찬다. 왼발로 공을 받아 그대로 내 옆으로 지나가려 한다. 물 흐르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이다. 하지만!


"아~~~~~~!!!!!!!!!!!!"


나 역시 잽싸게 진로를 방해하며 따라붙는다. 그리고 완벽히 앞을 차단한다. 이러면 아직 뚫린 것은 아니란 말이지. 좀 치사한가? 그래도 할 수 없다!


"후우…."


녀석이 다시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심호흡을 한다. 그래. 그렇게 전력을 다해서 부딪혀봐. 온다! 아까와 같은, 아니 더 빠른 듯한 돌격이 온다. 어찌 저럴 수 있나 싶지만, 녀석의, 내 허벅지보다도 두꺼운 말 같은 허벅지를 보자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인제 보니 장난이 아닌데? 저건 일반적인 생활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허벅지 근육의 양이다.


그놈이 오른쪽으로 공을 몰고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런…. 하지만, 곧바로 뒤따라 다시 앞을 막아선다. 왼쪽으로 빠지는 페이크. 공은 뒤꿈치로 오른쪽으로 보내고 오른쪽으로 돌파! 하지만, 이건 내가 수읽기가 빨랐다. 다시 내 빠른 이동에 막혀 더는 다가오지 못한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공을 뺏기 위해 발을 뻗는다. 잽싸게 공을 뒤로 뺀다. 내 다리가 닿지 않을 거리에 둔 채 다시 페이크를 준다. 속지 않는다니까! 페이큰지 진심인지는 눈만 봐도 알 수 있어. 놈이 공보다 빠르게 내게 돌진한다. 그리고 그대로……. 어?


"퍽~!"


어깨로 내 몸통을 그대로 들이박았고 나를 밀어버리려 한다. 뭐야, 이거 반칙 아니야?


'으득!'


나는 이를 꽉 깨문다. 참아냈…다……! 한걸음도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다리가 땅을 밟지 못하고 떠있는 것처럼 무게중심이 뒤로 밀려서 재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 나는 뒤로 자빠지기 직전이다. 놈은 억지로 만들어 놓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을 가지고 오른쪽으로 빠지려고 한다. 제기랄! 그렇다면,


"꽈악!"


"?!"


"우우우~~~!!!!!!!!"


못 보내! 아니, 못 가!! 나는 그의 노란색 유니폼을 잡아끌어 이동을 방해하면서 당기는 힘을 이용해 공을 빼앗지는 못했지만, 다시 한 번 그의 진로 앞에 선다. 아, 주변에 참새들 참 짹짹거리네. 하하……. 이게 어른들의 플레이라는 거다. 헥. 헥…….


"헉…. 허억……."


"후우……."


녀석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뭐 이런 놈이 있냐는 얼굴이다. 너도 만만치 않거든? 이 자식아. 조금 전은 정말 위험했다. 진짜 포기할 법도 하건만 악착같이 달려든다.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니? 공 좀 뺑뺑이 친 거? 작다고 키로 밀고 몸싸움으로 밀어붙인 거? 너 관광 보낼 때마다 그냥 씩 웃어준 거? 이런 사소한 건 아닐 거 아니야. 도대체 뭐니? 형은 착해서 도저히 모르겠구나.


다시 한 번 공을 몰고 다시 내 앞으로 발재간을 부린다. 저러다 넘어질라. 그래서 공을 빼앗으려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나를 뚫을 수는 없다. 어휴. 또 저 기술이다. 온다. 나는 나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놈을 따라가려는데…….


"퍼억~"


"?!!"


내 몸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뭐지? 몸이 갑자기 무거워진다. 급하게 허리를 내려다보니 꼬마 한 놈이 내 허리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


'이거 뭐야? 안 떨어져? 아차! 이럴 때가…….'


나는 그대로 꼬마를 질질 끌며 놈을 따라붙는다. 헤엑~. 헤엑…….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퍼억~~!"


또 한 번 몸이 휘청이고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어느 놈이 내 등에 올라탔는데 무게가 상당하다. 너희는 말만 어린애들이지 180도 넘는 놈들이거든?! 그래도 질 수 없다! 나는 한 번 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몸속에 산소를 밀어 넣는다.


"크아아악!!!"


괴성을 내지르며 몸에 남은 힘을 쥐어짜내 공을 뺏기 위해 달려든다. 더럽게 무겁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에도 쉽게 뺏어지지 않고 놈이 한두 걸음씩 뒤로 물러나면서도 우리의 공방이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었…….


"퍼억~~!!"


"퍼억~~~!! 퍼억~!! 퍼억!!!"


"ㄱㄷㅎㄱㄷ ㅎㅅㄱㅎㅅㅎㄳㅎ!!!!!!"


"ㄷㄹㄷㄹㄷㄹㄷㄱ!!!!!"


"ㅠㅎ륳류ㅠ!!!”


"RUN! RUN! RUN! RUN!!!"


'!!!! 이런 미친??!!'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육탄 공격에 기절할 것 같다. 마음대로 쓰러지지도 못하겠고 또 한걸음도 움직이기 어렵다. 그리고 나를 상대하던 어린 녀석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전보단 많이 죽었지만 빠른 속도로 공과 함께 내 옆을 지나갔다.


‘안 돼~~~!!! 가지마아아아…….’


오른손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는 슬로우 장면과도 같은 모습으로 잔상을 남기고는 하………. 넘어섰다.


'우와~~~~!!!!!!!!!!!!!!!"


"와~~~~~~~~!!!!"


"ㄷㄹㄷㄱㅎㄹㄷㄱㅎㄳ!!!!!!!!!"


"ㄷㅈㄹㅈㄷㅈㄷ!!!"


"ㅑㅅ호ㅛㅗㅓㅛㅓㅛㅗ~!!!"


“!!!!!!!!!!!!!!!!!!!!”


동시에 수많은 환호성이 터진다. 이게 뭐야. 이건 마치…내가 악당 같잖아. 나는 백마 탄 왕자님이어야 하거든? 내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자 나를 덮쳤던 놈들이 하나하나 슬그머니 빠져나가 나와 겨루었던 놈에게 달려간다. 기운이 다 빠진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좀 쉬고 싶다. 땀에 잔뜩 젖은 바지가 바지 구실을 못하고 축축한 잔디의 감촉을 그대로 엉덩이 쪽으로 전달해준다. 저쪽에선 수십 명이 서로 끌어안고 소리 지르고 웃고 난리가 났다. 장본인은 입이 아주 찢어질 것 같고, 그래……. 아주 헹가래에 세레모니까지 할 기세다. 그대로 들고 바르셀로나라도 한 바퀴 돌지그래? 쳇…. 순간 그 무리의 중앙에서 환호하던 놈과 눈이 마주친다. 나는 그냥 다 귀찮아져서 웃어준다. 놈도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인다. 그래. 니 똥 굵다. 제기랄. 내가 한참 어린 애들이랑 뭘 한 걸까.


'하하하…. 바보 같아.'


저렇게 좋아한다. 축구라는 놀이를. 저렇게 기뻐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다. 기록도 되지 않는 한 번의 이김에도. 저렇게……. 저렇게…. 다 같이…….


'나도…. 너희처럼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다면 지금과는 좀 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랬으면 나도 저기 저 아이들 같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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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축구 이야기 #22 +30 11.05.12 6,684 15 19쪽
21 축구 이야기 #21 +1 11.05.12 3,332 18 24쪽
20 축구 이야기 #20 +6 11.05.11 3,400 15 25쪽
19 축구 이야기 #19 +1 11.05.11 3,058 13 17쪽
18 축구 이야기 #18 +6 11.05.10 3,414 16 27쪽
17 축구 이야기 #17 11.05.10 3,135 12 19쪽
16 축구 이야기 #16 +4 11.05.09 3,509 15 28쪽
15 축구 이야기 #15 11.05.09 3,147 15 21쪽
14 축구 이야기 #14 +4 11.05.08 3,244 13 21쪽
13 축구 이야기 #13 +2 11.05.08 3,195 17 20쪽
12 축구 이야기 #12 +8 11.05.07 3,556 16 15쪽
11 축구 이야기 #11 +1 11.05.07 3,639 16 19쪽
10 축구 이야기 #10 +4 11.05.06 3,580 21 15쪽
» 축구 이야기 #9 +1 11.05.06 3,417 14 23쪽
8 축구 이야기 #8 11.05.05 3,492 16 16쪽
7 축구 이야기 #7 +2 11.05.05 3,550 14 19쪽
6 축구 이야기 #6 11.05.04 3,720 16 22쪽
5 축구 이야기 #5 11.05.04 3,845 19 21쪽
4 축구 이야기 #4 +2 11.05.03 4,179 13 12쪽
3 축구 이야기 #3 11.05.03 4,624 20 17쪽
2 축구 이야기 #2 11.05.02 5,631 16 18쪽
1 축구 이야기 #1 +12 11.05.02 9,629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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