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불량집사 님의 서재입니다.

지배하는 사람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불량집사
작품등록일 :
2024.07.02 01:33
최근연재일 :
2024.07.07 17:21
연재수 :
7 회
조회수 :
3,149
추천수 :
289
글자수 :
36,334

작성
24.07.04 23:33
조회
444
추천
45
글자
11쪽

나도 양심은 있어.

DUMMY

교감이 나가려는 나를 잡았다.

돌아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를 추궁하던 임경택과 이우형의 부모님은 초조한 눈빛으로 당장이라도 내게 자기 아들의 구명을 빌어보려는 것처럼 보였다.


상담실의 모든 사람들 중 서태진만 나를 보지 않았다.

서태진은 얼이 빠져 반쯤 정신이 나가서 고개를 숙이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일어난 일엔 반드시 이유가 있고, 일은 언제나 바른 쪽으로 귀결된다는 말이다.


서태진의 좌절과 절망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서태진이 너무 쉽게 내가 판 함정에 빠진 건 천벌을 받은 거다.

하늘을 대신해서 내가 대신 벌을 내리는 거다.

물론, 네가 뭔데 하늘을 대신 하냐고 말할 수 있지만, 서태진만큼 나쁜 놈을 혼내는데 자격이 필요할 리 없다.


다만 서태진은 운이 좋지 않았다.

꼬리가 너무 길었다.

어지간만 했으면, 눈살을 찌푸리고 그냥 찢고 까부는 놈들이구나 정도로 볼 수 있을 정도만 괴롭혔다면, 나처럼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일이 아니었을 거다.


서태진의 저 이해하지 못하는 한숨이 너무 좋았다.


지금 서태진은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을 것이다.

‘김철진을 [오늘] 때린 건 내가 아니라, 이우형인데, 내가 왜······이런 개꼴을 당하지’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차 있을 것이다.


난 저 억울함이 적어도 철진이의 맺힌 한이 모두 잊혀질 때까지는 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학생. 우리랑 이야기 좀 해.”


내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친 임경택의 부모님이 내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기세가 흉흉해서 교감 선생도 임경택의 부모님을 말리지 못했다.


“그래요. 우리도······.”


이우형의 부모님까지 나서자, 서태진의 아버지가 길게 한숨을 쉬며 자기 아들 친구들의 부모들을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네 명의 부모님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입으로 꺼내지 않아도 서태진을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는 걸 누구든 알 수 있었다.


“저기 철진이 아버님.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떠실까요?”


서태진의 아버지는 나 대신 김철진과 김철진의 아버지를 설득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딴은 냉철한 판단이었지만, 철진이는 죽을 각오를 했을 정도로 심한 괴롭힘을 당한 아이였다.

어지간한 제안으로는 망나니 아들의 구명은 불가능했다.


철진이 아버지의 눈이 마주치자 서태진 아버지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연발했다.


“우선 태진이는 자퇴시키겠습니다.”

“네?”

“자식을 겉만 낳았지, 속까지 신경 써서 키우지 못했습니다. 이런 아이를 다른 학교에 보내봤자 사람구실 못할 것은 뻔합니다.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때까지 회초리를 쳐서라도 인간부터 만들겠습니다.”


소년원 대신 자퇴는 너무 가볍지만, 서태진 아버지의 제안을 들은 교감이나 학생주임의 표정은 더할 나위없이 좋아졌다.


학교폭력 위원회가 아닌 자퇴면 학교의 부담이 10배는 줄어들 것이 확실해서였다.


“빠른 시간 안에 집을 팔고 이사도 가겠습니다.”

“네?”

“학교 안이 아니라 밖에서도 혹시 철진이가 제 못난 아들놈을 마주칠 수 없게 공주나 계룡시 같은 출퇴근이 가능한 인근 도시로 바로 이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번 일이 돈으로 보상될 성질은 아니겠지만, 허락만 해주신다면 내일 당장 철진이에게도 3천만 원을 위로금으로 내놓겠습니다.”


3천만 원은 큰돈이다.

돈도 돈이지만, 이사가 더 크게 다가왔다.


아주 조금 서태진이 이사까지 가서 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거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벌이긴 했지만, 사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을 치우는데 소송까지 해가면서 내 시간을 쓰고 싶은 마음까진 들진 않았다.


생각보다 통 큰 제안에 선생님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너구리 같은 교감이 바로 넙죽 엎드리는 사과로 철진이 부모님을 압박했다.


“철진이 아버님. 저도 사과드립니다. 448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책임지는 입장이다 보니, 피해자인 철진이보다 학생들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태진이 아버님 제안이 어떠십니까? 사실 누군가를 벌한다고 해서 지금 있었던 일이 지워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철진이 미래를 위해서도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모두 잊고 대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게 제일 좋지 않겠습니까?”


교감은 담임까지 앞세워, 학교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해 철진이를 서포트하겠다고 약속했다.


강경하던 철진이 아버지의 울화가 풀리는 게 느껴졌다.

철진이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철진이의 어깨를 손으로 쓸며 철진이의 뜻을 묻는 듯했다.


그리고 철진이는 대답 대신 나를 봤다.


다시 내게로 턴이 넘어왔다.


“재성 군이라고 했나? 부모님께서 재성 군을 어떻게 키우셨는지 궁금할 정도군. 못난 아들은 내가 책임지고 잘 단속하겠네. 용서해 주게.”


서태진의 아버지는 내게도 치료비 일체와 위로금 500만 원을 보상책으로 제시하셨다.


500만 원이라.


500만 원이라는 돈을 듣자마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난 피해자가 아니다.

보상은 나와 관련 없는 일이다.


보상은 그동안 괴롭힘을 쭉 당해온 철진이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뺨 한 대를, 그것도 반쯤은 일부러 맞은 내가 보상을 받아선 안 된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500만 원이 아니라,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다.


철진이와 철진이 부모님만 괜찮다면, 여기서 대승리로 마무리 짓는 것도 나쁜 결말은 아니었다.


“재성아. 태진이 아버님이 물으시잖아.”

“우선 전 보상이 필요 없어요.”

“응?”

“전 피해자가 아니니까요. 피해당하지 않았는데, 용서나 합의가 왜 필요하겠어요. 태진이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은 철진이예요.”

“하지만, 병원까지 다녀왔지 않나?”

“그건 일을 쉽게 하기 위해서지, 진짜로 아파서 간 건 아니니까요. 이렇게 하시죠.”


난 내 쪽에서 합의 조건을 제안했다.


“태진이가 억울해했던 건,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몰라서예요. 합의금을 태진이 제 힘으로 갚으라고 하세요.”

“응?”

“알바를 하든, 공장에 다니든, 막노동을 하든 한 달에 200만 원씩 3개월만 갚으라고 하세요. 아버님께서 3천만 원을 먼저 보상하시고, 태진이에게 600만 원을 돌려 받으세요. 3개월 동안 일을 마치고 오면 저녁마다 철진이에게 사과전화를 하라고 하세요. 전 그 이후에 이 진단서를 완전히 없애겠습니다. 그 이후엔 제가 맞은 일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공증도 해드리겠습니다.”


철진이와 철진이 아버지, 서태진의 아버지는 나를 정말로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난 이우형과 임경택의 부모님께도 말했다.


“두 사람도 태진이 못지 않게 많은 피해를 끼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반 친구들에게 피해를 수집하겠습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보상해 주십시오.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학교를 알아봐서 전학을 해주세요.”


내 해결책은 곧바로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졌다.


선생님들은 학폭위가 열리지 않은 걸 기뻐했고, 철진이 아버지도 내게 다가와서 손을 꼭 쥘 정도로 내게 고마워하셨다.


그건 서태진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는데, 내가 제시한 합의책이 서태진 아버지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 같았다.


이 자리에서 대놓고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우형과 임경택의 부모님들이었는데, 내가 합의금을 전혀 받지 않으려 하는 데다, 두 사람의 전학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길고 긴 하루가 끝났다.

철진이 아버지는 철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며, 꼭 내일 중으로 자신의 가게를 찾아와 줄 것을 부탁하셨다.


가해자들도, 자기들의 부모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상담실엔 오직 나와 선생님들만이 남았다.


담임이 나를 보며 물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고름을 모두 짜냈으니 그냥 둬도 상처는 나을 거예요. 그냥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애들에게 피해사실을 수집받아서 적절히 조율하겠습니다. 3만 원을 빼앗겼는데, 100만 원을 요구하거나 하는 일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그걸 네가 할 수 있겠니?”

“그럼요. 애들도 모두 다 봤잖아요. 절 적으로 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요. 나흘 안에 모든 일을 마무리짓겠습니다.”


난 담임의 허락을 얻어 종례 후 야자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 앞에 섰다.

담임은 내게 교실을 맡긴 후 밖으로 나갔고, 난 담임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오늘 일의 경과를 설명했다.


“다들 이상했을 거야. 철진이를 때린 건 이우형인데, 내가 왜 서태진을 날려버렸는지. 아까 말한 것처럼 대가리를 쳐야 일이 쉬워지는 것도 있는데, 그냥 나 혼자 이기는 게 아니라 같이 이기고 싶었다.”

“응?”

“같이 한 거잖아. 다들 서태진이 날아가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내 거짓말에 동조해 줬잖아.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힘을 모아 일진 나부랭이들을 이기고 싶었어. 서태진은 자퇴할 거고, 임경택이랑 이우형, 김동훈도 전학갈 거야. 그리고 철진이 돌아오면 어색하게 사과하고 그러지 말고 그냥 모른 척하고 잘해 주자. 그게 편할 거야. 내일 철진이 만나러 갈 건데, 너희가 도와줬다는 이야기 다 할게.”


난 그동안 일진 4인방에게 당한 피해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적당한 선에서 보상을 받겠지만, 그냥 이건 우리끼리만 알자고 했다.


“부모님 껴봐야 시끄럽기만 하지. 솔직히 그렇잖아. 3만 원 뺏겼으면 4만 5천원 받아 줄게. 그냥 못된 놈들에게 이자 50% 받고 빌려줬다고 생각하자. 이 기회에 다들 한 몫 챙기는 거지 뭐. 그리고 맞은 건 정도에 따라서 적당한 선을 같이 이야기 해보고. 언어폭력에 상처 입었다 어쩐다 개소리는 하지 말고. 그 정도 욕은 롤 승급전하면서도 수도 없이 듣는 거잖아. 그렇게 풀고 끝내자. 오케이?”


오케이!라는 함성이 일었다.


켜켜이 쌓인 증오를 함께 이겨내는 맛은 각별하다.


난 반을 완전히 장악했고, 야자 대신 학원을 가려고 가방을 쌌다.


“야. 이재성,”


누군가 등을 찔러 돌아봤더니, 시니컬 도련님 강지율이었다.


“왜?”

“씨팔, 너 대단하다. 학원 째고 나랑 밥이나 같이 먹을래? 내가 살게.”

“학원 째는 건 별론데. 주말에 먹던가.”

“넌 아무렇지도 않냐? 오늘 같은 날에, 내가 중심이 돼서 이 큰일을 해결했는데?”

“큰일은 무슨. 이딴 일이 무슨 큰일이냐? 기본적으로 내 일도 아니었고. 옆에서 추임새나 넣은 정돈데 뭘.”

“정말 돈은 하나도 안 받을 거냐?”

“어. 진단서비 10만 원은 받을까 싶기도 한데, 지가 저지른 죄, 지가 받은 거긴 해도 서태진 인생을 내가 박살냈는데, 10만 원은 내야지. 나도 그 정도 양심은 있어.”


강지율이 나를 보며 멍해졌고, 주변 아이들 몇 명이 박수를 쳤다.


돌이켜보면 난 그 순간을 계기로 지배하는 사람의 삶을 걷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Personacon 신상두부
    작성일
    24.07.05 00:58
    No. 1

    재성이네 엄마는 밥 안드셔도 배부르시겠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십사센
    작성일
    24.07.05 02:08
    No. 2

    와우... 글이 너무 매끄럽고 재밌네요. 안 쉬고 다 읽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라이룬
    작성일
    24.07.05 03:45
    No. 3

    소패가 머리가 좋긴 한데 저렇게 지혜롭게 일을 처리 하던가 부모가 잘 가르친거 같은 느낌인데
    엄마는 변호사면 아빠는 직업이 뭘까 부모의 무엇을 보고 저리 자랐을까 성장 자체가 보통이 아닌거 같아@@ 잘 보고 있습니다. 건필!!!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지배하는 사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 새로운 사건의 시작 NEW +1 19시간 전 228 29 12쪽
6 소조보 +2 24.07.06 353 30 11쪽
5 학폭 건 결착. +2 24.07.05 395 42 12쪽
» 나도 양심은 있어. +3 24.07.04 445 45 11쪽
3 다시 외로워지는 순간. +6 24.07.03 489 48 12쪽
2 완성하다 +5 24.07.02 555 48 11쪽
1 애새끼를 치우다 +6 24.07.02 685 4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