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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집사
작품등록일 :
2024.07.02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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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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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7.03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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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다시 외로워지는 순간.

DUMMY

내가 입가로 피를 주르륵 흘리자, 주변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날 때린 태진이는 내 피를 보고서 피가 식었는지 난동을 멈췄고, 철진이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태진이의 아버지는 일어나 내 상처를 살피며 당황했다.


설핏 절망의 눈빛이 스쳤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누울 수 있는 자리에만 다리를 뻗는다. 지속적인 피해자인 철진이는 무릎을 꿇고 빌면 어떻게든 합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쓸 데 없이 냉정한 내겐 이빨이 들어설 구석이 보이지 않았던 거였다.


본격적으로 좌절을 즐겨볼까?

담임이 건네는 휴지로 얼굴을 닦으며 난 철진이 부모님이 언제 오는지를 물었다.


“철진이 부모님께는 연락하셨나요?”

“철진이 부모님은 왜?”

“병원에 다녀오고 싶은데, 철진이 부모님이 도착하실 때까지는 제가 철진이 옆을 지키고 싶어서요.”


철진이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고, 난 철진이의 곁으로 다가가서 철진이의 손을 잡아줬다.


담임은 철진이의 옆을 지키는 나를 몹시 든든한 시선으로 바라보셨다.


“곧 도착하실 거야. 아버님이 음식점 하시는데, 손님이 계셔서 손님이 나가는 대로 바로 오시겠다고 하셨거든. 여긴 학생 주임 선생님도 있고, 나도 있으니 걱정할 것 없는데, 철진이 부모님은 왜?”

“병원에 다녀오려고요.”

“응? 그렇게 많이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많이 아프니?”

“아니요. 볼 안쪽이 찢어졌는데, 지금은 피가 나진 않아요. 얼얼하긴 하지만 그렇게 아프지도 않고요. 그래도 병원은 가야 하잖아요. 고소하려면 형사고소용 상해진단서를 끊어야 하니까요.”


내 입에서 나온 형사고소라는 말에 모두가 당황했다. 태진이나 태진이 아버지는 물론이고, 선생님들 마저도 이 사건이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불편한 심경을 표현하셨다.


“고소를 하겠다고?”

“네.”

“학교 안의 일을 밖에까지 가져갈 필요까진 있니?”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서요.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처분이라고 해봐야 강제전학 정도가 최고잖아요. 퇴학은 어지간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 처분이니까요. 선생님도 이 사안이 겨우 전학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진 않죠?”


담임의 입에 모든 사람의 눈이 쏠렸다.

담임은 곤란했다.

끝도 없이 이어진 서태진의 비행을 들었지만, 서태진을 퇴학처분 하는 순간 학사관리를 엉망으로 한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는 꼴이다.

철진이 부모님이 학교나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


“물론 태진이가 너무 큰 잘못을 하긴 했는데······.”

“그러니까요. 선생님 입장을 도와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그냥 학폭위가 개최되면 있으나마나한 처분이 나올 거예요. 이상하게 학교는 피해자의 억울함보다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학교폭력 가해자의 미래에 관심이 더 많거든요.”

“학생!”


태진이 아버지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지만, 난 태진이 아버지에게 눈도 주지 않고 그대로 말을 이어갔다.


“용서는 반성하는 사람에게나 해줄 수 있는 거예요. 지금도 서태진은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몰라요. 그저 억울할 뿐이죠. 철진이는 마음이 약하고, 이 건은 그냥 제가 감당할래요. 태진이가 반성하고 새 사람이 되면 뭐가 달라지나요? 철진이가 자기 누나 몰카를 찍어서 보내지 않았다고 죽을 때까지 맞은 과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철진이가 착한 사람이 되든말든 저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죠. 전 어린애의 실수를 너그럽게 봐줘야 할 어른도 아니고, 태진이가 본질적으로 좋은 인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난 고소를 진행한 뒤, 학폭위가 열리면 학교 측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진상은 경찰이 밝혀줄 거예요. 학교나 학부모회에서도 착각하는 게 있어요. 썩은 귤은 골라내야 하고 싹이 튼 감자는 도려내도 독성이 남아 있어요. 태진이를 용서하고 그대로 학교에 두는 것보다 퇴학시키고 인연을 끊는 게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예요. 제가 학교 폭력 위원회 분들께 그걸 설득할게요.”


홀린 듯이 내 말을 듣던 태진이 아버지가 태진이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저 소리 뭐냐? 저건 아니지? 저 학생에게 자기 누나 몰카를 찍어오라고 했니? 아니지? 말을 해.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


서태진은 완전히 쭈그러들었다.

고개를 숙이며 한숨만 연발하던 서태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장난으로······’라는 말을 뱉었고, 태진이 아버지는 그 말로 완전히 무너졌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조퇴하고 학교 근처의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교감 선생님이었다.


“재성아. 어디니? 병원이야? 경찰서야?”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였지만, 짜증이 잔뜩 섞여 있었다.


“병원인데요?”

“아직 경찰서 찾아가고 그런 건 아니지?”

“네.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고소는 안 돼. 일단 학교로 돌아와.”

“그럴게요. 진료받고 진단서 끊고 학교로 가겠습니다.”


뭘로 나를 설득하려 할지 기대됐다.


가정의학과 의사 선생님은 내 상처를 본 뒤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걸 확신했다.


“누가 널 때렸니?”

“네. 맞아서 진단서를 끊으러 온 거예요.”

“누구에게?”

“같은 반 아이에게서요. 맞아서 생긴 상처라는 걸 확실하게 기록해 주세요.”

“경찰서에 갈 거니?”

“네.”


기록을 남겨두는 건 중요했다.

학교에서 내 입을 틀어막는다고 해도, 의사와의 이 문답은 언젠가 내게 큰힘이 돼 줄 것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다.

상해 진단서는 너무 비쌌다.

진단 자체는 2주가 나와서 예상한 그대로였지만, 가격은 10만 원이나 했다.

보통 진단서가 만 원 정도여서 그런가 했는데, 고소용 진단서는 가격이 비쌌다.


하는 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카톡으로 돈을 입금받아야 했다.

엄마는 갑자기 내가 학교를 조퇴하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는다는 말에 너무 놀랐지만, 내 설명을 듣고는 이내 안심하셨다.


“네가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니라,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 때문에 나섰다가 깡패같은 놈에게 일부러 한 대를 맞은 거라고?”

“네.”

“왜 그랬니? 왜 여태까지는 그냥 보고 있었어?”

“때린 애가 좀 많이 험한 아이라서. 내내 불편하긴 했었어요. 내 눈앞에선 때린 적이 없어서 억지로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교실에서 그런 짓을 벌이더라고요. 못 참아서 나선 거예요.”

“그래. 그런 일엔 나서야지. 잘 했어. 혹시나 엄마가 필요하면 바로 말해. 반차 내고 바로 갈 테니까.”

“아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녁에 어떻게 됐는지 알려드릴게요.”


진단서를 받아 학교로 복귀했더니, 이미 상담실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철진이 부모님은 물론이고, 서태진 부모님 뿐만 아니라 임경택이나 이우형의 부모님도 모두 소집된 상태였다.

신기했던 건 같든 패거리인 김동훈의 부모님은 오시지 않았다는 것과 완전히 절망하던 서태진의 아버지가 한결 생기를 찾았다는 것 뿐이었다.


놀랍게도 철진이와 철진이 부모님만이 이 자리에서 다른 편이라는 게 느껴졌다.


“재성아. 너 경찰서엔 가지 않았지?”


교감 선생님이 다급하게 물었다.


“네. 그렇진 않은데, 결국 가야할 것 같아요.”

“응? 왜?”

“진단서를 끊어주신 의사 선생님이 이 상처가 어떻게 생긴 거냐고 물어서 태진이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라고 말했거든요. 아동 폭력을 인지한 의사는 신고할 의무가 있나보더라고요. 전 아동은 아니지만, 저도 학생인 건 분명해서 의사 선생님이 정황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보시더라고요.”


교감 선생님의 얼굴에 낙담과 짜증이 함께 스치는 게 보였다.


“철진이에 대해서 네가 보여준 마음이 고마운 건 알지만, 굳이 이 사건을 학교 외부에까지 알려서 문제를 크게 만들 필요가 있겠니? 약속하마. 빠른 시간 안에 학교 폭력 위원회를 열고, 태진이를 비롯한 다른 가해학생들의 처벌과 재발 방지도 이 교감이 책임질테니 고소는 학폭위 이후로 미루는 건 어떠냐?”


거기까지만 들어도 개소리였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를 그대로 말했던 것이다.


태진이나 경택이, 우형이의 인생은 어떻게 하느냐? 물론 몰카르 요구한 것은 지나치지만, 결국 몰카를 찍거나 영상이 유포된 것은 아니질 않느냐 같은 총천연색 18색 크레파스 같은 개소리가 연이어 이어졌다.


가해 부모님들도 뻔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날 때린 서태진의 아버지를 제외한 우형이나 경택이의 부모님은 피해자도 아닌 네가 무슨 상관인데 쌍지팡이를 들고 나대냐 같은 말을 서슴치 않으셨다.


난 말없이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고소는······미룰 거지?”

“아니요. 그냥 할래요. 학교 그만두라면 자퇴할게요. 어차피 서태진이나 이우형, 임경택과 같은 폭행범들이랑 한 학교에 다닐 거면 다닐 이유도 없으니까요.”


난 교감에게 이후 일어날 일들을 말해줬다.


“이 일은 그냥 묻히지 않을 거예요. 제가 학교에 자퇴원을 내고 경찰에 고소하는 순간 전 각종 사회적 활동을 시작할 거니까요. 저도, 태진이나 교감 선생님도 매우 유명해질 거예요. 듣는 귀가 많아요. 뭐라고요? 친누나 몰카를 찍으라고 시켰다가 거부해서 죽도록 맞았는데, 몰카 영상이 없으니 괜찮은 거 아니냐고요? 이 말로 선생님은 적어도 대전 교육계에선 독보적인 유명세를 가지게 되실 거예요.”

“아니 너 협박하는 거냐?”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냥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설명하는 거예요. 철진아 너도 그냥 일어나. 부모님들도 그냥 절 따라오세요. 제가 학교측에서 한 제안보다 100배는 속 시원할 대책과 계획을 만들어 드릴 테니까요.”


난 이우형과 임경택의 부모에게도 한 마디를 남겼다.


“우형이와 경택이에게 물어보세요.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요. 시간은 많이 없을 거예요. 5시까지예요. 우형이와 경택이에게 물어보고 저한테 연락주세요. 늦으면 끔찍한 일이 계속 일어나게 될 거예요.”


일이 너무 커졌다.

오지랖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만한 일도 해결하지 못할 거면, 나서지 않는 편이 나았다.


난 바로 일어섰고, 철진이도 나를 따라 일어섰다.


가장 당황한 사람은 서태진의 아버지나 우형이나 경택이의 부모님들이 아니었다.

교감 선생님이 일어서려는 나를 잡았다.


“너, 너 지금 어디를 가려는 거냐?”

“일단 여기서 나가야죠. 철진이 부모님 식당 하신댔으니까 거기가서 저녁이나 얻어먹으면서 저기 부모님들 연락을 기다려야죠. 5시 땡 되면, 바로 경찰서 들러서 고소하고, 유튜브 계정부터 팔 거예요.”

“유튜브?”

“네. 여론전을 시작할 거예요. 서울대 진학이 확실한 제가 왜 학교를 그만두게 됐는지, 청암 고등하교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야겠죠. 아. 교감 선생님은 소송도 준비하세요. 철진이와 철진이 가족에 대한 모욕죄와 정신적 학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할 거예요. 저희 엄마 로펌에서요.”

“어머니, 아니, 한 변호사님도 이번 일을 아시니?”

“네. 진단서가 비싸더라고요.”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교감 선생님이 달려와 나를 잡았다.

그렇게 걱정하던 태진이나 우형이, 경택이의 미래 따윈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눈이었다.


“그래. 재성이라고 했지. 너무 똑부러지네. 그래 네 말이 맞지. 때린 놈이 잘못이지. 네가 왜 학교를 그만 둬.”


태진이가 다시 외로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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