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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집사 님의 서재입니다.

귀촌 후 암흑술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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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집사
작품등록일 :
2024.03.1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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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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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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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안다

DUMMY

이무영을 죽이고 그의 몸을 탈취하자는 귀곡자의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난 귀곡자에게 꽤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제 영혼을 침탈하고 있는 겁니까?’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최근 들어 제가 점점 나쁜 놈이 되는 것 같아서요.’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누구나 욕심이 많다. 어울려 살기 위해 자기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것일 뿐. 네놈은 더 나빠진 게 아니라, 나빠져도 괜찮아졌다는 것을 네놈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된 것 뿐이다.]


야구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난 귀곡자의 말을 듣자마자 내가 좀 더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를 깨달았다.


한밤중에 찾아와서 중국 음식을 사달라는 성근 아재나 재길이 아저씨의 막장 요구에도 억울해하기보다는 시골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다며 눈치를 살피던 내가 변한 건 어이없게도 강기흥이 죽고 강씨 아저씨의 아줌마가 나를 아들처럼 생각한다는 마음을 안 다음이었다.


고기가 나오기도 전에 김칫국부터 들이킨 것도 나고 무의식적이긴 했지만, 아들 노릇을 해달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강씨 부부의 뒷배를 은근히 기대한 것도 나였다.


쓰레기 같은 건 이무영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내 자신에게 엄청난 혐오감이 들었다.

하지만, 귀곡자는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럴 것 없으니. 주고 받으면 되는 게다. 세상엔 갚지 않을 선심을 바라는 놈도 천지고, 먼저 받고도 갚지 않는 사기꾼들도 많아. 까짓 아들 노릇 해주면 그만 아니냐? 그 편이 아들을 앞세운 그 부부에게도 좋은 일일 게야.]

‘네? 진짜 그럴까요?’

[의심이 들면 그냥 물어보거라. 아마 여자 쪽은 몰라도 남자 쪽은 내 질문을 기분 나빠 하지 않을 게야.]


생각해보면, 귀곡자의 말이 맞다.

내가 강씨 아저씨를 편하게 생각한 것은, 강씨 아저씨가 합리적이고 계산이 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강씨 아저씨의 생각을 당장 알고 싶었다.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라고 하면, 헛물을 켠 내 자신을 반성하고 그저 예전처럼 내 삶을 살아가면 그만이다.

생각으로 지은 죄는 마음만 고쳐먹으면 더는 죄가 아니다.


난 이무영과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강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찾아가도 되는지를 물었다.


“어. 창림이 네가 온다면 언제든 환영이지. 그런데, 무슨 일?”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묻고 싶은 것도 있고요.”


감나무집에 도착하자,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택배로 보낼 감말랭이를 포장하고 계셨다.

나도 옆에 앉아서 일을 도우면서, 며칠 동안 있었던 누나와 나, 이무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내가 누나와 만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누나 때문에 내가 의사를 때리기까지 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네가 주먹을 휘둘렀다고?”

“네. 누나에게 추근덕거리는 것도 마음에 안들었는데, 꼴에 의사라고 턱을 올리며 거들먹거리는 게 꼴같지 않아서 저도 모르게 주먹을 썼는데 며칠 생각하니 이상하더라고요.”

“뭐가?”

“그 의사가 같잖은 건 맞긴 한데, 평소의 저라면 주먹까지 휘둘렀을까 싶더라고요. 전 딱히 그 의사가 부럽지도 않고, 제가 농사꾼인 게 부끄럽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내가 왜 변했나를 한참 생각하다 보니까, 그날 이후였어요. 제가 아주머니께 라면을 부탁했던 날이요. 아주머니께는 아들 노릇은 자신없다고 말했었지만, 저도 모르게 아저씨랑 아주머니께 기대하고 있는 게 있었나 봐요. 제가 그래도 되는지를 물어보려고 왔어요.”


바쁘게 손을 놀리던 두 부부의 손이 멈췄다.


“지금 네 말이······?”

“제가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면서도 그냥 지레짐작으로 포기하기 전에 한 번 물어보고는 싶더라고요. 다시 혼자가 되는 것보다 아들 노릇 잘할 테니 절 아들처럼 여겨주실 수 있는지 부탁해 보고 아니라고 하시면 그때 포기하자고요. 전 아주머니 반찬들이 진짜로 맛있거든요.”


아저씨는 급격히 눈이 흔들렸지만, 아주머니는 참지 못하셨다.

아주머니는 내 손을 꽉 잡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셨다.


“그 의사놈 팰 때, 내 생각을 했다고?”

“아니요. 그때는 그냥 열이 나서 한 방 날렸는데, 나중 생각해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저한테도 누나도 있고 아주머니, 아저씨도 있다 그런 생각이요. 가족도······ 어차피, 선택하고 만드는 거잖아요.”

“응?”

“부부가 되려면 서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사랑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만난 부부 사이에 자식이 생기는 거고요. 순서가 좀 바뀌면 어때요. 아주머니 아들 먼저 되고, 누나랑 결혼해도 우리가 가족이 되는 결과는 같으니까요.”


아주머니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고, 아저씨는 담배를 꺼내시면서 잠깐 한 대 피우고 돌아오자고 하셨다.

따로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았다.


“한 대 피울래?”

“아니요.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래? 피워본 적은 있고?”

“네. 제가 모범생도 아니고 공부 못해서 공고 나왔는데, 담배를 피우지 않을 리 없잖아요. 친구놈들도 다 그렇고 그런 놈들이었으니까요.”

“그래? 네가 공고 나왔어?”

“부모님 돌아가시고 삼촌이랑 유산 싸움 하면서 정신 차렸어요. 그냥 어영부영 살다가는 빈털털이 고아가 될 것 같더라고요.”


후우.

아저씨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더니, 내게 물었다.


“좋아. 너도 솔직하게 말했으니, 나도 솔직하게 말할게. 혹시 네가 우리 부부랑 가까이 지내겠다는 게, 우리 집 재산도 관계가 있니?”


대답을 잘해야 했다.

하지만, 거짓말로 호감을 사는 것보다는 그냥 나도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한 다음 짤리면 거기서 끝내는 게 속 시원할 것 같아 그냥 지금 내 마음을 말했다.


“제가 고민이었던 게 그거였어요. 제가 그 의사 선생 턱을 날린 게 혹시 아저씨 재력을 믿고 그런건가 아닌건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기분이 더 더러워진 것도 있고요.”

“기분이 왜 더러워?”

“제가 고작 그런 놈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만약, 아저씨가 되게 가난해서 제가 평생 뒤치닥거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도 내가 아저씨나 아주머니 마음에 기댔을까 하는 의심이 계속 들더라고요.”


흔들리던 아저씨의 눈이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그래. 그게 맞지. 솔직히 우리 부부도 네가 우리 기흥이 같은 놈이었으면, 욕심내지 않았겠지. 이렇게 하자.”

“네?”

“우리 집사람은 네가 라면 끓여달라고 하고 간 다음날부터 네 이야기밖에 안 해. 나도 너 일하는 것도 그렇고 회관에서 다른 사람들 대할 때도 그렇고 너한테 유독 마음이 가고. 구차하게 아버지, 엄마, 아들 이런 건 하지 말고. 그냥 아저씨, 창림이로 지내자. 대신, 나 죽을 때 우리 집사람이랑 내 재산 다 너한테 맡기고 떠날란다. 그래도 되겠냐?”


계산적이었지만, 아저씨다운 선택이고 나도 그게 나쁘지 않았다.

까놓고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게 좋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는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자고 했다.


“집사람에겐 내가 잘 설명할게. 너도 미애에게 우리 이야기를 잘 해줘. 그리고 우리 관계는 딱 너랑 우리 부부, 미애까지만 아는 거로 하자. 말나오는 건 딱 질색이니까.”

“네. 그러게요. 누나 병원 쉬는 날 한 번 데려올게요.”

“그러자. 창림아.”

“네.”

“한 번 안아보자. 내가 기흥이 놈이랑 평생 이걸 한번도 못했다.”


* * *


누나는 강씨 아저씨와 내가 한 합의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 아저씨가 자꾸 널 불러 대더라. 엄마랑도 비슷한 이야기 했었어. 그 아저씨가 널 욕심내는 거 아니냐고.”

“이건 누나랑 저만 아는 거예요.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져도 별로잖아요. 그런 것도 아닌데, 꼭 돈 노리고 접근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고요.”

“알았어. 나도 뭐 너랑 감나무집 아저씨 아줌마가 진짜 가족이 되면 시부모님이 생기는 거니까 지금이 나아. 평소에 잘 챙기는 거랑 모시고 사는 건 다르잖아.”


누나는 나와 강씨 아저씨와의 관계보다 내가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이무영을 수렁에서 왜 꺼내줬는지를 궁금해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더라도 최 선생도 잘렸는데, 이무영 선생까지 나락 가면 누나가 불편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병원에 호구 잡을 수 있는 의사 하나 있으면 좋잖아요.”

“정말 그래서 그런 거야?”

“네. 어떻게든 이무영 선생을 완전히 잡아놓을 테니까 내가 이제 됐다고 사인 주면, 그다음부터는 무슨 일 생기면 이무영 선생에게 이야기하면 돼요.”

“와. 진짜 유능해. 난 네가 그런 생각하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어. 그렇지 않아도 그 마녀같은 최 선생 나가고 한 선생님이 챙겨주고 있어서 요즘 되게 편하거든.”


누나의 말에서 큰 힌트를 얻었다.

사람이 노력하는 건 결국 편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내가 시골 생활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도 수원에서 살 때와는 달리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누나의 말처럼 일을 편하고 쉽게 하기 위해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난 이미 동네의 a급 일꾼 중 70% 이상을 확보하고 있었다.

감나무집 강씨 아저씨와 좋은 관계가 됐으니, 고정적인 일자리도 확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보 할아버지나 이장인 재길이 아저씨같이 팀원들의 논밭 일도 우리가 독점할 수 있다.


감나무 집과 우리 팀원의 농사일을 중심으로 두고 비는 날에만 남의 일을 하는 것은 어떨까 했다.


올 한 해 우리의 일 솜씨와 다른 일꾼들의 솜씨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보여줬다면, 내년은 우리 손을 지속적으로 탄 밭과 그렇지 않은 밭이 생산량이나 가격에서 얼마나 차이 나는 지를 증명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결과가 따르면 가장 베스트지만, 농사 결과와 상관없이 이 일은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 팀을 쉽게 고용할 수 있는 환경,

우리 팀이 편하게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

가치를 높이려면, 스스로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돈을 얼마나 버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다.


* * *


“집이 시골집 같진 않네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훨씬 형님이신데요.”

“그래도, 어떻게······. 절 구해주신 것이나 마찬가진데요.”


놀랍게도 이무영은 구원받았다.

간호사들은 누구도 내가 거짓말로 이무영을 음해했다는 내 고백을 믿지 않았지만, 의사들은 달랐다.

의사들은 내가 한 말을 믿었는데, 그건 내가 이무영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의사들은 내가 손을 내밀기 전 이무영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이무영은 절망적인 상태여서 따로 나와의 뒷거래를 통해 내 사과를 이끌어낼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한 사과 역시 이무영의 무리한 요구와 참지 못한 내 폭행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의사들이 보기에 내 사과는 ‘보통은 있을 수 없지만, 아주 가끔있는 양심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정도로 평가됐다.


어쨌거나 가장 크게 문제가 됐던 간호사에 대한 끔찍한 발언 만큼은 하지 않았다는 게 확인되면서 이무영은 간신히 동기들과 다시 말을 섞게 됐다.


이무영은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내가 한 사과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닳도록 들었고, 그는 이미 내게 엄청난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화분이 엄청 대단하네요.”


루피를 보면서 감탄하는 이무영을 보면서, 사람을 권속으로 삼는 것에 대해 약간의 회의감이 들었다.

악령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서 굳이 나쁜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권속이 아니더라도 이무영 정도의 허술한 인간이라면, 난 얼마든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내겐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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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루피 +12 24.03.21 7,346 2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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