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불량집사 님의 서재입니다.

귀촌 후 암흑술사가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불량집사
작품등록일 :
2024.03.11 00:59
최근연재일 :
2024.04.16 18: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292,350
추천수 :
9,135
글자수 :
213,923

작성
24.03.27 18:00
조회
6,966
추천
220
글자
12쪽

든든한 존재들

DUMMY

일주일 만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가송리에 내려오기 전 난 선물용으로 시장에 들러 건망고나 바나나칩 같은 중국산 과일들을 샀다.

카슈카르나 우루무트에선 특별히 밖을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짐을 줄줄이 들고 다니는 게 귀찮았다.


과일의 천국이라는 말을 듣고 그 점만은 꽤 기대했지만, 카슈카르에서 파는 과일들은 멜론이나 수박, 무화과 같이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싸고 맛있었지만, 특별하진 않았다.


최고급 안동 한우나 간고등어를 맛보려면 안동 시내가 아니라, 서울 강남의 고급 가게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 이해됐다.


다만 공항 면세점에서 고급 중국 술을 몇 병 사오긴 했다.


난 여행을 다녀온 기념으로 동네를 다니면서 어르신들에게 사간 과일칩들을 선물로 나눠줬다.

그리고 우리 팀원들과 이장 부부를 초대해서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다들 내 여행을 궁금해했는데, 사실상 난 별다른 곳을 돌아다니질 않고 거의 이동에만 일정 대부분을 쓴 터여서 말할 게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난 약간의 불평을 담아, 이번에 다녀온 여행에 실망했다고 했다.


“왜? 사진으로 보니 경치가 아주 끝내주는데?”

“딱 경치만 볼 만 하더라고요. 전 외국이랑은 잘 맞지 않더라고요.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서 내내 빵이랑 고기만 먹었다니까요. 고기도 싸긴 한데,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아니라서 좀 별로더라고요.”

“그래? 하긴 외국 나가봐야 별 게 있간디. 여기저기 다녀봐도 한국이 제일 좋다니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되게 답답하더라고요. 이장님 말처럼 다음 휴가 땐 강원도나 전라도 같이 안 가본 국내 여행지를 다녀와야겠더라고요.”

“그래. 그런데 이건 뭐야? 뭐가 되게 맛있네.”


이장이 손에 든 건 말린 무화과였다.

카슈카르에서 먹어보고 맛있어서 한국에 돌아와 터키산을 시장에서 산 것이다.


“아. 그건 말린 무화과예요. 그 껍질에 묻은 하얀 거요. 곶감에서 나오는 하얀 가루 같은 거예요. 그냥 드시면 돼요.”

“그래? 꽤 먹을 만하네.”


사람들이 돌아가자마자 난 짹짹이를 불러 짹짹이에게 귀기를 불어넣었다.

혈교의 보물창고에서 흡수한 귀기가 흘러넘칠 때여서 손바닥 반보다도 작은 짹짹이에게 귀기를 나눠주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다.


기대가 컸다.

판타지 소설에서 테이머가 패밀리어를 길들이고 나면 생각이 통하거나 하는 식의 레벨업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를 꿈꿨다.

하지만 짹짹이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까지 귀기를 받고도 나와 소통하진 못했다.


대신 덩치가 1.5배 정도는 커졌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빨라졌다.

시험 삼아 밤하늘에 내보내 봤는데,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는데 2분이 걸리지 않았다.


100%는 아니어도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무엇보다 짹짹이가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전해졌다는 면에서 적이 만족했다.

발톱이 자라거나 부리가 뾰족해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짹짹이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있었다.


쌔액.


짹짹이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짹짹이가 자기보다 족히 몇 배 크기는 되는 까치의 목덜미를 물고 온 것이다.


난 짹짹이에게 까치를 공격하라는 뜻을 전한 적이 없다.

혹시 귀기를 더 받아들이면서 공격적인 성향이 는 것인가?

말이 되지 않은 일이었지만, 목덜미를 물린 까치는 오래지 않아 죽었고 난 까치를 묻어주려 했지만, 짹짹이는 내 손에서 까치를 물더니 다시 뒷산인 청량산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혹시나 까치의 시체를 뜯어먹거나 하면 어떻게 하나 했지만, 짹짹이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곳에 까치를 떨어뜨린 후 다시 날아와 내 어깨에 앉았다.


그러더니 냉장고 쪽으로 날아가 자랑스레 날개를 푸덕였다.


까치를 물어죽인 짹짹이가 끔찍하다는 생각이 빠르게 지워졌다.

냉장고 문을 열어 건조 밀웜을 꺼내줬다.

평소 한마리면 땡이었던 짹짹이는 무려 다섯 마리를 먹었고, 식사를 마친 후 루피의 가지에 앉아 쉬기 시작했다.


뭔가 엄청 든든했다.


난 루피에게도 귀기를 불어넣어 볼까 고민했지만, 귀곡자의 만류로 시도하지 않았다.

나 역시 움직이지 못하고 에어컨 + 공기정화기 역할만 하는 루피 보다는 역동적인 짹짹이 쪽에 더 정이갔다.


* * *


8월 농사가 시작됐다.

8월 농사는 고추 수확이 메인이었다.

고추는 잘 키워 가루로 만들면 바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환금성과 수익성이 높은 좋은 작물이지만, 그만큼 까다로운 작물이기도 했다.


고추는 일조량이나 강수량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진다. 기후 조건을 심하게 타는 데다, 역병이나 탄저병, 풋마름병 같은 병해 피해도 쉽게 입는 까다로운 공주님 같은 작물이었다.


더구나 고추는 노동력이 진짜로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작물의 키가 작아서 어떻게 해도 효율이 잘 나지 않았다.

농사 방석이라고 이름붙은 방석을 이용하려다가는 속도가 나질 않고, 그렇다고 내내 쪼그려 앉아 작업할 수 없다.

고추 수확 의자라는 바퀴가 달린 의자가 나와 있지만, 쪼그려 앉아 작업하는 것과는 속도 차이가 엄청났다.


국산 고춧가루가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고추 수확철이 되면서 팀에 처음으로 문제가 생겼다.

나도 몰랐던 일이었는데, 고추 수확 작업엔 남자를 쓰지 않는다.

남자는 기본적으로 쪼그려 앉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수확이 끝난 고추를 경운기에 옮겨 햇볕에 널고 거둬들이는 데는 힘이 필요하지만, 그건 밭 주인이 쉬엄쉬엄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나를 통해 팀에 의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 일에 나나 동원 형님, 만보 할아버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난 팀을 두 개의 조로 쪼갰다.

남자 팀인 나와 만보 할아버지 동원 형님은 파종을 준비해야 하는 감자밭과 무밭, 배추밭을 갈고 고랑 작업을 했고, 옥분 아줌마와 선민 집사님, 하엔의 여자팀을 고추밭으로 보냈다.


별 일 없이 그대로 일했는데, 고작 사흘이 지나자마자 옥분 아줌마와 선민 집사님, 하엔이 나를 찾아왔다.

뭔가 억울하고 분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표정이 좋지 않으시네요.”

“창림아. 더는 못 참겠어. 우리 말이야. 동네 다른 여편네들이랑은 같이 못 하겠어.”

“네?”

“다른 여편네들 말이야. 순 놀고먹기야. 나랑 선민이, 하엔이 세 줄 딸 때 두 줄도 못 딴다니까. 그런데, 돈은 똑같이 받아. 이게 말이 되니”


아줌마들은 분한 듯, 최선을 다해 손을 놀리지 않는 다른 동네 일꾼들을 탓하고 나섰다.


“그래서 내가 그랬거든. 돈을 더 주든지 아니면 우린 2시간 일찍 퇴근하겠다고. 그게 맞잖아. 그런데, 소을이 할매 그 여자가 뭐라는 줄 알아? 동네 사람들끼리 어떻게 그러냐는 거야. 말로만 미안하다면서, 내일이랑 모레도 잘 부탁한다는데 열이 뻗쳐서 말이야.”


소을 할매는 오늘 일한 고추밭 주인이다.

사정을 듣고 보니 아줌마들의 억울함이 이해되긴 했지만, 소을 할매의 말처럼 뻔히 아는 동네 사람끼리 같이 일하는데, 일을 더 잘한다고 돈을 차이 나게 주거나 일찍 퇴근시키는 건 무리다.


난 당연히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해결책을 왜 시도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그럼 아주머니들도 다른 사람들 일하는 거에 맞춰서 천천히 일하시지 그러셨어요?”


내 안일한 질문에 답한 옥분 아줌마의 말이 기막혔다.


“그게 말이 되니? 우리가 그냥 일하러 간 거 아니잖아. 네 체면이 있잖아. 어떻게 쌓아 올린 이름인데, 우리가 다른 여편네들처럼 설렁설렁 일하면 창림이 너나 우리 팀에게 마이너스인데. 어떻게 그래?”


옥분 아줌마의 대답에 띵하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기분 나쁜 뒤통수가 아니었다.

동네에 내려와서 거의 처음으로 느껴 본, 아니 수원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뿌듯한 책임감이었다.


아줌마들은 내게 역으로 제안했다.


“여태까지는 창림이 너한테 붙어서 꿀을 빨았는데, 현장에 네가 없으니까 확실히 너무 달라. 네가 있으면 일도 우리끼리 할 수 있고, 밥도 잘 나오잖아. 우선 다른 양심 없는 여편네들 시시덕거리는 꼴 보지 않아서 좋고. 이미 하엔이랑 만보 아저씨, 동원이랑도 다 이야기했어. 하루에 만 원씩 낼게. 아예 창림이 네가 우리 사장이 돼 줘.”


사장이라.

만 원씩 떼는 돈이 그렇게까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팀을 꾸려가고 내게 의지하는 사람이 생기는 건 나쁘지 않았다.


짹짹이나 루피는 내 권속으로 나와 완전히 정신적으로 하나여서 좋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 팀원들이 나를 인정하고, 팀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막연히 누군가를 책임지는 건 싫다고 믿어왔었지만, 내 성향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의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난 팀원들을 모아서 대책을 논의했다.

우리가 내린 대책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우리가 단독으로 맡을 수 있는 밭을 하루가 아니라 밭 단위로 계약하는 것이다.

고추는 따는 타이밍이 너무 중요한 작물이다.

큰 밭에 여러 명을 투입해서 단번에 수확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손만 확보된다면 하루에 아직 다 익지도 않은 고추를 모두 따내는 것보다 좋은 고추만을 선별해 여러 번 따는 일을 반복하는 편이 훨씬 더 좋은 고추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까. 작은 고추밭을 3건 계약해서 우리가 사흘 동안 전담해서 고추를 따자는 거잖아.”

“네. 밭 주인에겐 하루치 일당만 받고요. 새참이나 점심도 세 명의 밭 주인들에게 하루씩만 내라고 하면 사실상 주인 입장에서도 하루 일 시키는 거랑 똑같잖아요.”


옥분 아줌마는 내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그거 아이디어네. 확실히 그렇게 하면 우리끼리 일하니까 속터질 일도 없고, 자체적으로 땡볕이 내리쬐는 시간은 피할 수도 있고 말이야. 고추만 따주면 그만이잖아.”

“아주머니들이 따놓기만 하시면, 정리하고 가져가서 볕에 말리는 건 저나 동원이 형님, 만보 할아버지가 서비스로 해주는 거죠.”

“우린 좋은데, 밭 주인들이 하려고 할까?”

“걱정하지 마세요. 일 따는 건 순식간이니까요. 같은 돈 들이고 한 등급은 좋은 고추를 얻을 텐데, 그걸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딨어요. 아! 그래도 소을 할매 일은 약속한 모레까지는 해주세요. 그동안 제가 다른 일을 따낼게요.”

“그래. 그럴게. 이틀 동안 우리가 아주 본때를 보여줄게. 그래야 사장님이 일을 따내기가 더 쉽지.”


사장님이라는 말이 달콤했다.

난 적당한 고추밭 주인들을 찾아 일을 맡았다.

우리의 플랜은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정말? 그렇게만 해주면, 사람당 만 원씩 더 쳐줄게.”

“아니요. 돈은 똑같이 주셔도 되는데요. 그 3만 원을 참이랑 식사에 더해 주세요.”

“그래? 그러면 그럴게. 창림아.”

“네.”

“네가 재주는 재주다. 어떻게 그렇게 마음에 쏙 들게 일하냐? 8월 말에 2차로 고추 딸 때도 꼭 우리 밭은 넣어줘야 한다.”

“그럴게요. 아예 날짜를 맞춰보시죠.”


급속도로 계약이 쌓였다.


난 그렇게 짹짹이의 주인이자, 창림 농사단의 사장이 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귀촌 후 암흑술사가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당분간 비정기 연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9 24.04.17 880 0 -
공지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24.04.02 190 0 -
공지 매일 오후 6시에 연재합니다. +3 24.03.24 6,314 0 -
40 위협하다 +9 24.04.16 2,653 138 13쪽
39 쑤셔넣다 +10 24.04.15 3,040 157 12쪽
38 잠금해제 +14 24.04.14 3,347 151 11쪽
37 안다 +15 24.04.13 3,899 147 12쪽
36 +13 24.04.12 4,155 157 12쪽
35 먹잇감 +16 24.04.11 4,475 184 11쪽
34 그물치기 +12 24.04.10 4,869 207 11쪽
33 찬스 +33 24.04.09 5,105 218 12쪽
32 답답한 속을 푸는 법 +13 24.04.08 5,417 197 12쪽
31 진실 +13 24.04.07 5,706 203 12쪽
30 마니아 +18 24.04.06 5,940 227 13쪽
29 떠난 자와 남은 자 +24 24.04.05 6,018 246 11쪽
28 마주서다 +20 24.04.04 6,361 235 12쪽
27 애프터 서비스 +19 24.04.03 6,607 248 11쪽
26 해장 +21 24.04.02 6,757 234 12쪽
25 현미애 +29 24.04.01 6,851 252 12쪽
24 설렘 2 +17 24.03.31 6,769 241 13쪽
23 설렘 +18 24.03.30 6,739 241 13쪽
22 거절 +11 24.03.29 6,680 249 12쪽
21 빈혈 +15 24.03.28 6,768 244 12쪽
» 든든한 존재들 +12 24.03.27 6,967 220 12쪽
19 얻다. +9 24.03.26 7,134 239 11쪽
18 팀을 꾸리다 +12 24.03.25 7,172 230 12쪽
17 송이 (다시 썼어요 내용 다름) +16 24.03.25 7,204 227 12쪽
16 보물창고 +13 24.03.22 7,421 218 12쪽
15 호구가 필요한 이유 +12 24.03.22 7,384 210 11쪽
14 루피 +12 24.03.21 7,346 21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