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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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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속연어
작품등록일 :
2016.03.16 17:29
최근연재일 :
2016.04.08 13:4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9,508
추천수 :
201
글자수 :
81,015

작성
16.03.2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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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3. 가게 (1)

DUMMY

11.



지난 번에 내가 타블렛 도난 사건을 신고했을 때완 달리, 이번엔 상당한 수의 경찰들이 몰려들었다.

난 잘 몰랐지만, 이 지역 경찰들 사이에선 홍제동 연쇄 절도 사건이 꽤 큰 사건이었나보다.

깔끔하게 제복을 입은 순경부터, 허름한 옷에 피곤에 절은 얼굴을 한 형사들까지.

은제 컴퓨터 사장은 그 와중에 열심히 침 튀겨가며 경찰들에게 고래고래 설명하며 소리친다. 경찰에 이어 달려온 기자들은 그가 대단한 참고인이라도 되는듯 열심히 인터뷰를 해댄다.

결국 그는 수철이 언제부터 일했는지, 그리고 자기는 그 아이와 무관하다는 걸 구구절절 수 차례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마무리는 항상 같았다. 과연 자기 물건은 찾을 수 있는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동운은 줄담배만 피워댄다.

내 경험상, 보통 김동운이 줄담배를 피는 경우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일이 안 풀릴 때. 다른 하나는 일이 너무 잘 풀릴 때.

지금은 후자가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김동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다 합쳐도 10만원도 안되는 손해액 때문에 경찰들 골머리를 썩히던 절도 사건을 해결한 셈이니 말이다.

김동운의 과거는 내가 잘 모르지만, 어쩌면 꽤 유능한 경찰이었겠다 생각이 든다.

그런 인간이 어쩌다가 여기로 와버렸는지 궁금하다.

그때 경찰 무리 속에서 깔끔한 정복을 입은 경찰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가 가까이 오며 가슴팍의 명찰이 눈에 들어온다.

선명하게 적힌 이름. 정순호.

김동운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담배를 피워댄다.

“한 번 경찰은, 영원한 경찰이다…이건가?”

정순호가 인사대신 건넨 말.

김동운은 여전히 입에 담배를 꼬나물곤 대답 없이 그를 쳐다만 본다.

“후우……쓰읍……흐음…”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는 날숨과 들숨 사이의 빈 시간.

정순호는 인내심이 좋은지, 아무 말 없이 김동운이 담배피는 모습을 지켜본다.

“영원한 경찰이 아니라, 경찰일 필요가 없어도 될 정도의 범인이었던거지.”

김동운이 두어 모금 담배를 빨아댄 뒤 정순호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이 무능한 자식아.”

툭.

담배가 바닥에 떨어지며 나는 소리. 안 들릴 것 같은 작은 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둘 사이에 형성된 긴장감은 그 정도로 팽팽했다. 제 3자인 나도 빨려들어갈 정도로 말이다.

정순호는 몸을 숙여 떨어진 담배 꽁초를 집는다.

“범칙금 5만원…이지만, 사건 해결에 일조했으니 넘어가주지. 김동운…씨.”

그러자 김동운이 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다시 꼬나문다.

“이왕 봐주는 거 좀 더 봐줍시다, 경찰 나으리.”

김동운은 꼬나문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곤, 다시 바닥에 떨어뜨린다.

“아이고. 이번엔. 장대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순호가 어이없다는듯,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코웃음 친다.

“두 번 봐줄테니, 이걸로 퉁칩시다 김동운 시민 나으리.”

바닥의 담배를 주으려 고개를 숙인 순간.

“그래~ 이건 장대니까 품에 넣어두라고. 길고 하얀 거 좋아하잖아. 안 그래?”

그 말을 들은 정순호의 표정이 더이상 못 일그러질 정도로 썩는다.

김동운의 마지막 도발이 제대로 먹힌듯, 정순호는 울그락불그락하는 얼굴로 김동운을 노려본다.

그리고 날 한 번 살짝 노려보곤, 몸을 돌려 경찰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김동운은 아무런 반응 없이 새 담배를 꺼내 불 붙인다.

“돌아가자. 일 끝났다.”

정말 이렇게 끝난걸까?

김동운에게 정말 경찰이었냐고 묻고 싶다. 아니, 물어봐야할 것 같다. 안 그러면 둔한 놈이라는 소리 듣기 딱 좋다. 아니면 뒷조사라도 했다고 생각하거나.

“사장님 경찰이셨어요?”

김동운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근데 왜 말 안 하셨어요? 자랑스러운 일인데.”

“자랑스러운 경찰이 대부분이지만, 난 아니다.”

무슨 뜻이지?

“난 자랑스러운 경찰도 아니었고, 나도 경찰이 자랑스럽지 않아.”

뭔 소리지? 본인이 불명예스러운 경찰이었고, 그걸 경찰 전체의 문제로 돌리는 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그래. 모르는 게 낫다. 오늘은 고생했다. 쉬고 내일은 늦게 출근해. 물건 받는 날도 아니니 내가 계산대 볼게.”

그리고 김동운은 더이상의 말 없이 혼자 가버렸다.


* * *


오랜만의 여유로운 출근이다. 평소에도 오전 시간은 꽤 한가해서 힘들진 않다. 하지만 출근 대신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축복이다.

“어서오...았냐.”

반사적으로 인사하던 김동운과 눈이 마주친다. 저 지루한 목소리를 다시 들으니, 드디어 하루가 또 시작됐구나 싶다.

“야, 너 마침 잘왔다. 너 저기 좀 다녀와.”

“ ‘저기’요? 저기가 어딘데요?”

“저기 있잖아, 저기. 가락시장. 가서 야채랑 과일 좀 사와.”

가락시장? 나보고 물건까지 떼오라고?

“갑자기 도매는 왜요? 우린 그 정도 물량 소비 못하잖아요. 우린 박스 단위로 못파는 거 아시면서.”

중형 규모의 마트만 하더라도, 고정적으로 거래하는 도매상이 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소형 마트들은 일주일 안에 종류별로 한 상자 팔기도 힘들다. 그러다보니 고정적으로 도매상과 거래할 필요가 없다.

소량 주문도 받는 도매상들과 거래한 적이 있다곤 들었는데, 매번 시장 가기 귀찮다며 결국은 포기했던 김동운이다.

그 결과 김동운은 도매상을 이용하기보단 대형마트 세일코너를 이용하곤 했다.

일종의 소량 구매 소량 판매 전략. 큰 이득은 못 보지만, 동시에 손쓸 수 없이 발생하는 손해도 줄이는 전략.

난 이 방법이 김동운의 성격에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섣불리 모험하지 않는 게으른 성격.

그런데 갑자기 오늘. 뜬금없이 웬 도매시장?

“가서 빌리지 청과 사장 좀 만나고 와.”

김동운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내게 건네준다.

“내가 판 좀 키우고 싶어한다고 전해.”


* * *


가락 시장에 도착해서 김동운이 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세네 번의 통화음이 가고 나서야 전화를 받는다.

‘예~ 빌리지입니다.’

“김동운 사장님이 보내서 왔는데요.”

‘누구요?’

“김동운 사장이요.”

‘김동운 사장…혹시 김 형사님 말하는 겁니까?’

김형사? 맞겠지 뭐.

“네, 맞아요. 직접 뵙고 말씀 좀 나누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되죠?”

‘그, 북문 2번문에서 쭉 걸어오시면 오른쪽에 빌리지 청과라고 보일겁니다. 모르겠으면 오다가 물어보세요.’

도매시장에 온 건 오늘이 처음이다. 하지만 오늘 처음 온 사람도, 이 수많은 도매상 중에서 빌리지 청과 하나를 찾아가는 건 말 그대로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란 걸 알 정도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시장 밖에서 생각했던 것이다.

시장 안에 들어오니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긴 찾아야하는데 한참 비치발리볼 하는 모래밭 위에서 바늘 찾는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고, 엄청나게 바쁘게 움직인다.

클락션 소리와 트럭 엔진 소리는 멈추지를 않고, 손수레와 깔깔이 바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귀를 울려댄다.

한참을 헤맨 끝에 간신히 빌리지 청과에 도착했다. 결국은 도착했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할듯 싶다.

“저기, 김동운 사장님이 보내서 왔는데요.”

내 말에 고개를 들어 날 보는 사람. 손에 낀 목장갑의 붉은색이 피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차갑고 삭막한 인상의 소유자. 그가 나르는 사과상자 속엔 사과대신 두둑한 비자금이 들었을 것 같고, 그가 들고 있는 사과는 백설공주가 먹고 죽은 바로 그 독사과가 아닐까 싶다. 그 정도로 과일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다.

“오, 반갑습니다. 김형사님이 보내셨다고요. 어쩐 일이래요? 편의점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그거 때문에 왔나?”

“전 잘 모르겠는데, 사장님이 그냥 빌리지 청과 사장 좀 만나고 오라고만 하셔서.”

그 자는 난감한듯, 머리만 긁적인다.

“뭐 다른 말씀은 없으셨고요?”

“판을 좀 키우고 싶으시다던데요.”

“판을 키우고 싶다고요? 프랜차이즈하는 거 아니었어요?”

“아뇨. 계약 끝나서 이젠 그냥 동네 소형마트에요.”

“소형 마트하시면서 판을 키우시겠다고요? 아니, 어디 동네인데요?”

“홍제동이요.”

“홍제동 사람들은 동네 마트에서 과일이랑 야채 산답니까? 여간 외진 곳 아니면 다들 대형마트 가지, 동네마트를 누가 가요 요새. 게다가 규모라도 크면 가격으로 비벼보기라도 하지, 소형 마트는 택도 없어요. 판 키우다가 망해요, 망해.”

깔끔한 결론이다. 뭐, 김동운이 부탁한 건 어디까지나 이 사람을 만나고 말 전해주라는 거였으니까. 내 임무는 완수한 셈이지.



“이야, 이준현! 대단해!”

다시 환상이 보인다. 내 눈앞에 보이는 건 김동운 사장. 왜인지는 모르지만, 무척 흡족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다. 김동운 얼굴에서 저런 표정 보기 힘든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대? 아이디어가 기발했어.”

맵시 있는 옷차림의 여성. 나이는 기껏해야 30대 중반이나 후반 정도.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라도 얼굴에 써놓은듯한 표정이다.

그런데 누구지? 모르는 여자다.

“뭐, 이게 다 사장님 덕분이죠. 김동운 사장님 덕분에 본격적으로 마트 운영을 시작하게 됐으니까요. 아직도 기억나네요. 갑자기 빌리지 청과 찾아가라고 한 날. 사장님도 기억하세요?”

내가 마트를 운영해? 게다가 분위기를 보아하니, 뭔가 좀 성공했나본데?

그리고 내 얼굴. 늙지 않은 얼굴이야. 가까운 미래라는 뜻인가?

“그때 전도일 사장님이 힘써주신 덕분에 한 번 도박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결과는 뭐 대박은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게 됐죠.”

전도일? 이 사람이잖아! 그렇다면 지금 이 사람이 뭔가를 해준다는 뜻?

“그래도 준현 씨가 내놓은 이 아이디어. 정말 괜찮은 거 같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나름 정치권에서도 상생모델로 선정하고 앞으로 장기적으로 추진할 계획이 있나보더라고.”

정치권? 대박. 내가 대체 무슨 일을 벌인다는거지? 좀 더 말해줘봐요!

아니면, 너! 환상 속의 나! 말 좀 더 해봐! 자화자찬이나 뭐 그런 거 있잖아.

“앞으로가 본 라운드죠. 지금은 그냥 판만 깔아놓은거고요. 추 기자님,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우리 얘기가 계속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돼요.”

추 기자? 저 여자가 기자였구나. 어쩐지 표정은 차갑고 눈빛은 무섭더라.

“나한테만 맡기라고. 계속해서 땔감 던져넣을테니까.”



“김형사님한테 그렇게 전해주세요. 빈손으로 가기 뭐하니 내가 과일 좀 챙겨줄게요. 야, 형식아! 여기 참외 한 박스 좀 실어드려라.”

내가 뭘 놓쳤나? 갑자기 쫑나는 분위기다. 잠깐 기억을 더듬어보니 분명 전도일이 사장님의 제안을 거절했다. 판 키우다가 망한다고.

근데 내가 방금 본 환상에선 이 사람이 날 도와준다고 했잖아?

뭐가 어떻게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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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가게 (1) +2 16.03.29 375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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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동네 사람 (3) +1 16.03.26 384 7 10쪽
7 7. 동네 사람 (2) +1 16.03.26 511 1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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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홍제동 (3) +1 16.03.26 540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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