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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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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속연어
작품등록일 :
2016.03.16 17:29
최근연재일 :
2016.04.08 13:4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9,498
추천수 :
201
글자수 :
81,015

작성
16.03.26 13:05
조회
382
추천
7
글자
10쪽

8. 동네 사람 (3)

DUMMY

치킨을 들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길. 분명 집을 나설 때만해도 외로움과 왠지 모를 비참함이 날 지배했다. 하지만 이젠 내 모든 관심은 내가 보는 환상에 쏠려있다.

아직 100% 사실이라고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 두 번이나 맞았다. 나에 대한 환상은 분명 미래에 대한 환상. 그 외의 환상들은 미래 아니면 과거에 대한 환상임이 틀림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사장님은 경찰? 그리고 관리인은 연예인? 치킨집 사장은 깡패?

왜 이런 구석진 동네에 이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지?

그때 내 뇌리를 스치는 단어.

목걸이.

설마 모두 어떤 식으로 목걸이에 대해 알게 돼서 모여들은 건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딱히 그럴듯한 증거가 없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채 걷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있었다.

하루도 채 살지 않았지만, 내 방이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정겹다.

한 손으론 치킨을 들고, 다른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서 열쇠를 찾아 손잡이에 꽂는다.

그런데 으레 들려야하는 철컹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설마 나 문 열어놓고 나간거야?

불안한 느낌과 함께 문을 열고 불을 켠다.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것.

맙소사. 이사온 날이라 워낙 방 자체가 엉망이긴 했지만, 분명 뭔가 다르다. 내가 어질러 놓은 게 아냐.

도둑이다!



“아, 씨발. 하필 털러온 집이 이 모양이냐.”

뭐야, 이건 또?

“젠장, 원래 살던 놈이 이사갔나본데?”

“하, 이 썩을 놈. 내가 그래서 일찍 오자고 했잖아! 이게 뭐냐, 이게.”

잠깐만… 여기 내 방인데? 저 놈들 뭐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거야?

“그래도 오늘 이사왔나봐. 상자 위에 우리보고 가져가줍쇼~ 하고 물건들 가지런히 쌓아둔 거 봐.”

야, 이 씨… 그거 내 꺼야! 손대지마!!

“학생인가본데? 현찰은 기대말고, 전자기기만 훔쳐서 가자. 딱 보니까, 팔만한 게 그거 뿐이다.”

기다려봐. 이거…이거 방금 전에 내 방 털러온 놈들인가본데?! 얼굴, 얼굴을 기억해!

하지만 모자 때문에 생긴 그림자가 그들의 얼굴을 가린다. 빛을 얼굴에 비춰줬으면 싶은 그때.

“이거 봐. 노트북이랑 타블렛이네.”

“노트북 그거 옛날 모델이잖아. 그냥 냅두고 타블렛만 들고가자. 이건 좀 비싼거다.”

안돼, 내 타블렛!! 보름치 월급으로 산 거라고!

“…가자…”



말도 안돼. 도둑이라니. 그것도 이사 온 첫날에! 이 동네 방식의 신고식인가?

환상이 순식간에 사라진 후, 내 눈 앞엔 처참한 모습의 살림살이가 나타났다.

“내 타블렛!! 최신형이라고!! 차라리 노트북을 가져가지!!”

아직 카드 할부도 안 끝났다. 이 상태라면 난 그 도둑놈들을 위해 매달 15만원씩 내야할지도 모른다.

내가 언젠간 기부를 할 줄 알았지만, 도둑놈한테 기부하게 될 줄은 몰랐다.

…뭐, 세금도 어떤 점에선 도둑놈에게 가는 기부일지도 모르지만…

어떡하지? 당연히 이 세상에 도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도둑든 건 처음이다. 뭘 해야하지? 지문 채취? 머리카락? DNA?!

이 상태로 경찰서에 가서 우리집에 도둑들었다고 하면, 그냥 사건 수첩에 기록만 해두지 않을까? 이 정도 도둑이면, 그냥 도서관에서 노트북 하나 누가 훔쳐간 거랑 비슷한 스케일이잖아? 경찰들도 바쁜데 이런 사소한 좀도둑까지 신경쓸까?

막연함이 절망이 되고, 절망이 곧 분노로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괘씸하다. 첫 날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울적했다. 그런데 도둑이 들어와서 내 살림살이를 품평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나마 제일 비싼 걸 훔쳐가다니.

물론 미래에 내가 45억짜리 목걸이를 얻으면 그 정도야 그냥 적선한다 생각하고 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망할 놈… 내가 꼭 잡겠어.

잘 생각해봐. 내가 본 환상. 그건 마치 범행현장을 본 것과 같다고. 눈에 띄는 말들… 증거가 될 만한 말들…

잠깐. 이 도둑놈들은 분명히 나 이전에 여기 살던 사람에 대해 알고 있었어. 혹시 이전에 살던 사람은 훔쳐갈 게 더 많았나? 그래서 이 집을 털려고 노리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새로 이사오니까 안타까워했나?

관리인한테 물어봐야겠어. 이 전에 살던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 * *


띵동

“누구세요~?”

“저 301호인데요.”

딸깍

“아, 안녕하세요. 밤 중에 어쩐 일이세요?”

다행히 이번엔 걸쇠를 잘 열고 문을 연다. 인간은 역시 학습하는 동물이지.

“그게, 제 방에 도둑이 들어서...”

“에? 도둑이요?! 어떡해!! 많이 훔쳐갔어요? 경찰, 경찰 부를게요!”

그녀는 그리곤 문을 열어둔 채 핸드폰을 찾으러 방 안 쪽으로 뛰어간다.



“오빠, 지금 뭐하자는거야…”

아, 씨 이런 중요한 타이밍에 뭐야 또!

응? 근데 이 여자는 관리인 아가씨잖아?

머리 스타일이나 얼굴을 보니 현재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간대다.

미래인가? 아니면 과거?

“나야 뭐, 우리 선아가 오빠 말을 안 들으니까 가까이서 매일 보면서 이야기 좀 하자 이거지.”

모르는 남자다. 근데 얼마 전의 환상 속에서 본 남자랑 비슷하게 생겼는걸? 작전주 얘기했던 그 남자 말이다.

“…나 은퇴했어. 더이상 연예계에 발 들일 생각 없으니까, 오빠 소문도 안 낼거고. 감옥도 다녀왔으니까 이걸로 더 물고늘어지지 않을게. 그러니 나 좀 가만히 냅둬…”

“하긴 우리 선아가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더라… 그 회사 홍보할 때 말이야?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아직까지도 연예인으로 먹고 살았을텐데 말야. 아니면 우리 선아가 실전파인가? 타고난 사기꾼일지도 모르고 말야.”

정말 그 사람인가? 유선아를 협박한 사람.

“쉿! 다른 사람이 듣겠어! 그리고 진짜 나 안해. 무슨 일을 하려는지는 몰라도, 안해.”

“…이미 한 달 방값은 냈다고. 그러니 천천히 얘기하자고, 알았지?...”

유선아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불편함과 역겨움이 뒤섞인 표정.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마치 날 보고 짓는 표정 같아서 섬뜩하다.

“…보자, 보자… 301호면 꼭대기인가…”

301호? 내 방이잖아?



“여보세요. 예, 경찰이죠? 여기 도둑이 들어서 전화드렸는데요…”

결국 경찰을 부르는구나. 그래, 역시 신고식은 화끈해야하지 않겠어? 시작부터 한 달 월세가 넘는 돈을 잃어버리고 경찰 정도는 봐야, 아 내가 신고식 좀 했구나 생각하겠지.

“저기, 301호 씨. 경찰에 신고했거든요? 좀 있으면 올거에요. 혹시 안 바쁘시면, 같이 계시다가 경찰 오면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별 다른 선택지가 없다. 거부하면 도난 당한 물건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없어보이겠지.

근데 내가 본 환상이 범행현장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일텐데, 그걸 얘기할 수가 있나?

내가 봤다기엔 말이 안되지. 현관문을 열고 당당하게 드나든 애들의 대화를 엿들었지만 마주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

그렇다고 아예 말을 안하자니, 범인을 못 잡으면 내 꽁돈만 날라가게 생겼고.

하아, 정말 짜증난다. 첫 날부터 이게 뭐야. 이 동네 혹시 마가 낀 거 아냐?

잠시 바닥을 보며 홀로 한탄을 되풀이하는 사이, 유선아가 가지런히 현관의 신발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곤 고개를 올려 날 쳐다본다. 응? 어쩌라는거지?

“뭐하세요? 안 들어오고? 계속 문 열어두면 모기 들어와요.”

“예? 아, 예.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방 안은 내 방과 달리 무척이나 여성스럽고 깔끔했다. 무엇보다도 가구들이 눈에 띄었다. 보통 이런 원룸 사는 사람들은 가구를 대충 아무거나 중고로 사서 갖다 놓거나 지나치게 캐쥬얼한 가구를 들여놓는데, 이 집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이케아 스타일의 모던 가구들이 식탁과 부엌 주변을 가볍게 꾸미고 있지만, 방 끝으로 갈 수록 점점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놓여있다.

언뜻 보기엔 부엌 쪽 가구들은 최근에 들여놓고, 고풍스런 가구들은 원래 살던 집에서 가져온듯 보인다.

“으음, 기다리는 동안 뭐, 커피라도 드실래요?”

“네 한 잔 부탁드릴게요. 블랙으로.”

그녀가 커피를 끓이는 동안 식탁 의자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본다.

도둑놈들은 301호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방금 본 환상. 거기서 그 남자도 301호에 산다고 했지.

언뜻 보기에도 돈 좀 있어보였는데, 왜 하필 이런 원룸에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여자와 관련있어보였어.

“저기, 뭐라고 불러야되지? 관리인님?”

“아, 제 이름은 유선아에요. 아시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알고는 있었지. 부르기 어색했을 뿐.

“저 그럼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뭐라고 불러야될지 몰라서.”

“전 25살이요.”

25살? 나보다 겨우 4살 어리다고? 저 얼굴이?

“어, 엄청 동안이시네요. 20살이라고 해도 믿을 거 같은데…”

“그럼 20살이라고 할 걸 그랬나요?”

그녀는 이와중에도 기분 좋은듯 미소를 흘린다. 그래도 일부러 치켜세우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20살 정도로 보이니까.

만약에 내가 본 환상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 여자 분명히 연예인이었다는 건데… 난 왜 누군지 모르겠지?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나? 은퇴한 연예인이라는 정보만으로는 부족해. 이따가 한 번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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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동네 사람 (4) +1 16.03.26 424 5 7쪽
» 8. 동네 사람 (3) +1 16.03.26 383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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