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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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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속연어
작품등록일 :
2016.03.16 17:29
최근연재일 :
2016.04.08 13:4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9,507
추천수 :
201
글자수 :
81,015

작성
16.03.26 12:00
조회
492
추천
10
글자
8쪽

6. 동네사람 (1)

DUMMY



계약서를 작성하고 정확히 일주일 뒤. 난 드디어 새 방으로 이사왔다.

나는 원래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던 터라, 애당초 가구는 거의 없었다. 새로 얻은 방과는 달리 모두 빌트인 가구들 뿐이었기에, 막상 나도 짐을 싸고보니 내가 참 검소하게 살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지난 4년을 살았던 곳인데도 큰 박스 2개를 간신히 채울랑 말랑 할 정도였으니. 분명 이사가 간편해졌으니 기뻐해야할텐데,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하지만 그 씁쓸함은 첫 번째 상자를 3층까지 옮긴 뒤엔 기쁨으로 바뀌었다. 마치 난 처음부터 이 날을 예측하고 검소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할까.

이사 온 날 내가 가장 먼저한 것은 관리인을 찾아가 열쇠를 받는 일이었다. 관리인은 반지하에 살고 있었다. B04호. 반지하는 B로 시작하는 넘버링을 하는군.

똑똑…

문 너머에서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린다. 이 여자, 보기보단 무게가 나가나보다. 아니면 바닥재를 싸구려로 했나?

“누구세요~?”

“저, 301호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인데요.”

“아~”

딸깍, 띠리링

“아~ 어서오세…”

쿵!

“아얏!”

묵직한 소리가 그녀와 문 사이에서 났다.

복도를 울리며 달려오던 그녀가 현관문 걸쇠를 확인 못하고 문을 열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동글동글한 옆머리를 튼튼한 현관문에 곤두박질쳐버린 것.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순간 나도 멍 때릴 수밖에 없었다.

가끔 보면 소리만 들어도 고통이 짐작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도 그 중 하나다. 으, 아프겠다.

“괜찮으세요?”

그녀는 아픈면서도 쪽팔린지, 날 힐끔 쳐다보면서 부딪친 머리를 문지른다. 그리곤 문을 닫고 걸쇠를 푼다. 근데 입모양이 왠지 쌍시읏을 말한 것 같은 느낌이…

활짝 열린 문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이전에 봤을 때보다 좀 더 아름다웠다. 지난 번엔 건강미 있는 싱그러운 처녀 같은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다소곳하면서도 새침한 학생 같은 느낌?

“요새 동네에 이상한 사람들이 가끔 오고간대서 걸쇠도 걸어놨더니…평소엔 안 걸어놓거든요. 그래서 까먹었어요.”

그녀는 내가 아무 말도 안했는데도 열심히 변명을 한다. 난 무슨 대답을 들려줘야할지 몰라서 잠시 입을 닫고 그녀의 모습을 뜯어본다. 가까이서 봐도 피부 만큼은 정말 어려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성숙미를 풍기는 게, 나이를 가늠하기 정말 어렵다.

대학생? 글쎄. 이 시간에 학생이 집에 있기 힘들지 않을까? 게다가 이런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이를 잡는다면, 이 여자가 정말 내가 봤던 사람 중에 최고의 동안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도 그제서야 자기 혼자 열심히 떠들었단 걸 깨달은듯 재차 부끄러워한다.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니면 내 얼굴에 뭐 묻었나? 흐흠, 저기, 그쪽도 걸쇠 조심하세요. 저처럼 자꾸 부딪치다간 뇌세포가 남아나질 않을 거에요.”

“그러게요. 저기 여튼 열쇠 받으러 온건데, 혹시 지금 열쇠 갖고 계세요?”

“아~ 열쇠! 맞다, 맞다. 내 정신 좀 봐. 잠깐만요!”

그녀는 다시 총총 걸음으로 방 끝의 서랍장으로 달려간다. 손님을 들여보내지 않고 문 밖에 냅두는 것도 일종의 실례 아니냐고 묻고 싶지만, 뭐 엄밀히 말하면 손님은 아니니깐.

“여깄어요, 열쇠. 하나는 스패어에요. 은색이 위에꺼, 금색이 아래꺼에요.”

그녀가 열쇠 3개를 건네준다. 금색 2개와 은색 1개.

“보통 아래꺼만 잠그고 다니더라고요. 그래서 아래꺼만 스패어가 있고, 위에껀 없어요. 뭐, 요새는 좀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두 개 다 잠그고 다니셔도 좋을 거 같아요.”

맞는 말이다. 골목 분위기 자체가 이미 ‘나 위험한 골목이야’라고 간판 붙여놓은 느낌이다. 유명한 스릴러 영화를 전부 여기서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

“짐은 다 옮기셨어요? 아까 발소리를 듣긴 했는데, 몇 번 안 들리고 조용해지던데.”

“네, 다 옮겼어요. 제가 워낙 검소하게 살아서 짐이 두 박스가 끝이네요.”

“아~ 그래도 잘됐네요. 괜히 짐 많으면 3층까지 직접 옮기느라 힘만들고 말이에요.”

서로 할 말이 끝나자 왠지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그 여자는 관리인, 난 입주민. 뭔가 서로 적당히 친절한 말들을 주고 받아야할 것 같은 관계인데, 이미 소재가 다 떨어졌다.

“그, 그럼 전 일단 올라가볼게요.”

“아, 네 그래요. 혹시 뭐 더 궁금한 거 있으시면, 여기로 전화주세요. 핸드폰 있으세요?”

내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자 그녀가 직접 손으로 번호를 입력한다.

내 핸드폰을 마지막으로 만진 여자가 누구더라. 핸드폰 대리점 직원이었던가? 아니야, 걔도 남자였던 거 같아. 어쩌면 핸드폰 공장의 여직원이 만졌을 수도…? 아니야, 어쩌면 기계가 다 만드는 걸지도 몰라. 그럼, 혹시 이 여자가 최초로 만진 건가?

역사적인 순간에 왠지 눈물이 샘솟는다. 이 하나의 터치는 그녀에겐 작은 움직임이지만, 저와 이 핸드폰 (수컷으로 추정)에겐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윽고 그녀가 내게 핸드폰을 돌려준다. 그리고 선명하게 추가된 연락처 목록. 유선아.

왠지 여기 사는 동안 시시콜콜한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군. 물이 샌다든가, 싱크대가 막힌다든가, 보일러가 안 들어온다든가… 많잖아? 힘을 내, 301호야!


* * *


막상 이사를 왔지만, 결국은 또 혼자 쓸쓸하게 시간을 보내는 건 마찬가지다. 일하는 날은 그나마 낫지만, 쉬는 날은 정말 할 게 없다.

점심 때는 근처 한솥 도시락에서 치킨 도시락 하나 사먹고, 괜히 편의점에 들려서 두리번 거리다가 과자 몇 개랑 맥주를 사왔다.

뭘 사오든, 어디에 살든, 결국은 방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영화랑 지나간 예능프로나 보며 시간을 보낸다. 아마도 화려한 싱글 라이프란 내게 없나보다.

그런 씁쓸한 생각을 탐닉하던 중, 문득 처음 내가 보았던 환상이 떠올랐다. 45억짜리 목걸이. 만약에 환상이 사실이라면, 이 동네 어딘가에 있단 말인데.

설마 이미 누가 갖고 있는 걸 내가 훔쳐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게다가 주인이 있는 거라면 주워서 돌려줘야지, 그걸 갖고 방송까지 나가진 않았을 거 아냐?

환상 속에선 분명히 독립군 자금으로 쓰일 목걸이라고 했어. 적어도 반세기 이전의 물건이라는 말이지.

반 세기 동안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디 건물 밑에 깔려있는 건가? 분명 환상 속의 나도 재개발 어쩌고 그랬단 말이지.

그럼 정말로 건물 다시 지으면서 땅파다가 발견하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답이 없다. 애당초 내가 본 환상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는 판국에 거기에 나온 보물에 대한 추리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다.

문득 왼쪽 벽을 바라보니 어느새 붉어졌다.

“노을이네?”

고개를 돌려 방 끝의 창문을 보지만, 딱히 태양이 보이진 않는다. 어디서 들어오는 빛인지 궁금해서 다른 창문을 들여다보자, 내 옆 건물의 유리창에 반사된 햇빛이 벽에 비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쓰읍. 노을까지 들어오니, 더 쓸쓸해진다. 어디 나가서 치킨이라도 하나 사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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