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

아저씨가 간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닭장속연어
작품등록일 :
2016.03.16 17:29
최근연재일 :
2016.04.08 13:4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9,499
추천수 :
201
글자수 :
81,015

작성
16.04.04 12:25
조회
322
추천
7
글자
8쪽

19. 도둑놈이 남긴 증거물 (2)

DUMMY


막상 단독주택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찾아냈어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이 동네엔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꽤 많다. 부동산 아저씨 말대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곳부터,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곳까지 다양하다.

그곳을 내가 직접 털러 간다면 나도 똑같이 도둑놈이 될 것이다.

“하아, 분명 이거 중요한 정보 같은데…내가 알아봤자 어떻게 할 수가 없네.”

그래도 좋게 생각하면,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딛었다. 게다가 목걸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걸은 걸음. 분명 목걸이에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나름 내가 대견스럽다. 경찰서까지 가서 정보를 캐오다니. 예전의 나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인데, 뭐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방 구하러 온 첫 날부터 사람 한 명을 아프게 하지 않나, 이번엔 사장이랑 형사까지 속였다. 범죄와 범죄가 아닌 행동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느낌?

남들은 보지 못하는 환상을 나 혼자만이 본다는 생각 때문에 행동이 대범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난 3년 안에 45억짜리 목걸이를 가진 부자가 돼있다는 생각 떄문에 자신감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고.

게다가 얼마 전에 봤던 환상에선 분명히 내가 뭔가를 이뤘단 말이야. 상생모델이라. 도대체 뭘까?

생각이 많아지니 잠이 안 온다.


* * *


멋지고 화려하진 않아도, 매일매일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설령 출근하자마자 상관한테 연타석으로 잔소리를 듣고,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바나나 상자를 기계적으로 들고 날라야하는 직장이라고 해도 말이다.

마트에서 일할 때의 좋은 점은, 바쁠 때는 바쁘더라도, 한가할 땐 정말 한가롭다는 것이다. 마트 사장들이야 무조건 바쁜 것을 선호하겠지만, 나 같은 월급쟁이야 뭐 가게가 딱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손님이 있는 편이 더 좋다.

낮시간에는 손님이 특히 적다보니, 오는 손님들의 얼굴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이 나타나면, 으레 한 번씩 묻는 말이 있다.

“이 동네에는 새로 이사오셨어요?”

그러면 보통 상대방은 약간 당황하거나 아니면 옅은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뇨. 여기서 산지 3년 정도 됐는데요.”

응?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사람을 처음 보는 것 같지.

“아…하… 그러시구나. 우리 가게에는 자주 안 오시나봐요?”

기대했던 반응과 다른 반응이 나오자 갑자기 당황했다. 잘못 들으면 약간 무례하게 들릴 것 같은 말이다.

3년이나 살았으면서 우리 가게에 한 번도 안왔단 말이야?!

이렇게 들릴까봐 약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상대방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무척 무뚝뚝하고 차갑다. 가게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표정의 변화가 없다.

30대 중반 정도의 여성. 언뜻 보기엔 화장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얼굴이 무척이나 창백하다.

눈에 띄는 점은 무척이나 붉은 립스틱과 매니큐어.

이상한 조합이다. 3년이나 살았지만 처음 보는 30대 중반 정도의 여성.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동네 마실 정도의 외출이라는 뜻. 하지만 그녀가 지금 바구니에 들고온 것은 위스키4병. 한낮에 고작 술을 사러 3년 동안이나 오지 않던 마트에 온다?

알코올 중독자? 그렇다기엔 너무 피부가 깨끗하다.

잘 모르겠군.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 여자는 고개를 들어 마찬가지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어쩌다보니 눈싸움이 시작됐지만, 당연히 손님이 이기셔야죠.

난 고개를 푹 숙이곤 가격을 말해준다.

“자기, 지금 내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구나?”

응? 내 마음을 읽었나? 사과해야겠다. 어제 밤에 목걸이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을 설쳤더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나봐.

“아, 저기, 죄송합니다. 어제 잠을 못자서…”

“흐음. 뭐, 3년 만에 마트에 처음 왔다는 사람이 한낮부터 술을 사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내 표정이 굳는다. 경찰 앞의 범죄자 같은 느낌이 든다.

“이상할 거 없어. 나 저기 큰 길에서 H Bar 운영하거든. 원래 오늘 배달 들어와야하는데 내일로 미뤄져서 부족한 것만 사둔거야. 알코올 중독자나 뭐 그런 건 아니고.”

윽. 술집에서 손님 상대하다보면 표정만 보고도 고민을 안다던데, 진짜인가.

그녀는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 한 장을 내게 건네준다.


백차연.

H Bar Manager.

Wine & Whisky.


H 바…왠지 퇴폐업소가 연상되지만, 차마 그런 것까지 여기서 물어보진 못하겠다.



“차연아,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찬바람이 느껴진다. 수많은 인파. 그들의 옷 속에 감춰진 뜨거운 가슴을 찬 바람이 파고든다.

기차역. 이별의 기쁨과 만남의 슬픔이 공존하는 곳.

지금 내 눈앞엔 중년의 남자와 어린 소녀가 있다.

아버지와 딸? 아니면 친척관계?

소녀는 갓 10대에 들어선듯, 정말 아기 같은 모습을 가졌다.

퉁퉁 부은채 뻐끔거리는 눈두덩이 사이로 보이는 소녀의 눈동자. 그 눈빛은 애절하지만, 표정은 차갑다.

그 소녀는 감정을 감춘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강인함을 드러낸다. 그녀의 표정은 어색하게 차갑지만 여전히 슬프다.

“넌 이제 조선사람이 아니다.”

조선사람? 정신을 차리고보니, 주변 풍경이 낯설다. 시베리아? 북한?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변엔 한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국을 위해 일하는 것임을 잊지 말거라. 저 차가운 시베리아 벌판에서 살아남아, 너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거라.”

조국…시베리아…임무?

기다려봐. 이 남자가 분명히 차연이라고 했지. 그럼 백차연? 내 눈앞의 이 술집 마담?

만약 이 아이가 백차연이라면, 족히 나이차이가 20살 정도는 날 것 같다. 설령 동일인이라고 해도, 알아보기 힘들다.

갓 10대에 들어선 어린아이와, 30대 중반을 넘어선 술집 마담.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나?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중년 남성은 커다란 가방을 소녀에게 건네준다. 울컥이는듯, 입을 바쁘게 움직이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소녀도 다르지 않다. 가방을 건네 받는 손이 느리게 떨린다. 무너지는 표정을 억지로 붙잡지만, 찌륵대는 코를 막을 순 없다.

“잘…다녀오거라. 차연아.”

아이는 대답하지 못한채 돌아선다.

“기다리마.”

그 아이는 보호자도 없이 시커먼 기차에 올라탄다.

이윽고 기차의 모든 문이 닫힌다. 남성의 시선이 창문 너머를 향하지만, 아이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심심하면 들려봐.”

어?

“자기, 얼굴을 보니 뭔가 고민이 있어보이는데, 고민 들어주는 게 내 전문이거든. 첫 방문 땐 할인도 있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와봐, 알았지?”

“예? 아, 예. 네, 그럼요.”

백차연은 명함 한 장 위에 미소를 남기곤 떠났다.

백차연 이 사람이 그 소녀라면...

시베리아, 조선, 임무…무슨 뜻이지?

조선이라면, 구한 말? 일제시대?

아니면…북한?

“으,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몰려든거야 이 동네엔!!”

괜히 애꿎은 동네탓을 해본다. 하지만 애당초 내가 환상을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들이다.

나도, 저 사람들도 조용히 살고 있었겠지.

아, 모르겠다.

갑자기 등장한 술집 마담 때문인지, 아니면 방금 본 환상 때문인지 아직도 멍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같이 헛것을 보는 사람에겐 현실감각이 실제로 필요하다.

정신 차려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저씨가 간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3. 내 가게 (1) +1 16.04.08 232 6 7쪽
22 22. 드디어 등장한 악당 (3) +1 16.04.07 204 6 7쪽
21 21. 드디어 등장한 악당 (2) +2 16.04.06 244 7 7쪽
20 20. 드디어 등장한 악당 (1) +1 16.04.05 244 6 8쪽
» 19. 도둑놈이 남긴 증거물 (2) +1 16.04.04 323 7 8쪽
18 18. 도둑놈이 남긴 증거물 (1) +1 16.04.03 342 9 7쪽
17 17. 예의없는 학생 (2) +1 16.04.02 333 7 11쪽
16 16. 예의 없는 학생 (1) +1 16.04.01 329 8 8쪽
15 15. 가게 (3) +1 16.03.31 272 10 7쪽
14 14. 가게 (2) +1 16.03.30 274 11 7쪽
13 13. 가게 (1) +2 16.03.29 374 10 11쪽
12 12. 도둑들 (3) +1 16.03.28 345 6 7쪽
11 11. 도둑들 (2) +1 16.03.27 454 9 10쪽
10 10. 도둑들 (1) +1 16.03.26 414 8 9쪽
9 9. 동네 사람 (4) +1 16.03.26 424 5 7쪽
8 8. 동네 사람 (3) +1 16.03.26 383 7 10쪽
7 7. 동네 사람 (2) +1 16.03.26 511 10 7쪽
6 6. 동네사람 (1) +1 16.03.26 492 10 8쪽
5 5. 홍제동 (4) +1 16.03.26 582 12 10쪽
4 4. 홍제동 (3) +1 16.03.26 540 11 10쪽
3 3. 홍제동(2) +1 16.03.26 600 11 7쪽
2 2. 홍제동 (1) +1 16.03.26 750 10 9쪽
1 1. 프롤로그 +1 16.03.26 834 15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