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땅에 버려진 비인족이 살아남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12.05 14:17
최근연재일 :
2023.12.05 21:54
연재수 :
6 회
조회수 :
55
추천수 :
6
글자수 :
28,444

작성
23.12.05 17:35
조회
10
추천
1
글자
12쪽

003. 여행

DUMMY

*


“이건 좀···.”


나는 볼을 긁적거렸다. 이상한 물건을 만들어낸 당사자는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용병단의 임시 건물. 정신을 차리고 며칠 뒤의 저녁. 그리고 건물 내의 식탁이었다.


사람이 먹기 힘들어 보일 정도의 물건을 접시에 담아낸 작자는 ‘킨달’이었다. 용병단의 2인자. 고작해야 넷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나름대로 부단장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그런 소릴 해도 엘레나나 장년인, 플럼이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면 사실인 듯하다.


그리고 부단장 킨달은 요리를 더럽게 못했다.


“이게 뭡니까?”


순수한 질문이었다. 공격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공격이 될만큼 끔찍한 걸 내게 내놓았다. 저 양반이 말이다.


“호오, 보고도 모르겠냐?”


킨달은 친해지는 게 익숙한 사내였다. 비인족으로서, 어딘지 모르게 심리적인 장벽이 쳐져 있는 내게도 살갑게 굴며 다가왔다. 나는 이들과 다른 점이 있을지 모르고, 정체를 들킬까봐 행동거지가 다 조심스러워지고 숨기듯 구는 면이 있었는데. 킨달은 그런 어색함마저도 아랑곳않고 늘 행동했다.

좋은 사내다.


“음··· 모르니까 묻는 거 아닐까요?”

“아스칼럼, 넌 참 딱한 아이구나.”

“호오?”


마지막의 호오, 는 내가 냈다. 꽤나 도전적으로 시비를 걸길래 말이다. 보통 이런 걸 만든 양반의 손재주가 더 딱한 거 아닐까.


킨달은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주방용 뒤집개를 들고서 이야기했다. 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떠들었다.


“팬케이크라는 거다.”

“호오오오오오오······.”


나는 흥미롭다는 듯 그의 주장을 살폈다. 내 앞에 있는 건 그냥 검게 탄 쓰레기다. 이 양반이 날 독살하려는 게 아니라면 그의 정신이 이상한 걸거다.


“너무 맛있네요. 잘먹었습니다. 감사해요, 킨달.”

“아스칼럼, 딱한 아이.”

“아니.”


적당히 인사를 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킨달은 가엽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스꽝스럽게 날 놀렸다. 이 상황에서 우스꽝스러운 건 당신이래도.


“우리는 핸드릭 용병단이다.”

“잘 알죠. 킨달이 부단장이잖아요.”

“너는 숲에 버려졌던 불쌍한 놈으로, 우리가 거두어주었지.”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독살을 하는 건···.”

“독살같은 소리하네!”


무언가 길게 설명하려고 했던 듯했지만, 요리를 건드리자 버럭 화를 냈다. 진심은 아닐 거다. 반쯤은 장난일 테다. 그러나 눈에는 약간 진지함이 엿보였다. 킨달은 이 화학적 쓰레기를 아마 진정성있게 요리한 모양이다. 오 세상에, 하나님.


“후우. 오늘은 무슨 날이지?”

“몰라요.”

“······.”


큼,


킨달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럴 수 있지. 왕실에 연회가 있는 날이야. 핸드릭이랑 엘레나, 플럼은 그것 때문에 초대를 받아서 갔고. 의뢰가 얽힌 거라 거절할 수가 없었지. 지금 여기엔 너와 나, 둘 뿐이다. 우리는 아마 내일 아침이나 늦으면 점심까지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요즘은 긴축 재정으로 용병단이 운영되기에 음식은 가급적 직접 해서 먹고 있지.”

“으음······.”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다. 그러니까 한 명을 독살시켜서 식비를 줄이려고···!”

“그게 아니야 이 독살스런 자식아.”

“호오.”


독살과 독살. 제법 훌륭한 어감적 유희이지 않는가. 초메이 국은 확실히 비인족의 공통어와 거의 같은 언어를 쓰고 있었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초메이가 있는 북부 지방에서 거의 같은 언어 계통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변두리로 넘어가도 지독한 사투리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당장의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이다.


나는 이들에게 출신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대강의 사정을 얼버무렸다. 그것은 깨나 유효했고, 대강은 납득시킬 수 있었다. 어차피 설명하기 어려운 사연이니, 나도 모르니 배째라 식으로 나간 셈이다. 어설픈 변명보다는 차라리 효과적이었다. 이들도 짐작이 가지 않아 대충 그렇게 넘어갔고.

무언가 의심스런 구석을 떠올려보려 해도, 애초에 발상조차 안된다면 추리가 안되는 법이다. 그리고 이들은, 나를 받아주었다. 친절하게도.


지상 민족과 여기에서의 삶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사람 사는 곳이 대강 비슷한 게 많을 거다. 어차피 같은 민족이었고. 거슬러 올라가면.

그런 점에서 볼 때, 지나치게 호인들이었다. 이 양반들은. 이런 식으로 굴면서 어떻게 용병단을 유지할 수 있는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건 ‘왕국 최고’라는 부연 설명으로 나 역시 대강 납득을 했다.


실력 있는 사람이 여유도 부리는 법이었다. 아마 지독한 세상에서 대가 없는 호의를 계속 베푸는 건 분명 여유가 필요한 일일 테였고.


그래, 여유.


그게 중요하지.


여유가 없어서 나 또한 버려졌으리라.


부유섬에서의 일을 생각하자 살짝 울적함이 치밀었다.


그 틈을 타서 킨달이 갑자기, 펜케이크라고 부른 검은 물질을 내게 퍼먹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숟가락을 집어 뜨고, 그걸 살짝 벌린 입에 처넣기까지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

무서운 속도, 역시 왕국 최고의 용병단인가.


“업.”


다른 감상을 얘기하기 전에 찌릿한 미각적 충격이 뇌를 흔들었다.


혀에 대한 폭력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신체에 대한 폭력으로 발전할 것 같은 맛이었다.


생각보다 탄 부위가 많지는 않았다. 시꺼맸던 주제에 말이다. 대신, 탄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색이 났다는 게 조금 무서웠다. 분명 계란, 버터, 밀가루 따위를 쓴 걸 봤는데······.


“어떠냐!”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콧대가 짜증이 났다. 잿빛 머리칼의 호청년이다. 시원한 미소였지만, 그럴수록 내 속은 꼬였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남자는 가끔 싸워야 할 때가 있다.

나는 그걸 지금이라고 생각했고, 식탁에서 일어나 킨달의 명치를 쳤다.


“억.”


부단장은 꼴사나운 소리를 내뱉으며 당황했다.


*


“···이게 뭐야.”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핸드릭은 가관을 보았다.


임시 건물의 1층 구석에는 식당이 있었다. 식탁과 부엌이 함께 있었고, 추운 밤 날씨에 둘러 입은 외투를 벗을 새도 없이 다가가 그 꼬라지를 구경했다.


무언가 치열한 전투라도 벌어진 듯, 가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식당의 집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식재료를 몇 번 엎었다가 닦고, 마지막에는 닦기조차 포기한 것 마냥 지옥의 꼴이었다.


가사 노동을 하는 주부나 고용인이 보았다면 뒷목을 잡았을 광경이다. 그러나 1층에 사람은 없었다.


용병대 건물을 아작내 놓을 인간이 달리 있을 것 같진 않았고, 내부자의 소행이다.


핸드릭은 푸른 색의 코트와, 검은 목도리를 풀면서 인기척을 찾았다.


뒤따라 금방 들어온 엘레나와 플럼 역시 사태를 파악했다. 청소는 가끔 고용인을 불러 처리한다. 그게 아니라면 플럼이나 엘레나가 할 때가 많았다. 단장과 부단장이라고 노동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냥 개인의 성향 차이였고, 습관이리라. 두 사람도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꼴이 났다면 누구라도 먼저 팔 걷고 나서서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벌컥!


세 사람이 식당의 꼬라지를 보고 말을 잃었을 때,


임시로 빌린 저택의 뒷문이 열리며 호기롭게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사내와 소년. 킨달은 특유의 찌르는 듯한 목소리로 웃었다.


“하하! 거 봐. 금방 잡는다니까!”

“이거라도 없었으면 당장 내일 굶었어야 됐을 거에요. 웃음이 나··· 얼레.”


그새 며칠 되지 않았지만, 스스럼 없는 모습이었다. 핸드릭은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길바닥에서 주워 온 꼬마가 제법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해 대견하기도 했고,


뭐···


저택 꼴이 개판이라 착잡하기도 했다. 웃고 있는 부단장은 뒷마당으로 나가 닿는 작은 호수에서 잡아온 건지, 커다란 물고기 몇 마리를 들고서 있었다.


킨달이 그네들을 보자 말했다. “요! 뭐야, 임금님이랑 밤새 술대작 하는 거 아니었어?” 아랑곳하지 않는 점이 그답다. 엘레나는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한 반쯤은 농담이었다. 생각조차 좀 거칠게 할 뿐이었다.


“잘 지내고 있었나 보구나. 일찍 돌아왔어. 볼 일만 보고. 높으신 분들이 배려를 잘 해주셨지. 덕분에 귀족 마차를 타고 지금 왔고··· 근데 이건 대체···.”

“하하하하하. ······.”


킨달 옆에 있던 소년이 웃었다. 멋쩍은 모양으로, 잘못을 아는 얼굴이다. 핸드릭은 얼굴을 굳이 찌푸리진 않았고, 툭 터놓고 얘기했다.


“킨달이 또 요리를 했겠구만. 너밖에 없으면 제발 사먹으라니까···. 빨리 치워. 왕궁 연회에서 고맙게도 음식을 싸줬거든?”

“오오.”


킨달은 반색하면서, 물고기 몇 마리를 넣어둔 그물망을 벽에 솟은 걸쇠에 걸어버렸다. 퍼덕거리는 침버 호수의 민물고기들이 애처롭다.


그물 아래로 물이 조금 떨어졌다. 움직일수록 사고를 치는 놈이었다, 킨달은.


가사에 관해선 부단장이 손을 대지 않을수록 도와주는 일이다.


“하아.”


엘레나는 다 들으라는 듯, 한숨을 쉬어 보이며 외투를 벗고, 팔을 걷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여성에게 가사를 맡기는 게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엘레나는 잘하는 편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늘 움직이는 것도 있었고.


“빨리 거들어. 여기서 더 사고치면 죽여버릴 거야.”

“무서운데.”

“하나도 안 무섭잖아, 똥구멍같은 자식아.”

“엘레나, 부단장에게 말이 조금 험한 거 아냐?”

“험한 몰골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닥치고 도와.”

“네.”


분주하게 남녀가 움직였고, 다른 이들도 어지러운 1층 실내를 치웠다. 왕실에서 싸준 음식은 플럼이 들고 있었다. 값진 식재료로 당분간을 배부를 듯했다.


*


“그래서 말인데.”

“네.”


아스칼럼, 이리 와보렴.


하고 부르는 소리에 다가가니 갑작스럽게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핸드릭이 왕궁에 다녀왔다고 하던 며칠 뒤. 객식구로 고아나 다를 바 없는 신원 미상의 꼬맹이를 받아들인 용병대에서 그럭저럭 안정감을 찾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1층 식탁 자리로 나를 부른 건 핸드릭이었다.


2층 복도 구석에 앉아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내려와 앉았다.


“이번에 임무 때문에 먼 지방으로 이동을 하게 됐어.”

“아하.”


오후.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창가 근처의 식탁이었다. 핸드릭의 뒤통수로 빛이 내리쬐었다. 금발의 미청년은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왕실에서 맡겨준 임무로, 조금 험한 여행이 될 수도 있단다. 고될 수도 있고. 위험한 일까지는 없겠지만···. 네가 원한다면 그냥 여기 도시에서 있어도 돼. 식재나 생활비 따위는 두고 갈테니까. 우리는 아마 두 달 정도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아하.”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슨 얘기인지 알았다.


“같이 가죠. 뭐 어려운 거라고.”


쉬운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걸 묻는 핸드릭의 언행에 다시금, 이 양반은 어색할 정도로 지나친 호인이라고 느꼈다. 이런 순둥이같은 양반이 용병단의 단장이라니. 한 번 본 적 없는 꼬맹이를 위해서 이런 배려를 하는 모험가가 어디에 있을까.

핸드릭과 그 동료들은 믿을만한 이들이었고, 그건 지상 민족이어도 전혀 상관 없는 문제였다.


애초에 하늘로부터 여기에 떨어진 시점에서, 약 보름 여의 시간 자체가 지독한 모험이었으므로. 나는 모험이 두렵진 않았다. 거기다 운좋게 최고의 용병대라고 한다면야. 함께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호오. 그래. 자신만만하구나.”


핸드릭은 슬쩍 웃으며 답했다. 그의 실력을 잘 알지는 못했다. 지상 민족들 중, 어떤 초인들이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최고의 용병이라함은, 최고의 병사라는 거니까. 아마 핸드릭과 그 동료들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초인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를 발견한 어둠숲 자체도 그런 양반들만 오는 곳이라고 설명을 했었고.


견식은 좋은 일이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땅에서 여러모로 구경을 하는 것도 바라마지 않는 일이었고.


나는 크게 고갤 끄덕거리면서 한 번 더 대답을 했다.


“그럼요, 여행이라면 언제나 좋은 걸요.”


*


작가의말

여행

트래블

졀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땅에 버려진 비인족이 살아남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 005. 전투 23.12.05 10 1 11쪽
5 004. 낮잠 23.12.05 6 1 11쪽
» 003. 여행 23.12.05 10 1 12쪽
3 002. 핸드릭 용병대 23.12.05 8 1 14쪽
2 001. 땅에 떨어진 비인족이 살아남는 법 +1 23.12.05 13 1 12쪽
1 0.prologue 23.12.05 8 1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