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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땅에 버려진 비인족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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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12.05 14:17
최근연재일 :
2023.12.05 21:54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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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수 :
28,444

작성
23.12.0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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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002. 핸드릭 용병대

DUMMY

밤은 깊었다.


그리고 길었다.


간신히 몸을 깨워낸 나는 아침의 햇살을 맞으며, 나무 뿌리 사이의 구덩이에서 기어나왔다.


“후우···.”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아니, 좋았던 걸로 하자. 상처 하나도 없이, 살아남았다. 이보다 기쁜 일은 달리 없었다.


꼬르륵.


그리고 배가 고팠다.


“으으음···.”


목이 마르기도 했다. 소년의 몸은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커나갈 시기인 것이다.


불과, 칼이 있었다면 어제의 늑대를 구워 먹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거나 먹어댈지 모르는 늑대 고기라면··· 무언가 짐작키 어려운 균이나 벌레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배가 고픈데.


다만 그조차도 없는 게 한스럽다. 안타까운 점이다.


주린 배와 목을 버티면서, 아침이 시작되고 또 밝아진 숲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


“···이봐!”

“무슨 일이야?”


철 갑옷을 입은 한 사내가 소음을 내며 걷다가, 뚝 멈춰선 채 멀리 있는 동료를 불렀다. 그들은 숲을 탐험하고 있는 여행가들이었다. 일반적인 여행가들에 비해서 훨씬 솜씨가 좋고, 남다른 저력을 가진 부류다.


“···여기, 꼬맹이 하나가 쓰러져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 여긴 어둠숲이라고······ 오 젠장 하나님.”

“···욕을 하던지 신앙심을 표출하던지 하나만 해.”

“오 제기랄.”

“그 쪽을 선택한 거냐.”


맨 처음 다른 사내를 불렀던, 철갑옷의 기사가 눈을 좁혔다.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사내다. 미형이었고, 다가온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소음과 소란에, 주변에 있던 자들도 기웃거렸다.


이내 일행이 전부 모였고, ’어둠숲‘이라 불린 한 숲의 공터에 그들이 서 있었다.


가운데에는 등판을 보이고 쓰러진 소년 하나를 두고서 말이다.


“······이게 뭐지?”

“사람이잖아. 보면 몰라?”


일행 중 여자가 물었다. 체구가 그리 크지 않았고, 검은 머릿결을 늘어뜨렸다. ’엘레나‘라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주어지는 핀잔에 인상을 썼다. 그 말에 대답을 해주었던 사내는 조금 움찔했다.

성격이 좋지 않은 여성이었다. 늘 그녀를 긁어대는 그도 문제였지만.


제일 처음 소년을 발견한 사내, 기사같은 행색의 금발 청년이 말했다.


“······. 일단 데리고 가지.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그래야겠구먼.”


조금 나이가 있는, 체구가 단단한 장정이자 장년인이 답했다. 치렁한 머리를 늘어뜨린, 묵직한 사내였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다.


금발 기사, 흑발의 여인, 엘레나. 그리고 엘레나의 신경을 긁던 다른 청년 사내. 그리고 묵직한 체격을 지닌 장년인.


네 사람은 일단 쓰러진 녀석을 데려가기로 결정을 했다.


*


“헉.”


지겹다.


거칠게 헉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난 나는 한 켠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머리가 맛이 간 걸지도 몰랐다. 아니, 이건 다 꿈이 아닐까. 사실 난 여러 번의 악몽을 겹으로 꾸고 있는 걸 거야. 그래서 자꾸 이렇게 깨어날 때마다 다른 장소···


다른 장소?


“뭐여.”


이번에 보이는 건 조금 참신했다. 평범한 실내였고, 잘 정리된 침소에서였다. 턱, 하고 짚으며 일어난 건 다시보니 침대였다. 심지어 깔끔하게 정돈된 시트가 깔린, 부드러운.


뒤로는 베개와, 덮여진 이불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짚었다. 멀쩡하다.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실내는 사람의 손길이 잘 닿은 소박하지만 깔끔한 인테리어였다. 다만 양식이 늘 보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살던 곳은 확실히 아니었고. 마치 책에서 그림이나 관측기에서 따온 영상, 사진 자료 따위로 보던 지상에서의 그것···.


벌컥.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왁!”

“억.”


갑자기 들어오며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는 통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앞에 있는 건 사내였다. 평범하게 생겼다. 아니, 사실 잘생겼다. 금발에 콧대가 높은. 체격이 건장한.


‘지상 민족’을 실제로 맞닥뜨리는 건 처음이다. 배워 알고 있던 대로, 비인족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덕분에 ‘지상 민족’일 금발의 청년 역시 나를 평범하게 대했다.


“오··· 살아있었잖아.”

“음···?”


나는 그 말에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뭔 소리여.


“아하하, 아니··· 다행이라는 말을 하는 거야. 몸은 괜찮나?”


남자는 약간 어색하게 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금발의 미청년. 나는 몇 마디 안 나눠보았지만 나사 하나 빠진 놈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그런 성격이던, 아니면 내 앞에서 그렇게 구는 거던. 큰 차이는 없다.


사내는 침대 근처로 다가왔다. 저벅거리는 걸음. 나무 판자가 시끄럽게 삐걱거렸다. 잘 인테리어된 공간 치고는 낡은 듯했다. 부유섬에도 목재 건물은 있다. 아주 비싼 고급 저택들이 그렇게 지어진다. 보통은 옛 건물을 부숴 만든 석재, 광물 혼합 재료로 집을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한다.


“크흠···. 예.”


나는 일단 공손하게 대답했다. 가까이 다가오는 사내가 무슨 꿍꿍이인지 내가 알 게 무언가.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달리 없었다. 의심스런 눈초리로 쏘아보는 것도 괜찮았지만, 아마 정황상··· ‘숲’에서 나를 이리로 데려와준 사람 같았다.

몸에는 아까 확인했듯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면 정신을 잃었을 때 쓱싹하던, 했을 것이다.


“오, 혹시 목이 마르니?”


사내는 친절했다. 침대 근처에 있는 작은 탁상에서 물병을 집었다. 속이 보이지 않는 병이었다. 도자기같은 듯했다. 저것 역시 귀하다. 자연적인 재료로 만들어지는 건 대부분 귀했다. 도리어 초고대 과학 문명의 산물들을, 원시적으로 부수고 다시 만드는 식의 공법이 훨씬 값싸고 흔했고. 미쳐버린 방식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인족들은 정말로 대부분의 기술을 유실했으니.


그만큼 긴 시간이 땅과 하늘섬 민족들 사이에 흘렀다. 그러나 원래 같은 민족이라는 걸 증명하듯, 외견 상으로는 아무 차이도 없다. 나 역시 눈 앞의 남자에게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심리적으로는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겉보기에는 하나도 없다. ‘말’ 역시 통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다음 순간 적잖이 놀랐다.


비인족 사회가 쓰는 언어는 당시 인간 대륙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어군이었다. 지상과는 교류하지 않아도 관측했었으며, 그들의 정보는 부유섬에서 계속해서 돌았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말에는 큰 차이가 없었고, 다행히 섬에서 떨어진 자리, 거기서 만난 이 양반은 비인족들이 쓰는 언어를 쓰고 있었다.


아마 애매하게 어색함을 느낄 지는 모른다. 사투리처럼, 말투가 다르다거나 혹은 조심하지 않으면 부유섬에서만 아는 단어나 지식 따위가 튀어나올 지도 모르고. 조금 긴장한 모습을 감추며 천천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자.”


후릅.


남자가 주는 물을 받아 먹었다. 그는 자기를 ‘핸드릭’이라고 소개했다. 친절한 사내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는 내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어둠숲’이라고 불리는 지독한 마경이 있는데, 그곳을 지나다가 나를 발견했다고 말이다.

핸드릭은 여행가이자, 용병으로 여기저기를 떠돌며 진귀한 것들을 찾거나 혹은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사내였다. 동료들이 있었고, 지금 있는 곳은 그들이 머무는 임시 거처라고 한다.


“그렇게 된거야.”


어느새 설명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추가로 들어왔다. 검은 머리칼의 여자. 잿빛 머리칼의 다른 사내. 그리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탄탄한 체구의 장년인.


네 사람이 좁은 방 안에 들어와 나를 처다보고 있었다. 나는 말을 조심히 골라야한다고 생각하느라, 조금 대답이 어눌해졌다. 비인족임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 이전에 지상 민족이 비인족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하는 것부터 의문이긴 했지만. 아마 모르지 않을까? 비인족이 위에서 아래를 관찰할 수 있는 것조차 초과학적 기술 문명의 부산품이 필요한 일인데.


지상 민족은 독특한 기술들을 발전시켰다고 알고 있다. 오라Aura라고 일컫는 특이한 에너지를 다루는 식으로 말이다. 그건 그야말로 기예이며, 부유섬에는 없는 기술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러를 다루는 기술은 있는데, 그건 기계 장치를 통하는 거지 이들처럼 맨몸뚱이로 하지는 못한다. 비인족들이 오랜 시간 관찰했을 때, 지상 민족들 중에는 멀쩡하게 생긴 괴물들이 많았다.


대신 공학이나 과학 발전은 한참이나 더딘 걸로 알고 있다. 초자연적인 술법이니, 괴력을 보이는 신체 강화술이니 하는 건 해내지만 기계 장치를 만드는 기술력은 시원찮은 것으로 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비인족에 대한 전승이 끊어졌을 확률이 높았다.


비인족과 지상 민족이 갈려버린 건, 고작 수 백년 정도 전의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작게 잡아도 천 년 단위의 일이었다.


비인족의 마을은 형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상 민족들은 수없이 많은 나라가 사라지고 생기고, 오로지 몇 개의 초거대 건축물 따위만이 남아 있는 세월이었다.


나는 어쨌든, 이들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이질감이나 거부감은 제쳐 두고서, 순수한 호기심 자체는 있었다. 다른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었고, 여태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종류의 사람들이다. 지상 민족과 만난다는 건 어쩌면 비인족 모든 아이들의 꿈일 지도 몰랐다.


이런 식으로 만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기왕 만나게 된 것. 좋은 면만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꼬맹아, 그래서 네 이름은 뭐니?”


라고, 여성, 엘레나라고 이름 밝힌 이가 물었다. 나는 침대에 상체만 일으킨 채, 병자처럼 감나히 앉아 그들을 상대했다. ‘으음······.’ 가명을 써야 하나, 라고 0.5초 즈음 생각한 뒤에 천천히 답했다.


흔치 않은 이름이라고 하더라도 이름만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일 따윈 없을 테다. 이들은 아마, 지상 민족 중에서도 친절한 부류처럼 보였다.

모르는 이의 악의가 무서운 거지, 나를 도와준 친절한 이들이 두렵진 않았다. 그건 비인족이냐 지상민족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에 대한 문제다.


“아스칼럼이요.”

“흐음.”


엘레나는 조용히 혼자, 눈을 빛냈다.


*


킨달은 솜씨 좋은, 왕국 최고의 용병단에 속해 있었다. 핸드릭 용병대라고 한다면 왕실에서도 종종 의뢰를 위해 찾는 모험가 집단이었다.


기본적으로 대륙 서부와 중부 곳곳을 유랑하면서, 여러 왕국을 떠돈다.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북부 초메이 왕국의 의뢰를 가장 많이 받고, ‘왕국 최고’라고 할 때의 기준도 초메이 왕국이었다.


북부에 위치한 나름대로 탄탄한 국가였고, 그런 곳의 최고가 아무나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킨달은 자부심이 있었고, 또 리더라고 할만한 핸드릭에 대해서도 신용이 있었다.


핸드릭은 뛰어난 실력을 가졌고, 그가 생각하기에 용병들 중에서는 가장 착한 놈이었다. 모험가 중에서는 모르겠지만.


돈을 위해 의뢰를 받는 이들은 최소한의 신용을 사회적 분위기와 법을 위해 지킨다. 그렇지만 깊은 곳까지 신뢰할 수 있느냐, 고 묻는다면 그렇지 못할 만한 놈들이 많은 부류다. 모험가들이란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각지를 여행하면서 보물을 찾는 종류였고, 개중에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떠도는 부류들이 좀 있었다.


용병들은 반대급부로 질낮은 놈들이 사람 행세를 하면서 다니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고.


성정이 좋고, 좋은 솜씨를 지닌 핸드릭은 가끔 특이한 일을 겪고는 했다. 그것도 꽤 자주 말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어둠숲이라는 인세의 마경을 지나면서 멀쩡한 꼬맹이 하나를 줍다니.


킨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어떤 절대자가 저 어둠숲 한가운데에 아무 무기도 장비도 없는 꼬맹이를 둘 수 있다는 말인가.

몬스터들을 물리는 마법, 술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어둠숲의 놈들은 그런 게 통할만치 만만한 놈들이 많지 않았다. 모험가의 입장에서는 바짝 긴장을 하고 들어서야 하는 지독한 장소였는데.


운이 좋다고 하더라도 하루 이틀만 지나면 그대로 뼛조각이 되어서 널브러지는 게 일반적인 경우였다.


어떻게 아이가 들어갔을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지나친 우연에 의문만 깊어졌고, 그래서 아이에게 추궁하듯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다.


“아스칼럼이요.”


이름을 뱉는 꼬맹이다. 금발에, 착하게 뜬 눈망울. 제법 귀엽게 생긴 소년이었고, 체구는 평범하다. 검을 쥐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았고···. 체내에 오라를 쌓거나 다룬 흔적도 없다.

범상한 놈에, 조금 못보던 양식의 옷을 하고 등에는 풀러지질 않는 가죽 끈의 무언가를 달고 있었다. 둥그런 버튼이 등판에 있었지만 빼낼 수 없었고, 덕분에 엘레나의 술법으로 대강 먼지따위를 떨어낸 뒤 방에서 재울 수 밖에 없었다.


이름조차도 특이한 어감이다. 잘 쓰지 않는 투였다. 적어도 북부 대륙에서는 말이다. 킨달은 볼을 긁적였고, 여러가지 의문점들을 뒤로한 채 일단은 넘어갔다.


궁금해 해봤자, 이제 막 깨어난 꼬맹이를 너무 들들 볶기도 뭐한 일이다.


몇 가지 질문들을 더 했고, 이야기를 나눈 뒤 일단은 건강한 걸 확인한 걸로 만족했다.


핸드릭 용병단에는 임시로, 짐덩이가 하나 더 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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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04. 낮잠 23.12.05 6 1 11쪽
4 003. 여행 23.12.05 11 1 12쪽
» 002. 핸드릭 용병대 23.12.05 9 1 14쪽
2 001. 땅에 떨어진 비인족이 살아남는 법 +1 23.12.05 1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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