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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땅에 버려진 비인족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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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12.05 14:17
최근연재일 :
2023.12.05 21:54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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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수 :
28,444

작성
23.12.0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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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1. 땅에 떨어진 비인족이 살아남는 법

DUMMY

헉!


헉!


“헉!”


세 번을 고함을 질렀다. ‘나’는 갑작스럽게 눈을 떴고, 지독한 악몽에서 탈출한 인간처럼 가슴께를 덜덜덜 떨어댔다.


“······어?”


눈 앞의 광경이 조금 달랐다. 무슨 얘기냐면, 평소에 늘 보던 잠자리와 말이다.


머리가 조금 아프다. 뒤엉킨 기억들, 이미지들. 검게 물들어가는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정신을 다잡았다.


“······.”


벌떡 일어나면서 고함을 질렀더니 목이 좀 아프다. 부들부들 떨었고, 눈이 크게 떠졌고, 두려움에 차 있던 내가 좀 진정을 했다.

가장 심각한 사실을 떠올린 덕분이다. 가장 빌어먹을 두려움 앞에서 작은 것들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비인족 집단에서 떨어져 나왔다.


“···컥.”


목이 메였다. 손을 짚는다. 흙바닥. 풀?


이런 류의 자연은 부유섬에도 충분히 있었다. 말했듯, 초고대 문명의 과학 혁명은 살벌하게 놀라웠다. 대지에서의 삶을 대부분 구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도 있고, 흙바닥도 있고, 나무와 심지어 계곡이나 호수마저 있었다.


물론 이···


드넓은 대지만큼 넓지는 않겠지만.


숲이었다.


어둔 숲. 밤의 어두움이 이미 숲을 잠식했고, 나는 시야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 숲 속에서 정신을 차린 참이다.


몸을 일으켜보려 한다. 부들거린다. 팔도, 다리도. 떨어질 때 뭔가 문제가 있었나? 잠시간 낑낑거렸다. 급작스런 낙하로 지나치게 몸이 긴장을 했고, 근경련이라도 일어난 모양이다. 혹은 어디 관절이 조금 삐끗하기라도 했던가.


간신히 일어서 몸을 툭툭, 털었다.


낙하의 흔적은 없었다. 다행이다. 지나친 굉음이나 대단한 흔적이 있었다면, 주변의 시선을 샀을 지도 모른다.

‘땅’에서의 삶은 비인족들에게 언제나 미지의 것이었다.


말하듯 과학 혁명의 산물이 남아는 있었고, 대부분 유실되었고, 그것을 개조하거나 새롭게 개발하는 일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지상 민족들의 삶을 관측하는 기계는 다행히 멀쩡히 작동했다. 제한적이었으나, 땅에서의 지식들에 대해 비인족들도 대강은 알고 있었다. 심지어 교과 과정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나도 중급 아카데미 시절 때 배웠다. 지금 패닉에 빠져서 정신을 잃지 않는 것도 그 덕분이다. 지상에서의 삶은, 다가갈 수는 없으되 약간의 그리움이나 바람 정도는 남은 무언가였다. 비인족들에게.


야! 그런데 이렇게 직접 오게 되다니. 너무 기쁜걸!


“······XX."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쌍욕을 뱉었다. 현실을 부정하는 긍정적 마인드 뒤에는 늘 감당하기 어려운 자각 타임이 찾아온다. 후··· 이게 다 뭐하는 짓이냐.


머리를 흔든다.


다시금 주변을 본다.


어둡다.


아무것도 안 보여.


이거···


X된 거 아닐까.


*


불시착은 늘 설레는 일이다.


“워우우우!” “컹, 컹!” “으르르르르···!”


밑에 있는 놈들만 아니었다면 조금 더 그럴 거다.


“헉.”


나는 나무 위에 올라서 있었다. 갑자기 비인족의 부유섬이 사무치게 그리워 하늘을 잡아보려는 시도는 아니었다. 땅이 더럽게 느껴지고 내 집이 아닌 것처럼 여겨져 도피하려는 시도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살고 싶었다.


숲 속은 맹수들의 터전이었고, 나는 그것들에게 있어 아주 부드러운 먹잇감에 불과했으니.


비인족이라고 지상 민족들과 다를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똑같다. 애초에 그냥 그들 중 일부가 고대에 터전을 바꾼 것 뿐이었다. 사는 곳의 차이와, 상식의 차이가 있을 뿐 그저 동일한 인간이다.


미쳐버린 부유섬의 사이비 종교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진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엄연히 상식적인 편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것만 똑바로 듣고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추론적 내용들이었다.


아무튼 고로···


나무 밑둥에서 나를 바라보며 컹컹거리는 늑대 새끼들을 멋지게 해치울 수 있는 방법 따위 내게는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단 말이다! 망할! 와! 으아! 개XX!


"저리 가! 이 개새끼들아!”

“컹컹!” “키야오!”


개새끼라는 어감이 안 좋았던 걸까. 늑대들에 대한 멸칭이라고 여겼기 때문인가. 더 사납게 짖는다. 그냥 내가 움직일 수록 놈들의 식욕을 자극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더듬거리는 손으로 나무의 몸통을 안았다. 손이 미끄러지고, 굵은 나뭇가지에서 발을 헛디디려 할 때마다 심장이 같이 떨어졌다. 심정적으로 말하자면 한 일곱 번 정도는 죽은 것 같다. 참으로 다이나믹한 경험이었다.

청춘, 15세.


살아있는 비인족 중에선 손에 꼽는 이들만이 경험한다는 상공 7km즈음에서의 낙하도 겪었다. 그리고 아직도 목숨이 붙어있고, 이젠 지상 출신의 늑대들에게 물려볼 경험까지 해볼 수 있을 판국이다. 참으로 즐겁다.


“아아아아아악! 저리 가!”


즐겁다, 라는 생각을 애써 하자마자 현실감이 몰려와서 지독하게 외쳤다. 하늘은 내게 왜 이런 시련을, 하며 따지고 싶어도 날 버린 건 사이비 종교에 빠져버린 가족들이다. 이제 올바른 종교의 신이 ‘하늘’이라고 할 때 날 괴롭게 만든 건 미친 이단 악마 새끼일 거다. 망할.


욕지기가 계속 치미는 게 참기 어려웠다. 더듬거리는 손으로 조금이라도 올라가려고 애썼다. 한 칸 위로, 다시 한 칸 위로. 버등거리며 나무를 껴안고 이상한 댄스를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내게는 적절한 운동 신경이 있었다. 여기서 나무 타기에마저 실패를 했더라면 아까 죽었을 거다.


목숨이 조금 연장된 기분이다.


낙하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줬던 자동 낙하 장치는 등에 달려 있었다. 그건 입는 형태였고, 한 번 장착을 하면 빼기가 쉽지 않다. ‘초고대 과학 문명’의 산물답게, 알기 어려운 작동 원리다. 보기에는 그냥 둥그런 버튼 하나를 뒤쪽에 달고 있다. 배낭처럼 어깨에 메고, 버클로 고정을 한다.


“컥.”


간신히 낑낑거리면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그리 높지 않은 나무였다. 더 위로 올라갔다간 가지가 얇아지면서, 그대로 부러져 떨어질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겠지···


우득.


‘XX.'


욕만 늘었다.


나는 상공 7km에서도 떨어져봤고, 한 7m 언저리에서도 다시 한 번 떨어져 보았다.


*


쾅!


이번에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헉, 헉.”


다행이었다. 덕분에 제대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던져지기 전에 등에 달아둔 낙하 장치는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사람이 초고도 상공에서 자유 낙하하는데 받는 충격을 억제해주는 장치이니, 당연하리라. 이제는 다시 만들 수도 없었고, 예전 분량을 아주 조금씩 쓰는 것뿐이라 당연히 귀한 놈이었다.


놈이 나를 살렸다.


7m 언저리의 고도에서 떨어지는 데도, 충분히 작동을 했다. 영리한 장치다. 감사하게도.


그 짧은 순간 자세를 잡지 못하고 등으로 떨어진 나를, 기계가 보호했다.


등에 달린 둥그런 버튼에서 강력한 출력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내가 느끼기로는, 등에서 바람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세기였고, 그와 함께 영문 모를 힘이 자세를 잡게끔 도와주었다. 마구잡이로 떨어지던 데서 안정감이 생겼고, 허공에서 정확한 자세로 낙하했다.


그 아래에는, 부드러운 살결을 맛보려 하던 미친 늑대들이 있었다. 놈들은 당연히 아가리를 디밀면서 나를 먹으려고 했지만, 버튼으로부터 방출되는 막대한 힘이 막았다.


바람인지 뭔지 모를 힘이 퍼졌고, 밑에 있던 늑대들은 강한 충격을 받아 나동그라졌다. 아니, 아마 안면이 뭉게지거나 다른 뼈가 부러지거나 한 것 같았다. 낙하 직전에, 지면에는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허공에 그런 강력한 에너지 장이 생겨났다.


지면과 나 사이에 있던 늑대들 몇 마리는 그 힘에 밀려나고, 큰 부상을 입었고, 몇 놈은 죽었다.


“끼이이이이···.”


애달픈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놈 한 마리만 빼고 전부 죽은 모양이다. 이제 보니.


나는 땅바닥에 엎드린 채로, 잠시 숨을 고르다가 놈들을 마저 살폈다.


그대로 일어서면 나만 할 것 같은 크기의 검붉은 늑대 놈들이 죽어 있었다. 신음도 없이, 무언가에 치인 듯 몸이 뭉게져 있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놈만 몇 발자국 멀리서 낑낑댄다.


“후우우우······.”


나는 긴장감으로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애써 멈추려 했다. 천천히, 걸어 놈에게로 다가간다.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해 나를 똑바로 보지도 못하는 녀석이다. 이빨은 여전히 날카롭다. 침을 흘리던 입에서는 이제 핏줄기를 토해내고 있다.


“음······.”


나는 늑대 녀석의 처우를 고민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나는 이 땅바닥 세상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가진 것도 없는 걸.


어느 소년 모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단검이니 하는 작은 도구들이라도 있었다면 용기가 0.02정도는 올랐을 것 같은데. 맨 손바닥이 전부다. 말랑한 손바닥을 가진 평범한 소년. 그게 내 정체였고, 그건 한밤 중의 깊은 숲 속에서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에잇.”


그렇지만 왜인지 괘씸해서, 그대로 뛰어올라 옆으로 쓰러진 늑대의 목을 밟았다. 쾅, 하고 내려 찍었으나 놈의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두꺼운 목을 가진 놈이었다.


죽어가는 늑대 놈 한 마리도 처리하지 못하는 빈곤한 실력에 조금 우울했다.


밤을 날만한, 안전한 자리를 찾아야만 한다.


나는 마른 목과 긴장한 팔다리를 애써 무시하면서,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늑대들의 시체가 있는 곳이다. 보다 약한 놈들은 도망갈 거고, 늑대조차 먹는 놈들이 있다면 이리로 올 지도 모른다. 전자라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지만, 후자의 경우 맞닥뜨린다면 그대로 나도 죽을 거다.


알 수 없는 숲 길을 걸으면서, 살기 위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


웃차.


평소에 모험 소설을 많이 읽어둔 것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쥐뿔만큼의 도움이었지만, 그거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나는 짐승의 흔적 따위를 찾아, 놈들에게서 멀리 떨어지려 했지만 실패했다.


먹을 수 있는 풀이나 열매를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조심스레 움직이며, 아무것도 만나지 않고 적당한 잘자리를 찾는 데는 성공했다. 일단은 그거면 된다.


숲의 어둠은 지독하게 짙었다. 평화로이 저 위에서 살 때는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과 어둠이었다. 칠흑같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리 좋지 않은 밤눈에 의지해 더듬거리며 걸어야 했다.


나무 뿌리에 걸려 한 두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큰 소리를 내진 않았다. 늑대를 만났던 트라우마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걸려 한 번 더 넘어질뻔한 나무 뿌리는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원시림에 자란 거목의 뿌리였다.


그럭저럭, 나이에 맞는 평범한 체격을 가진 내가 들어갈만했다. 뿌리는 어지럽게 엉켜 있었고, 그 사이에 굴처럼 틈이 나 있었다. 옷에 흙이 묻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기꺼이 들어갔다. 조금쯤 흙을 파내면서 자리를 찾자 그럭저럭 누워 있을만한 공간이 났다. 바깥에서 내가 보이는가 조심스레 각도를 고민했다. ’안전하다‘라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 완벽하게 가려져 있었다.


벌레들이 우는 소리. 사각거리는 무언가 작은 미물의 소음. 바깥에서 바람이 부는 소리. 나무가 살아 있는 듯한, 어떤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소리.


그런 것들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내 천천히 잠들었다.


지독하게 많이 자는 하루였다. 깨어난 지 사실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밤에 돌아다니다가 늑대같은 놈들을 다시 만나는 건 사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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