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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유르타Eurta:Conscience stor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중·단편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2.04 15:19
최근연재일 :
2023.12.02 01:28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383
추천수 :
30
글자수 :
85,566

작성
23.02.04 15:27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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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저택 청소

검은 없습니다. 총도 안나오고. 액션 씬은 없습니다.




DUMMY

***


“안, 됩니다.”


그러나 그녀가 맞닥뜨린 건 예상 외의 부정이었다,


라는 문장은 가슴 아프게도 사실이었다. 메니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구인공고에 아무런 조건이 없었던 것은, 단순하게 공고를 낸 고용주의 게으름 때문이었다. 적어도 힘이 좋은 남성이거나, 여성이라면 가사 노동에 일가견이 있는 20대 중반 이상의 나이일 것··· 이 사실은 사내가 바라고 있던 숨은 조건이었다.

사내란, 검은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단정한 실내용 양복을 입고 있는 젊은 청년을 말했다. 그는 곧 외곽 언덕의 저택에 살고 있는 주인이었고, 유산을 상속받은 자산가였으며 다소 사교성이 없는 남자였다. ‘유르타 카이사르Eurta kaisar’라는 이름의.


젊은 청년, 이제 갓 20대 초반을 넘어섰을까 싶은 사내는 흰 피부에 사교성 없는 무딘 표정을 하고서 어색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는 사용인들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그가 처리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집안의 가사는 그의 서투른 손으로 다루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매번 사용인을 부리기에는 어딘지 돈이 새는 느낌이었고, 이따금씩 처치가 곤란할 정도로 저택의 청소가 쌓일 때나 공고를 내는 편이었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나, 혹은 그가 집안의 업무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시기가 있다면.


그런 부정기적인 사용인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드넓은 저택에 혼자 있는 편이었고, 다른 사람을 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아직 성인식도 치루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어떻게 대해주어야 할 지도 모르는, 신경이 쓰이는 사용인이라면 차라리 고용하지 않는 것이 나으리라.

신경을 끄기 위해서 대체로 돈을 사용하는 것이었으니.


“그런···.”


메니는 세상이 무너진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속내가 다 드러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히 낯빛이 어두워졌고, 유달리 그늘져 보이는 모습에 유르타는 눈길이 가기는 했다. 그것이 고용에 대한 의지를 바꾸지는 못했으나.


“어··· 그러니까. 이름이 뭐라고요?”


어쨌든. 눈앞에서 갈피를 잃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녀를 돌려보내는 것도 일이었다. 원활한 축객령을 위해 그가 이름을 물었고, 메니의 도톰한 입술이 움직여 이름을 발음했다.


“메니, 아들렌. 메니 아들렌이요.”


목이 건조한 듯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가 가다듬으며 온전하게 말한 이름은 유르타의 귓전을 날카롭게 지나갔다. 유르타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소녀가 그것을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유르타 자신은 스스로가 당황하며 표정이 굳어졌다고 느꼈다.

애초에 평소에도 표정 변화가 적고 무감각한 인간처럼 보이는 그였기에, 그리고 소녀 역시 경황이 없었기에 느끼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아들렌 양···.”


유르타는 내면적인 당황을 전혀 동요로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이름을 말했다. 아들렌. 그가 잘 아는 성이었다. 무척이나. 최근 들어 더욱 잘 아는 단어가 되었다. 그것은 그가 죽인 어떤 사내의 이름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주세요’라는 신문 기사의 내용에 들어가 있는 이름들이기도 했다.


긴 겨울 밤들이 지나는 동안. 유르타는 자수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심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보다 더욱 강하게 할퀴었다. 그 때는 그저 닥쳐온 세상의 시련이나 슬픔에 견디어낼 뿐이었다.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 속에서 울음을 토해냈다면, 지금 것은 표현할 수조차 없는 어려움이었다.

그것이 정당하지 않기에. 도리어, 차라리. 고통이 그에게 더 정당했기에 그는 지독한 살의를 느꼈다. 그 스스로에 대한 살의였다. 지나친 죄의식이라는 것은 그렇게 작용하는 법이다.

그가 믿고 있는 신의 교리에 따라, 자살을 할 수는 없었다. 그것 자체로 살인이나 다를 바가 없었끼에. 그러나 그렇다면. 그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나간 일은 희미하다. 술에 취했던 그 당시의 감각들은 날이 지나자 흐릿해졌고, 몇 가지 사실과 장면들만이 남았다. 이후로 듣게 되는 여러가지 도시의 뉴스 정보들을 통해서 그의 명민한 머리가 가볍게 연관 관계를 추리했고, 벨런 시에 있는 한 기구한 가정의 사연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아무도 죄를 묻지 않고. 그 스스로만 알고 있는 행적. 그것만이라면 눈을 질끈 감고 유르타 자신이 얼마나 양심적이던, 한번 더 악행을 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양심의 찔림에 그냥 눈을 감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벌인 일로 인해서, 누군가의 삶이 크게 달라졌고 그것들이 계속 그의 눈앞에서 나타나게 된다면.

유르타는 그런 상황에서조차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혹은 무표정하게 내일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순간에 사법적인 죄는 없었으나 유르타라는 개인의 내일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유르타가, 유달리 양심적인 인간이어서는 아니었다. 어떤 무뢰배도, 어떤 파렴치한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명백한 죄를 그냥 덮고 앞으로 나아갈 때.


그들의 영혼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겉껍데기로 미소를 짓고 내일을 바라보는 척하더라도. 그 눈빛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총기는 이미 빛을 잃어버리고. 진실된 기쁨이란 세상에서 가장 실체가 없는 환상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유르타는, 그런 괴로움마저 속일 정도로 누군가의 이목을 신경써야 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단순하고 솔직하게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고통에 괴로워할 뿐인. 그냥 그런 이였다.

누구나, 처맞으면 아프다.

그것이 심장이거나, 비유적인 의미로 심장이라 하더라도 그러하다. 누구나, 처맞으면 아픈 법이다. 그리고 메니의 어두운 표정으로 상상력이 좋은 유르타는 여러가지 사연의 디테일을 더했다.


이 아이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홀로 남은 가장이 된, 성인식 이전의 어린 여자 아이. 이 도시에서 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유르타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굳게 다물었던 입매나 정색했던 표정과는 상관없이 말이 툭하고 먼저 튀어나왔다.


“됩니다.”

“예?”


메니가 고개를 들어 유르타를 처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냉랭했다. 메니는 자신이 잘못들었는가 했지만,


“됩니다. 고용하죠. 메니 아들렌 양. 다시 생각해보니 일을 하는 데 성인식의 유무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군요. 그럴 의지가 있다면, 그 팔목으로도 저택을 청소하는 일은 가능할 겁니다. 다소 버거울 수는 있어도.”

“어······.”


그게 과연 된다는 말인가? 어려우니 알아서 돌아가라는 말인가? 라고 메니의 표정이 복잡해질 때 즈음 유르타가 다시 덧붙였다.


“저는 어쨌든 당장 일 할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간단하게 계약서를 작성하죠. 여기서 기다리시고, 잠시 앉아 계세요. 내일 모레부터 바로 나오시면 됩니다.”


그들은 저택의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나오는 메인 홀에 선 채였다. 거대한 카펫으로 장식된 홀의 안쪽에는 양옆으로 나누어지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통한다. 홀의 구석에는 간단한 현관 응대를 위핸 소파가 있었다.

메니가 그것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유르타가 서둘러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재에 다양한 서류 양식들이 있을 것이었다.


***


어쨌거나 메니 아들렌은 기뻐했다. 다소 절차가 이해 가지 않는 구석이 많이 있었지만, 저택의 주인은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급속하게 처리되는 것도 같은 과정을 지나 계약서가 마무리되었다. 놀라운 부분은 그런 것이었다. 생각보다 보수가 두둑했다. 아무런 연고도, 경력도 없는 성인식 이전의 어린아이를 고용한다기엔 정말로 후한 편이다.


메니가 세상에 대한 물정을 다 아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느낄 정도였으니 특이한 일이리라.


“언니한테 첫눈에 반한 건 아닐까.”


메니는 부리나케 지나갔던 사건을 두고 집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족이 어떤 일이 있어도 늘 모여 먹는 저녁식사 자리였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비극적이게도, 그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 빠진 것이 몇 주 전이었지만 말이다.


메니는 그런 일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듯 행동하는 편이었고, 엘리는 메니의 표정을 보며 그에 집중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거대한 어둠이 자신을 삼키지 못하도록. 그저 눈앞에서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갑자기 가장이 되어버린 언니의 얼굴과 이야기에 집중을 할 뿐이었다.


그것이 나름대로 엘리가 슬픔을 이겨내는 방식일 것이었다.


“우으음.”


가장 어린 막내 동생은 머리에 복잡한 생각을 담고 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얼마 남지 않은 집안의 식량을 즐겁다는 듯이 거덜 내고 있을 뿐이었다.

곳간이 비어가는 것과는 상관 없이, 그 자체로 기쁜 일이었다. 사랑하는 어린 동생이 건강하게 잘 먹고 자라나는 하루에 하루를 더해가는 일이 말이다.

메니가 지금 이 순간을 견디게 해주는 이유일지도 몰랐다.


그런 메니의 마음 상태와 분위기는 다른 두 동생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은연중에 흐르는 그 따뜻한 분위기가 그래도 빈 구석이 너무도 큰 가정을 안온하게 감싸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무슨 소리야 엘리.”


메니는 귀리와 이것저것을 섞어 만든 스튜를 떠먹다가 말을 했다. 약간의 돼지고기와 다양한 뿌리 채소 따위, 버터를 첨가하고 소금으로만 조금 간을 했다. 나름대로 풍족한 식사였다. 이대로만 앞으로 주욱 할 수 있다면.

엘리는 머리가 좋은 편인 아이였다. 가끔은 그녀가 떠올리지도 못하는 가능성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곤 했었다. 그게 사실일 가능성은 일단 차치해두고서라도. 메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있을까. 아무튼 감사한 일이지. 당장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는데. 일할 곳을 찾은 것만 해도 다행이야. 당장 사정을 봐주셔서 첫 달은 일급으로 준다고도 하셨어. 따뜻한 분이던걸.”

“그래. 아무튼 신기한 일이네, 언니.”


이유 없는 행운은 없다. 세상은 때로 지나치게 싸늘한 편이었다. 그들의 유일한 가장을 갑자기 앗아간 겨울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리지만 명민한 엘리는 신기하다고 느꼈다. 별다른 이유가 없이 초면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리가 있을까.

소녀는 티를 내지 않고 잠시간 자신의 언니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반할 만한 구석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확실한 이유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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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부 6. 배Ship船 23.12.02 8 0 22쪽
14 2부 5. 일상日常 23.12.01 6 0 14쪽
13 2부 4. 비련 23.11.28 8 0 14쪽
12 2부 3. 점심 23.11.26 10 1 10쪽
11 2부 2. 아들렌 가는 이랬었다, 는 말 23.11.26 9 1 18쪽
10 2부 1. 제이슨의 걸음 23.11.26 9 1 13쪽
9 그래서 +2 23.02.04 33 3 7쪽
8 메니는 결정을 했다. 23.02.04 32 3 10쪽
7 confession 23.02.04 32 3 11쪽
6 찻물 23.02.04 33 3 10쪽
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3.02.04 30 3 9쪽
4 일을 하다가 23.02.04 35 3 18쪽
» 저택 청소 23.02.04 35 3 11쪽
2 일의 결과 23.02.04 35 3 12쪽
1 시작 23.02.04 69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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