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656
추천수 :
219
글자수 :
908,591

작성
22.09.27 18:44
조회
898
추천
15
글자
19쪽

3.

DUMMY

2.


민서는 눈을 뜨고 나서 당황했다. 어떤 장면이 펼쳐져도 쉽게 놀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지만, 실제 공간이 주는 이질적인 분위기는 생각과는 늘 다른 법이다.


도약 지점과 도착 지점에는 모두 ‘점프’ 특유의 미세한 소리나 떨림이 느껴진다. 능력자들끼리는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고. 민서 역시 같이 이동하면서 더욱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약간의 멀미 따위가 오는 듯도 하면서, 그는 어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상황을 받아들였다.


검은 창고, 같은 곳이었다. 아주 흐릿한 윤곽만이 보이는 컴컴한 곳. 곧이어 청년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불 좀 켜줘.”


달칵. 익숙한 스위치 소리가 들리며 앞이 밝아졌다. 민서는 잠깐 눈을 찡그리며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의 옆에는 계속해서 보던 청년. 그 청년의 한쪽 손에는 기절한 사내. 그들이 있는 곳은 네모난 방이었다. 하얀 톤으로 칠해진 방 안. 그저 덩그러니 사각형의 공간 안에, 아까까지 빌딩 옥상에 있던 그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문 앞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앳된 청년이었다. 20대 초반 정도나 되었을까 싶은 외모에 장난기마저 비치는 눈빛을 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가 불을 켠 모양이었다.


“스미스Smith. 빌어먹을 놈 하나를 잡아 왔는데. 구속 조치 좀 해주라. 잠깐 기절시켜놨고, 언제 깨어날지 몰라. 추정 횟수는 100-120회 정도. 대강 10-20번 남은 것 같은데. 팀으로 움직이는 놈들이니까 끝까지 털어봐야 돼.”

“알겠어. 그래 보이네. 하나는 빌어먹을 놈이고, 하나는 뭐야?”


스미스, 라고 불린 한국인 청년이 물었다. 영화에서나 보듯한 코드 네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한국인이었다. 민서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낯선 곳에서 알 도리 없는 이들과 만났을 때 쭈뼛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


할 말을 찾고 있을 때 청년이 답했다.


“저번에 말한 연속 뺑소니 피해자. 이번에 동시 도약을 했는데 한번 더 부딪혔어. 좌표 상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더군.”

“그런··· 일이 여태 있었나? 순간이동 능력에 대해 더 알 수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자연적인 조건 때문에 도약이 유도될 수 있다니.”

“몰라. 낸들. 아무튼 이 놈 받아가고, 나는 민간인에게 설명을 좀 해줘야지.”


스미스라고 불린 청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방 안의 구조는 단순했고, 하얀 철제문 옆에는 전등 스위치와 인터폰이 있었다. 그는 흔한 가정용의 인터폰처럼 생긴 것의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꾹 눌렀다.


“소드마스터 복귀. 미친놈 하나 구속 조치. 10-20회. 민간인 하나 유입됐고, 소마가 직접 설명하고 보낸다고.”


여러 조사助詞가 생략된 문장을 보고 읊듯이 빠르게 말한다. 그리고 스미스가 다가와 기절한 사내를 넘겨받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축 늘어진 상태의 그를 청년이 그대로 일으켰다. 그대로 스미스가 뒤로 묶인 사내의 겨드랑이 사이로 어깨에 끼우듯이 자신의 팔을 넣어 지탱했다. 그들은 그를 험하게 다루는 듯하지만, 동시에 주의 사항을 지키듯이 한순간도 기절한 사내의 몸에서 손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굴었다.


‘읏차.’ 숨을 뱉으며 건장한 사내를 넘겨받은 스미스가 청년, 소마에게 물었다.


“너 들어왔으니 오늘 당번은 끝인가? 전 인원 기지 내 있지?”

“···그걸 나한테 묻냐. 아마 그럴건데.”


청년, 소마가 흘기듯이 보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스미스는 히죽 웃으며 방문을 열고 나섰다. 건장한 사내를 지탱하고 있는 것 치고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민서의 눈에도 상당한 체력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옥상에서 보았던 싸움을 생각하면 저에게도 인상과 달리 함부로 굴어선 안 될지 몰랐다.


“애들한테 맡겨놓고 난 쉰다. 고생하고.”


돌아보며 슬쩍 말을 남기고 스미스가 걸어갔다. 크게 절뚝이지도 않고 장정을 잘도 끌고 간다. 멀리서 사람들의 걸음 소리나, 스미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기지’라고 부른 이 곳에는 여러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민서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주도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무정물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청년이 과장스럽게 손을 툭툭 마주쳐 털며 말했다.


“이 쪽으로 오시죠. 얘기하기 편한 데 앉읍시다.”

“ㅇ, 예.”


그렇게 웃으면서 말하고는 성큼성큼 걷는 청년의 뒤를 따랐다. 청년은 시종일관 젠틀 했지만, 칼부림을 견뎌낸 장면이나 생소한 공간에 데려왔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본능적인 위기의식일지도 몰랐다. 민서는 얌전히 굴었다.


방에서 나서자 지하 공간 같은 느낌이 났다. 지상 건물의 실내라면 조금 더 공기가 대류하며 바람이 느껴질 테였다. 아주 약간이라도. 숨이 막히는 건 아니었지만 이토록 정적이고 바람이 없는 폐쇄적인 분위기라면 어떤 건물의 지하일 확률이 높았다.


굳이 따지자면, 민서로서는 어딘가의 영화나 게임에서 본 지하 연구소의 복도 따위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방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흰색 외에 포인트가 없는 실내였다. 병원이나 연구소처럼 보였고, 길다란 복도의 폐쇄감으로 보아서는 실내 벽도 굉장히 튼튼하고, 외부와 차단된 듯한 모습이었다.


청년은 뚜벅이며 거침없이 걸었다. 아주 익숙한 장소를 활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민서 역시 그 뒤를 빠르게 따랐고, 스미스가 사라진 방향과 반대로 복도를 걸어 주욱 이동하자 방이 하나 나왔다.


그들이 처음 도착했던 곳과는 달리, 외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실내가 훤히 보이는 공간이었다. 별다른 잠금도 없는지, 청년이 여닫이 문을 밀고 들어간다.


유리 벽의 방안은 마찬가지로 많은 가구가 없었다. 단출하고 깔끔한 사각형의 공간이었고, 높은 테이블 하나와 비슷한 높이의 의자 몇 개. 재떨이와 페트병 음료나 과자 따위가 가지런히 있었다. 구석에는 작은 쓰레기통이 하나.


청년은 바Bar에서나 쓰일 법한 높이의 의자에 가볍게 걸터 앉으며 민서에게 손짓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맞은 편에 앉았다.


그는 앉으면서 몹시 지친 표정으로, 몸을 웅크리며 힘을 풀었다. 계속해서 보고 있었고 크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어쨌든 청년은 여기저기 옷이 베이고 찢어져 있었고, 흙먼지 따위에 더럽혀지고 머리도 헝클어진 상태였다. 민서가 본 것만 해도 격렬한 싸움이었으니, 그 전까지의 상황을 짐작해보면 거친 하루를 보냈을 지 몰랐다.


민서가 의례 상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까?”


청년, 스미스가 소마라고 불렀던 이가 헛웃음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답했다.


“괜찮지 않아 보입니까. 하긴 지독한 하루였습니다.”


허허. 민서는 마주 웃기도 뭐했다. 고생한 인간의 앞에서 쉽게 웃기도 미안한 일이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청년이 입을 열었다.


“일단··· 앞서 이름부터 말해야죠. 저는 ‘홍인수’라고 합니다.”

“아, 예.”


청년은 높은 테이블에 놓인 탄산 음료 하나를 까면서 눈짓했다. 민서가 답했다.


“어, 저는 ‘김민서’라고 합니다.”


세 번의 만남 끝에 첫 통성명이었다. 청년, 홍인수가 말하곤 음료를 한 입 삼켰다.


“반갑습니다, 민서 씨. 크. 목마르시면 편하게 드세요.”


코카콜라나, 삼다수나, 초록 매실이 있었다. 민서는 매실 음료를 집어 들며 상대를 바라봤다. 현재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모든 정보는 저 쪽이 쥐고 있었으니.


그러고 보면 문득, 생각 나기를 자신은 밥을 먹다가 이 곳까지 끌려 왔었다. 마지막으로 우물거린 떡갈비 탓인지, 긴장 탓인지 마침 목이 마르기도 했다.


매실음료를 우물대며 삼킬 때 홍인수가 말한다.


“···이런 경우가 많지 않아서, 설명이 좀 어려워도 양해 바랍니다. 저번에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었죠?”

“이야기라면···.”


홍인수가 혼자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 같은 사람이 ‘조직’으로 있다는 것만 얘기한 거 같네요. 뭐 우선···.”


홍인수는 잘 생긴 청년이었다. 눈빛이 날카롭고, 잘 보인다. 눈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연극 배우처럼 표정이 크고 분명하다. 이야기의 호흡을 신경 쓰는 걸 보면 그런 부류의 일을 해봤는 지도 모른다.


“저는 순간이동 능력자입니다. 아까 봤죠?”



3.



봤죠, 라는 말에 민서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봤는데, 어쩌겠는가.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지겹도록 목격을 했는데. 그것이 가능한가의 논의는 제쳐두고, 벌어진 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가 주요한 고민거리였다.


“보통 우리는 순간이동 능력자를, ‘점퍼Jumper'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영어를 할 줄 안다면, 직관적인 이름이죠?”


’심지어 같은 이름의 영화나 소설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홍인수는 탄산음료를 마셨다. 크, 술을 마시듯이 넘기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점퍼라는 건 도약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봤듯이, 그건 공간 도약이고요. 우리는 손가락을 한 번 튕길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딱. 그는 익숙하게 엄지와 중지를 마찰시키며 튕겼다. 소리와 함께 집중하고 있던 민서의 시야에서 홍인수가 사라졌다. 웅, 하는 그 특유의 전조 현상, 흔적은 여전했다. 그런 효과마저 없었다면 패닉에 빠질만큼 놀라운 현상이었다. 코 앞에서 세계적인 마술사의 마술 쇼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안타까운 점은, 민서는 마술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한 적도 없고, 이 양반들도 마술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그가 직접 공간 도약을 경험하기도 했고.


“보통 이렇게 상대의 뒤를 잡는 식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홍인수의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그세, 많이 겪어 본 일이었다. 확실히 민서와 같이 이동을 할 때 그는 이렇게 뒤에서 말을 한다.


사라질 때와 달리 천천히 걸어서 홍인수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인다.


“하루에 보통 1명의 점퍼가 사용할 수 있는 도약의 한계는 수십에서 1~2백 정도입니다. 간혹 특출난 인물들은 월등한 횟수를 자랑하지만, 그건 규격 외의 이야기고···.”


“···당신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뭐 우리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선천적으로 세계에서 ’점퍼‘들이 드물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최초의 점퍼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록상에서 우리가 파악하는 건 근대화 무렵이죠. 격변하는 세계사 속에서 어떤 흐름이 변화를 만들어낸 건진 모르지만. 혹은 그냥 우리가 알지 못할 뿐, 고대부터 있어 왔는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점퍼는 자신의 능력을 사춘기 이후에 깨닫습니다. 자아가 성장하고, 머리가 크고, 정신력이 고조될 때에 우연히 능력을 발현시키면서 자신의 특이성을 알게 되죠. 우리는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 있고··· 능력을 이용해 다양한 일을 합니다. 일반적인 현대 기술이나, 일반적인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특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사용하고 있죠.”


“특이한 일이라면···.”


민서가 말을 잘라먹고 물었다. 이들이 하는 일이 곧 이들의 정체성이었다. 그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도 못 쓸 범죄 조직일 가능성도 있었다.


“공간의 한계가 없다면 다양한 일이 가능합니다. 점프Jump는 정확한 3차원 데이터만 있다면 1cm의 오차도 없이 이동이 가능하고요. 조난 사건의 구조, 대테러 부대의 요청에 따른 인질 구출, 험지에서의 건설 현장에서 도움을 줄 때도 있고.”

“···그러면 당신들 같은 사람이 활동 하는 걸 이 사회의 많은 이들이 아는 겁니까?”


홍인수가 웃으며 말했다.


“저번에 말씀 드렸죠. 우리는 당신이 이해 못할 뿐, 그저 비밀스러운 전문직 종사자들이라고. 사회의 일각에서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는 많은 이들과 협업을 합니다. 우리 조직은 오래되었고, 많은 이들의 지지와 이해, 협력 속에서 일구어졌죠. 이해하기 어렵다면 재벌가에서 일하는 비밀 경호 요원 따위로 생각해도 간단합니다. 저희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지만요.”


’조직‘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그러고도 의문은 남는다. 민서는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그러면 아까 그··· 칼 든 미친놈은 뭡니까.”


홍인수는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눈빛에 피로감이 감돌았다.


“점퍼는 자연발생적입니다. 우리가 정보망을 갖고, 발견하는 즉시 회유하지만 모든 이들이 저희의 통제에 따르지는 않습니다. 어디에나 미친놈이 있듯이, 점퍼 중에도 미친놈이 있을 뿐이죠. 그놈들은 자기가 가진 특별한 능력이 신이 허락한 권력이라고 착각을 해요. 반사회적 싸이코 놈들.”

“···싸이코 같긴 하더군요.”


민서는 칼 든 미친놈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인상이 날카로웠고, 날이 선 나이프를 든 채 호방하게 웃고 있었다. 전근대 사회의 전쟁터라면 장군의 얼굴이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살인 미수범의 모습이었다.

“우리도 뭐··· 재판장에 가서 합법적인 일만 해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규율이 있죠. 서로 간의 신뢰도 있고. 조직 외의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있습니다. 어쨌든··· ’점퍼‘는 헐리우드 영화 속에 나오는 특별한 초인들은 아닙니다. 단지, 이상한 능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일 뿐이에요.”

“고민이라···.”


민서는 긴 얘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억거리며 주워 마신 매실 음료도 500ml에 반은 먹은 듯 했다.


홍인수는 툭툭, 손끝으로 습관인 듯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문득 아래를 향했던 민서의 시선이 그를 바랐다. 그가 말했다.


“어쨌든··· 저희로서는 감추어야 하는 모습을 지나치게 당신에게 많이 보인 건 사실입니다. 사고였지만, 조직으로서 사과하는 바입니다. 당신의 삶을 무너뜨려서 미안합니다.”


그 말에 민서는 잠시 뜸을 들이며 곱씹었다. 이렇게 멀쩡한 사과를 받을 줄은 몰랐던 탓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뭐. 괜찮습니다. 들어보니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민서의 말에 홍인수가 시원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민서가 이어서 물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결론은 뭡니까? 저번처럼 제가 다 잊으면 되는 겁니까?”


홍인수가 고개를 저었다. 자못 심각한 표정이었다. 표정의 변화가 다양한 청년이었다.


“당신의 방에 뭐가 작용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 까지도 일시적이라고 봤는데, 이번에 그런 걸 보면··· 도약에 대한 유도 효과가 당신 방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번 사고 이후에 신경을 줄곧 써왔는데··· 이번에 동시에 점프하면서 또 그리로 간 걸 보면 부주의한 점퍼들이 또 들이닥칠 지 모릅니다.”

“그 말은···.”


홍인수가 말했다.


“일단 이 사회의 점퍼에 대한 인지를 하고, 간단한 대응법을 익히십시오. 그리고 권유하건데, 저희가 비용을 지불할테니 거처는 비슷한 다른 곳으로 옮기는게 좋을 겁니다. 저희로서도 원하지 않지만 반복되는 현상에 이유가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걸 파악해야 합니다.”


민서는 코 끝을 찡그렸다.


“대응법은 뭡니까. 이사를 해야 한다고요?”


사실 이사 정도는 그로서도 생각했던 일이다. 대응법에 관한 일은 짐작이 잘 가지 않았고. 조직 내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나저나 비용을 지불한다니··· 계약이 남아 있는데, 집 주인 아저씨에게는 뭐라고 말한담···’까지 생각했을 때 홍인수가 마저 말했다.


“전에 살던 원룸보다는 좋은 곳으로 맞춰드리죠. 월세의 추가분은 계약 기간만큼 전액을 지불할 거고요. 뭐··· 엉뚱하게 말려든 민간인에게 이 정도 해줄 정도로는 돈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응법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며 문장을 끝냈다.


“간단한 군사 훈련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예비군 훈련, 가봤습니까?”


민서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군대도 안 갔다온···”


말을 마치기도 전에 홍인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미리 체험한다고 생각하십시오. 다양한 경험은 인생의 자양분이 될 겁니다.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좋을 거고요.”


홍인수가 웃었다.


“기지 내에 편한 방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일정이 없으면 온 김에 한 번 들으시고, 다음 시간을 잡죠. 저희도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민서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아르바이트 시간을 생각하며 답했다.


“···일단 지금은 아르바이트 다녀오고 주말부터 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이른 점심을 먹다가, 갑작스럽게 괴한의 침입을 받아서, 비밀 조직의 지하 기지에 끌려온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떡갈비 도시락을 마저 먹고 점심 즈음부터 시작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계획이었고.


꼴이 말이 아니었고, 손목 시계를 확인하자 아르바이트 시간 직전이었지만 다행히도 눈앞엔 말도 안 되는 능력자가 있었다. 홍인수가 대중교통의 정체 따위는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특급 택시로 보였다.


“······.”


시원스런 미소가 인상적인 미청년, 홍인수는 말없이 민서를 처다 보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탓에 까먹기 쉬웠지만 일상을 지키는 성실함은 위대한 습관이었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면 바로 갈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민서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혹시 두 번 이동해도 됩니까? 지금 누구 때문에 밥 먹다 끌려 나와서 지갑도 뭣도 없고, 심지어 맨 발입니다. 집에 좀 들르고 싶은데.”


“······.”


홍인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주소 알려줘야 합니까?”

“아뇨 당신 집 위치는 이미 좌표 파악해서 필요 없습니다···.”


여유를 가장한 채 여러 정보를 알려주려 했었지만, 실제로 홍인수는 고된 하루에 지쳐 있었다. 그는 피곤하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다가오는 그를 보며 민서는 매실 음료를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툭.


곁에서 어깨에 손을 짚은 홍인수가 눈을 감고 한 순간 집중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웅.


민서는 이제는 익숙해질 지도 모르겠는 감각을 느끼며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웅.


엉망이 되버린 원룸을 바라보며 시야를 되찾았다.


“······.”


순간이동은 순간이동이었고, 난장판이 된 집에서 말없이 민서는 지갑과 핸드폰을 찾았다. 특히 박살이 난 신발장에 가 신발을 신을 때는 살짝 짜증이 났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신발을 신고 그는 홍인수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그 눈짓에 저벅거리며 다가와 다시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러고 보면, 시종일관 홍인수는 민서의 원룸 바닥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다. “······.”


뭐라고 말하기엔 꼴이 말이 아닌 사람이라, 일단은 넘어갔다. 다시 만난다면 청소비를 요구하리라 생각하기는 했고,


턱.


홍인수가 그의 어깨에 손을 짚음과 동시에 시야가 암전 되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3. +4 22.09.27 898 15 19쪽
3 2. 22.09.27 1,096 14 13쪽
2 1. 봄 +2 22.09.27 1,653 19 15쪽
1 prologue +6 22.09.27 1,951 22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