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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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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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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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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2.

DUMMY



*


“······.”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민서의 원룸이었다. 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주중에 다니고, 주말에는 쉰다.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다. 밥은 도시락이나, 간단한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떼운다.


봄 날의 날씨는 포근했다. 원룸의 바닥에 작은 상을 펴놓고 점심을 먹던 중이었고. 이른 점심을 먹곤 곧바로 알바를 하러 나갈 셈이었다.


그리고 그는 편의점 도시락의 떡갈비를 입에 넣으려 든 자세 그대로 멈췄다.


왜냐면,


웅.


하면서 공기가 떨리는 듯한 특유의 진동이 느껴지며 그의 원룸에 이상한 인형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큭, 뭐야. 여기는. 이런 빌어먹을. 사람이잖아.”


이번에는 한 사람도 아니었다. 한 명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저번에 본 멀끔한 청년. 이번에도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다만 자켓이 벗겨지고 넥타이도 없었다. 여기저기 천이 찢어져 있었고, 손에는 경찰들이 들고 다니는 제압용 봉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봉으로, 나이프를 든 상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억.”


사내, 그러니까 민서에게 익숙한 청년이 헛바람 들이키는 소리를 냈다. 그로서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얼빵한 표정이었다.


두 사내의 등장은 원룸을 어지럽혔다. 나타나자마자 자세를 잡으며 힘 싸움을 하는 터라, 구둣발 따위에 방이 조금 어질러졌다. 민서는 들고 있는 떡갈비를 차마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을 움직인 건 반대편의, 칼을 들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경광봉에 막힌 나이프에 힘을 빼면서 정장을 입은 청년의 소매를 잡았다. 그대로 허리를 뒤틀어 끌어당기며 뒤로 날리는 동작이었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 민서를 보고 신경이 흐트러진 청년은 그대로 끌려갔다. 당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그는 아예 몸을 뛰어넘기며 힘을 받아 뒤로 넘어갔다.


원룸의 구조는 단순했다. 현관을 열고 들어와서, 신발장이 있고. 그대로 꺾어서 들어오면 방이 있다. 현관의 정면에는 화장실 벽이 있어서 좁은 공간이었다. 민서는 원룸의 안쪽 벽에 기대어 있었고, 그들은 현관 쪽 자리에 나타났다가 그대로 청년이 신발장을 향해 던져졌다.


“큭.”


잇새에서 호흡이 터져 나오며 그대로 날아가 박혔다. 우당탕! 호쾌한 소리였다. 액션 영화라도 보는 줄 알았다. 맹세컨대, 자기 집에서 저런 소리를 듣는 경우는 별로 없을 테였다.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닌 이상에야.


그대로 신발장에 처박힌 청년에게 나이프를 든 사내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멍청하게 앉아 있는 민서는 신경 쓰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민서는 멍청하게 떡갈비를 든 손을 내려놓지 못했다.


딱.


소란스러운 와중에 귓가에 그런 소리가 들린 듯했다. 마술사의 제스쳐처럼 선명하게 울리는 손가락 튕기는.


“이런 씹. 아직도 남아 있다고?”


나이프를 든 사내가 씹어 뱉듯 말을 했다. 소리와 동시에 신발장에 처박혀 구겨져 있던 청년이 사라지고, 떡갈비를 든 민서의 곁에 와 있었다. 저번처럼 어깨에 사뿐히 손을 올리고, 다시 손가락을 튕긴다. 딱.


“미안합니다.”


그리고 민서가 인지한 건 명멸하는 시야였다. 원룸의 전등불이 꺼졌다가 켜진 것 마냥. 흐릿한 시야가 눈앞을 잠깐 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땐, 어딘지 익숙한 광경이었다. 기억이 난다. 어디선가 본 도심지의 광경. 한 2주쯤 전에 왔던 빌딩의 옥상이었다. 멍청하게도, 그는 떡갈비를 쥔 채 빌딩 옥상 바닥에 앉아 있었다.


청년이 어깨를 툭 치며 일으켜 세우듯 잡아 힘을 줬다.


민서가 그 힘에 멍청하게 일어서고 그를 바라봤다. 청년이 말했다.


“일단 미안합니다. 저번보다 더 휘말리게 했네. 나도 상황이 통제가 안되니까, 일단 알아서 다치지 않게 숨어 있으세요.”


웅.


하고 곧이어 특유의 진동이 느껴졌다. 특이한 느낌과 소리였다. 거리의 멀고 가까움과 상관없이, 기묘한 전조는 공간이 일렁거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나이프를 든 사내였다. 스포츠 용의 점퍼에, 검은 작업용 바지. 공사장에서 신어도 안전할 법한 등산화. 짧게 머리를 친 남자였고, 눈빛이 날카롭고 인상이 험악하다. 나이는 정장을 입은 청년과 마찬가지로 2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수염은 없고, 얼굴형도 날카로워 보였다.


정장을 입은 사내는 재킷은 반쯤 벗겨진 것을 아예 벗어서 손에 들었다. 여기저기, 드잡이질이나 나이프에 베인 듯이 찢기고 베인 자국이 보였다. 몸에서 피가 나지는 않는다. 칼 든 괴한과 다투면서, 솜씨 좋게 몸이 베이는 건 피한 모양이었다.


칼을 든 사내, 는 눈을 부라리면서 외쳤다. 민서는 본능적으로 떡갈비를 입에 넣고 빌딩 옥상의 구석으로 움직인 뒤였다. 옥상은 물탱크나 공기 순환기, 실외기 따위의 설비나 옥상으로 올라오는 문이 붙은 작은 건물이 있다.


민서는 옥상의 출입구 쪽으로 슬슬 움직여 청년이 바라보는 시야의 반대편, 칼 든 사내의 시야 사각에 있었다. 멀찍이서 그들의 대치를 바라보고 있었고, 칼 든 사내가 민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칼 든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칼을 앞으로 들고 디딤발을 밟는 등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였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력이 남아 있었나. 아무리 그래도 종일 추격전을 벌인 너랑 내 횟수는 다르겠지. 잘난 조직원께서 떠돌이에게 팔이라도 잃으면 고개나 들고 다니시겠어.”


청년이 말했다. 그는 재킷을 한 손으로 늘어뜨린 채, 들고 있었다. 여차하면 두꺼운 천으로 단검을 막고 목이라도 조를 셈인 듯 싶었다.


청년이 답했다.


“떠돌이라고 하기엔 조직적이던데. 적어도 네 팀과 그 머리의 신상 정도는 밝혀내야겠어.”

“너무 그러지 말라고. 이게 다 당신들이 지나치게 억압을 하니까···”


칼 든 사내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그 순간에 민서의 눈에는, 여전히 말도 안 되지만 사내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게 보였다. 마술사가 잘 준비해서 보이는 장면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이건 영상도 아니고 준비된 장치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사라진 사내의 칼날은 청년의 뒤에 나타난다. 그는 한 발자국 뒤에 나타나서 그대로 정신을 잃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민서가 순간이동을 당했을 때는, 현기증으로 잠시 움직이지 못했는데 저들은 익숙한 모양이었다.


순간이동은 움직임에 대한 전조가 없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곧바로 다가오는 움직임은 일반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전투에 익숙한지, 청년은 곧바로 그 전조를 읽고 앞으로 뛰쳐 나갔다.


순간이동의 횟수에 제한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이 순간이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청년은 앞으로 달리며 칼날을 피했다. 운동선수와 같은 반사신경이었다. 그것을 쫓는 사내도 만만치 않았다. 순간이동이라는 점을 빼면, 본격적인 전투였다. 민서는 만화에서나 보던 ‘킬러’를 떠올렸다. 초인적인 전투 능력과 기술을 가진 상상 속의 괴물들. 혹은 고도로 단련된 특수부대 요원과 비슷할지도 몰랐다.


근접전에서 그들의 박투는 정상적인 것이었다. 살면서 그다지 볼 일 없는, 빠르고 정교한 움직임들이었지만.


먼저 뒷목을 향해 휘둘러진 나이프가 허공을 갈랐다. 순식간에 몇 걸음 뛰쳐나간 청년은 그대로 뒤로 돌며 재킷을 겹쳐서 내세웠다. 한쪽 손에는 접이식 경찰봉이 여전히 들려 있었다. 마주본 상태에서 다시 나이프를 든 사내가 달려 들었다.


타닥, 하고 가볍게 탄탄한 거구가 날았다. 사내는 상대가 내세운 재킷을 왼손으로 잡아 치우며 그 틈으로 나이프를 찌르려 했다. 양손으로 재킷을 팽팽하게 펼치고 있던 청년은 그대로 재킷을 밀어 올렸다. 그 위로 팔을 뻗으려던 사내의 팔이 위로 밀려 올라갔다. 움직임은 청년이 좀 더 빠른 듯했다.


청년은 그대로 재킷을 휘감아 상대의 팔과 목을 함께 묶었다. 몸으로 들며 들어간 거라 나이프를 함부로 움직여 그 등을 찌르지도 못했다. 상대의 팔을 껴안듯이 다가가 재킷으로 묶고는 그대로 고개를 빼서 뒤로 돌아간다. 청년은 무릎으로 뒤에서 상대의 오금을 치고는 경찰봉의 손잡이를 쥐고 그대로 상대의 후두부를 쳤다.


퍽!


섬뜩한 소리가 들린다. 사내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가 뒤로 돌아가자마자 몸을 돌리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청년이 조금 더 빨랐다. 머리를 얻어맞자 움직임이 흐트러졌다. 격투기라고 해도 한순간이면 승부가 결정 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 이 빌딩엔 심판도, 링도 없었으며 규칙도 없었다.


머리가 어질거리는 듯 주춤하는 사이에 청년이 그대로 상대의 발을 걸어 밀어 넘어뜨렸다. 힘이 빠진 사내는 곧바로 저항하지 못하고 바닥에 얼굴을 대고 깔렸다. 팔을 뒤로 꺾어 부러뜨렸고, 나이프를 놓치게 했다.


청년은 깔린 상대의 목과 바닥의 틈새로 경찰봉을 집어넣고, 양 무릎으로 상대의 어깨를 짓눌렀다. 팔로는 양손으로 경찰봉의 끝을 잡고 순식간에 목을 졸라 부러뜨리거나, 기절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이 물었다.


“알다시피 순순히 끌려가면 죽이진 않아. 우리도 시체를 처리하는 취미는 없어서. 이제 좀 불 생각이 있나?”


사내는 목이 막힌 상태에서 가래가 끓듯 대답했다.


“개···새끼.”


청년으로서는 만족할만한 대답이었다. 그는 그대로 봉을 짧게 쥐더니, 손가락을 목 아래에 집어넣어 그대로 팔을 넣고 끌어안듯 내려가 초크 자세를 취했다. 팔뚝에 잠깐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의 몸이 축 늘어졌다.


“······.”


청년은, 그대로 잠시 말없이 위에 올라타 있었다. 민서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역시 가만히 있었고. 숨 가쁜 움직임 뒤에 호흡을 고르는 듯도 보였다.


민서는 마른 침을 삼켰다. 벌리고 있던 입에 먼지나 바람 따위가 들어와 텁텁했다. 문득 아직도 들고 있던 떡갈비가 생각났다. 불편하고, 버리기도 아까워서 나무 젓가락에 꽂아둔 것을 입에 넣어 되는대로 씹었다. 우물거리고 있는데 문득 발의 감각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방 안에서 이 사태를 겪은 참이라, 맨발이었다.


기절시킨 사내를 끌어안고 있던 청년은, 지친듯이 서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온몸이 쑤시는 기분이었다. 한숨을 내쉬듯이 긴장감을 풀어내며, 상대를 묶었던 재킷을 깔린 틈에서 빼냈다.


그는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 들었다. 민서로서는 청년의 내력이 잘 짐작되지 않았지만, 그는 익숙한 듯 기절한 사내의 손목에 채워 놓고는 조였다. 찰칵, 드르륵.


그는 그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민서를 바라보며 말한다.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군요. 일단 설명할 기회를 주겠습니까?”

“예···.”


민서는 황망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나, 대화의 용의는 있었다. 벌써 3번째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다음에도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을 테니.


“영차.”


청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내의 뒷덜미를 잡고 일으켰다. 보기보다 힘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말라 보이는 몸이었지만 특수하게 단련이라도 한 건지. 애초에 민서로서는 눈앞에서 상당한 수준의 격투를 보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대로 뒷덜미를 잡고 거추장스러운 짐 덩이를 끌듯이 대충 끌어 민서에게로 다가왔다. 민서도 일단 그에게 다가갔고.


“뭐··· ‘횟수’가 얼마 남지 않아서 일단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야겠습니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가볍게 왼손을 내미는 청년에게 민서는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에 몇 번 경험한 것처럼, 화면이 꺼지듯이 시야가 암전되고 어질거리는 느낌이 느껴졌다.


웅.


순간이동은 몇 가지 미약한 흔적을 남긴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소리나 떨림, 혹은 능력자들이 느끼는 미묘한 잔향과 특유의 느낌이 그것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발동 시의 감각. 능력자들은 시야의 사각死角에서 누군가 ‘도약’을 하면 보통 알아채고는 한다.


어딘지도 모를 서울 한 빌딩의 옥상에서 그렇게 세 남자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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