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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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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33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0.05.04 21:00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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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의혹의 숲 (7) 프리아

DUMMY

“흐야아앗!” 또다시 뒤뜰에서 기합 소리가 들렸다. 테오는 읽던 책을 엎어두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프리아는 체스판 위에 놓인 체스 말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눈치를 보며 테오에게 물었다. “집중이 안 되나 봐?” 서재에서 멀쩡히 책을 보던 테오를 괜히 끌고 와 민폐를 끼친 느낌이 들었다.


테오의 하늘빛 눈동자가 프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뇨, 괜찮아요. 아가씨.” 그는 엎어둔 책을 다시 펼쳤다. “너무 오래 읽어서 잠시 피곤했나 봐요. 아가씨 때문이 아녜요.”


“아···, 그래.” 프리아가 말했다. 테오의 말은 항상 맘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오늘은 뭘 읽고 있어? 그··· 괴물에 관한 거··· 라고 했었지?”


테오는 다시 프리아를 바라보았다. “예, 아가씨. 지난번에 덜 읽은 걸 마저 읽고 있어요.” 그의 시선은 다시 허름한 종이 뭉치로 향했다. “혹시 루테네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가씨?” 테오가 말했다.


“물론, 들어봤지. 저기 코앞에 보이는 바다 너머의 땅. 맞지?” 프리아가 말했다.


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아가씨. 먼 옛날 존재했던 루테네르 제국의 옛 수도 루테네르. 그 이름을 따 그들이 살았던 그 땅을 루테네르라 부르죠. 그들 스스로는 데네르라 일컫지만요.”


“응···. 그리고?”


“루테네르 제국의 두 번째 수도였던 스타르니올드도 물론 들어보셨겠죠. 스타르니올드의 동쪽에는 모르니아드라는 이름의 대평원이 있고, 대평원은 황금산맥 앞에서 끝이 납니다. 모르니아드 대평원 역시 들어보셨을 겁니다.” 테오가 말했다.


프리아가 말했다. “물론이지! 안판모르의 늙은 여우가 있는 곳이잖아! 이름이 뭐더라···.”


“툴게윈, 툴게윈 안판모르 대공. 벌써 오십 년 넘게 모르니아드를 다스리는 자이지요. 모르니아드의 막대한 황금을 이용하여 루테네르와 프레이에서 여러 군주를 섬겼고요.” 테오가 말했다. 그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황금산맥 동쪽 너머의 땅은 네르탈리스라 불려요. 이는 옛 언어로 ‘최후의 땅’이라는 뜻이고요. 네르탈리스에는 가문비나무가 빽빽이 박힌 숲이 있어요. 언젠가부터 그 숲에는 괴물이 살기 시작했죠.”


“괴물···?” 프리아가 말했다.


“네, 괴물. 그 숲의 괴물은 수많은 다리와 수많은 눈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어요.” 테오가 말했다. 그는 살짝 미소를 띠었다. 테오는 그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소년이었다. 프리아가 테오의 미소를 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래? 꼭 보고 싶다는 게 괴물이라니···.” 프리아가 중얼거렸다.


사 년 전 어느 날 테오는 마이아르 저택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가문 대대로 저택을 섬긴 다른 이들이나, 아버지가 마이아르 성마을에서 데려온 하란과 달랐다. 테오는 아무도 쓰지 않던 서재에 자리를 잡았고, 다른 사용인들과 다르게 책에 열중했다. 언젠가 프리아가 처음 테오와 이야기했을 때, 그는 마치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흐하아앗!” 창문 밖으로 또다시 기합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프리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못 참아! 저 녀석들한테 한마디 해야겠어!” 그녀는 창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프리아는 창틀에 몸을 기댄 채 소리쳤다. “너희들 대체 뭐 하느라 이리 시끄러운 거야!”


저택 뒤뜰에는 언젠가 프리아가 과녁으로 쓰던 허수아비 여럿이 있었다. 밀짚 허수아비에는 가느다란 나무창이 여럿 꽂혀 있었다. 반대편에는 어린 하란이 바닥에 놓인 무수한 나무창 중 하나를 집으려 하고 있었다. 어린 시종 뒤에는 사생아 에리크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과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필론트와 로나트가 나란히 있었다.


사생아 에리크가 말했다. “뭐야, 아가씨. 오늘도 테오 방에 계십니까?”


“말 돌리지 마, 에리크. 내가 뭐 하고 있냐고 물었잖아.” 프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필론트 아우스타르가 대신 대답했다. “창고에 묵힌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아가씨.” 그의 말투에는 공손함이 담겨있었다.


“그러니까 밀짚 허수아비에 나무창을 던지는 게, 정리라는 소리지?” 프리아가 물었다.


사생아가 말했다. “뭘 그리 따지십니까, 아가씨.” 그는 바닥에 흩뿌려진 나무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건 그저 정리하는 겸에 하는 여흥일 뿐입니다. 시끄러우셨다면···.” 그는 허수아비를 향해 나무창을 집어 던졌다. “사과드리지요, 아가씨.” 나무창은 정확히 과녁 한가운데에 꽂혔다.


‘오···!’ 프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조금만 조용해 줬으면 해. 부탁할게.”


“심심하면 내려와서 같이해요, 아가씨.” 시종 하란이 말했다.


프리아는 살짝 웃었다. “그래, 기회가 된다면.”


그녀는 다시 테오의 방으로 돌아왔다. 테오는 여전히 책상맡에서 자리 잡은 채 종이 쪼가리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정말 뭐든 신경 쓰지 않는구나.’ 프리아는 그런 테오 앞에 살포시 앉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책을 보는 테오를 바라보았다.


책에 열중하던 테오는 앞을 바라보더니 흠칫거렸다. “놀랬잖아요, 아가씨.” 테오가 말했다. 그는 읽던 종이를 펼쳐둔 채 물었다. “이야기는 다 끝나셨나요, 별로 안 걸리셨네요.”


“응,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프리아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나저나 더 해줄 이야기 없어, 테오? 괴물 이야기 말이야. 듣다 보니 나도 흥미가 생겼거든.” 프리아는 방긋 웃었다.


테오의 하늘빛 눈동자가 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말했다. “그래요, 아가씨께서 그렇다면 하나 더 말씀해드릴게요. 이번엔 옛날이야기를 해볼까요, 아가씨?”


“옛날이야기라, ···나쁘지 않지.” 프리아가 말했다.


테오는 잠시 숨을 들이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루테네르 제국의 이야기는 언젠가 들어보셨을 거예요. 옛 제국의 노예도시에 불과했던 루테네르를 일으킨 것이 카이가르와 멜레고르 그리고 라티오드 세 사람이죠. 최초의 세 집정관 이후 루테네르에는 수많은 영웅이 태어났어요. 프레이에도 알려질 만큼 유명한 루테네르의 영웅, 아이케르 라투스는 옛 군주들을 무너뜨리고 루테네르를 제국으로 만든 자였어요.”


프리아는 대답했다. “응, 들어본 거 같아.” 사실 그녀의 정신은 다른 곳에 빠져있었다. ‘나도 창 던져보고 싶어.’ 그녀는 테오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보다는 창던지기나 화살쏘기가 더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테오는 다시 말을 이어가려다, 프리아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말했다. “아가씨, 밖에 나가고 싶으시면 그리하세요. 절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프리아가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대로 뛰쳐나갔다. 그러다 그녀는 다시 테오에게 돌아갔다. “같이 가자, 테오.” 프리아는 테오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프리아와 테오가 뒤뜰에 도착했을 때, 사생아 에리크가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있었다. 그는 프리아를 보자 화살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니, 아가씨. 여긴 어쩐 일입니까?”


프리아는 사생아에게 다가갔다. “그거 내놔.”


사생아는 순순히 활을 건넸다. “받으시죠, 아가씨.”


프리아는 상자에 기대어져 있는 화살집에서 화살을 하나 꺼냈다. 그녀는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과녁을 향해 있는 힘껏 시위를 당겼다. 호흡을 정돈된 순간 활시위를 놓았고, 화살은 정확히 밀짚 허수아비 한가운데에 꽂혔다. 그녀는 자랑스러워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봤지?” 프리아는 테오를 바라보았다. 테오는 프리아도, 과녁도 아닌 멀리 숲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생아가 작게 손뼉을 쳤다. “멋집니다, 아가씨. 정말 놀랐습니다.” 사생아는 테오 쪽을 바라보았다. “테오, 너도 한번 해볼래?”


테오가 말했다. “나쁘지 않지.” 테오는 프리아에게서 활을 건네받았다.


‘테오는 이런 거 안 좋아할 텐데.’ 프리아는 테오를 바라보았다. 사생아는 테오에게 화살을 하나 내밀었다. 테오는 아무 표정 없이 화살을 받았다. 그는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고, 천천히 그리고 엄숙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잠시 후 테오의 손끝에서 화살이 날아갔다. 프리아는 과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허수아비에는 프리아가 꽂은 화살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테오가 쏜 화살은 저 멀리 수풀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곧 수풀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내는 몸 전체를 덮는 진회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회백색 후드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든 채 천천히 걸어왔다. “하마터면 맞을뻔했잖아. 깜짝 놀랐다고. 정말.” 사내의 목소리는 낮고 투박했지만 분명했다.


사생아 에리크는 재빨리 허리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네놈은 누구냐?” 그는 금방이라도 불청객을 향해 검을 휘두를 작정이었다.


프리아는 테오를 바라보았다. 테오는 어느새 새로이 화살을 뽑아, 팽팽히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사내는 크게 웃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아. 난 그저 하인츠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을 뿐이야.” 그는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아버지께···?” 프리아가 말했다. ‘아버지께 손님이라니, 그것보다 아버지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이라니.’ 그런 이는 별로 없었다.


“내 이름을 먼저 밝혔어야 했는데. 미안, 내 실수였어.” 사내가 말했다. “내 이름은 나이트. 프레이의 수호기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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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의혹의 숲 (5) 글라드 20.05.04 39 1 10쪽
5 의혹의 숲 (4) 하인츠 20.05.04 45 1 14쪽
4 의혹의 숲 (3) 프리아 20.05.04 43 1 12쪽
3 의혹의 숲 (2) 아라기 +1 20.05.04 94 2 21쪽
2 의혹의 숲 (1) 로이 +1 20.05.04 204 2 17쪽
1 제1부 빛바랜 기사 프롤로그 +1 20.05.04 46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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