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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 신의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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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요로운
작품등록일 :
2020.06.07 00:04
최근연재일 :
2021.09.0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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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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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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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추가 이벤트] 승자를 맞춰라! -3

DUMMY

“내놔봐.”


나는 필사적으로 종이를 가리는 멜에게 손을 내뻗었다.


“너 카르넬님 찍은 거 다 아니까, 줘봐.”


“아, 맞다.”


뭐가 아, 맞다야. 나는 멜이 맥빠지게 내미는 종이를 받아들었다.


애초에 여기 있는 이상 선택지는 카르넬, 하나 뿐이다.




[추가 이벤트] 승자를 맞춰라!


세기의 대결! 카르넬 vs 라


우승 예상자를 맞춰주세요! 푸짐한 상품이 기다립니다.


* 행사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 참여가능합니다 *


-주최: 타타 신전




문구 한번 기똥차네.


혀를 차며 아래로 눈을 내리자, 카르넬과 라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아마도 동그라미로 표기하는 방식인 것 같았다.


더 아래쪽에는, 더 가관인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내기에 건 물건은 타타 감정소에서 감정한 감정가로 책정됩니다.’


‘승리자를 맞추면 기본 감정가의 2배와 선물이 제공됩니다.’


‘참여시간은 동봉된 모래시계를 참고해주세요.’


나무야 미안해.


나는 도박을 위해 희생된 종이를 애도했다.


화르륵


뭔가가 불타는 소리가 들렸다.


시스의 머리 위에서 불꽃이 활활 피어올랐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종이가 흐물거리며 타올라서, 재가 눈처럼 흩날렸다.


저런 방식이구나.


나는 쵸 모라가 공중으로 종이를 던지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근데 쵸는 왜 이걸 하고 있어?


내 시선을 느꼈는지 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나도 내일이면 가는 걸 아는데. 아마 이기게 되면 타타님이 배당된 걸 조금이라도 주지 않겠어?”


화악


멜이 던져올린 두루마리가 빛을 발하며 타올랐다. 여기나 저기나 다 도박하느라 난리군.


“타타님, 저는 안됩니까.”


조용히 중얼거렸다. 타타가 WOM에, 그리고 나를 계속 보고 있다면 반응이 올 것이다.


“...”


하지만 어림도 없지.


생각해 보니 나도 연관자다. 무려 승리자를 선언할 수 있는 키맨이라고나 할까.


내가 타타라도 나한테는 투표권을 안 줄 거다.


‘하지만 한 번에 이득을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입을 삐쭉 내밀고 도굴을 띄워 올렸다. 들어올린 손가락에서 아렐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굳어있었다.


아까 꽤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곳을 벗어나면 할 일이 늘어난 셈이다.


‘우선 젠을 먼저 찾고, 아렐의 자매들도 찾아야 하네.’


깜깜한 일정이다.


게다가 지금 하루카의 단서를 얻으면 또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알 수 없다.


“허탕이네.”


라에게 가기 전에 도움이 될 만한 아티팩트라도 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미련을 꾹꾹 눌러담았다.


“이제 갈 거야?”


쵸가 내 앞으로 걸어들어왔다.


“아마도요.”


“그럼 나를 데려가.”


“네?”


이 아저씨가 미쳤나.


공적으로 몰리는 신도가 자신이 모시는 신 앞에 섰을 때. 그 결과는 누구나 쉽게 예측 가능하리라.


“케심님 앞으로 튀어가려고 아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네.”


스슈가 카르넬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빈정거렸다.


“네 멍청함은 내가 익히 알고 있지. 그래도 지금까지 잘 피해 다녀놓고 왜 굳이 위험한 데로 기어들어가려고 해?”


나는 내민 쵸의 손에 초록병을 쥐어 주었다. 쵸는 허리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 초록병을 쑤셔넣었다.


“해명은 해야 할 것 아냐.”


“해명이 아니라 단명이겠지. 라가 그런 말을 귀에 담는 분이시고?”


“그건 아니지만.”


확신도 없이 나선 게 틀림없다.


쵸의 어깨가 축 처져 부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도망 다닐 수는 없잖아. 그리고 라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데 무시하긴 아까워.”


뒈지더라도 말은 해봐야지, 쵸가 시무룩하게 말을 이었다.


“만난 지 얼마 안되서 장례 치르게 생겼네.”


스슈가 투덜대며 가슴팍에서 작은 뭉치를 던졌다. 쵸가 주머니를 낚아채 유심히 안쪽을 살폈다.


“이거라도 가지고 있으면 라의 불빛에 타오르진 않을거다.”


저런 웬수도 친구라고, 스슈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새하얀 파이프를 꺼내들고 있는 쵸를 바라보았다.


니들만 알지 말고 나도 무슨 이야긴지 좀 알자.


“저건 대체 뭡니까.”


“내가 스슈한테 했던 선물.”


스슈, 빌려주는 거 맞지? 카르넬이 스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스슈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이 저걸 부숴먹으면 평생동안 카르넬님을 위해 노동시킬 겁니다.”


무려 교황이 직접 하는 협박이다.


내가 다 무섭다.


타타의 신전에서 사채를 썼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고맙다.”


아니, 저게 뭐냐니까요.


내 간절한 생각은 무시하고 쵸는 바로 몸을 돌렸다.


“안 가?”


시스가 얄밉게 내 쪽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간다, 가.


투덜거리며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누가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은데, 정황상 쵸 모라일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가 등을 받쳐주는 상태에서 한참을 걸어가자 ‘아무것도 안 보여!’라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바보들.


빛을 뿜는 엘프, 쵸가 떠나면 깜깜해진다는 걸 알았어야지.


내 조그만 후광이라도 아쉬울 거다.


나는 속으로 킥킥거리며 쵸에게 몸을 돌렸다.


밝다.


역시 사람은 밝게 살아야 해.


아, 엘프도 마찬가지로 그렇지.


쵸를 보며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대체 그게 뭡니까.”


저번에 스슈님이 금연하신다고 하시더니요.


나는 쵸에게 슬쩍 물었다. 쵸는 파이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입을 열었다.


“신물.”


이건 아티팩트라고도 할 수 있겠어.


쵸는 파이프를 문질렀다. 새하얀 파이프의 표면에 쵸의 가면이 비췄다. 어릿어릿한 가면 사이로 쵸의 시선이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파이프가요?”


“대장장이 신이 만든 거니까.”


이게 무슨 궤변일까. 파이프가 아티팩트라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카르넬님이 가지고 계시던 건데 스슈가 보관하고 있을 줄이야.”


“근데 이걸 왜 주셨을까요?”


“신물이 있어야 신의 공격을 조금이라도 막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네?”


“테쉬님의 신력 정도면... 두 번까지도 가능하겠네.”


“라가 저희를 공격할까요?”


“아니. 우리가 아니라 나를 공격하겠지.”


짙어지는 노란 화살표를 보며 쵸가 씁쓸하게 말했다.


“알면서도 가시는 건가요?”


“오랫동안 모셨으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그분께는 사실을 말해야지.”


묵직한 걸음걸이를 이끌고 쵸가 앞장서서 걸었다. 이토록 맹목적으로 신을 믿는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일단은 쵸의 정체를 숨기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바로 앞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는 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그것도 죽음에 자발적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을 보는 건 더 기분이 더럽다.


“보시면 알텐데.”


그렇긴 하다.


신이 자기 신도를 못 알아볼 리는 없다.


뭘 택하든 머리가 아프다.


“만약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쵸가 뒤돌아서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지도 줬지? 거기로 와.”


내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긴 하셔야지, 쵸가 덤덤하게 말했다.


쇠락의 숲.


쵸의 고향.


그의 부고를 가지고 그곳으로 가는 건 내게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일정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야, 나 아직 안뒈졌어.”


쵸가 껄껄거리며 웃어댔다. 나는 그 모습마저 위태로워보였다.


“정신차려, 이제 다 와 가니까.”


길의 끝이 환하게 밝아왔다. 광휘가 눈을 거칠게 찔러 앞이 보이지 않을 곳으로 걸어들어가자 잔잔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천사의 노랫소리야.”


쵸의 목소리가 내 옆에서 바짝 붙은 채 말했다.


“이제 곧이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짓말이라도 한 것처럼, 빛이 그쳤다.



**



“인간, 예상보다 늦었군.”


이건 라가 맞다.


라의 거만한 말투가 내 귀를 때리자 나는 직감했다.


라는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다.


“이걸 찾고 있다고 들었지.”


라의 목소리가 조금 삐거덕거렸다. 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건 실전이다.


신의 앞에서 말 한번 잘못 하다가는 나는 죽고 말 것이다.


‘여분목숨 챙겨.’


왜인지 들리는 카라윤의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라의 얼굴에서 눈을 떨어뜨렸다.


신물이 신의 공격을 막아준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신물은 카르넬이 둘러준 갑옷과, 라에게서 카르넬이 ‘빌린’ 탐욕의 배꼽.


눈치를 보아하니 아티팩트는 공격을 막아주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내 여분 목숨은 두 개인 셈이다.


게다가 죽지 않는 육체를 지녔으니 다치면 그 상태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몸 반쪽이 타들어간다던가, 팔다리가 없어진다면 그런 상태로 계속 지내야 한다는 소리.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 인간이 맞는데, 왜 이렇게 불쾌한 냄새가 날까?”


라의 입가에서 나직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죄송합니다.”


빠른 사과가 내 목숨을 살릴 거다.


나는 고개를 조아렸다.


“뭐, 이 정도는 참아줄 수 있지.”


더한 것도 맡아봤거든, 라는 천사들 사이에 몸을 누이며 내 뒤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일단 말이야.”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네, 맞습니다.”


“타타가 그러더군. 이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일 거라고.”


타타, 라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지.


나는 조용히 이맛살을 찌푸렸다.


협박을 받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데 어쩌나?”


작은 구체들이 종이를 물고 둥둥 떠올랐다. 빛을 발하는 구체들이 종이를 라의 앞에서 펼쳐들자, 넓직한 뒷면이 내 시야를 가렸다.


화르륵


“어?”


불탄다.


내 단서가, 하루카를 짐작할 수 있을 그 단서가.


눈 앞에서 순식간에 야금야금 타들어갔다.


“안돼!”


내가 손을 내뻗자 구체들이 위쪽으로 남은 종이를 물고 날아갔다.


허무한 재만이 내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얼굴로 튀어들어왔다.


“인간, 나를 보아라.”


미친 신이다. 라는 미쳤다. 라의 신도만 미친 게 아니라 신 그 자체도 당당히 미쳤다.


“날 봐!”


라의 빛이 얼굴을 스쳤다. 파직거리며 가면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라, 지금 이게...”


“이제 보는군.”


라가 진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몸을 일으킨 라의 주변에 수많은 천사들이 흰 옷 사이로 날개를 드러냈다.


닭둘기 새끼들.


나는 천사를 비꼬던 나 때의 용어를 떠올리며 라를 노려보았다.


“네가 찾던 건 이젠 없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흉이 바로 내 앞에 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가진 채.


“하지만, 그걸 본 나는 여기에 있지.”


라가 조금씩 커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미궁의 공동에 비추는 라의 그림자가 불빛에 어지럽게 흔들린다.


“그 내용은 나만이 알고 있다.”


“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인간, 내게 승리를 다오.”


라는 승리에 진심이다.


라를 담은 눈이 점점 부셔온다. 조금씩 더 밝아지는 라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카르넬보다는 내가 훨씬 강하다.”


라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말을 무미건조하게 읊었다.


“나는 너를 황제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신탁을 내리면 간단한 일이지. 신계의 제일신에게 비호받는 황제라니, 듣기만 해도 달콤하지 않으냐.”


카르넬은 소멸되었다가 다시 나타난대도 할 수 없는 일이지, 라가 거만하게 말을 이었다.


“단지, 내 편을 들어주기만 하면 말이다. 저 뒤쪽의 추잡한 배신자도 그냥 파문만 시키고 더 이상 쫓지 않겠다.”


나는 쵸를 돌아보았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쵸가 바들거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라의 말은 파격적이다.


그의 말을 따른다면 쵸는 숨어 지내지 않아도 되고, 나는 황제가 될 수도 있다. 라의 성격으로 보아하건데, 엄청난 부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찝찝하다.


카르넬의 얼굴과 스슈의 퉁명스러움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만약, 카르넬이 진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 꼭 정해야 하는 것입니까?”


나는 흔들거리는 정신을 부여잡고 공손하게 말했다. 라의 목소리에서 기분좋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금 정하면 소원 하나를 더해서 총 세 개의 부탁을 들어주겠다.”


아니라면, 하나에 만족해야 할 거야.


램프의 요정 같은 말을 하면서 라가 후광을 뿜어냈다.


소위 말하는 눈뽕이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잠시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십시오.”


“이게 고민할 거리인지도 모르겠군.”


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돌아섰다. 의자처럼 깎아진 바위 위에 걸터앉은 라가 눈을 감으며 흠, 하는 소리를 내자, 나도 쵸에게 돌아섰다.


“들으셨죠.”


“나도 귀가 있어.”


가래가 끓는 기계음으로 쵸가 답했다.


“쵸님은 라가 이기시길 바라시겠지만.”


“아니야.”


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카르넬님이랑 있는 걸 보고 카르넬님께 걸었다고.”


이런 기특한 도박쟁이를 봤나.


“WOM.”


쵸는 이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도 WOM을 바라보았다.




[쵸 모라님이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내게 방법이 있어.]




오.


WOM을 개인 메신저처럼 사용하는 쵸 모라를 보며, 나는 팔짱을 끼고 짐짓 심각한 생각을 하는 척 주변을 돌아다녔다.




[쵸 모라님이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있지. 시스 신전의 잡식과 나.]




뭐라구요?


나는 황당함을 듬뿍 담아 쵸를 바라보았다.




[쵸 모라님이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내가 라님의 신관이었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건 내가 이해력이 딸려서가 아니다.


아무튼 그렇다.




[쵸 모라님이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내가 가진 전부를 여기다 걸었어. 반드시 이길거야.]




이 아저씨 난리 났네.


나는 가면 아래 불타고 있을 쵸 모라의 얼굴을 상상하며 라에게 몸을 돌렸다.


라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턱을 괴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결정은 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믿는 게 최선이다.


믿을 게 술주정뱅이에 도박꾼 타이틀을 새로 단 엘프인 게 문제이긴 하지만.


이건 작은 문제일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작가의말

[쵸 모라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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