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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님의 서재입니다.

A급 헌터가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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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검미성
작품등록일 :
2024.05.23 21:16
최근연재일 :
2024.07.01 00:02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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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077
추천수 :
34,844
글자수 :
235,332

작성
24.05.27 00:00
조회
26,379
추천
1,058
글자
13쪽

바위 정령 - [2]

DUMMY

43세 임형택 씨는 내게 아첨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필요하면 얼마든지 비굴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얍삽한 사람은 아니다.


그에게는 나름 연장자로서의 책임감이 있다. 지금 이 환각에서도 모두가 입 다문 가운데 그 홀로 입을 열었다.


‘김극 씨, 공간이동······’


환각 속 나는 저 무지막지한 콘크리트 괴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우물쭈물 대답한다.


‘공간이동으로 여기 있는 사람 절반도 피신 못 시켜요.’


‘그게 아니라, 공간이동으로 협회에서 헌터 라이플 가져와요. 아니면 로켓포라도.’


저 괴물한테 먹힐 무기를 가져오란 소리다. 꽤 괜찮은 지시 같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이 상황에 지침을 내려준다는 점에서 특히.


‘공간이동 할 때 가능하면 사람 몇 명도 같이 데려가 주고······.’


임형택 씨의 말에 나는 임형택 씨에게 손을 뻗는다. 함께 공간이동 하려거든 서로 간의 신체접촉이 필요하다.


임형택 씨도 그 사실을 안다.


탁, 하고. 임형택 씨가 내 손을 쳐낸다.


임형택 씨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휘휘 젓는다. 애새끼나 할 몸짓인데도 어른스러운 거절의 제스처다.


감탄할 여유도, 혹여 다른 뜻이었느냐 물어볼 여유도 없다.


나는 여전히 곁눈질로는 콘크리트 괴수를 살피면서, 학원 수강생 한 명과 그 옆에 이름 모를 한 명을 각각 붙잡는다.


그러고서 정신적 그물망을 펼친다. 시야에 벗어난 장소로 공간이동 하려거든 필요한 작업이다.


그 작업을 최대한 빠르게 해보려 하지만 긴장 탓인지 아니면 이 근처가 익숙지 않아서인지 이동할 장소를 포착해내기는 평소보다도 쉽지 않다.


이 와중에 다행인 것은 정령이 이쪽을 싱글거리며 바라보기만 할 뿐 당장 이쪽을 덮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혹시 나를 경계하느라 당장엔 가만히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떠나면 바로 행동에 나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공간이동 하기도 바쁜 마당이다. 그 생각은 그저 머리를 스칠 뿐 내 행동을 바꾸진 못한다.


마침내 좌표 지정이 끝나자 공간이동이 이루어진다.


주변의 배경이 송두리째 바뀐다.


협회 건물 안이다. 공간이동 할 때 데려온 두 명도 함께다.


‘가만히 있지 말고 당장 상황 알려!’


내가 외치며 달린다. 달리면서 외친다.


‘헌터 라이플! 헌터 라이플 어딨어!’


최대한 큰 무기가 필요하다. 초등학생보다 무거운 헌터 라이플이라면 그 콘크리트 괴물을 조각낼 수 있으리라.


정신없이 외치고 달린 끝에 나는 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는다. 55kg짜리 헌터 라이플.


그 물건을 들고 아까 그 폐건물로 공간이동 하려 하지만 역시나 빠르게 해내기는 어렵다.


그래도 어찌어찌해내는 데 성공한다.


다시 폐건물 내부가 보인다. 나는 밀려든 현기증을 참아내려 애쓴다.


상황 파악을 위해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자 방금보다 더 큰 현기증이 덮쳐온다. 이번에는 신경계 부하로 인한 현기증이 아닌,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현기증이다.


‘어.’


맨 먼저 사슴처럼 길쭉하게 목이 늘어난 임형택 씨가 보인다. 그다음에는 으깨진 고깃덩이들과 거기 연결된 정진영의 군화가.


양팔이 통째로 뜯겨 나간 이종호와 뇌수를 흘리는 김진준, 근거리에서 샷건이라도 맞은 듯 온몸에 구멍이 잔뜩 뚫린 성문영도 차례차례 눈에 담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저지른 바위 정령이 날 보며 웃는다.


그 콘크리트 얼굴에는 피와 뇌수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전직 헌터 강사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식인에 미친 괴물.


나는 본능적으로 헌터 라이플을 정령에게 겨누지만, 놈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다. 놈은 이미 탈출로를 완성했다.


정령의 뒤에서 웬 자줏빛 에너지가 일렁인다.


게이트.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게이트란 사실에도, 게이트 안에서 끊임없이 빠져나오는 온갖 감정과 메타포들에도 신경 쓸 수가 없다.


나는 방아쇠 쪽 검지에 힘을 주려 하지만 쉽지 않다. 정신적 충격을 받아도 너무 크게 받았다. 손이 후들거려서인지 손가락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뭘 하고 자빠진 거냐? 당겨라, 당겨라!


「양보 고마워요, 착한 청년」


내 헌터 라이플이 불을 뿜는 동시에 콘크리트 괴수의 형상은 무너져 내린다. 발사된 30mm 탄환의 위력이 지나치게 탁월해서는 아니다.


무너지는 콘크리트 사이에서 반투명한 무언가가 빠져나온다. 그 반투명한 것이 게이트로 빨려 들어간다.


사냥에 성공한 괴수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순식간에 정령의 본체가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뒤이어 게이트가 수축한다.


이내 게이트마저 사라져버린 현장에는 나와 쳐다보기도 역겨운 시체들만 남겨진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초저주파 섞인 고함과 함께 내 의식은 현실로 추방된다.


*******


늘 그렇듯 환각이 끝나고 나면 환각에서 느낀 감정들이 남겨진다.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울분 속에서 나는 심호흡하려 애썼다.


잘되지 않았다.


그래도 침착해야 한다. 화났다고 참지 않고 행동하면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만다. 내 인생의 중반부가 그랬듯이.


지금까지 겪은 분노와 절망감의 원인을 알았다. 그 사실이 기껍지는 않다. 씨발.


“김극 씨? 공간이동······”


임형택 씨의 목소리. 나는 짧게 대답했다.


“안 돼요.”

“도망치란 게 아니라 협회 가서―”


뭔가 지시를 내리려 한다. 저놈에게 통할 무기를 가져오란 지시이리라.


환각 속 나는 저 아저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 아저씨를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어찌 행동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 어려우니 남이 내린 결정이라도 따라야 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쪽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안 된다니까. 나 떠나면 다 죽어.”


내 거부에 임형택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남으면 뭐 방법 있구요?”


글쎄, 방법이 있나?


모르겠다.


나는 바위 정령을 보았다. 사 미터 키에 좌우 넓이도 그 못지않은 콘크리트 괴물을.


격투기에서 체급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저 괴물은 아무리 봐도 수 톤은 넘어 보인다. 저 무게를 평소에도 유지하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저놈은 언제나 나보다 몇 배나 무거운 운동기구로 운동하는 셈이다.


그 무거운 몸에 깃든 힘은 얼마나 강력할 것인가? 그 가공할 힘으로 휘둘러질 질량은 얼마나 파괴적일 것이고?


모르겠다.


나는 초인 신체강화자인데 어떻게 비벼볼 여지는 있을까?


그것도 모르겠다.


다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슈퍼헤비급 격투기 선수라도 500kg짜리 회색곰을 감당할 수는 없단 사실이다.


“내가 저 새끼랑 눈씨름 하는 동안 협회에 전화나 해요. 지원 병력 보내달라고······.”


이 차이를 메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건 공포탄만 채워진 깡마른 K-1 한 정뿐.


제기랄, 임형택 씨의 지시가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절망케 하고 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면서도 저 괴물에게서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괴수도 마찬가지였다. 바위 정령 또한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계속 그렇게 나만 쳐다봐라. 씹새끼.


저 괴물의 시선이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선 안 된다. 수업 시간에 배웠기로 바위 정령은 생물의 신체에 결석(結石)을 응고시킬 수 있다. 뇌혈관이든 척수 한가운데든 간에. 나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숨 막히는 대치가 계속됐다. 괴수도, 나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 내가 저놈을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듯 저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지. 그리고 짐승 새끼들은 만만치 않은 상대와 마주치면 싸우려 드는 게 아니라 물러나려 든다고 들었다.


제발 저놈이 먼저 물러나기를 애타게 바랐다.


그놈의 게이트를 열고 떠나라, 제발. 아니면 이대로 대치하는 동안 협회에서 다른 각성자 누구를 보내든가.


속으로 비는 가운데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새끼지? 뭘 하려는 거냐?


흘긋 보니 이름 모를 응시생이었다. 그는 나와 정령이 대치하는 사이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려는 눈치였다. 여기는 6층인데, 운이 좋으면 살 수 있으리란 계산일까?


그러나 짐승 새끼들은 도망치려는 사냥감을 두고 보는 법이 없다.


바위 정령의 눈길이 그 불쌍한 놈을 향하더니······.


“어.”


짧은 외마디를 내뱉고서 이름 모를 응시생이 비틀거렸다. 정령이 놈의 체내 어딘가를 굳혀버린 것 같았다.


응시생이 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뒤이어 ‘흐읍’, 누군가가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귀에 파고들었다.


그다음에는 ‘허억’ 하는 소리가, 그다음에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씨바아아알!”


비명이 모두의 이성을 마비시킨 듯했다. 아니면 정령의 살인 시선을 피해 숨을 장소를 찾으려는 발버둥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건 여기 모인 응시생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좋지 않았다. 그들의 사냥감다운 움직임이 괴물을 흥분시켰다.


「프리허그 선언!」


바위 정령이 땅을 박찼다. 환각 속 내가 공간이동으로 떠나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저 괴물이 어떻게 그토록 빨리 모두를 살해하고 게이트까지 열 수 있었는지 그 움직이는 속도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침팬지의 달리는 속도는 인간보다 훨씬 빨라서 40km/h 정도라 한다. 몇 년 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빨랐던 우사인 볼트와 비슷한 속도다.


신장 사 미터에 수 톤짜리 우사인 볼트가 한 응시생을 노리고 전력 질주했다. 누굴 향해서?


성문영.


자길 들이받으려는 정령을 보며 성문영이 눈을 부릅떴다.


“악 씨 악!”


괴성을 내다 말고, 성문영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자기 팔을 붙잡고 있는 날 보면서도 상황 파악이 어려운 듯 눈을 마구 껌벅거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연속 공간이동의 여파가 생각보다 견딜 만해서 다행이다.


“딴짓 말고 기둥 뒤에 숨어, 새꺄!”


나는 성문영을 밀치며 그 밑에 있던 공구를 들어 올렸다.


아마도 이 건물의 철거 작업에 쓰이다가 버려진 듯한 슬레지해머를. 딱히 무겁지는 않았다.


한편 정령이 이쪽을 보았다. 웃음기가 사라진 표정을 보니 사냥감을 놓치고 헛손질해 화가 난 듯했다.


나도 놈을 보았다. 나 역시 놈과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애초에 환각이 끝났을 때부터 울분을 참고 있었으니까.


대치 상황은 이미 끝났다. 놈도 나도 이미 흥분한 상황이다.


“나도, 나도!”


자기도 피신시켜 달란 애원과 여러 비명을 무시했다.


나는 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아주 잠시, 갑작스럽게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전에 한 번 겪어본 현상 같았다. 조준 없이 총 쏘는 법을 깨우친 그때······.


내가 다시 현실로 빠져나온 것은 정령이 달려든 것과 거의 동시였다.


「프리―」


바위 정령이 날 향해 달려올 때,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슬레지해머를 크게 휘둘렀다.


근처의 누군가에게는 괴물에게 닿지도 않을 거리에서 급하게 먼저 휘두른 것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아마 저 괴수도 그리 파악했을 테고. 바로 공격할 기회라 여겼을 것이다.


「―허그!」


바위 정령이 내 앞에 도달했다. 놈이 바윗덩이 어깨를 움직이던 그때,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시야 내 공간이동을 할 때는 그물망을 펼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훨씬 쉽고 빠르다.


정령의 살인 펀치가 뻗어나간 시점에 나는 놈의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공간이동 하기 전 휘둘렀던 슬레지해머는, 그때 완전히 휘둘러져 목적지에 닿았다.


콘크리트 조각들로 이루어진 놈의 오금에.


‘쾅!’ 타격음이 요란하고 손에 닿는 감촉이 얼얼하다. 놈의 오금에서 떨어져 나간 돌조각들이 내 얼굴에 튀겼다.


아랑곳하지 않고 연달아 쳤다. ‘쾅’, ‘쾅!’ 두 번, 세 번 치니 놈의 한쪽 다리를 이루던 콘크리트들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한 대만 더 치면 완전히 부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도록 놈이 내버려 두진 않았다.


「당신 마누라한테 주먹 휘두르는 그런 사람이야!」


정령의 상반신이 회전했다. 양팔을 휘둘러서 나를 후려치려 했다. 살짝 닿기라도 했다간 으깨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슬레지해머를 내리치면서 공간이동 했다.


시야 전환과 함께 내 발은 막 움직임을 멈춘 정령의 어깨 위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끝까지 휘둘러진 슬레지해머가 놈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역시 내리치는 편이 힘을 싣기가 좋다. ‘쾅!’


*******




작가의말

Ts챈댓글님, 지식채널2님, 비도™님, MinorMiner님, 이리로님, 아르세닉님, 컵라면.님,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문피아 알림창이 바뀌어 후원 메시지를 늦게 봤네요. 정말 죄송하고 거듭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읽어주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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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바위 정령 - [1] +55 24.05.25 29,019 1,011 14쪽
7 학원 수강생 김극 - [5] +74 24.05.24 29,632 1,048 12쪽
6 학원 수강생 김극 - [4] +41 24.05.24 29,761 914 11쪽
5 학원 수강생 김극 - [3] +80 24.05.23 32,465 929 12쪽
4 학원 수강생 김극 - [2] +55 24.05.23 35,166 962 11쪽
3 학원 수강생 김극 - [1] +56 24.05.23 40,375 1,020 11쪽
2 김극 - [1] +72 24.05.23 44,914 1,151 11쪽
1 각성자 김극 - [서장] +92 24.05.23 55,204 1,292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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