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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미성 님의 서재입니다.

A급 헌터가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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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검미성
작품등록일 :
2024.05.23 21:16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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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332

작성
24.05.2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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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학원 수강생 김극 - [3]

DUMMY

나는 우리가 학원 앞에 도달했음을 확인한 즉시 주변에 뻗어나간 그물망을 회수했다. 가벼운 현기증 속에서 양태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끝내주······ 왜 표정이 그리 안 좋아요?”

“순간이동 할 때마다 신경계에 부하가 가요. 피곤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막 그래.”

“딸친 것처럼요?”


이 천박한 새끼. 나는 눈살을 찌푸린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요. 아무튼 그래서 잘 안 써요. 초재생능력 덕에 시간 지나면 피로가 금방 회복되긴 하는데, 다 회복될 때까진 온몸에서 힘도 빠지고 집중도 어려워지니까.”

“아직 능력 사용에 익숙하지 않으신가 보다. 연습 도와드릴 방법을 찾아볼까요?”

“굳이? 내 듣기론 서울 쪽 고급 센터들에서도 이런 특수 초능력들은 훈련 시킬 방법을 전혀 모른다던데요. 명상이니 뭐니 하면서 웬 종교색채 짙은 이상한 수행들이나 시킨다던데.”

“그래도 아깝지 않아요? 그리 귀중한 능력인데 쓰면 피곤하다고 안 쓰긴 좀 그렇잖아요.”

“뭐 자주 쓰다 보면 는다니까, 시간 흐르면 어련히 늘겠지 하고 있습니다.”

“잘 안 쓰신다매?”

“자기 전에 연습하려고 몇 번 써요. 자기 전이면 피곤해져도 괜찮으니까.”

“그걸로 연습이 되나?”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긴 해요. 일상에서는 없는 능력이려니 여기고 살긴 하는데······.”


그나마 시야 범위 내에 공간이동하는 것은 훨씬 쉽고 훨씬 덜 피로하다고, 그래도 어지간하면 걷거나 뛴다고 설명했더니 양태자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듯했다.


“하기야 뭐, 신체강화만으로도 A급 확정이니까······.”


그리 말하면서도 영 찝찝한 표정이었다. 기껏 있는 능력을 썩힌다고 생각해서 아까운 걸까?


뭐 어쩔 수 없다. 나 이외 다른 공간이동자의 사례도 찾아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외국인도 이 능력을 실용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 회계사 일이나 계속하고 있다더라.


그리고 내 경우에는 훈련하는 족족 성장하는 다른 능력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능력은 이쪽이다.


“김극 씨 진짜 열심히네요. 또 전력으로 운동하시게?”

“초재생능력자니까요. 운동하는 족족 근육이 붙으니 안 하고 놀면 아깝죠?”


나는 양태자와 함께, 학원에 돌아와서도 쉬지 않고 다시 근력운동을 했다.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전력으로, 완전히 탈진될 때까지 운동을 거듭하고 나니 비로소 하루를 알차게 보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당연히 공간이동 따윈 하지 않고 걸어서 집에 가자니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박미형 씨였다. 여러모로 고마운 아줌마.


「어때요, 할 만해요?」


왜 전화하셨느냐 물으니 살가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수강료랑 생활비는 충분하신가 하고 연락드렸지! 혹시 필요하시면 제가 좀 도와드릴 수 있잖아」

“고마운데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슬슬 생활비 다 떨어져 간다고 하소연했던 거 기억나는데?」


이 아줌마는 내가 얼마나 잘나신 놈인지 모르나 본데.


나는 수강료는 전액 면제이며, 오늘은 전담 트레이너까지 붙었는데 그마저 면제라고, 이대로면 A급 헌터로서의 탄탄대로가 확실하다고 자랑했다.


그러고서 자랑스럽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걔 출소했을 때 지 오빠가 포르쉐 끌고 오면 엄청 든든하지 않겠어요?”


여동생 년을 일찍 출소시키자는 계획은 사실 인권운동 할 때부터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새로 세운 계획은 A급 헌터, 그러니까 의사며 변호사 같은 직업조차 바라기 어려운 수입을 거두는 갑부가 되어 여동생을 부양하잔 것이다.


그 찌질한 년, 살인 전과 탓에 인생 망했다고 수감실에서 질질 짜고 있겠지?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교도소를 나올 여동생에게 두둑한 통장과 그년 명의의 스포츠카 한 대를 선물해줄 것이다. 그러면 그 못생긴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나지 않을까?


그럴 것 같다. 분명하다.


그리고 이 계획은, 그저 이대로 밥 먹고 학원 가서 훈련하다 보면 저절로 실현될 것 같단 점에서 훌륭했다.


「확실히 내 오빠가 그래줘도 든든하겠네」

“그렇겠죠?”

「그럼요! 분명 잘 될 거야, 김극 씨」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무슨 꿈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느끼건대 매우 긴 꿈이었던 듯하다.


또한 꿈속에서 내가 울었고, 화냈으며, 포효하듯 소리 질렀다는 것이 얼추 기억난다.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꿈의 마지막 장면······.


버섯구름.


꿈속에서 나는 핵폭탄을 터뜨렸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사람 수십만 명이 죽어 나가도록 그렇게 했다.


길몽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꿈속에서 느낀 감정이 깬 뒤에도 한동안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그리고 지금 이 꿈의 잔류물들은······ 끔찍하다.


제기랄, 토할 것 같다.


심지어 볼을 타고 무언가가 흘러내리길래 얼굴을 훔쳐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심호흡했다.


진짜, 씨바알······.


이토록 꿈자리가 사나운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요새 쭉 좋았는데 왜 이러지?


갑자기 불길해진다.


*******


맨 먼저 이상을 느낀 것은 학원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종이컵에 물을 받고 있던 원장과 눈을 마주쳤다. 원장은 날 보자마자 만면의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했다.


“오, 일찍 왔네요? 김극 씨 되게 성실해!”


그리고 나는 마주 웃으려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잠시 어딘가로 내 의식이 빨려드는 느낌이 들더니······.




섬뜩하다.


방금까지만 해도 헤벌쭉 웃고 있던 원장이, 이제 평생 웃지 않을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날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무표정하게 울고 있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또한 방금까지만 해도 학원에 오가던 사람들은 원장을 제외하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텅 빈 학원에 나와 원장 둘뿐이다. 어째서?


깊이 생각할 틈이 없다. 나는 거북스러운 적막 속에서, 순간 밀어닥친 우울감에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그 와중에 여전히, 원장은 날 쳐다보고 있다. 멀뚱히. 무표정하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그럴 기력도 없는 것처럼 날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다.




눈을 감았다 뜬 나는 다시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날 보는 원장은 아까처럼 웃고 있었다. 그리고 학원은 아까처럼 컴피 타 마시는 강사며 수강생들로 왁자지껄했다.


이게 대체 뭐냐?


“방금······”


내가 겨우 입을 여니 원장은 히죽히죽 웃으며 물었다.


“방금 뭐요?”


나는 방금 당신이 지은 표정은 뭐였느냐 물으려다 말고 그만두었다.


혹시 방금 그거, 환각이었나?


그럴 수 있다. 어제 트레이닝을 꽤 과하게 했으니까. 아무리 초재생능력자인들 갑작스럽게 무리하면 이런 일을 겪을 수도 있겠지 싶다. 사나웠던 꿈자리 또한 그 영향이었을지도.


“아무것도 아녜요.”

“실없기는!”


나는 애써 웃어 보인 다음 강의실에 들어섰다.


이번에도 인사하는 수강생이 몇 있었다. 그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가장 나이 많은 수강생이다.


“여, 김극 씨 왔어요? 여기 와서 이리 앉아요!”


그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든 순간, 내 의식이 또 어딘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 숨을 쉬지 못했다.




저 빼빼 마른 수강생은 임형택 씨다.


사십 대 아저씨인데, 빈곤한 머리숱 탓에 생긴 것만 봐선 오십 대로 보인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자 많은 사람이 그랬듯 실직했고 그 당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생겼다던가.


저 빈약한 아저씨가 딱 봐도 어울리지 않는 헌터 학원에 나온 것은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서다. 마누라 하나,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평생 몸 쓰는 일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을 종합상사 출신 화이트칼라 인텔리는 괴수의 피와 살을 가족들 생활비로 교환하고자 젊은이들 사이에 섞였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상세히 아는 까닭은 저 양반이 내게 유독 친한 척하는 까닭이다.


그는 미리 업계 정보를 주워듣고는 각성자를 인맥 삼으려 애쓰는 게 확실하다. 물어보지도 않은 신세타령을 구구절절하면서 내게 동정심을 심으려던 걸 보니.


그렇듯 자신보다 열 살 이상 어린 애송이에게 아부하고, 불쌍한 척까지 해가며 노력한 보람이 없는 듯하다.


임형택, 저 처량한 가장은 목이 꺾여서는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다.


정말이지 보기만 해도 끔찍하다.


사슴처럼 늘어난 목은 꽈배기처럼 뒤틀렸고, 목을 감싸던 피부는 지나치게 늘어난 고무줄처럼 여기저기 툭툭 끊어졌다. 그 탓에 내부의 뼈와 힘줄이 드러났다.


아무래도 그가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긴 어려워 보인다.




이때 내가 비명 지르지 않은 것은 너무 충격적이라 몸이 굳은 탓이지 덤덤해서가 아니었다. 제기랄, 또 뭐냐?


눈을 깜박이고 나니 임형택 씨는 여전히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뭐해요? 앉으래도!”


보아하니 죽지 않았다. 목은 꺾이거나 끊어질 만큼 늘어나지도 않았고.


방금 그것도 환각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임형택 씨의 옆에 앉으며 속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씨발, 진짜 씨발. 이러다 미치겠네.


아마도 환각에서 비롯된 듯한, 정체 모를 울분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가운데 난 어떻게든 이 상황이 정상이라고 받아들이려 애썼다.


선수 시절에도 너무 피로할 때 환각쯤은 몇 번 겪었지 않은가. 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 셈이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선명한 환각을 몇 번이고 보는 건 처음이지만······.


여전히 가슴이 쿵쿵거리는 가운데 수업이 시작되었다.


“군에 있을 때 다들 조준사격 위주로 연습했죠? 엎드려 쏴, 서서 쏴, 앉아 쏴. 호흡 가다듬으며 집중해서 총 쏠 시간 넉넉하게 주어지고 말이야······ 사냥 나가서 그때처럼 쏘면 안 돼. 괴수들 보면 정조준을 엄청 빨리 하든 급하게라도 지향사격을 하든 일단 쏘고 봐야 해.”


저 강사는 전직 헌터다. 구 개월 정도 하다가 은퇴했다는데 고작 구 개월 경력으로 뭔 강사 일을 하느냐 싶지만 이 정도면 나름 베테랑이라고.


“조준 정확히 하겠다고 뭉그적거린다? 그럼 죽는 거야. 무조건 죽는 거! 괴수 덩치가 커 보여서 느릴 거 같으니 조준 느긋하게 한다? 그래도 죽어요! 내가 딱 한 번 버스만 한 괴수를 봤는데 말이야, 빈말 아니고 그 새끼가 쏘나타만큼 빨랐어. 지구 생물을 생각하면 안 된다니까? 이상하게 큰 새끼들이 더 빠르더라니까······”


수업 내용은 평범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이상한 느낌, 그러니까 기시감이라 불러야 할 기묘한 느낌에 휩싸였다.


저 수업을 이미 들어본 것 같았다. 겪어봤다면, 언제?


어젯밤 꿈속에서······.


물론 방금 일어난 일이 꿈속에서 벌어진 일 같다고 느끼는 것은 기시감의 흔한 현상 중 하나다. 피로할 때 기시감을 느끼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수업 시간 내내 그놈의 기시감에 시달렸다.


심지어 다음 형법 수업 시간에도,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에도, 심지어 씻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그놈의 기시감이 계속될 줄은 미처 몰랐다.


*******


그리고 또 그 꿈을 꾸었다.


꿈의 마지막이 핵폭발인 것은 같았지만, 이번에는 그 중간과정이 살짝 더 선명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이번 꿈에는 원장과 임형택 씨가 나왔다. 아니, 사실 저번 꿈에도 나왔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할 뿐이리라.


그들의 모습은 앞서 환각으로 본 그대로였다. 임형택 씨는 목이 꺾여 죽었고, 원장은 피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무표정하게 날 바라보았다.


둘 다 두 번째 보는 것이지만 보는 즉시 구역질이 나왔다.


꿈속에서도 구역질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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