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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진

검마가 독고구검으로 무쌍찍음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의진™
작품등록일 :
2024.03.06 06:20
최근연재일 :
2024.03.26 20:3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21,393
추천수 :
348
글자수 :
113,311

작성
24.03.22 21:01
조회
532
추천
12
글자
12쪽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DUMMY

아미에서 원수의 단서를 얻을 기회를 허망하게 잃고 말았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미 놓쳐버린 기연(奇緣)에 좌절해서 무엇하겠는가.


그저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분명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대신이라 말씀드리기는 조금 그렇지만 시주께 도움이 되어주실만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승혜 선사의 말에 진양은 덤덤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라고?’


‘개방이나 하오문에서 찾을 수 없는 정보···.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에 의해 지워진 정보라고 해야겠지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승이 생각하고 있는 그분이라면 시주의 부모님에 대해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또 한 번 그녀의 제안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부표(浮標) 하나 없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헤엄쳐 나갈 것인가.


눈앞에 놓인 두 개의 선택지.


어느 쪽이 자신의 목표에 조금이나마 가까운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길을 잃은 것같지는 않고···. 뉘시오?”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년 사내의 물음.


진양은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미의 승혜 선사의 소개를 받고 왔소.”


“흐음···, 그녀의 이름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아미에 안타까운 일이 벌어져서 말이오. 혹시 그녀의 직인이 찍힌 서신이나 소개장을 가지고 있소이까?”


작게 고개를 끄덕거린 뒤 진양은 자신의 품에서 승혜 선사가 적어준 서신을 꺼내보였다.


“확인해 보시오.”


“으음···.”


사내는 건네받은 서신을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이윽고 진양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그쪽이 근래 강호에서 검마(劍魔)라 불리는 위인이오?”


“부정을 하지는 않겠소.”


의중을 가늠하기 어려운 복잡한 시선.


혹시라도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할 생각은 없었기에, 진양은 언제든 등 뒤의 검을 뽑아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인물이 훤칠 하시구려. 따라오시오.”


그러나 사내는 되레 진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그를 안내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반응.


검마(劍魔)라는 그의 별호는 지금까지 싸움이 끊이지 않은 이름이었다.


흔히 협객(俠客)이라 불리는 이들은 진양의 칼부림을 멈추겠다며 도전해왔고.


사파라 불리는 이들도 검마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히 접근해왔었다.


이따금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여달라며 귀찮게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어떠한 방식이었든 십중팔구 검을 뽑아 드는 결말을 맞이했었기에, 이 사내처럼 구태여 피를 봐야겠느냐는 반응은 진양에게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든 상황은 급변할 수 있는 법.


진양은 긴장의 끈을 내려놓지 않고 천천히 사내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만에 찾아온 손님이구먼! 뭐하러 왔디야?”


“무복(武服)을 갑춰입고 요상하게 생긴 칼을 등에 매달고 있는 것을 보니 칼밥 좀 빌어먹는 놈이로구만? 그런 놈이 우리 어르신을 찾아오는 이유는 뻔하지 않나?”


“이잉, 하긴 저번에 찾아온 놈들도 무림 것들이었지? 또 송장 치울일 생기겠구먼?”


“도대체 저것들은 언제까지 우리 어르신을 괴롭힐건지 모르겄네···. 그냥 확 이쪽에서 먼저 죽여버려?”


“내비둬, 이 사람아. 괜히 나섰다가 어르신 눈총이나 사지말고···.”


대놓고 자신을 바라보며 웅성거리는 목소리들.


진양은 그들의 숙덕거림 속에서 몇가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승혜 선사가 이야기했던 ‘그 분’은 이들의 신망을 받고 있는 어르신이며, 적지않은 강호인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모두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한 듯 시체가 되어 돌아간다.


“저들의 말에 신경 쓰지 마시오. 괜히 힘자랑만 하지 않는다면 무사히 용건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을테니까.”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사내.


진양 역시 건조한 말투로 답했다.


“참고해두겠소.”


구태여 피를 볼 생각은 없으나 필요하다면 피할 생각도 없었기에, 진양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저들의 적개심도.


이 사내의 무시하는 듯한 차가운 눈빛도.


“뭐, 그 분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니 어련히 잘하겠지만···.”


하지만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진양은 눈썹을 꿈틀거릴 수 밖에 없었다.


“본인의 스승을 아시오?”


별다른 대꾸 없이 으쓱거리는 어깨.


그것은 진양에게 독괴조(毒怪鳥)와 보냈던 끔찍한 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불길한 징조였다.


그리고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드러맞는다.


“새끼 검마(劍魔)가 찾아왔다고!”


고막을 때리는 방대한 내력이 담긴 사자후(獅子吼).


곧이어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


진양은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들기 위해 손을 움직였고.


그를 안내하던 사내는 그런 진양을 만류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의 스승도 어르신 앞에서는 함부로 검을 뽑지 않으셨다 들었소. 그러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힘 자랑은 아껴두시오.”


무시하거나 깔보는 의도가 아닌 진심어린 걱정.


진양은 더더욱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서 들여보내지 않고 무얼 하느냐!”


다시금 울려퍼지는 천둥소리에 사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잡고 있던 진양의 손을 놓아주었다.


이어지는 사내의 가벼운 턱짓은 진양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가리켰고.


진양은 그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기 위해 뻗는 손.


그 찰나의 순간, 짐승을 방불케하는 진양의 감각들이 그 주인에게 경고했다.


이 문 뒤에는 니가 감당할 수 없는 맹수가 기다리고 있다고.


저 존재의 숨결 한 번에 너는 저항조차 하지 못한채 목숨을 잃게 될것이라고.


그러니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도망쳐야만 한다고.


하지만 진양은 물러나지 않았다.


고작 이정도에 물러날 생각이었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덜컥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진양이라고 하오.”


짤막한 인사를 건네며 진양은 자신을 압도한 존재를 바라보았다.


이제 겨우 스무살 정도 되었을 아름다운 여인.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육신 아래에는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의 내력이 잠들어있었다.


단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홀로 패배를 구하고 있노라 말하는 스승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감.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겉과 속이 달라 음흉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존재.


“당신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지니고 있다고 하던데.”


자신의 복수가 방해가 된다면 죽이고,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죽이지 않는다.


어느 누구를 대하든 진양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 상대가 자신의 스승과 비견될만 한 절대 고수라 할지라도.


“하하하, 생긴것만 번지르르 할 줄 알았는데 배포 또한 마음에 드는구나! 제법 품는 재미가 있겠어···. 어떻게 오늘 밤 침소에 함께 들겠느냐?”


아무렇지 않게 사내를 추행하는 경박한 목소리.


평범한 사내들이었다면 아마 그녀의 고혹적인 손짓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색(女色)에는 관심 없소. 본인보다 몇 곱절의 세월을 존재해온 여인에게는 더더욱···.”


연로한 절대고수가 거듭된 깨달음을 통해 육신을 재구성하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경지 중 하나.


단순히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육신 자체가 그의 젊었던 시절로 되돌려 ‘전성기로의 회귀’라 말할 수 있으니, 이를 가리켜 반로환동(返老還童)이라 칭한다.


야릇한 미소를 짓는 여인의 이질적인 모습은 언젠가 스승에게 전해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어머나, 대쪽같은 것좀 봐. 그러니까 더더욱 갖고 싶어지는데?”


“유감스럽지만 장단을 맞춰줄 생각은 없소. 그러니 이제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소이다.”


진양의 요청에 여인은 깔깔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아서라 애송아! 본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거든 아직 백년은 이르도다!”


“그런 애송이와 동침을 원하는 것은 말이 된다고 보시오?”


“잡아먹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본디 맹수의 권한이다. 한낱 먹잇감에 불과한 네 녀석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끝까지 대화로 풀어나갈 생각이 없다면 검으로 답을 얻어내는 방법도 있소만···.”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수 있음을 말하는 진지한 눈빛.


그러한 진양이 귀엽다는 듯 여인은 더더욱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무식한 호랑이 새끼인줄 알았는데 앙칼진 새끼 고양이로구나! 클클클···, 오냐! 네 원대로 장난은 여기까지 하지. 그래서 이제 막 이름을 드높이기 시작한 검마(劍魔)께서는 무엇이 궁금해서 세상을 등진 본녀를 찾아온 것이냐?”


입가에 그려지는 여전한 미소.


하지만 주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이전과는 다른 중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승혜 선사에게 전해 들었소. 그 쪽이라면 내 부모를 죽인 존재에 대한 정보를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오.”


진양의 대답에 여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고작 그러한 연유로 본녀를 찾아왔단 말이냐?”


‘고작’이라는 단어로 치부하는 그녀의 태도는 진양으로하여금 커다란 불쾌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단어에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소.”


“아차차, 나의 실수. 복수에 매몰되어 마귀의 길을 걷는 사내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구만? 뭐, 좋아. 본녀가 무례했음을 사과하지. 조금 놀라서 말이야···. 검마(劍魔)의 이름을 계승하는 독고구패(獨孤求敗)의 제자가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찾아왔기에 이제 곧 황혼(黃昏)이 도래하리라 생각했거늘, 그저 길을 잃고 방황하다 본녀에게 당도한 것뿐이었구나. 애석하다 말해야 할지 이 변수가 흥미롭다 해야할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의 연속.


진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재촉했다.


“쓸데없는 미사어구 대신 묻는 말에만 대답해주면 고맙겠소. 그래서 당신은 내 부모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 혹은 내 부모가 강호에서 어떠한 족적을 남겼는지 알고 있소?”


짧은 탄식을 내뱉은 뒤 그녀는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진양의 물음에 답했다.


“네 부모를 죽인 이가 누구이며 그 배후에는 누가 존재하는지, 왜 네 부모가 죽였는지는 물론이거니와 왜 네 스승이 네 놈을 제자로 들였는지, 앞으로 네가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이며 그 끝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하나, 애석하게도 본녀가 네게 가르쳐줄 수 있는 기억은 극히 작은 편린(片鱗)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극히 일부분이라도 상관없소.”


모든 정보를 명확하게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명확한 정보가 존재했었더라면 자신의 모든 비극을 알고 있는 스승이 넌지시라도 단서를 건네주었을 테니까.


“그럼 본녀에게 바라는 지혜가 무엇인지 말해보거라, 어린 검마(劍魔)야···.”


***


“어찌할 방법이 없었네···. 이 늙은이에게는 더이상 세월을 쫓아갈 기력이 남지 않았어···.”


술에 취해 여과없이 드러내는 진심.


독고구패는 진양의 부모 앞에서 노쇠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네들의 벗이었던 아미의 오광 선사에게도 그곳에서 전해주게···. 부디 이 무능한 늙은이를 용서하지 말라고···.”


그는 죄인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진실을 갈구하는 제자에게 침묵해야만 하는···.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증오를 끊어내기 위해 제자의 복수심을 이용해야만 하는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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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간 (오후 22시) 24.03.16 266 0 -
23 아는 것이 독일수도 있음을 +1 24.03.26 291 7 11쪽
22 하늘을 우러러 떳떳할 수 있겠습니까? +1 24.03.25 313 9 11쪽
21 애정인가 아니면 죄책감인가 +2 24.03.24 416 9 12쪽
20 직접 알아내도록 하지 +2 24.03.24 460 10 11쪽
19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로구나 +2 24.03.23 511 10 11쪽
»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2 24.03.22 533 12 12쪽
17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2 24.03.21 590 10 10쪽
16 너희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6 24.03.20 607 10 11쪽
15 그래야할 이유가 있나? +2 24.03.19 648 13 12쪽
14 더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면… +2 24.03.18 690 12 12쪽
13 재롱은 끝났나? +2 24.03.17 710 14 11쪽
12 또 다른 누군가의 역사를 베어냈다. +2 24.03.16 765 12 11쪽
11 네놈들은 항상 그런 식이다! +3 24.03.15 826 16 11쪽
10 결국 모든 길은 일법만상(一法萬象)이자 만법귀일(萬法歸一)로 이르는 법 +2 24.03.14 861 16 11쪽
9 여주인공이 되기 전에 확실히 죽여야만 한다고! +2 24.03.13 899 16 12쪽
8 의협심(義俠心)따위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2 24.03.12 943 18 12쪽
7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2 24.03.11 1,000 17 12쪽
6 그 사내가 마음에 든 것이냐? +2 24.03.10 1,135 15 13쪽
5 죽음은 늘 각오하고 있었소 +4 24.03.09 1,244 18 12쪽
4 전부 죽여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2 24.03.08 1,421 23 11쪽
3 호랑이는 결코 고양이를 거두지 않는다 +2 24.03.07 1,739 23 13쪽
2 사람을 찾고 있다 +2 24.03.06 2,142 30 11쪽
1 서(序) +3 24.03.06 2,620 28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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