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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진

검마가 독고구검으로 무쌍찍음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의진™
작품등록일 :
2024.03.06 06:20
최근연재일 :
2024.03.26 20:3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21,395
추천수 :
348
글자수 :
113,311

작성
24.03.21 22:01
조회
590
추천
10
글자
10쪽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DUMMY

누군가에 대해 원한을 품는 것은 곧 마음속에 한(恨)을 품는 것이니.


이는 수시로 한을 되새기며 복수심을 불태우고 기어코 원수를 갚겠노라의 맹세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마치 원수를 갚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원한을 갚으면 또 다른 원한을 불러오니 이는 반복되는 원한의 굴레를 가져온다.


결과적으로 원한이란 남을 비롯한 스스로마저도 파열에 이르게 만드는 업화(業火)의 씨앗이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마라.


원한을 버릴때만이 비로소 원한이 사라진다.


원한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고, 원한 없이 머물며 사니 참으로 행복하다.


그것이 지금껏 승혜 선사가 지켜왔던 부처님의 가르침이었다.


불경(佛經) 속 가르침대로 원한을 갚는다고 이들에게 목숨을 잃은 사매(師妹)들이 되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들끓는 분노를 꺼트리지 못한 채 평생을 심마(心魔)에 사로잡혀 여생을 보낼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멈추지 않는다면 이 원한의 고리는 절대로 끊어낼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승혜 선사의 권각(拳脚)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세를 높이며 깊은 격노(激怒)를 쏟아내고 있었다.


관음금정신공(觀音金頂神功)이라 불리는 아미파 고유의 무공을 펼치는 승혜 선사는 분명 강했다.


오랜 세월동안 정진해왔음을 알 수 있는 탄탄한 기본기와 그 속에서 번뜩이는 묘수(妙手)들.


이는 왜 아미가 무림의 긴 역사 속에서 명문이라 불렸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하나, 이들의 무공은 불심(佛心)을 단련하기 위해 고안된 수련법의 일환.


짙은 분노로 물들어 있는 승혜 선사의 검끝은 그녀가 상대하는 백발의 노인에게는 닿지 않았다.


‘원수를 갚기 전에 본인이 먼저 쓰러져 버리겠군.’


무심한 눈빛으로 관망(觀望)하고 있던 진양은 곧이을 싸움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평소대로 였다면 그녀가 노인의 검 끝에 목숨을 잃든 말든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힘없는 자들의 복수는 아무런 실체없는 허상에 불과했으니까.


하루가 멀다하고 원한에 원한이 이어지는 곳이 강호.


그녀와 같이 무모한 복수를 입에 담다가 그 분노에 되레 목숨을 잃는 이들은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흔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아미파와 승혜 선사가 겪은 끔찍한 사연에 비통해서가 아닌.


“비켜라.”


저들을 박살 내는 것은 그녀가 아닌 자신의 몫일 테니까.


부모를 끔찍하게 살해한 원수에 대한 증오만으로 살아가는 존재.


복수귀로서 살아가는 진양이었기에 소유욕과 같은 감정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멍하니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가만히 있는 얼간이는 아니었다.


자신이 걷고 있는 복수의 길에 방해물이 된 존재.


마지막 남은 단서에 조차 위협을 가하는 존재.


아미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승혜의 원한이 얼마나 깊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살아야한다.


저 노인을 상대로한 복수를 포기하고 물러나야만 한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그렇기에 진양은 그녀의 복수에 개입했다.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


진양은 자신이 베어낸 흑도(黑道) 무인들의 주검을 향해 다가갔다.


곧이어 그들의 손에 거머쥐고 있던 검을 낚아챘고.


“피해라.”


있는 힘껏 내던졌다.


허공을 가르며 날카롭게 파고드는 비검(飛劍).


승혜 선사와 대적하고 있던 노인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피하기 위해 크게 몸을 회전시켰고.


그가 발을 내딛는 곳에는 끔찍한 살기를 내뿜는 마귀(魔鬼)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하나.


노인은 당황하지 않고 진양을 향해 일검(一劍)을 휘둘렀으나.


둘.


이를 예측하고 있던 진양은 한 발 앞서 노인의 품속을 향해 파고들었다.


셋.


그리고 마침내 노인은 아미라는 위대했던 이름을 더립힌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


“···소문이 마냥 과장된 것은 아니었구나.”


아직 통성명조차 하지 못했거늘.


노인은 깊은 탄식과 함께 검붉은 핏물을 토해내었다.


“알았다면 괜히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진양은 무심한 말투와 함께 노인의 가슴팍을 꿰뚫은 검을 뽑아냈다.


적랑(赤狼)인지 뭔지 하는 사내부터 이 정체모를 노인까지.


그 모두를 베어내고 꿰뚫으면서 진양은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누군가의 함정 따위가 아닌, 그저 검마(劍魔)라는 이름을 얻어 덩치를 키우고자 했던, 지극히 사파(邪派)다운 무림인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들에게 더이상 알아낼 정보 따위는 없었다.


오직 자신의 복수를 방해받았다는 희미한 적개심만 남아있을 뿐.


아직 숨이 붙어있는 노인에게 섬짓한 화풀이가 이어지려 했을 때.


“멈추십시오!”


진양은 자신의 등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소승의 복수를 방해한단 말씀이십니까!”


처음 마주했을 때 보였던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평정심은 찾아볼 수 없는 이글거리는 눈빛.


진양이 마주보고 있는 승혜 선사의 모습은 자비심을 말하는 인자로운 부처의 제자가 아닌, 끔찍한 증오에 휩싸인 복수귀의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자신 역시 저런 모습일까···.


따위의 유약한 감상은 느끼지 않았다.


“네게 벅찬 상대니 물러나라.”


이제와 동정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앞서 말했듯 아미가 이자들의 손에 난도질 당한 것은 그녀들의 힘이 나약했기 때문이니까.


“제발 소승을 말리지 말아주십시오···. 이것마저 없으면 소승은 어떻게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완성해내지 못한 설움과 이를 방해한 진양에 대한 분노.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을 눈물과 함께 쏟아내면서 승혜 선사는 진양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내 알 바 아니다.”


짤막한 대답과 함께 진양은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날아드는 얼굴을 순식간에 낚아채는 손은 이내 방향을 틀어 땅바닥에 내리꽂혔고.


기세가 꺾여버린 승혜 선사의 육신은 그대로 격추되고 말았다.


“누누이 이야기 했듯 내게 중요한 것은 아미가 가진 정보뿐이다. 비록 핵심적인 정보를 지니고 있던 비구니가 목숨을 잃었으니 그녀와 함께 지내온 너 역시 무언가 단서를 지니고 있을 터. 네놈을 살려둔 이유는 그것뿐이다. 그러니 그 자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을 말해라.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으니까.”


자신을 내려다보는 공허한 눈빛.


승혜는 그 허망한 감정 뒤에서 고요하게 들끓고 있는 증오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저 시주를 본문으로 모시라는 말씀만 전해 들었을 뿐, 소승도 자세한 이야기는 알지 못합니다.”


그녀의 대답에 진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역시 시간 낭비에 불과했던가···.”


“다만, 한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저갱(無底坑)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선 위를 스쳐가는 찰나의 감정.


승혜 선사는 그 짤막한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시주에 대한 명을 내리셨을 때, 그분께서 스쳐가듯 말씀하셨습니다. 시주의 부모님께서는 벗이라 여기던 사내에 의해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고···. 하여, 시주의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얻다 보면 그자에 대한 단서도 얻을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방법이었다.


분명 자신의 부모님과 그자가 벗이었다는 정보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진양의 눈빛은 다시 처음과 같은 싸늘한 온도로 식어가고 있었다.


“이미 시도해 보았다.”


왜 알아보지 않았겠는가.


도대체 두 분께서는 어떠한 원한을 지셨길래 목숨까지 잃게 되셨는지.


대관절 강호에서 어떤 행적을 남기셨기에···.


하지만 진양은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두 분의 이름은 개방과 하오문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이었으니까.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밤하늘에 걸려있는 쓸쓸한 달빛과 이를 위로하는 풀벌레의 노랫소리.


모두가 잠들어있는 고요한 새벽 속에서 독고구패(獨孤求敗)는 숲길을 걷고 있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시종일관 입을 꾹다물고 있던 과묵한 꼬맹이도 눈에 보이질 않으니 허전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니···, 그 녀석을 그리 만든 것은 이 늙은이의 잘못이라 할 수 있겠지.’


울창한 숲속 한가운데 만들어진 자그마한 공터.


독고구패는 공터의 중앙부에 솟아나 있는 두 개의 돌기둥을 향해 다가갔다.


씁쓸한 자조(自嘲)를 지어 보이며.


“클클클···, 그동안 잘들 있었는가?”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작고 초라한 묘비.


오직 이 노인만이 무덤의 주인을 찾아오는 유일한 조문객이었다.


“자주 찾아왔어야 했는데 그간 격조하다는 핑계로 발길이 뜸해지고 말았네. 대신이라 하기에는 조금 뭣하지만 이 늙은이가 좋은 술을 가져왔으니 이걸로 용서해 주시게나.”


마개를 개봉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감미로운 향기.


독고구패는 그 향기로운 술을 허름한 묘비의 위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술병이 모두 비워지자, 그는 묘비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자네들에게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네.”


부모를 잃고 끔찍한 마귀가 되기로 결심한 소년.


그러한 소년의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장본인이었기에, 독고구패는 소년의 부모 앞에 죄인일 수 밖에 없었다.


“이 늙은이의 망령된 욕심 때문에 그 아이가 인간이 아닌 감정없는 칼붙이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그 녀석의 부모인 자네들에게는 입이 열 개라도 무어라 할 말이 없네.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만약 자신이 그때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소년은 마귀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여느 소년들처럼 정상적인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며 평범한 사내로 자라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가정일 뿐이다.


소년은 이미 독고구패를 설명하는 또 다른 이름, 검마(劍魔)의 별호를 계승하고 말았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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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애정인가 아니면 죄책감인가 +2 24.03.24 416 9 12쪽
20 직접 알아내도록 하지 +2 24.03.24 460 10 11쪽
19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로구나 +2 24.03.23 511 10 11쪽
18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2 24.03.22 533 12 12쪽
»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2 24.03.21 591 10 10쪽
16 너희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6 24.03.20 608 10 11쪽
15 그래야할 이유가 있나? +2 24.03.19 648 13 12쪽
14 더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면… +2 24.03.18 690 12 12쪽
13 재롱은 끝났나? +2 24.03.17 710 14 11쪽
12 또 다른 누군가의 역사를 베어냈다. +2 24.03.16 765 12 11쪽
11 네놈들은 항상 그런 식이다! +3 24.03.15 826 16 11쪽
10 결국 모든 길은 일법만상(一法萬象)이자 만법귀일(萬法歸一)로 이르는 법 +2 24.03.14 861 16 11쪽
9 여주인공이 되기 전에 확실히 죽여야만 한다고! +2 24.03.13 899 16 12쪽
8 의협심(義俠心)따위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2 24.03.12 943 18 12쪽
7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2 24.03.11 1,000 17 12쪽
6 그 사내가 마음에 든 것이냐? +2 24.03.10 1,135 15 13쪽
5 죽음은 늘 각오하고 있었소 +4 24.03.09 1,244 18 12쪽
4 전부 죽여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2 24.03.08 1,421 23 11쪽
3 호랑이는 결코 고양이를 거두지 않는다 +2 24.03.07 1,739 23 13쪽
2 사람을 찾고 있다 +2 24.03.06 2,142 30 11쪽
1 서(序) +3 24.03.06 2,620 28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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