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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진

검마가 독고구검으로 무쌍찍음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의진™
작품등록일 :
2024.03.06 06:20
최근연재일 :
2024.03.26 20:3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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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349
글자수 :
113,311

작성
24.03.12 18:02
조회
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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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2쪽

의협심(義俠心)따위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DUMMY

“사내는 모두 죽이고 계집은 물건이 상하지 않게 생포해라!”


야습을 알리는 고함소리.


바깥에서 들려오는 칼을 뽑아드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거친 발자국소리는 강호인이라기보다는 마적 떼를 방불케 했다.


진양은 소년의 말대로 저자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나으리···! 금정문(金頂門)을 혼내주신 것처럼 그 검마라는 자에게 벌을 내려주십시오!’


점창의 이름에 흉터를 남긴 이후부터 따라붙은 이름, 검마(劍魔).


별호는 곧 그 무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나 다름없었으니.


이는 곧 진양이 현 강호에서 어떠한 평판을 얻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그 이름에 애착같은 특별한 감상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 명성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검마라는 진양의 또 다른 이름이 협(俠)으로 불리든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악인으로 불리든 상관없었다.


‘얼마 전 스스로를 검마라 칭하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어 마을 근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부하들을 시켜 마을의 어린 처자들을 납치해가고 있습니다···. 관아에 찾아가 도와달라 말해 보았지만 무림의 일은 관여하지 않는다며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힘이 없어 멸시당하는 약자를 돕는 것이 강호인들의 도리라고 들었습니다···. 염치없지만 제발 저희 오누이를 도와주십시오, 나으리.’


소년의 안타까운 사연에 동정심이 기우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웬놈이냐!”


앙칼진 목소리에 비해 더없이 엉성한 자세.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작 그따위 실력으로 이름을 사칭하고 있었던 것이냐.”


검마라는 이름을 사칭하여 자신을 꾀어내려는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조금은 기대했다.


어쩌면 부모를 죽인 원수가 자신의 이름을 듣고 역으로 찾아온 것일지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아둔하기 짝이없는 얼간이들이었다.


“무어라 지껄이는 거냐!”


이 자들은 과연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따르는 검마가 다른 이의 이름을 훔쳐다쓰는 가짜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이들 모두를 죽이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까.


분노라 하기에는 차가웠고 평정심이라 부르기엔 더없이 매서운 검끝.


일(一)자를 그리는 진양의 검이 괴한들의 목을 도려냈다.


순식간에 집중되는 이목.


진양은 그들의 얼굴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이로구나. 이런 쓰레기같은 수준은 아니라서.”


만에 하나라도 그자가 이런 수준낮은 왈패같은 존재였다면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게, 그 사내는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차라리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존재이기를, 인간을 초월한 괴물같은 경지에 다다른 절대고수이길 바랐다.


자신에게 잡아먹히고 또 잡아먹힐 수많은 이들의 핏값이 아깝지 않도록.


“남의 것을 훔쳐갔으니 이제 그 값을 치러야지.”


평소처럼 싸울 의지가 없는 이를 살려둘 생각은 없다.


이 자들은 모두 자신의 목적에 방해가 되는 훼방꾼들이니까.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칼에 맞기 전까지는 말이야!”


서슬퍼런 도검(刀劍)을 휘두르며 진양을 향해 달려드는 사내들.


진양은 몸을 회전시키며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발목이 잘려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사내들.


그 위로 이어지는 진양의 일검에 목덜미가 베여 붉은 핏줄기를 쏟아냈다.


팔방(八方)의 시체들이 피워낸 죽음의 꽃.


진양은 자신을 둥글게 둘러싼 꽃잎들을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들의 어줍잖은 칼이 아닌 진짜 살검(殺劍)을 손에 거머쥔 채로.


한 발자국에 한 명씩.


진양이 토해내는 고요한 죽음은 빈민가를 찾아온 약탈자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한 명의 생존자만을 남겨두게 되었을 때.


“너희들의 은거지로 안내해라.”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나지막한 말투.


동료들을 잃게 된 사내는 처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대체 우리가 무얼 잘못했다고 이러는 것이냐!”


그 말에 진양은 비릿한 냉소를 흘렸다.


“남의 것을 훔쳐놓고 잘못이 없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모순적이지 않은가?”


이름을 훔친 죄.


그러나 가짜 검마를 따르는 사내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답했다.


진양의 말이 가리키는 대상을 곡해한 채로.


“약해빠진 놈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되었다는 거냐! 모두가 이렇게 살아간다.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고 비루하게 연명해간단 말이다! 한데, 우리가 잘못했다고? 그럼 투전판의 호구처럼 다 빼앗기고 뒈져버리면, 그건 의로운 죽음이란 말이냐!”


“오해하고 있군. 나는 너희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양은 여전히 무심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힘이 없으면 빼앗기는 세상이라는 것에는 동의 한다. 그렇기에 너희가 내게 목숨을 빼앗기는 것이고. 대답이 되었나?”


나약하기에 빼앗긴다.


자신이 내세운 그 논리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으니.


“검마라는 자에게 안내해라.”


사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진양을 안내해야만 했다.


이윽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검마의 은거지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


“시, 시키는 대로 했으니 나는 살려주는 거지···?”


“그럴 리가.”


짤막한 대답과 함께 휘둘러지는 검.


지금껏 자신을 안내해온 사내를 무심하게 베어낸 진양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사람이 발길이 완전히 끊긴 것으로 보이는 버려진 사찰.


정체를 숨기고 무언가를 꾸미기에 안성맞춤인 장소.


안쪽에서 느껴지는 번잡한 인기척까지.


진양은 그곳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들이 지닌 모든 것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침입을 알리는 목소리부터.


존재를 상징하는 이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내뱉는 숨결.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목숨까지도.


힘이 없어 빼앗긴 양민들의 억울한 한을 풀어주고 협(俠)을 실현시키기 위함이 아닌.


눈앞에서 앵앵거리며 신경을 거스르는 날파리를 무심코 죽이는 손바닥과 같은 가벼움.


진양의 칼끝에는 어떠한 죄책감이나 주저함이 담기지 않았다.


이들이 가진 것 없는 양민들의 마을을 약탈해간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사찰의 깊숙한 내부로 발걸음이 당도하게 되었을 때.


“제법 실력이 뛰어난 자로구나.”


진양은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훔친 도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죽이기는 아까우니 이몸의 밑으로 들어오는 것은 어떻느냐? 이 정도 실력이라면 내 섭섭지 않게 대접해주마.”


입가에 그려지는 거만한 미소.


진양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들려주었다.


말이 아닌 검으로.


“크, 크아악! 파, 팔이···!”


눈가를 찌푸리게 만드는 처절한 비명 소리.


진양은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검마라는 이름을 사칭하였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네는 질문.


만에 하나라도 가짜 검마가 자신을 꾀어내기 위한 미끼같은 존재라면 섣불리 죽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젠장···. 사, 살려줘! 지금까지 약탈해간 모든 것들을 돌려줄테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다오···!”


돌아오는 것은 구차한 목숨 구걸이었다.


“다시 한 번 묻지. 왜 그이름을 사칭했느냐.”


“이름을 훔쳐다 쓰면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근래 강호에서 떠오르는 이름인 검마를 사칭한다면 보다 손쉽게 수하를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뒷일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이유.


진양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가짜의 가슴팍을 향해 그대로 검을 꽂아넣었다.


이 이상 대화를 나누는 행위는 허튼 시간 낭비에 불과했으니까.


성취감이 존재하지 않는 달성.


더 이상 이 낡은 사찰에 남은 볼일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기에, 진양은 아무런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제발 누이를 구해주십시오, 나으리.’


소년의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타인의 호의만을 바라는 약자의 청원을 들어줄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스승의 곁을 떠나 강호를 주유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타인을 위해서 기꺼이 스스로를 불사르는 의협심(義俠心)따위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타인 위에 군림을 힘을 지닌 이가 구태여 자신을 낮추고 그들을 위해 희생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자들에게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무기력하게 가진 모든 것들을 빼앗기거나.


빼앗긴 것들을 되찾기 위해 힘을 기르거나.


진양이 고른 선택지는 후자의 것이었다.


비록 무엇하나 되찾을 수는 없을지라도.


그 선택으로 인해 강호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진양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그 사내를 찾아내 목숨을 앗아가리라.


나아가 그 자가 소중히 여기던 모든 존재를 무참히 불태우고 잔혹하게 찢어 발기리라.


오직 그것만이 검마(劍魔), 진양이 삶을 이어가는 이유였다.


“대충 이름을 사칭하는 얼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검마를 마주하게 될 줄이야···.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만반의 준비를 해올걸 그랬나?”


먼 발치 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는 낯선 여인의 목소리.


사찰의 출구를 향해 걸어가던 진양은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짤막한 대답을 꺼냈다.


“비켜라.”


단전에서 느껴지는 내력의 양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여인은 가짜 검마와는 관계없는 강호인.


아무런 이득을 얻을 수 없는 상대를 구태여 죽여야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먼저 송곳니를 들어내지 않는다면.


“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기껏 낚아 올린 월척을 놔달라고 놔줄 수 있나? 혹시 모르니 확인차 묻도록 하지. 검마(劍魔), 진양. 본인이 맞나?”


거짓을 답할 이유는 없었기에, 진양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정은 하지 않는군. 그럼 죽어라!”


그림자 뒤에 모습을 감추었음에도 분명히 간파해낼 수 있었다.


잠시 멈추는 호흡.


반동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구부리는 상체.


반대 쪽의 옷소매로 향하는 양쪽 손.


무게중심을 버티기 위해 교차된 디딤발.


이는 틀림없이 암기(暗器)를 쏘아올리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어둠 속에 몸을 숨어서 암기를 던지는 적을 상대로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여덟 번째 검, 제 팔(八)초 파전식(破箭式)을 가르치던 스승의 물음.


당시의 진양은 아무런 고민없이 답을 말했었다.


‘하하하, 네녀석의 말이 옳다. 그럼 어디 보여다오. 네가 꺼낸 그 답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지를···.’


차선(次善)은 날아드는 모든 암기를 눈으로 쫓아 모두 쳐내며 거리를 좁히는 것이며.


최선(最善)은 암기가 날아들기 전에 수를 간파하여 이를 저지하는 것이다.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양의 스승이 내던졌던 암기는 찰나의 시간마저 꿰뚫는다 말할 수 있을 만큼 빠르고 정확했으니까.


그렇기에 진양은 손쉽게 상대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암기를 꺼내드는 준비 동작부터 내력을 심는 과정까지.


상대방의 그 모든 동작들은 진양의 스승이 보였던 암기술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느릿했으니까.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진양은 그림자 속에 녹아들어 있던 상대방을 제압해냈다.


“어, 어떻게···?”


움직임을 간파당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속도를 따라잡혔기 때문인가.


아직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드러나 있었다.


“큭···, 죽여라! 네 놈같은 녀석에게 희롱을 당할바엔 죽음을 택하겠다!”


이내 비장한 각오를 다짐하는 여인.


진양은 기꺼이 그녀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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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하늘을 우러러 떳떳할 수 있겠습니까? +1 24.03.25 314 9 11쪽
21 애정인가 아니면 죄책감인가 +2 24.03.24 417 9 12쪽
20 직접 알아내도록 하지 +2 24.03.24 461 10 11쪽
19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로구나 +2 24.03.23 512 10 11쪽
18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2 24.03.22 534 12 12쪽
17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2 24.03.21 592 10 10쪽
16 너희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6 24.03.20 608 10 11쪽
15 그래야할 이유가 있나? +2 24.03.19 648 13 12쪽
14 더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면… +2 24.03.18 690 12 12쪽
13 재롱은 끝났나? +2 24.03.17 710 14 11쪽
12 또 다른 누군가의 역사를 베어냈다. +2 24.03.16 765 12 11쪽
11 네놈들은 항상 그런 식이다! +3 24.03.15 826 16 11쪽
10 결국 모든 길은 일법만상(一法萬象)이자 만법귀일(萬法歸一)로 이르는 법 +2 24.03.14 861 16 11쪽
9 여주인공이 되기 전에 확실히 죽여야만 한다고! +2 24.03.13 899 16 12쪽
» 의협심(義俠心)따위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2 24.03.12 944 18 12쪽
7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2 24.03.11 1,000 17 12쪽
6 그 사내가 마음에 든 것이냐? +2 24.03.10 1,135 15 13쪽
5 죽음은 늘 각오하고 있었소 +4 24.03.09 1,244 18 12쪽
4 전부 죽여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2 24.03.08 1,422 23 11쪽
3 호랑이는 결코 고양이를 거두지 않는다 +2 24.03.07 1,740 23 13쪽
2 사람을 찾고 있다 +2 24.03.06 2,143 30 11쪽
1 서(序) +3 24.03.06 2,623 29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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