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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5882_dnfvnfldh 님의 서재입니다.

빙의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JIB
작품등록일 :
2020.08.27 18:56
최근연재일 :
2020.09.13 22:00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922
추천수 :
18
글자수 :
101,608

작성
20.08.29 23:55
조회
56
추천
1
글자
11쪽

5. 간단한 심부름 (5)

DUMMY

“루나야! 괜찮아?”


루나를 불러보았지만, 루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스륵.

루나의 눈이 감기더니.

털썩.

그대로 엎드렸다. 이제 상체까지 완전히 바닥에 닿았다.


“루나야? 루나야!”


분명히 씩씩하게 잘 걷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철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모습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햇빛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서 쓰러졌다거나 뭐 이런 건가.


“일.”

“응?”


방금 루나의 입에서 소리가 났다. 말을 했다면 정신을 잃거나 한 건 아니라는 건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때 루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또 무슨······.


“이.”


다시 절을 하듯 바닥에 엎드린 루나가 조용히 읊조렸다.


“루나야, 지금 뭐하는 거야?”


자리에서 일어난 루나가 눈을 살짝 뜨고 날 쳐다보았다. 이렇게 진중해보이는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형제님, 잠시만 조용히 해주세요. 저 지금 무척 중요한 일 하고 있으니까요.”

“어, 응.”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기다려야겠다.

근처에 있는 나무에 기대서 조용히 루나를 살펴보았다. 루나는 계속해서 숫자를 새며, 남쪽을 향해 계속 절을 했다. 숫자는 계속해서 올라갔고, 시간도 따라 지나갔다.

언제까지 올라가나 싶었던 숫자가 마침내.


“십 팔.”


올라가는 것을 멈췄다.


“후우.”


루나는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며,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끝난 거야?”

“네.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녀는 예와 같이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방금······무엇을 했는지 물어봐도 될까?”

“아, 그건.”


루나가 손을 털어내며 활짝 웃었다.


“위대하신 발도르 신께 바치는 신성한 의식이에요.”

“십 팔, 아니 열여덟 번씩 절을 하는 게?”

“네. 매일 정오 때마다, 남쪽으로요. 매일 하는 의식이지만, 남쪽을 찾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네요.”


역시. 사이비는 위험하다. 게다가 하필이면, 기분 나쁘게 열여덟 번이라니. 이건 마치······그러니까······하아. 역시 사이비가 분명하다.


“혹시 그······발도르 님께서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주시지 않아?”

“형제님, 발도르 님께서는 그런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알려주시지는 않아요.”


며칠 동안 숲속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그게 사소한 일이라니.


“하지만.”

“하지만?”


다른 중요한 일이라도 말씀해주시나? 그래도 신이라고 불리는 분인데.

살짝 기대가 생긴다.


“근처에 냇가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따라오세요.”

“저기, 마을보다 냇가가 더 사소한 일이 아닐까?”


아니, 애초에 물이 흐르는 소리는 나에게도 들리는 걸.

어쨌든 그녀를 따라갔다.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멀지 않은 곳에 냇가가 있었다.


“역시나! 발도르 신이시여. 감사해요.”


루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혀 신기하지도 않고, 심지어 감흥조차 없다.

이건 꼭 신의 도움까지는 없어도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지금은 냇가보다 마을을 찾는 일이 훨씬-으허억!”


루나를 바라보며 말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입고 있던 치마를 벗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낸 목소리에 그제서야 의식했는지 황급히 치마를 올렸다.


“어맛! 혼자 다녔던 것에 워낙 익숙해서.”

“아, 아냐. 내가 미안.”

“형제님, 정말 죄송한데 제가 며칠 동안 숲을 헤매느라 제대로 못 씻어서요. 잠시만 이쪽 보지 말고 있어요. 저 얼른 씻을게요.”


잠깐.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지? 씻겠다고? 지금? 여기서?


“응? 정말로?”


스슥.

으아! 이거 옷 벗고 있는 소리 맞지? 미쳤나봐!

나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홱 돌렸다.


‘으아, 다른 생각을 하자. 다른 생각!’


첨벙.

물소리가 들린다.


‘슬픈 생각을 하자. 나는 슬프다! 아주 슬퍼!’


“으흠흠흠. 랄라.”


오랜만에 하는 샤워가 좋은지, 루나의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내가 남자로도 보이지 않는 건가? 아니면, 설마. 날 유혹하고 있는 거야?

고개가 돌아갈 것 같다.


‘안돼! 루나의 철퇴를 생각해! 철퇴로 맞는다!’


와. 이건 좀 효과가 있다.

살짝 돌아가던 고개가 그대로 굳었다. 그래, 철퇴는 좀 무섭긴 하다.

후우.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이제 좀 진정이 된 것 같다.


“어맛!”

“응?”


맙소사! 들려오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루나 쪽을 쳐다보았다. 루나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그보다.


‘뭐야. 발 씻고 있는 거였잖아. 그럼 그렇지.’


다행인지, 루나는 옷을 입은 채로 발을 씻고 있었다. 이미 머리를 감았는지, 촉촉하게 젖은 머리에서 동그랗게 잘 말아진 물방울이 떨어졌다. 살짝 올린 치마 속으로 루나의 새하얀 다리가 보인다.

와, 이건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변태 같다.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첨벙.


“앗, 차가워.”


물이 튀었나보다. 올라간 루나의 손을 따라 치마가 들추어 졌고 밝은 햇살 아래로 루나의 종아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인 것은.


“어엇!”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루나의 종아리에 새겨져 있는 것은, 분명.

사자 모양의 문신이었다.

크기는 달랐지만, 나를 ‘한 번’ 죽인 그 남자의 팔뚝에 새겨져 있던 것과 같은 문신이었다.


“네?”


내가 내지른 소리를 들은 루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루나를 향해 다가갔다.


“혀, 형제님?”

“루나야. 너 종아리에 있는 그 문신, 뭐야?”

“문신이요?”

그녀는 다리를 틀어 종아리에 새겨진 문신을 확인했다.

가까이에서 확인하니, 더욱 분명해졌다. 그 남자의 문신과 같은 것이었다.


“그 사자 모양 문신 말이야.”

“아, 이 문신이요? 사자라니요!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응? 이거 사자 아니야? 아무리 봐도 사자인데.”


루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발도르 님을 형상화하여 나타낸 거예요. 신성한 거죠. 사자 따위가 아니에요.”

“엥? 이게? 아무리 봐도 사자인데? 그럼 이 갈기는 뭐야?”

“갈기라니요! 그건 발도르 님에게서 나는 후광이라구요. 광휘의 발도르 님이예요!”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갈기 달린 사자인데.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알겠어, 미안해. 그럼 혹시 이 문신은 어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야?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역시······그럴 줄 알았어요.”


루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뭐지? 저 웃음은?


“응? 뭐가?”


어리둥절한 날 보며 그녀가 가볍게 훗-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 문신, 볼수록 신성하고 거룩해지죠? 막 형제님의 몸에도 이런 거 하나만 새겨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응, 전혀 아니다.


“······그건 아닌데. 내가 그것과 똑같은 문신을 하고 있는 남자를 봐서.”

“네? 정말요? 이 문신은 우리 교단에 소속된 사제들만 할 수 있는 건데.”

“뭐?”


루나의 말대로라면 날 공격한 정체불명의 남자는 그녀와 같은 교단의 사제라는 건데.

그렇다면······내가 지금 루나를 믿고 같이 다녀도 되는 건가?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루나와 함께 다니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뭘 믿고 그녀와 함께 있는 거지?


“남자 사제였다면, 빅터 사제인가? 아니면, 잭스웰 사제? 어디서 보셨어요?”


동글동글한 눈을 빛내며 묻고 있는 루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정말로 모르는 건지, 날 속이고 있는 건지.

······하아.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이쪽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내가 떨어졌던 그곳. 모든 것이 불타있었고, 모든 사람이 죽어있던 그곳.”

“······네?”

“확실히 봤어. 분명해. 날 공격한 사람이, 내가 의식이 끊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그 남자니까.”

“네? 그게 무슨······.”


그녀는 여전히 말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툭 벌어진 입이 다시 말을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혹시 형제님, 도적이었어요?”

“어? 그게 무슨-.”

“아니면 살인마? 납치범? 범죄자?”

“하아. 그런 사람 절대 아니야. 그냥 난 일행들과 함께 수도에 가는 길이었다고.”


아무래도 고대 병기에 대한 이야기는 숨기는 게 좋겠지.

루나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말도 안 돼요! 저희 교단은 평화를 사랑한다구요. 발도르 님께서는 평화의 신이세요!”

“저기······루나야. 방금 전에 너 코볼트 수십 마리를······.”


그녀의 손에 들린 무시무시한 철퇴가 휘둘러지면서 코볼트들의 머리를 터뜨렸던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하다. 코볼트들의 짙은 녹색 피가 모여 회오리를 만들었던 그 장면은······흐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다.

하지만, 루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발도르 님의 평화는 사람에게만 임하거든요.”

“그럼 아까 말했던 범죄자들은······.”


그녀의 얼굴에 살짝 당황하는 빛이 보였지만, 곧 침착하게 말했다.


“수정할게요. 발도르 님의 평화는 사람다운 사람에게만 임하지요.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모두 정의의 철퇴가!”


으아, 역시 얘, 무서운 얘 맞다.


“그래서, 전 갑자기 의심이 가네요. 형제님, 정말 좋은 사람 맞나요?”


동그랗던 루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 지금 누가 할 소리를!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수도로 가고 있었던 우리를 갑자기 공격해온 것은 그쪽이었다고. 그 문신을 한 남자도 마찬가지고. 너, 정말 아무것도 몰라?”

“······후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날 살펴보던 루나가 한 번에 숨을 내뱉었다.


“하긴, 형제님은 그런 나쁜 짓을 하기에는 너무 약하긴 하죠.”

“응······어?”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아니, 잠깐. 나는 아직 널 믿지 못하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상하긴 하다. 만약 루나가 나에게 다른 생각이 있었다면, 난 아마 진작에 죽은 목숨이었을 테니.


“흐음. 그렇다면.”


중얼거리던 그녀가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배낭을 뒤적거렸다. 또 철퇴를 꺼내려나 싶어 움찔했지만. 그녀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작은 청동 패였다.


“출발하기 전, 주교님께서 이걸 주셨어요. 이곳에 라비 사제가 일을 하러 갔으니, 혹시라도 길을 잃으면 이곳으로 가보라고 하셨어요.”


루나의 손바닥 만한 크기의 동그란 청동 패에는 불꽃을 두른 검이 새겨져 있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모를 수가 없는 문양이다.


“이, 이것은······.”

“본 적 있으세요?”


너무나도 당연하다.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랐던 것이니까.

이 문양은 내가 자란 가문의 것이었다.


“······뷰포트 가문?”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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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죽기 위해 가는 길 (2) 20.09.02 37 2 11쪽
9 8. 죽기 위해 가는 길 (1) 20.09.01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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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 간단한 심부름 (6) 20.08.30 44 1 11쪽
» 5. 간단한 심부름 (5) 20.08.29 57 1 11쪽
5 4. 간단한 심부름 (4) 20.08.29 5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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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간단한 심부름 (2) 20.08.28 72 1 11쪽
2 1. 간단한 심부름 (1) 20.08.28 10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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