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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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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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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05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6.21 01:37
조회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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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45화

DUMMY

방송 사고였다.

아니, 통편집 각이었다.

정원택이 나에게 야! 라는 반말에 이어 이 새끼야! 라는 쌍욕까지 남겼다.


‘‘야! 방송이 장난이냐고, 이 새끼야!’’

‘‘예? 예, 아, 아닙니다.’’


그의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 앞에서 나는 바로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김여중과 김피디 외 제작진 대부분 얼굴이 굳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정원택이 제대로 화가 났음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너 인마 방송 이런 식으로 계속 할 거야!’’

‘‘아, 아닙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무슨 모닝똥 때리는 이야기나 하고 있고, 이 새끼 말이야.’’

‘‘사실 나도 평소 강소장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좀 방송에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젊고 트랜디한 건 좋은데 그렇다고 우리 시사토론 방송으로서 품격까지 잃어서는 안 되지 않겠어요?’’


애초 정치판을 주로 다루는 토론 방송이라고 하지만

실지 정치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어제의 적이 언제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언제 내일의 적이 될지 모르는 정치판.


그 정치판에게 보란 듯

지난 주 이래로 방금 전까지 계속 냉전 관계였던 정원택, 김여중이

어느새 나를 희생양 삼아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예,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벌개진 얼굴로 그렇게 대답하고 김피디 쪽을 쳐다보았다.


‘‘어어!’’


하지만 나의 시선을 받자마자 김피디는 번개같이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심지어 가장 믿었던 김피디까지 저리 정치적으로 돌변하고 마는구나.


‘‘자! 그럼, 그만 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갈까요?’’


김여중이 다음 주제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제는 외교 쪽 문제.

러시아에서 군부 쿠데타 계획이 일망타진되었다는 소식이다.


한참 정원택과 김여중이 러시아 현 정세에 대해 읊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서로 소 닭 보듯 하더만 어느새 지금은 막역지우 시선을 서로 교환하고 있는 두 사람.


그런데, 그때였다.

다시 또 프롬프터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저기 ......’’


정원택과 김여중이 현 러시아 대통령 푸린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 한참 설명하는 와중이었다.


‘‘응, 뭐요, 강소장님?’’

‘‘저기, 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예. 뭔데요?’’

‘‘이번 러시아 쿠데타 진압은 아무리 봐도 짜고 친 것 같습니다.’’

‘‘뭐라고? 쿠데타 진압을 짜고 쳐?’’


정원택과 김여중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지금 러시아 군부 쪽에 쿠데타 기도세력이 한 둘이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푸린 입장에서는 불안에 잔뜩 떨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군부에 있는 자기 심복한테 쿠데타하는 척 해라. 그럼, 내가 너를 본보기로 바로 강력하게 처단하는 척 할게. 그거 보고 다른 쿠데타 기도 세력이 지레 겁을 먹고 계획을 포기하지 않겠냐. 뭐 이런 시나리오였던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원택과 김여중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참! 이 친구 정말.’’

‘‘재미는 있네요, 뭐.’’


두 사람이 터뜨린 너털웃음은 실소에 가까웠다.

한 마디로 내 말이 말 같지 않다는.


‘‘사실 이번 쿠데타 기도가 밝혀지게 된 계기가 좀 어이없잖아요. 그 전에 전혀 이야기가 없다가 갑자기 난 데 없이 하루아침에 발각되었다는 게. 이건 누가 봐도 짜고 쳤다는 증거인 거죠.’’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친구.’’

‘‘그러게. 아니 쿠데타 기도를 알아냈다면 당연히 보안했다가 갑자기 급습해서 체포하는 거지. 동네방네 쿠데타 의혹이 있는 것 같다고 사전에 동네방네 떠벌리다가 체포하는 경우가 있나. 그러다 그 전에 쿠데타 세력한테 당하고 말지.’’


정원택과 김여중이 다시 또 내 의견을 반박하고 나섰다.


‘‘아닙니다. 분명히 맞습니다. 푸린이랑 이번에 발각된 그 프라진스키인지 뭔지 하는 그 사람이랑 서로 다 짜고 치는 거예요.’’


내가 평소 나답지 않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하자, 정원택이 다시 또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이 친구, 우길 걸 우겨야지. 왜? 방금 전에 우리한테 한 소리 좀 먹었다고 반항심이 생기는 거야, 뭐야?’’

‘‘그러네요. 아마도 강소장님이 지금 우리한테 쿠데타 기도하는 것 같은데요, 정선생님. 하하하.’’


정원택이 다시 또 발진하자 김여중이 슬쩍 위트로 브레이크를 밞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내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아이, 아니라니까요. 딱 봐도 이건 짬짜미라니까요. 프라진스키 잠깐 감방 가는 척 하다가 바로 복권되고 푸린이 국방부장관이나 합참의장 뭐 그런 걸로 영전시킬거라니까요.’’

‘‘뭐, 뭐라고? 자기한테 쿠데타하려던 놈을 국방부장관에 임명?’’

‘‘아이, 참나. 그건 소설로 써도 욕먹을 스토리인데.’’


정원택과 김여중이 다시 또 실소를 내뱉었다.


‘‘원래 세상사라는 게 다 그런 거죠. 원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게 일어나는 게 세상 아닌가요? 두 선생님은 나이를 그렇게 자시고도 아직도 이 정도 사실도 모르셔요? 인생 헛 사신 것도 아닐 테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얼음처럼 모든 표정과 동작을 멈추었다.

나의 이 언사는 쿠데타 기도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쿠데타였다.


감히 대선배 정원택과 김여중을 향해

인생 헛 살았냐고 면전에서 대놓고 디스를 하고 말다니.


정원택과 김여중은 이거 지금 실화냐, 하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고 있었고,

저 만치 스테이지 밖 김피디는 아예 혼이 나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두고 보세요. 제 말이 맞나 안 맞나. 프라진스키는 감방에 잠깐 들어갔다가 다른 쿠데타 기도 세력 체포 다 끝난 후에 유유히 구치소에서 빠져 나와 푸린과 자택에서 보드카 건배를 하게 될 겁니다. 아마 그들이 통 유리창 호화 금장 장식 거실에서 보드카를 맛보는 사이 정원에 있는 수영장에서는 쭉쭉빵빵 러시아 비키니 미녀들이 놀고 있겠죠. 이 정도 시나리오도 생각 못하시는 분들이 무슨 정치평론을 한다고 ......’’

‘‘야, 이 새끼야! 너 정말 미쳤어? ......’’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정원택이 다시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스튜디오 천장이 쩡쩡 울릴 정도로 우렁찼다.


‘‘ ..... 너 지금 정말 제정신이야? 어제 술 안 깼어? 아니면 아까 화장실에서 뭐 마약이라도 흡입하고 온 거야? 감히 어따 대고 설교질이야.’’

‘‘아니, 설교질이라니요? 토론에서 설교질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지금까지 설교는 정선생님이 제일 많이 하셨죠. 오죽하면 채팅 창에 매번 정꼰대 정꼰대 이런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겠어요?’’

‘‘뭐, 뭐라고, 이 자식이 정말!’’

‘‘어이! 어이! 정선생님! 정선생님! 참아요, 참아.’’


이건 해외 토픽 같은 데서 본 적 있는 기시감 느껴지는 장면이다.

그것도 마침 지금 다루고 있는 나라인 러시아 발이었던 것 같다.

양복을 잘 차려입고 나온 불곰 형님들이 한참 토론에 열중하며 설전을 교환하던 중 그 중 한 사람이 결국 분을 못 참고 상대 논객에게 주먹을 날리려고 하는 상황.


한국 산 불곰 정원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마침내 주먹을 불끈 쥐고 나를 바로 한 대라도 치려는 기색이었고

재빨리 상황을 캐치한 김여중이 따라서 자리에 일어나 정원택을 말렸다.


‘‘강소장님! 잠깐 나가 계시죠.’’


그 사이, 김피디를 위시로 한 제작진들이 재빨리 스테이지로 올라왔다.

김피디가 작가 한 사람에게 나를 데리고 나가라는 눈짓을 보였다.


‘‘아니, 괜찮습니다. 할 말은 계속 해야죠. 토론 프로그램에서 할 말을 하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누구와 달리 완력이 아닌 언어의 힘을 믿는 논객입니다.’’

‘‘저, 저, 저 자식이 정말!’’


너댓 사람이 정원택을 막아 세웠다.

정말로 정원택은 나를 한 대 제대로 칠 기세였다.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강소장!’’


옆에서 김피디가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항의조 말투였다.


나는 슬쩍 스테이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카메라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핸디 캠 하나는 아예 스테이지에 올라와 있었다.

스크립터 하나는 직업의식 때문인지 자기 핸폰으로 지금 이 혁명 상황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러냐고요, 강소장님?’’

‘‘내가 왜 이러냐고요?’’

‘‘예, 제가 방송 전에 이걸 주문한 게 아니었잖아요. 오히려 두 선생님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해 달라고 했는데 거꾸로 이렇게 강소장님 스스로 흥분해 버리시면 ......’’


김피디가 움찔하더니 돌연 말을 멈추었다.


‘‘강소장님! 지금 우시는 거예요?’’

‘‘ ...... 예.’’

‘‘아니, 왜, 왜요?’’

‘‘왜냐고요?’’


내가 옷소매로 얼굴을 쓰윽 크게 한 번 문질렀다.


‘‘예. 왜 갑자기 우세요?’’

‘‘서러워서요.’’

‘‘예?’’

‘‘서러워서 운다고요.’’

‘‘뭐가요?’’

‘‘뭐긴요. 이놈의 짜고 치는 세상이 너무 서러워서 그렇죠.’’

‘‘짜고 치는 세상? 아니, 아까 그 러시아 쿠데타 이야기 또 하시는 거예요? 그 러시아 쿠데타 그 이야기가 설령 팩트라고 해도 그거랑 강소장님 우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거에 대해 강소장님이 왜 서러워하시는 데요?’’


김피디가 내게 말하는 사이, 나는 나를 촬영하고 있는 핸디 캠을 슬쩍 노려보았다.

핸디 캠을 든 스태프가 움찔하며 카메라 방향을 돌렸다.

나는 그 스태프에게 괜찮다고, 계속 나를 찍으라고 손짓했다.


‘‘서럽지요. 제가 왜 서럽지 않겠어요. 나만 빼고 세상이 짜고 치고 있는데.’’

‘‘예에?’’

‘‘러시아 푸린이 저한테 안 알리고 쿠데타 계획을 짜고 치든 뭐든 그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중구난방 김피디님이 저한테 안 알리고 두 선생님들이랑 짜고 치는 거에 어떻게 제가 서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내 말에 김피디, 정원택, 김여중 세 사람 모두 얼어붙은 표정이 되었다.

마치 내가 아까 전 정원택 김여중 두 사람에게 인생 헛 살았다는 식의 막말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 그게 무, 무슨 소리에요?’’


잠시 얼어붙어 있던 김피디가 겨우 입을 떼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핸디캠을 들고 있는 스태프에게


‘‘저 지금 서러워 울고 있는 모습 줌 인으로 좀 간지나게 잡아주실래요?’’

‘‘예?’’

‘‘줌 인으로 잡고 잠시 클로즈 업 해주세요. 저도 최대한 오열해 볼게요, 자! 시작합니다 ...... 엉엉엉.’’


잠시 오열을 하고 나서 나는 이번에는 정원택 김여중 앞에 가 섰다.

그리고 여전히 핸디캠을 들고 있는 스태프에게


‘‘자! 이번에는 제가 두 선생님께 정중하게 사죄의 큰 절을 올릴 테니까요. 이번 것도 좀 각 좀 나오게 찍어주세요. 자! 그럼, 절 들어갑니다.’’


예고한 대로 정원택 김여중에게 큰 절을 올렸다.

하지만 일련의 나의 행동에 대해 좌중의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한 스태프는 혹시나 내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긴 게 아니냐는 듯 자기 머리에 대고 손가락을 돌려보는 포즈를 취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이 모든 일련의 행동들은 전적으로 기획된 행동이었다.

중간에 또 나타난 프롬프터 창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정교하게 기획된 행동.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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