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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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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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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12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6.18 01:34
조회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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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3쪽

42화

DUMMY

‘‘어머머머머! 정말이요?’’


이제는 한소라가 깜짝 놀랄 차례였다.


‘‘응, 정말이야, 소라씨.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그럼, 강소장님 대체 저와 이기자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지금 제가 이 밤중에 강소장님한테 전화하리라는 걸 예측하고 계셨던 거예요? 이 상황 되게 잼 있다, 호호호.’’


한소라가 확실히 취하긴 취한 기색이었다.

원래 대낮 맨 정신이었다면


‘‘저기, 강소장님. 아니, 남에 대해서 그렇게 멋대로 상상하시는 거 결례 아닌가요? 그것도 저와 이기자님 관계라니요?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죠?’’


정색 조로 그렇게 따지듯이 물었을 그녀다.

그런데


‘‘아까 이상병 어머니 심리까지 제대로 분석해 낸 강소장님이시니 이거 열라 기대되는 데요? 호호호.’’


나 역시 니 앞으로 반응이 기대된다.

그래도 최소한도의 안전장치는 필요로 한다.

언제 뻑이 날지 모르니까.


‘‘음, 그냥 있는 그대로 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

‘‘그럼요.’’

‘‘진짜로?’’

‘‘아이, 그럼요. 아니면 엄창! 호호호.’’


자가 패드립이라니.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안전은 보장된 듯싶다.


‘‘우선, 내 가설의 도입부는 두 사람이, 그러니까 서로에게 자유로운 영혼이자 자유로운 몸이고자 한다, 거기부터 출발하거든.’’

‘‘자유로운 영혼이자 자유로운 몸?’’

‘‘응. 하지만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공통분모가 있지.’’

‘‘그건 뭐죠?’’

‘‘...... 쾌락이라고나 할까? 영혼이든 몸이든 쾌락.’’

‘‘...... 아하! 아니 그냥 인조이하는 사이라고 하면 되지, 뭘 그렇게 돌려 말해요, 호호호.’’


얘야, 원래 정치라는 게 그런 거란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맛이 안 살지.

왜 정치를 언어의 예술이라고 하는지 아니?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은유하고 암시하고 돌려까고,

거기에 정치의 진미가 있는 법이거든.


‘‘호호호, 그러니까 나랑 이기자랑 인조이하는 사이였다고 치고요. 그 다음은요?’’


여기가 첫 번째 진입장벽이었는데 다행히도 무사히 넘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 언젠가부터 몸과 영혼의 쾌락을 공유하는 사이였는데, 사소한 일로 싸움이 일어나게 된 거야?’’

‘‘사소한 일? 어떤 일이요?’’

‘‘음 ...... 이것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해도 될까?’’

‘‘뭔데요? 괜찮아요.’’

‘‘이기자가 은근히 손이 작잖아. 지금까지 우리 같이 있는 동안 커피 한 잔 뽑아 온 적 없잖아.’’

‘‘호호호. 솔직히 좀 그렇긴 하죠. 집도 우리랑 다르게 강남 쪽에 살면서.’’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생각한 게, 두 사람이 데이트 중에 이현호가 돈을 너무 안 쓰는 거야. 아니, 돈을 안 쓴다기 보다, 돈은 쓰기는 쓰는데 자기 돈 쓰는 거를 엄청 아까워하면서 수시로 투덜대는 거야. 그런 스타일 있잖아. 허우대는 멀쩡한 데 은근히 찌질한 놈. 뭐 꼭 이기자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이기자 허우대가 멀쩡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지. 아무튼 그러다가 이기자가 하루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

‘‘예? 뭐라고요?’’


나는 잠시 고심했다.

아까 전 상상한 걸 그대로 이야기한다?

리스크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기회도 또한 적지 않다.

야심한 시각에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한소라.

그녀가 내게 이렇게 무방비 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이전과 달리 요즘 나에게 하루가 다르게 우호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니, 재미를 나만 봤나. 왜 맨날 대실료 계산을 내가 해야 되는데?’’


이현호 성대모사까지 시도해 봤지만 내가 봐도 별로 비슷하지는 않았다.

어투도 최대한 찌질하게 했지만, 실제 이현호는 언제나 당당한 척 하는 새끼라 별로 리얼리티도 안 산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


잠시 핸드폰 너머 침묵이 흘러나왔다.

제기랄, 괜히 업 되어 또 선을 넘어버린 건가?

인조이 커플까지는 거대담론으로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지만, 모텔을 같이 간 구체적 상황 묘사는 정녕 선을 넘어버린 것 같다.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라면 이 정도 드립도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성희롱으로 엮일 수 있다.


‘‘여, 여보세요 ...... 소라씨?’’


조심스럽게 핸드폰 너머 한소라를 불러보았다.

잠시 후


‘‘흐흐흐 ....... 흐흐흐.’’


그녀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막 지금 터져 나온 웃음소리가 아니라 거의 끝물인 웃음소리였다.


‘‘죄, 죄송해요. 너무 웃겨서 ...... 핸드폰 손으로 막고 방바닥 한참 굴렀네요, 호호호, 호호호.’’


휴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라씨!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줘요. 아까 그 프로파일러 분하고 방송 같이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동기부여가 되어서. 원래 이런 스토리는 또 이렇게 좀 야리꾸리한 요소가 들어가 줘야 맛이 좀 살기도 하잖아.’’

‘‘아이, 그럼요. 넘 재미있어요. 계속이요, 소장님.’’

‘‘아! 그래? 하하하. 아무튼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이 좀 다투게 되었지만, 밴댕이 속알딱지 이현호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소라씨의 하해와 같은 넓은 포용력 덕에 두 사람 갈등은 다시 봉합되게 되지. 그래서 오늘 내가 대기실에 막 들어섰을 때 두 사람이 그렇게 달달한 느낌을 주었던 거고.’’

‘‘아! 저랑 이기자님이 그랬었나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그래서요? 진짜 잼 있네.’’


그녀가 진짜로 흥미롭다는 듯 내 이야기를 계속 부추겼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나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얘 왜 이렇게 오버하는 거지?

아무리 술 취해서 그렇다 쳐도.


혹시 ....... 이거 연기 아니야?

그러니까 내 추측이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니까 괜히 지금 아닌 척 하면서 억지웃음 터뜨리며 연기하는 거?

실상은 지금 아킬레스 건 찔려서 몰래 고통스러운 표정 짓고 있으면서.


아! 이런 거는 프롬프터가 안 뜨나.

그러기에 너무 사사로운 건인가.


‘‘그런데 오늘 낮에 방송을 하면서 데이트 폭력 사건에 관해 두 사람 약간 의견대립이 있었잖아. 그 주제를 가지고 방송 끝나고 대기실에서 다시 또 토론을 벌이는데 이기자가 여전히 너무나 마초적인 사고방식에서 못 벗어나 있는 거야. 사실 이런 말 하면 마치 이간질 시키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나랑 이기자 단 둘이 있었을 때 이 문제에 관해 잠시 이야기해 본 적 있었거든. 근데 같은 남자가 봐도 너무 생각이 고루하더라고. 오히려 여자들이랑 있었으니 좀 덜 한 거지. 시의성이 중요한 기자가 그렇게 시대에 뒤떨어지면 안 되는데.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래서 소라씨가 이기자 의견에 반론을 좀 제기했겠지. 그랬더니 이기자가 노발대발하면서 어디 감히 여자 주제에 지아비한테 충고를 하고 말대꾸를 하고 그러냐, 원래 자기네 집은 대대로 삼일절에도 삼일한을 실천하는 ......’’

‘‘예? 삼일한이 뭐에요?’’

‘‘아이 소라씨, 삼일한도 몰라. 삼일에 한번 여자는 패야한다는 극악무도한 말이잖아.’’

‘‘푸하하하!’’


핸드폰 너머 그녀가 자지러지듯 웃어댔다.

이 웃음소리는 연기가 아닌 것 같은데.

진짜로 빵, 터진 것 같은데.


아! 진짜 갈수록 헷갈린다.

프롬프터야! 정말 잠깐이라도 특별출연해줄 수 없는 거니?


‘‘아무튼 그렇게 화가 잔뜩 난 이기자는 급기야 컵을 집어던지고 말았지. 삼일한을 실천하는 걔네 집안 내력 상 전혀 상상 못할 바는 아니겠지. 그래서 그 대기실에 핸드폰을 두고 갔던 내가 다시 찾으러 들어갔을 때 소라씨는 깨진 컵을 막 주워 담고 있었던 거고. 마치 두 사람의 불화를 상징하듯 하트 모양 문양이 양쪽으로 갈라진 그 컵 말이야.’’

‘‘아하! 맞아요, 아까 내가 컵 주워 담고 있었을 때 강소장님 들어왔었죠? 그건 기억난다. 호호호.’’

‘‘그리고 나서 내가 핸폰을 가지고 자리를 뜬 후 이어서 이기자도 그 대기실을 박차고 나가게 되지. 대기실에 혼자 남은 소라씨는 상실감에 슬픔에 젖어 오열을 하게 되고. 그날 저녁 위로 받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 술 한 잔을 하게 되지. 그 술자리에서 친구 하나가 오늘 소라씨 방송에 대해 이야기를 또 꺼내게 되지. 특히나 요즘 좀 핫한 나를 화제로 삼으면서, 하하하, 내 입으로 참 이런 말 하니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아무튼 오늘 낮에 내가 그 군인 살인 사건 가지고 또 한 건 했잖아. 뭐 그렇게 소라씨 친구가 내 이야기를 한참 하니까 ......’’

‘‘호호호, 호호호. 호호호, 호호호 ......’’


이번에는 그녀 웃음이 좀 길게 이어졌다.

이 부분이 뭐 그리 웃긴가?

내가 익살 부리는 적이 어디 한 두 번인가?

하며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는 사이


‘‘ ...... 흑흑흑, 흑흑흑, 흑흑흑, 흑흑흑 ......’’


그녀의 웃음소리가 어느새 흐느끼는 소리로 바뀌어져 갔다.


‘‘어, 어? 왜, 왜 그래요, 소라씨?’’

‘‘엉엉엉, 엉엉엉 .......’’


그녀의 소리가 아예 오열하는 소리로 바뀌어져갔다.


아이, 제기랄.

그 순간, 나는 뒤늦게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여자 마음은 프로파일링은커녕 프롬프터로도 정확히 알아맞힐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왜 그래요, 소라씨?’’

‘‘....... 강소장님!’’


한참 후 한소라가 겨우 감정을 추스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예, 혹시 내가 무슨 실수라도 .......’’

‘‘아, 아니에요. 너무 재미있게 잘 들었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

‘‘...... 강소장님!’’

‘‘으응?’’

‘‘호호호, 호호호 ......’’


한소라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나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 애써 힘겹게 억지로 인위적으로 웃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부터 제 버전으로 이야기해도 될까요?’’

‘‘뭘?’’

‘‘제가 강소장님한테 이 야심한 시각에 갑자기 전화를 걸게 된 이유 말이에요.’’

‘’응? 아! 그, 그래. 이야기 해 봐요.’’


영상 통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것이 그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우선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실 강소장님이 저와 이기자의 관계에 대해 프로파일링 하신 거요. 많은 부분이 틀려요.’’

‘‘아! 그야 그렇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그냥 프로파일러 분이랑 방송하고 나서 심심한 나머지, 근데 어떻게 다른데?’’

‘’우선 저는 이기자님과 지금까지 잠자리 가져 본 적 한 번도 없어요.’’

‘‘아! 그렇구나.’’


속으로 나는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쾌재를 불렀다.

그녀와 이기자가 꽁냥꽁냥거리고 있는 장면 볼 때마다 속으로 저 두년 놈 분명히 잤을 거야, 의심했던 순간들이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워졌다.


‘‘저 은근히 보수적이거든요.’’

‘‘으잉?’’

‘‘왜요? 강소장님 보기에도 안 그래 보여요?’’

‘‘응. 소라씨가 보수적이라고? 난 소라씨 지금까지 투표소 들어가면 진보당 쪽에 표 던지는 유권자인 줄 알았는데, 많이 의외네.’’

‘‘호호호, 호호호.’’


나의 시 덥지 않은 농담에 그녀가 빵, 터지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기자님이랑 잠시 썸을 타기는 탔어요. 거의 사귀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글쎄, 알고 보니 이기자님이 양다리시더라고요.’’

‘‘아이고야. 내 그 개새끼 그럴 줄, 음음. 아! 그래서?’’

‘‘그래서 내가 정리하라고. 그 전에는 절대 사귈 수 없다고. 그랬더니 그때 이기자님 하는 말이 바로 그거였어요. 아까 강소장님이 말한 거.’’

‘‘응? 내가 말한 뭐?’’

‘‘그 여자랑은 단순히 인조이 하는 사이라고. 섹스 파트너.’’

‘‘아하!’’

‘‘그래도 저는 안 된다고. 확실히 선을 긋기 전에는 사귈 수 없다고 그랬죠.’’

‘‘아니, 그야 당연하지. 아니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빨리 이야기 해 줘.’’


어느새 우리의 상황은 백팔십도 역전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소라가 내 이야기를 계속 재촉했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내가 그녀에게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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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화 +1 24.06.20 227 5 12쪽
44 43화 24.06.19 22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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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화 24.06.12 23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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