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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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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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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41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6.1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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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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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3화

DUMMY

한소라의 자기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과 이현호 그 새끼와의 관계에 관한.


‘‘그랬더니 이기자가 알겠다고, 바로 그 섹스 파트너랑 관계를 끊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당연히 믿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말로만 그렇게 하고 .....’’

‘‘아이고, 믿을 놈을 믿었어야지. 어디 그런 놈을. 아니 방송 그렇게 오래 같이 했으면서, 소라씨는 참나 ......’’

‘‘그러게 말이에요. 믿을 놈을 믿었어야 했는데.’’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데?’’

‘‘거짓말 한 게 저한테 걸리고 나서 자기도 양심에 찔려서 그런지 한동안은 저한테 더 이상 접근을 안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한 한 달 전부터 다시 또 저한테 사적으로 연락을 해 왔어요.’’

‘‘아니, 이번에는 단칼에 끊었어야지, 설마 이번에도 또......’’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너무 애걸복걸을 하는 거예요. 그 섹스 파트너랑도 관계 완전히 청산했다고 팔로우 끊은 것도 다 보여주고 하면서요.’’

‘‘아니, 그 새끼 그걸 믿어?’’

‘‘원래 이기자 완전 차도남 스타일이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너무 순정남 코스프레를 하니까 ......’’

‘‘아이고야.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만약 소라씨가 내 딸이었으면 바로 머리끄댕이 잡고 ......’’


흥분한 나머지 그만 오버를 좀 했다.


‘‘아! 미안. 내가 그만 순간 정신줄 놓고 .......’’

‘‘호호호. 아니에요. 이게 원래 오빠 매력이잖아요’’

‘‘으잉?’’

‘‘왜요?’’

‘‘아니, 소라씨 입에서 오빠라는 표현은 처음이라서 ......’’

‘‘호호호. 그러네요. 사실 이기자 차도남 못지않게 제가 한 차도녀 하긴 하죠.’’


농담이 아니었다.

한소라가 내게 오빠라는 표현을 쓴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나 이현호는 물론이거니와 더 격의 없는 최웅한테도 단 한 번도 오빠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피디든 작가든 항상 직위와 직분을 호칭 삼는 그녀였다.

더군다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소 닭 보듯 하던 나에게 오빠, 라니.


‘‘계속 이야기해 드릴까요, 오빠?’’

‘‘어, 어.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지?’’

‘‘그러게요. 어디까지였죠, 호호호.’’

‘‘하하하. 나도 까먹었네.’’

‘‘저도요, 호호호.


그녀와 내가 서로를 향해 이렇게 공감을 표하며 웃었던 적이 이전에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아! 그 이야기 했었죠? 이기자가 한두 달 전부터 다시 저한테 접근해서 사귀어 보자고 했다고.’’

‘’아! 맞아. 섹스 파트너랑 언팔까지 한 거 보여주면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진심인 것 같아서 며칠 전 결국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오늘 방송 전에 그렇게 달달한 분위기를 연출한 거고요. 근데 방송 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사람들 다 보내고 대기실에 남아서 무심코 같이 이기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그만 이기자한테 다른 섹스 파트너가 있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 그래서 소라씨가 순간 욱, 해서 컵을 ...... 아! 그 씹새 진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소라가 다시 또 울기 시작했다.


‘‘흑흑흑 ...... 흑흑흑 ...... 흑흑흑 ......’’


자신의 이야기가 다 끝이 나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래도 한 때 진하게 썸을 타던 남자에 대해 제 3자가 욕설을 한 것에 서러움을 느껴서인지.


어쨌든 그녀의 울음이 잠시 동안 이어졌고,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소장님!’’

‘‘응? 으, 응.’’

‘‘그만 끊을 게요.’’

‘‘뭐? 응?’’


갑자기 한소라 목소리가 방송 톤이 되었다.

지극히 사무적인 톤.

오빠였던 호칭도 다시 강소장님 원래 호칭으로 돌아왔다.


마치 지금까지 술에 취해서 술주정을 하다가

일순간 술에서 확 깬 사람처럼.


그런데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모든 산통이 깨어져 버린 느낌이 들었다.

한 여름 밤의 긴 꿈에서 깨어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여자 마음이 갈대라고 하지만

인간적으로 이건 갈대 수준이 아니지 않나.

거의 조울증 수준 아닌가.


‘‘밤늦게 괜히 전화해서 너무 죄송하고요. 한 가지 ......’’

‘‘엉? 뭐?’’

‘‘지금까지 저랑 했던 이야기는 그냥 강소장님 기억에서 깨끗이 다 지워주실래요?’’

‘‘으응? 왜?’’

‘‘아무튼 지워 주세요. 없던 일로 해 주세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강소장님?’’


정말 그녀는 술에 다 깬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면서 그녀와 급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방금 전 나의 생각은 정말로 한 여름 밤의 허무한 꿈이 되어 버렸다.


그녀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싶었지만

나의 프로파일링 능력으로는 한계가 너무 명확했고

그렇다고 프롬프터가 이런 경우 나올 리도 전무해 보이니.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 그래. 그러자.’’

‘‘그럼, 끊을게요, 강소장님.’’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그녀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게 뭐지?

말 그대로 사람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냐? 귀신이냐?


나는 잠시 우두망찰 멍을 때려야만 했다.

여자란 무엇일까?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가는 와중에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현실이 많이 쪽팔리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멍 때리다 이른 결론은

내 조악한 감식안으로 이 난맥상을 풀려들지 말고 차라리 누구한테 컨설팅을 받아보겠다는 아이디어였다.


솔직히 쪽팔릴 게 뭐 있나.

정치나 경제 분야 뿐 아니라 연애도 컨설팅을 하는 시대 아닌가.


그건 그렇고 누구한테?

전문 연애 컨설팅은 돈이 드니 망설여짐.


그렇다면 은희나 현숙이 같은 부랄친구 급 여자 사람 친구?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마음 편하게 친여동생 주화년?


지금 한소라가 내게 선보인 행동을 설명해주고

그 심리에 대해서 같은 여자로서의 조언을 구하는 것.

그래, 오늘은 이대로 한 숨 자고 내일 그러자.


어어?

그렇게 결론 내리고 멍 때리느라 향했던 허공에서 막 시선을 떼려고 하는 참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프롬프터 창이 슬그머니 또 모습을 드러냈다.


[이현호가 한 달 전부터 갑자기 한소라에게 다시 들이대기 시작한 이유. 한소라가 최근 강대구 소장의 전방위적 맹활약에 매력과 호감을 느끼는 걸 눈치 까고 질투와 조바심이 나서임. 지난 번 최웅한테 한소라가 강대구 소장 요즘 섹시해 보인다고 말한 것도 엄연한 팩트고. 이제 이해가 가냐? ㅉㅉ]


뭐, 뭐라고?

너 프롬프터 너 이 자식.

이번에는 아무리 봐도 낄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계속 참고 지켜보고만 있으려다가

하도 내가 한심해 보이니까 너 이 자식.


푸하하하하.



+++



중구난방 녹화 날.

그런데 오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강소장님. 오늘은 되도록 평상시보다 일찍 오셨으면 하네요.’’

‘‘예. 왜요?’’

‘‘공기가 심상치 않아서요.’’

‘‘공기가 심상치 않다라뇨?’’

‘‘저도 어제야 알았는데 김선생님 정선생님 극냉전 중이시라고 하네요.’’

‘‘아! 지난주 방송 때문에요?’’


알다시피 지난주 정원택과 김여중이 간만에 격렬한 설전을 펼치다가 결국 김여중이 테이블을 떠나는 불상사가 벌여졌다.

이후 정원택은 애꿎은 나한테 화풀이하면서 나 역시 유탄을 맞게 되었고.


잠시 후 밖에서 화해를 하고 돌아온 정원택과 김여중.

대신 김여중이 지나가는 농담처럼 정원택 격노한 부분을 편집하지 말고 그대로 내보내라고 말한다.

진짜 속내는 정원택의 성질머리를 부각시켜 보수 꼰대를 악마화 시키면서 이번 총선에 진보 진영의 조금이라도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는 의도.


프롬프터 창을 통해 그것을 간파한 내가 김피디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고,

김피디는 김피디대로 이런 장면을 살려야 시청률이 나올 테니 괜히 김여중 말을 따르는 척하며 진짜로 편집 없이 문제의 장면을 내보내겠다고 했다.

정원택도 겉으로는 아이, 나 욕 먹어 하며 투덜댔지만, 본인도 시청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결국 암묵적 동의를 한 후 다른 이보다 일찍 스튜디오를 나선다.


문제는 한 컷에 있었다.

김여중이 스튜디오에 나서기 전 김피디에게 아이디어 하나를 더 제시한다.

말다툼 와중에 정원택의 진짜 빌런스런 썩소 표정 하나가 있었는데, 그걸 꼭 살려야 이번 회차 화제성이 더 커질 거라고.


김피디는 그것 역시 김여중의 말을 고스란히 따랐다.

아니, 한 걸음 더 나갔다.

정원택의 그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잡아 강조했고, 컴퓨터 그래픽까지 동원해 배경을 마치 무슨 깡패 아지트인 것처럼 과장했고, 자막도 그 버릇 어디 남 주나 라는 식으로 악의적으로 단 것.


정원택이 특히나 화가 난 이유가 바로 그 클로즈 업 장면 때문이었다고 한다.

뒤늦게 그것이 애초 김여중 아이디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제작진 중 한 사람에게 엄청난 뒷담화를 했다고 한다.

또 그걸 전해들은 김여중은 김여중대로 방귀 뀐 놈이 성질낸다느니 어쩌니 하며 역시 뒷담화를 했고,

설상가상 그게 또 한 제작진의 입방정 때문에 정원택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아무튼 시사프로 만든다는 애들이 왜 이렇게들 보안의식이 없는지, 쯧쯧.’’


중간에서 입장이 난처해질 대로 난처해진 김피디.

결국 나에게도 사전 안전의식을 고취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덕분에 시청률도 많이 나오고 동영상 조회수도 엄청 잘 나왔는데. 두 분 프로의식이 좀 아쉽네요.’’


내가 약간 볼 멘 소리로 김피디에게 말했다.


‘‘정원택 선생님 입장은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죠. 그 장면으로 악플 엄청 받으셨으니까.’’

‘‘원래 자기는 악플 같은 거 신경 안 쓴다고 엄청 센 척 하시지 않으셨나요?’’

‘‘에이, 말씀만 그렇지. 정선생님도 사람인데. 인지상정이죠.’’

‘‘그래서 오늘 저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오늘은 강소장님이 주도적으로 토론을 이끌어 가셔야 할 것 같네요.’’

‘‘제가요?’’

‘‘예, 아무래도 두 분이 서로 말을 잘 섞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요. 이번 회차만큼은 강소장님이 마치 사회자인양 이 분에게 질문 던졌다가 저 분에게 질문 던졌다가 유도리 있게 잘 이끌어주셨으면 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예 ...... 뭐, 그래야죠.’’


내가 약간 떨떠름한 기색으로 답했다.

두 어르신들의 냉전 분위기 사이에 있어야 하는 것.

다들 이게 얼마나 고된 상황인지 알지 않는가.

유년 시절, 집에서 엄마 아빠 싸우게 된 분위기에서 언제 내가 애꿎은 희생양이 될까 싶어 끽소리 못하고 방 한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하는 상황과 거의 흡사한 상황이다.



+++



녹화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이 감지되었다.

평상시에 방송 시작 직전에야 도착하는 정원택은 늘 그렇다 쳐도, 김여중이 약속 시간을 아예 넘겨 나타난 것.

김여중이 지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라고들 하니, 괜히 정원택과 방송 전 인사말 나누기 싫어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이 거의 구십구 프로다.


‘‘저희 중구난방! 오늘도 또 금기 없는 토론의 장으로 들어서야겠죠? 하하하 .......’’


살얼음판에 내가 막 스케이트 한 발을 내딛었다.

과연 얼음이 깨지지 않고 잘 순항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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