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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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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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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36,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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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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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6화. 장천선

DUMMY

두오가 화들짝 놀라서 달려왔다.

차를 타고 왔어야 할 사람이 이렇게 걸어오니 당황한 모양이다.


“유송 양은 어쩌시고 걸어오십니까?”

“심부름시킬 게 있어서.”

“전화로 저한테 맡기셨으면···”

“됐어. 어차피 근처였고 사소한 일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손사래를 치고선 안으로 들어간다.


“좋은 일이신가 봅니다. 얼굴이 밝으십니다.”

“뭐, 그럴 수도 있고.”


평소처럼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평소처럼 안으로 들어가서 자기 방에 안착한다.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후로도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계속 조심하는 기색.

그다음에야 겨우 품에서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꺼낸다.


“장···, 천선.”


주민등록증.

잃어버렸던 신분을 확인하며 다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제 정말 아들로 함께 지낼 수 있었다.

어쩌면 여기 있던 모든 걸 놓아버리고.


“···아냐. 그래도 다 버릴 순 없지. 세상엔 역겨운 것들이 차고 넘치니까.”


그러다 미소는 사라지고 차가운 기운이 얼굴을 휘감았다.


“김예현이 사라지면 또 다른 교회로 갈 거야. 거기가 멀쩡할 거란 보장은 없고. 또, 피녹호가 없어지면 여러모로 잡음이 생기겠지. 교회까지.”


어머니는 죄책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

사이비는 그 틈을 파고들어 사람을 유신론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목사가 사라진다면?

당연히 부작용이 있으리라.

여러 변수를 고려한다면, 아예 예현이라는 신분까지 차지하는 편이 안전했다.


결론을 낸 녹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컴퓨터 앞에 앉은 거대한 몸.

그리고 이와 연결된 장비를 능숙하게 조작했다.

주민등록증에 새겨진 사진이 모니터에 뜨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마우스 딸깍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은 빠르게 움직였고, 화면에 나타난 얼굴은 부드럽게 움직인다.

틈틈이 연습이라도 했는지, 아마추어치고는 제법이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러던 중, 유송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님을 가게까지 모셔다드렸습니다.”

“잘했어. 아저씨가 딱히 질문은 안 했지?”

“예? 아, 네. 차고에서 바로 온 덕에 마주치지도 않았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하는 모양이네. 그럼 안심해도 되겠어.”


녹호는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더니, 다시 주민등록증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게는 알아서 꾸며놔. 이불이나 에어컨, 냉장고 새로 사주고. 낡은 물건 있으면 바꿔주고.”

“알겠습니다. 필요한 부분은 알아보고 고치겠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얘기하는데 아저씨랑은 상담하지 마. 함부로 흔적 남기지 말고, 혼자 고민해서 해결해.”


이내 주민등록증과 화면과 번갈아 보기 시작한다.

꼭 틀린 그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마 아직 의심하고 계십니까?”

“아니. 딱히.”

“그럼 숨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철저한 건 어느 순간이든 옳거든.”


시선은 여전히 화면과 주민등록증에 박아두고서, 대답을 이어갔다.


“안 숨기고 있다가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 아저씨가 내 약점을 여럿 찾은 후에는, 하나쯤은 터뜨려도 되거든. 그래도 내가 못 건드릴 테니까.”

“그걸 의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의심이 아니라 사실이지. 가능성은 없다고 하더라도 경우의 수는 생겨, 그럼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겼더라도, 확인은 해봐야지. 얼마나 번거롭고 머리 아픈 일이야?”

“음, 확실히 신뢰와는 별개로 그렇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만···.”


믿을 만한 사람을 믿는다고 다 잘 풀린다면, 오해라는 단어는 이 세상에 없겠지.

오히려 소홀히 처리하다가 믿음이 깨지는 경우도 많다.

그 순간이 되어서야 후회한다고 해도 늦었다.

사건은 이미 벌어지고 난 후일 테니까.


“그나저나 얼굴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유송은 문득 지금 모습에 대해 물었다.

하긴,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그럴 의문이 들 만도 했다.

녹호는 아까 전부터 계속 얼굴을 살피고 있었으니 말이다.


“꽤 잘생긴 얼굴이 아닙니까? 주민등록증 사진이 그 정도면 실제로 봤을 때는 상당히 미남일 듯합니다.”


다만, 의아한 일이기도 했다.

어디에 내놔도 모자랄 데 없는 외형이다.

피부가 멀끔해서 그런지, 절로 호감이 간다고 할까?

제대로 꾸미기만 한다면 눈길을 확 사로잡을 만한 미남이었다.


“맞아. 이 정도만 해도 상위권이라고 볼 수 있지. 아이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야.”

“예, 잘 속이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왜 고치는 중이십니까?”

“확실한 게 좋으니까.”


녹호는 다시 화면 속 사진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일단 그 사진 속 얼굴, 실존 인물이잖아?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외국인 노동자이지 않습니까?”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 여기서 인연도 만들었을 테고, 혹시 중국에 있던 가족 중 누군가가 여기서 찾고 있을지도 몰라.”

“아···.”

“미리 고쳐둘 필요가 있지.


‘여지 자체를 주지 않는다.’

그건 지금껏 지켜온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예민한 부분일수록 철저하게 행동했고, 그 덕에 위기라고 할 만한 일은 없었다.


“주민등록증이랑 번갈아서 보면 어떻게든 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도 분위기만큼은 전혀 딴판으로 만들어야 해.”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그뿐이라기엔 조금 과한 것 같습니다.”

“이 신분을 놀려둘 생각은 없어. 이왕이면 가장 유용해야지.”


도플갱어는 사진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고작 외형뿐인데 그런 게 있습니까?”

“가장 좋은 방향성은 있지. 피녹호, 김예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일 것. 이미지랑 어긋나는 일도 할 수 있도록 말이야.”

“아···.”

“어때? 이 정도가 딱 좋을 것 같은데.”


이내 만족한 듯이 의자를 젖혀 보였다.

유송은 고개를 내밀어 화면과 주민등록증을 확인했다.

언뜻 닮은 듯 보이지만 분위기만큼은 확연히 달랐다.

기존에 있던 얼굴 역시 꽤 잘생겼으며, 남성미라고 할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그 반면에 지금은···,


“···예. 정말 남자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예쁩니다.”


정반대 이미지.

그건 언뜻 여우가 떠오를 정도로 예쁜 남자였다.

유송이 당혹감을 표할 정도로 말이다.



***


방 한복판에 화이트보드가 생겨났다.

그 위에는 여러 가지 사진이 붙여 놓았다.

복잡하게 연결된 선이며, 여러 가지 시간과 글자는 꼭 범죄 계획을 짜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를 앞에 두고 설계하고 있는 사람이 녹호라서 더 그런 거겠지만.


“도련님, 말씀하신 대로 설치가 끝났습니다.”


그러던 중, 화이트보드 뒤편 넘어 두오가 나타났다.


“거기서 보고해.”

“예, 이곳으로 통하는 문에 따로 도어락을 설치했습니다. 비밀번호 다음에는 지문 인식까지 필요하니, 누구라도 허락 없이 들어올 순 없을 겁니다.”

“그리고?”

“리모컨도 준비했습니다. 저와 유송 양을 호출할 수 있으며, 잠금의 개폐도 가능합니다. 보안은 올리면서 편의성은 그대로일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사용인을 부를 수 있다?”

“예, 그렇습니다.”


아마 인영이 저번에 불쑥 들어온 일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제 누구든 함부로 들이칠 걱정은 없다.

설령 두오나 유송이라고 하더라도 허락을 맡아야만 들어올 수 있게 됐으니까.


“이제 가봐. 아, 문은 열어두고서 유송이 불러와. 해야 할 이야기가 있거든.”

“알겠습니다. 그럼 리모컨은 여기에 두겠습니다.”


다시 혼자가 된 녹호는 품을 뒤적거려 육포를 하나 찾는다.

그다음 사진 하나를 빤히 쳐다보며 검붉은 조각을 입에 넣는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 다.”


마침 유송이 나타났다.

변한 모습에 잠시 당황한 얼굴을 해 보이면서.


“문 닫고 그 리모컨을 가지고 와줄래요?”

“···예? 아, 예.”

“감사해요.”


가는 턱선, 얇고 부드러운 눈매, 은은하고 매력적인 미소.

여우를 닮은 남자가 리모컨을 받아들었다.


“그런 성격으로 정하신 겁니까?”

“네. 활동 범위는 늘리는 편이 좋으니까요.”


장천선.

예쁜 남자를 지향한 외모다.

더군다나 예의 바른 말투와 운율감 있는 목소리는 묘한 분위기를 주기도 했다.

정말 사람을 홀릴 것만 같은.

오죽했으면 유송도 잠시 멍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착한 일도 해야 하고요.”

“착한 일 말입니까?”


잠시 갸웃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머니와 헤어졌을 때, 그런 말을 들었지.

앞으로는 착하게 살라는.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천선은 다시 화이트보드에 시선을 박았다.

그리고 몇 가지 말을 중얼댔다.


“복수, 착한 일. 아니, 착하다는 개념이 도대체 어디까지지···.”


진심으로 고민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 내용에, 유송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입을 열었다.


“복수와 착한 일을 동시에 할 수가 있습니까?”

“네? 유송 씨도 정의 구현은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그야, 음···.”


복수나 정의 구현이나.

어감만 다를 뿐, 사실은 같은 말이다.


“관점이란 참 중요한 일이에요. 그래서 고민이기도 해요. 제가 보기엔 분명 잘못된 일인데 다들 말리는 사람은 없거든요.”

“아···, 혹시 어떤 일인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간단해요. 아동학대가 분명한데, 전부 모른 척하고 있거든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다니, 막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혹시 배테이 양 일입니까?”

“네. 물론, 비슷한 처지인 아이들도 많고요.”

“좋은 행동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아이는 어른이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선은 빙긋 웃어 보였다.

가느다란 미소는 홀릴 듯이 매력적이었다.


“역시, 그 수밖에 없겠죠?”



***


인영이 옆에 한 사람을 대동하고서 움직인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그리고 손에 묵직한 종이가방을 들고 있는 여자였다.

꼭 든든한 아군이라도 되는 듯한 모양새다.

그렇게 향한 곳은 카페, 사업이 계획된 장소이기도 했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 새하얀 풍경이 두 사람을 반겨준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인테리어는 여전히도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

아직 손님은 없는데도 직원 전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덕이다.

빌런이라고 부를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제대로 뽑은 인선이었다.


“다음 주 오픈입니다. 다들 메뉴 숙지 확인하겠습니···, 대표님?”


작가의말

피카레스크(악인물)는 생각보다 어렵네요.

다른 작품이었으면 벌써 100화는 쓰고 있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평소에 필력을 쌓아뒀어야 했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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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달란트 24.03.02 30 0 12쪽
64 64화. 탈출 +1 24.03.02 28 0 12쪽
63 63화. 테러리스트 24.02.29 25 0 12쪽
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24 0 12쪽
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8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30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8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8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7 0 12쪽
» 56화. 장천선 24.02.25 25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6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1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29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4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4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4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0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8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0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9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2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7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8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8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9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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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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