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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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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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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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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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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3화. 성범죄자 목사

DUMMY

지원자는 문신이 튀어나온 부분을 한 손으로 가렸다.

이미 들켰지만 뒤늦게야 숨기려는 모습이다.

녹호는 그 모습을 보고 큰 반응 없이 대꾸했다.


“맞아, 개성이지. 솔직히 멋있는 그림도 많다고 생각해. 느낌 있고, 색 뚜렷해 보여서 좋더라고.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그럼···”

“근데 여긴 흰색을 뽑는 자리라서.”


흰색.

어디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무채색이다.

동시에 바깥 인테리어에 주요하게 쓰인 색이기도 했다.

굳이 말하자면, 상징색이라고 할까?


“그건 차별 아닌가요?”

“문신으로 남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하고 하대하면 안 되겠지. 아니, 굳이 문신이 아니더라도 뭐든지.”

“네.”

“그런데 드러나는 특색이 이곳과 안 맞을 순 있는 거잖아? 장례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가면 안 되듯이, 그 타투라는 패션도 이 카페랑은 안 맞는다고.”

“······.”

“차라리 여기가 옷가게였다면 가산점이 됐을지도 모르지. 그런 업종은 유채색을 조화롭게 드러내는 곳이니까.”


이렇게까지 말하자 지원자도 납득하는 기색을 보였다.

무작정 우겨대지는 않을 모양이다.

정말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필요했을 뿐.


“···화내서 죄송합니다. 제가 까칠했어요. 흉터 때문에 한 문신인데, 오늘 아침에 모르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욕을 해서요.”

“차분한 성격은 좋네. 나중에 어울리는 자리가 생기면 만나자고.”


녹호가 인영을 돌아보았다.


“아, 면접비도 있나?”

“있어. 저기요, 기다리고 계시면 끝나고 챙겨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면접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갔다.

다른 사람도 곧 표정을 다잡았고, 인영과 녹호는 새롭게 질문을 짜내기 시작했다.



***


인파가 서울 한복판을 가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움직임을 힐끔 바라보기도 했다.

단체로 어디를 가는가 싶은지.


당연하게도 그 앞에는 예현이 이끌고 있었다.

이제 4월 중순인 만큼, 땅이 얼 만큼의 꽃샘추위도 없었다.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갈 하늘이다.


“도착했다네. 슬슬 다들 길이 익숙해진 것 같군. 혼자 오더라도 헤매지 않을 수 있겠지?”


새하얀 교회가 눈앞에 있다.

짧은 순례가 오늘도 끝이 난다.


“네, 다들 자주 오갔으니까요.”

“매번 같이 오기로 약속했어요. 혹시나 누가 갑자기 다치면 교회 식구끼리 알 수도 있게요.”

“모두 나의 가르침을 잘 따라주고 있구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겠어.”


보기 좋게 낡은 손이 교회 문 위로 올라갔다.

천천히 넓어지는 틈새.

그 사이로, 적지 않은 인파가 보인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선, 신도는 이렇게 끌고 온 사람이 전부일 텐데.


“아, 목사님!”


그 순간, 서주가 화색을 띠며 달려왔다.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한 명이었다.


“목사님께서 대단한 분이시라고 자랑해뒀어요!”

“그러니?”

“네,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요!”


다만, 문제가 있었다.

서주는 예현이 모든 걸 꿰뚫어 본다고 여기는 중이다.

사이비 목사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겠지만, 이렇게 곤란해질 수도 있는 사항이기도 했다.

그래서 저번에 예배에서도 한 번 언급했지.


“아버지께서는 가끔 내게 깜짝 선물을 내밀기도 하신단다.”

“그래요?”

“그럼. 그게 아니라도 기적이란 쉽게 내비칠 것이 아니지. 말하지 않았니?”


서주가 뒤늦게야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지난번에 했던 말을 떠올린 모양이다.

어쩌면 죄를 범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죄송···”

“자, 새롭게 온 형제자매들을 소개해줄 수 있겠니?”


예현이 사과가 나오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그건 현재 상황을 간파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생각해보자.

교회에 갑자기 찾아올 만한 사람, 그렇게 반응할 만한 신분, 우르르 몰려올 수 있는 사건.

여기에 서주가 기뻐하면서 다가왔지.

이 네 가지를 동시에 고려하면, 한 가지 상황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저 모두가 새롭게 온 신도라는 경우 말이다.


“···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추측을 곧바로 떠올리진 못했겠지.

멍하니 듣고 있었을 뿐.

그렇기에 예현이 어떻게 알았는지 놀랐을 테고, 신묘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어쩌면 진짜 기적을 부릴 수 있다고 믿게 될지도 몰랐다.


“원래 이곳 교회에 다니시던 분들이라고 해요.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서주가 안내라도 하듯이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예현과 다른 신도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계속 봐야 할지 모르는 사이인 만큼,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새로 오신 형제자매분들은 안녕하신가? 반갑다네.”

“아, 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는군. 혹여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가?”


그 말에 새롭게 온 신도들은 어수선하게 서로를 살폈다.

하지만 대부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한 명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목사님이 바뀐 게 확실한가요?”


이곳을 매각한 사람에게 집착한다니.

예현은 그 말을 잠자코 듣고선,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했었는가?”

“···네?”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네. 불미스러운 일 아닌가?”


뭔가 눈치를 챘고 지레짐작으로 짚어낸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무작정 내지르는 광기와 지성이 저 머릿속에 있었다.


“그게···, 소문이 났나요?”

“어린양들의 아우성을 어찌 아버지께서 모를까. 천상에서도 슬퍼하고 계신다네.”

“그걸 어떻게···.”

“누군가는 입을 닫으라 했겠지. 참으로 슬픈 일일세.”


인자한 미소에 지어낸 슬픔이 서린다.

머릿속에서는 빠르게 상황을 추측하고 결론을 내리고 있겠지.

완벽한 말을 내어놓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귀를 내리신 이유는 서로의 말을 들어주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찌 입을 막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건···.”

“설령 모두가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세상이 오더라도, 우리는 입으로 직접 대화를 해야 한다네. 그것이 존중이며, 사랑이고, 아버지께 표하는 예의이기 때문일세.”


다듬어진 언어가 진중한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당위성이 섞인 말이었고, 신을 근거로 내뱉는 진리였다.

예현이 신성을 증명하며 설명을 요구했다.


“부탁하건대, 이곳에서 아버지께서 눈물 흘리셨을 일을 말해주게나. 그래야만 우리 역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단 한 점의 망설임조차 없다.

또한, 경건하고 신뢰감이 물씬 풍기는 말이기도 했다.

스스로 죄를 용서받기 위해, 진실을 말하라니.

어떤 종교인이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질문을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망설이면서 주변 눈치를 살핀다.

말해도 될까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에 있던 목사님께서 범죄에 휘말리셨어요. 여신도를 성폭행하셨다고···.”

“그래서 입을 닫으라는 말을 들었는가?”

“네. 잠시 오해가 생겼을 뿐이라고. 그래서 당분간만 예배는 집에서 비대면으로 진행하자고 말씀을 하셨어요.”


아마 이전에 있었던 목사도 사이비나 다름없었겠지.

얼마나 확실하게 세뇌했으면, 어떻게 아직까지 공손한 표현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게 떠받들어지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선을 넘었고,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나 보다.

예현은 그 전말을 모두 듣고 또, 짐작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하던 중, 이 교회를 추천받았다네. 겉보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었지. 접근성도 뛰어나고.”

“네, 그렇죠.”

“이상하리만치 낮은 가격과 재촉이라도 하듯이 빠른 절차도 그랬다네. 꼭 더 묵혀두면 안 될 애물단지를 남에게 떠넘기듯이 말일세.”


애물단지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찰 조사 때문에 서를 들락날락하는 상황, 교회에 영향이 안 갈 리가 만무했다.

모일 때마다 그 일을 떠들 테고, 사건은 널리 퍼져갈 터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 아니겠나? 신도가 계속 줄어들 테니 말일세. 흔히들, 고점을 지난다고 하지.”

“고점···, 이라고요?”

“정리하려면 서둘러야 했을 걸세. 신도들에게 입단속을 해두고, 그 사이에 매각해야 했겠지. 혹여 더 값이 떨어지기 전에 말일세. 그게 목사가 바뀌는데, 인수인계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라네.”


소문이 퍼지기 전에 떠야 한다.

동시에 판매자가 알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만큼 목사가 바뀌게 되었노라, 원래 신도가 많이 다니고 있노라 말하지 못했다.

그저 건물값만 확실히 챙기고 떠났을 뿐.


“잠깐만요, 목사님께선 그러셨을 리가···!”

“괜찮다네. 원망하지 않아도.”

“···네?”


예현은 당황한 기색을 표하는 신도에게 다정히 얘기했다.


“당사자인 자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마음을 들여다본다고 한들, 겪지 않은 일을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건 오만이지.”

“······.”

“원망하고 싶지 않다면 그래도 된다네. 기억을 떠올리면서 생기는 상처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부정하려고 했던 신도가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을 보듬어주고 존중해주고 있으니.

다만,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


“그럼 원래 있던 목사는 저흴 배신한 건가요?”


누군가 그런 물음을 내뱉었다.

얼굴에는 분노가 서린 채로,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제대로 전후 사정도 말해주지 않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기 힘든 모양이다.


“그렇게도 볼 수 있을 걸세.”

“당신은 그걸 용서하라고 하신 거고요?”


‘너도 똑같은 사람이 아니냐?’

그걸 넘어, ‘공범인데 모르는 척하는 중 아닌가?’

이런 의심이 서렸을지도 모른다.


신도는 곧 돈이기 때문이다.

그냥 도망치기보다는 어떻게든 값을 받는 게 더 낫겠지.

타당한 의심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예현은 이번 힐난 역시 인자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원망하고 싶다면 원망해도 좋다네.”

“···뭐라고요?”


아까 했던 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었다.


“마음을 들여다본다고 한들, 겪지 않은 일을 어떻게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공감이라는 말은 기만일 뿐이지. 화를 내고 싶다면 얼마든지 쏟아내도 된다네.”

“아까는 용서하라고 하셨잖아요?”

“원한다면 그러라고 했을 뿐일세. 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미워하고 싶다면 미워해도 괜찮다네. 누구에게나 진통제는 필요한 법 아닌가? 설령 그 이름이 ‘분노’일지라도 말일세.”


기독교의 가르침과 상반된 듯이 들리기도 했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종교가, 그리고 목사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사이비라도 되는 대로 말을 뱉어선 안 된다.

아니, 사이비이기에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

권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을 사랑하는 선까지만 그렇게 하세.”


작가의말

사이비 목사 파트를 쓸 때는 ‘어? 이러면 나도 설득당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씁니다.

사이비가 별 건 아니죠.

성경 지맘대로 해석하고, 예수 참칭하면 사이비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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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달란트 24.03.02 3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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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8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31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8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8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7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25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7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2 0 11쪽
»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30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4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4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4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0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8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1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9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2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7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8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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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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