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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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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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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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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7화. 혁명 마렵네

DUMMY

“너무 먼 이야기 아냐?”

“그렇게 느껴지겠지. 그런데 그런 거 말고는 위험할 일이 없거든. 막말로 세상에 전염병이 휩쓸어도 요트나 섬 하나 빌려서 난교파티하고 놀면 그만이라서.”

“어우, 씨. 혁명 마렵네···.”

“어쨌거나 난 그런 위험한 취미에 관심 없어. 숫자놀이만 하면서 나대다간, 단두대에 첫 번째로 올라갈 테니까.”


인영은 그 말에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다.


“그럼 다른 재벌은 왜 그렇게 눈이 시뻘게져서 돈을 버는데? 자기 명줄 재촉하는 일이잖아?”


합당한 의문이었다.

꼭 확정된 멸망처럼 얘기하는데, 그럼 다른 사람도 여기에 대비해야 정상이다.

녹호 역시 맞는 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짧은 답을 내뱉었다.


“그야, 너무 먼 이야기 같으니까.”


방금 인영이 말했던 얘기였다.


“거기서 시작해서 사소한 이유로 갈리는 거지. 그냥 게임 레벨 업 하듯이 숫자를 늘리는 경우도 있고, 벌 수 있는 돈을 포기 못하는 인간도 있어.”

“미친놈들이네. 얌전하게 꿀 빨면 평생 가는데.”

“이해가 안 가? 너도 내가 얌전히 키워준다는 거 싫다고 했잖아?”

“···미친년이네. 얌전하게 꿀 빨 기회를, 내가 왜 찼지?”


녹호는 짧게 웃다가 표정을 굳혔다.

꼭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너무 먼 이야기 같아서 앞당기고 싶은 사람도 있어. 게으른 자살인 거지.”

“뭔, 미친. 그럼 곱게 죽지, 왜 다 같이 뒤지자고 그 짓을 해?”

“혼자 죽기 무서우니까. 또, 내 손으로 하기 겁나니까.”

“그딴 말을 뭘 그렇게 아련하게 해? 야, 혹시 그 사람이···”

“난 아니니까 안심해.”


아직 누린 시간이 짧다.

벌써 끝을 바라기엔 아니꼬운 면이 많았다.


“난 살아남을 준비를 하고 있거든.”

“살아남아? 아, 뒤지려고 난리 치는 재벌 속에서?”

“그래. 법인도 그래서 만들려는 거고.”


돈만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녹호는 그 벽을 깨부수길 원했다.


“힘이 있으면 그 지경이라도 생존할 수 있거든. 반대로, 없으면 엄청 꼬아. 뭐든 비효율의 극치를 달려야 하고.”


타인에게 휩쓸려 지하에 처박힌 존재.

타인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을 원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피해자보다는 가해자가 훨씬 속 편한 일이니까.


“비효율? 어쨌든 돈이면 된다는 소리 아냐?”

“체감이 달라. 예를 들어 이 건물, 여기는 쉽게 살 수 있었어. 그런데 1층에 괜찮은 카페가 있는 곳은 못 구하더라고. 그 탓에 이 짓거리를 해야 했고.”

“그럼 여긴 미끼라는 소리야?”

“그래, 맞아. 그 브랜드 가치를 돈으로 찍어누를 생각으로 만든 거야.”


압도적인 돈은 수십 년간 쌓아온 브랜드 가치를 한순간에 따라잡을 수 있다.

미친 듯이 퍼주면 될 테니까 말이지.

다만, 그건 너무나 무식한 짓이기도 했다.


“여기서 손해 보는 만큼 위쪽에서 벌충하면 돼.”

“위쪽도 다 네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 그런 의미에서 인영이, 네가 했던 얘기도 얼핏 맞겠네. 과감한 투자로 더 큰 수익을 노리는 중이니까.”


인영이 했던 말 역시 전부 정답이었다.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돈으로 돈을 벌려고 하니까.

다른 재벌이 그러듯이 녹호도 똑같은 일을 할 뿐이다.


“겉보기로는 그렇지. 그런데 실상은 반대잖아?”


인영은 영리하게도 숨겨진 목적을 한 번에 꿰뚫어 보았다.


“돈을 벌려고 사업하는 게 아니라, 사업을 위해서 돈을 연료로 쓰는 거지.”

“기억하고 있었네.”

“간신히.”


스쳐 지나가는 소리로 했던 말.

그건 핵심에 가까운 부분이었다.

인영은 용케도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략은 알겠어. 거기에 맞춰서 전술을 짜라는 거겠지. 그래서 하나 더 물어야 할 게 있어.”

“해 봐.”

“사업이라고 부를 거면, 형태는 갖춰야 해. 최소한 소꿉놀이는 벗어나야 유지할 수 있다고.”


큰 그림은 알려줬으니, 이제 전술가의 영역이다.

목표는 수익 창출에서 확장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부담은 덜었지만, 훨씬 바빠지겠지.


“월 매출··· 아니, 월 순이익을 얼마까지 내야 해?”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쓸 돈만 빼면 되나?”

“그래.”


중요한 건, 기준.

녹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15억.”

“아, 씨. 월 순이익 물었잖아.”

“그걸로 대답한 거야.”

“···뭐?”


인영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경제 관념이 없는가, 의심이라도 샘솟은 모양이다.

이 반응에, 녹호는 잠시 의아함을 보이다가 뒤늦게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앞에 기호를 안 붙였구나? 마이너스 15억이라고.”


이젠 인영이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녹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내 용돈 4분의 3, 그 정도는 적자 봐도 상관없어.”



***


저녁 시간.

식사실에서 녹호와 인영이 마주 앉았다.

오늘은 주제가 일식인지, 초밥이 음식 카트를 타고 식탁까지 왔다.

유송은 평소처럼 접시를 하나씩 두 사람 앞에 내려두기 시작했다.


“학교 다니면서 일하느라 바쁘다고 하지 않았나?”

“어, 왜?”

“그런데 왜 저녁은 같이 먹으려고 하는 거야? 정말 이해가 안 가네.”


녹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눈앞에 누군가가 있다면 식사하는 동안 긴장을 늦출 수 없을 테니까.

말 못 할 불편함을 참아야 했다.


“방에 음식 냄새 배잖아.”

“저번엔 컵라면 사 들고 들어갔잖아. 냄새 안 나게 뚜껑 닫고 빨대로 처드셨나?”

“아, 씨···. 컵라면은 발작 같은 거야. 불가항력이라니깐?”

“발작 환자면 병원 밥을 먹어야지, 왜 인스턴트에 손을 대?”

“환자는 맞는데, 병세가 중독증이야. 혈중 MSG 농도가 떨어지니까 손이 떨리더라.”


인영은 무슨 말을 듣든, 능청스럽게 받아냈다.

그 탓에 계속 쏟아지던 불평은 가벼운 투닥거림이 되고 말았다.

이런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다만, 녹호는 오히려 헛웃음을 흘렸다.


“역시 없이 살아서···”

“얌마!”

“목청은 있네.”


그냥 동갑내기 친구 같은 인상이 강했다.

호적상 나이 차이는 있겠지만, 둘 다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한 쪽이 갑자기 호칭 정리라도 한다면 인상을 찌푸릴지도 몰랐다.


“두 분은 꼭 가족 같으십니다.”


유송은 그릇을 내려두고 나서 말했다.


“한 지붕 아래에 사니, 식구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니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가요?”

“예, 보기 좋습니다. 가족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뜻으로 하는 말.

인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칭찬인데 화가 날 리 없었다.


다만, 녹호는 아니었다.

찰나에 스친 불쾌감이 있었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참지 않고 입에 담았다.


“가족이니 뭐니,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 없잖아. 피 섞인 것들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고 있을 텐데?”

“예? 그게···.”

“아니면, 아니까 그딴 소리를 지껄였나 봐? 다른 의도가 있어서?”


유송은 녹호를 불안해했다.

세상을 향한 악의가 가득한 만큼,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어떻게 해서든 말리고 싶어 했고 매번 태클을 걸어왔지.


이번 역시 그 연장선이었던 모양이다.

‘사람은 사랑을 하면 바뀌는 법이에요.’

이런 느낌이었겠지.


“얄팍하기는.”


분위기는 삽시간에 어색해졌다.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리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그저 따뜻하기만 할 단어가, 여기선 조심해야 할 주제였다.


“난 상관없어.”


그때, 인영이 입을 뗐다.

정말 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각자가 겪은 일 죄다 조심하면, 대화는 어떻게 나누고 인간관계는 어떻게 쌓아? 말도 안 되잖아, 그거.”

“그래?”

“어, 괜히 유난 안 떨려고. 미련 많아 보이잖아, 그거. 난 지금 후련한데 말이야.”


이모 일은 다 잊은 듯이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뭐, 억울한 점이 있다면 나만 과거를 오픈했다는 정도? 불공평한 건 싫어해서 말이야.”


녹호에게서 배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자식이 부모를 닮듯, 제자가 스승을 닮듯이 말이다.

다만, 본인 역시도 꼭 제 모습을 찾은 것처럼 지금이 더 편해 보였다.


“···형이 하나 있었어.”


그런 모습에 녹호도 운을 띄웠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장난으로 불평해본 거지, 진심은 아니거든.”


인영이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

다만, 녹호 역시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툭 내뱉었다.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그리고 너도 궁금하지 않아? 어떻게 이 미친 듯이 많은 돈이 회사도 없이 덜렁 있는지 말이야.”

“그건···.”

“집안 사정 때문에 그래.”


진짜 녹호에게 있었던 일.

그리고 도플갱어가 얽혀들었던 배경.


“부모님이랑 나, 형이 있었지. 아버지는 미국에서 알아주는 주식쟁이셨지.”


이야기가 시작됐다.

파탄으로 가는 비극이 늘 그렇듯, 처음엔 순탄하기만 했다.


“화목했고 다정했어. 배곯을 걱정도 없는데, 불안할 게 뭐가 있겠어? 그냥 하하호호 지내면 되는 거지.”

“유복했네? 재벌가는 뭔가 복잡할 줄 알았는데.”

“어, 단순해. 부자치고는 평범했고, 화목했지.”

“하긴, 행복에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진 않겠지.”

“그렇지. 그런데 불행에도 특별한 이유는 필요 없더라.”

“응?”


별일 아니라는 듯, 다음 말이 나왔다.


“형이 죽었어. 직접 본 건 아닌데, 교통사고래. 눈앞에서 죽었다나?”

“아···.”

“아버지는 반쯤 정신이 나가서 술로 전전하셨어. 미국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그대로 폐인이 됐지.”


부유한 집안이지만 평범했다.

행복하기 위해선, 이만한 조건도 없을 정도다.

하지만 비극 역시 흔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더없이 행복했기에 덧없이도 비참했다.


“정 못 버티겠는지 새장에 애완동물 한 마리를 들였지. 형의 이름을 붙여서 말이야.”


새장에 갇힌 애완동물이라.

그게 누굴 가리키는 말일지는 뻔했다.


“그러니까 버틸 만했는지, 다시 돌아오더라고. 일도 척척 해내고 말이야. 물론···, 애완동물이랑 노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가족도 뒷전이고?”

“맞아, 일 아니면 형이었지. 현실을 잊고 싶으면 애완동물한테 달려갔고, 망상에 숨이 막히면 회사로 도망쳤어. 한심하지?”


도플갱어는 내다 팔린 짐승이었다.

또한, 도피처이자 대체재였다.

세상은 겉모습이 전부이고 또, 영혼이었으니까.


“그런데 애완동물 대부분은 일찍 죽는 법이잖아. 특히, 새는 더 그렇지. 아버지는 결국 정신을 놓았고, 어머니도 못 참았어. 모든 게 다시 깨져버렸지.”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살얼음판.

역시나 끝은 다가왔다.


“그나마 처음엔 회사에 틀어박혀서 지내신 모양이던데, 오래는 못 갔어. 주식투자 일이 인간관계가 중요하거든.”

“···그렇지, 돈 불려주는 일이니까.”

“그런데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눈빛부터가 이상했는지, 큰 손도 잘 안 달라붙었대. 결국, 인맥도 다 끊기고서 자기 재산만 증식해나갔어. 실력만큼은 진짜였거든.”

“······.”

“그렇게 유산만 덜렁 남게 된 거야.”


작가의말

작가 중에 저만 이런 건 줄은 모르겠는데, 글을 쓰면 머리에 심하게 열이 납니다. 아이스팩을 목과 머리에 갖다대기는 하는데, 가끔씩 이래도 안 식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에, 텍스트 뭉치 아래에서 얽혀둔 장치가 많은 탓인 것 같습니다. 퇴고도 못한 글이 하루에 한 편이나마 나오면 다행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월화목금 주 4일 연재로 바꾸는 대신, 다음주까지 70화까지 비축분을 풀어볼까 합니다. 쌓아둔 것도 있고, 어찌저찌하다 보면 그 정도는 연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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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달란트 24.03.02 30 0 12쪽
64 64화. 탈출 +1 24.03.02 29 0 12쪽
63 63화. 테러리스트 24.02.29 25 0 12쪽
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24 0 12쪽
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8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30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8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8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7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25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7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2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29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4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4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4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0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8 1 12쪽
»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1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9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2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7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8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8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9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41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43 1 13쪽
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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