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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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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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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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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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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3화. 테러리스트

DUMMY

현묘는 그런 무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댁은 유독 큰 버러지시니까···. 아, 역시 존댓말로 지X 떠는 건 불편하네. 나중에 연습하든가 해야지, 나 원.”

“···네?”

“가운데 그 새끼만 놓고 꺼지라고. 죄다 태워 죽여버리기 전에.”


현묘··· 아니, 도플갱어가 신경질을 냈다.

짜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은 언뜻 녹호를 떠올리게 했다.

급조된 가면이 맞지 않는 탓이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교육청···”


화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

“사, 살려···!”

“꺼지라고 했을 텐데?”


도플갱어는 불길을 뿜어내면서 얘기했다.

제일 높은 인간은 두고, 나머지는 떠나가라고.

여기에 멈추지 않고 생수병 하나를 개봉하고서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이건···, 기름?”


중요 인물을 보좌하던 모두가 노란 액체를 뒤집어썼다.

그 말인즉슨, 작은 불길에도 타죽을 수 있다는 소리다.

건물에 불길이 더욱 거세진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


“이봐! 만약에 나를 버리고 가면 후회할···”

“죄, 죄송합니다! 저는 살고 싶어요···!”

“자, 잠깐···!”


유난히 창백하던 한 명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음박질쳤다.

간단한 위협이었는데, 상사를 버리고 도망가다니.

어쩌면 불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문제는 그렇게 도망치고 난 이후 분위기였다.

눈에 띄게 어수선한 기색이 사람들 사이에 흘렀다.

도주라는 선택지를 두 눈으로 확인한 탓이다.


“···남은 사람들,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마! 내일을 생각해!”

“······.”

“정신 차려! 돈 때문에 날 인질로 데려가려는 거야! 그런데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건 살기 위한 발악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효과는 있었다.

아직 도망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래 봬도 시간이 없어서.”


도플갱어는 태연히 말하며 손을 뻗었다.

아까 불을 뿜어내기 전에 하던 행동.

그 손바닥을 본 사람들은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으아아아아아···!”


화아아아아아악···!


불길이 다시 일직선으로 향했다.

쓰러지다시피 한 사람들 머리 위를 지나, 계단 유리창과 부딪힌다.


콰창창창···!


깨져나가는 파편, 귓가에 깔리는 화재경보음, 주변에서 더해가는 열기.

평범한 사람은 이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 한다.

오직 살고 싶다는 생각만 남게 된다.

그리고 이때 할 행동이란 하나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악···!”

“사람 살려···!”

“여, 여기 테러범이···!”


모두가 다급히 도망쳤다.

이 위험인물을 빙 둘러서,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깨달은 탓이다.


도플갱어를 그렇게 도망치는 인파 사이를 유유히 지나간다.

굳이 그 수많은 도주를 막지 않았다.

한 명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으아아, 억···!”

“넌 가면 안 되지, 자칭 ‘높으신 분’.”


처음부터 거슬렸던 한 사람.

기름 양동이 대신, 그 머리끄덩이를 잡고 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아아아아악···! 놔! 이거 놓으라고···!”

“아가리 안 닥쳐? 면상에 불 질러줘?”

“으읍···!”


꼭 벌레 죽이듯이 하는 말이다.

그만큼 진심이기도 할 터였다.

괜한 동정심을 품을 인간도 아니었으니까.


“으윽···!”

“여기가 옥상인가?”


눈앞에 철문이 나타났다.

기어이 머리끄덩이를 쥔 채로 가장 위층까지 올라왔다.

멈추지 않고 문고리를 잡았고, 열린 틈새는 넓어지며 바깥 풍경이 보인다.


“시뻘겋고 좋네.”


깊어진 저녁은 불꽃만큼이나 뜨거운 색감을 띄었다.

건물 안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물론, 공통점은 그뿐만이 아니겠지.


“밖은 또 시끌벅적하고.”


붉은 세상과 함께 요란하게 사방이 고함쳤다.

바깥과 안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다.

건물에서 나온 사람들, 불을 끄러 온 소방관, 그리고 경찰차가 북적였다.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인질 역시도 이 상황을 눈치챘는지, 목소리를 돋우며 화를 냈다.


“너 큰일 난 거야. 이제 불 꺼지면 경찰이 들이닥친다고! 아니, 벌써 저격수도 배치됐을 걸?”

“······.”

“어때? 겁나지? 지금이라도 싹싹 빌면 용서해줄까?”


실실 웃으면서 하는 협박.

도플갱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옥상 밖으로 시선을 던질 뿐이다.


“아아···! 테러범은 당장 인질을 풀어주고 체포에 응하십시오···!”


확성기를 거친 목소리가 이곳까지 올라온다.

밑에서 경찰이 고개를 들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도망칠 곳이란 한 군데도 없는 상황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당사자가 이에 내뱉는 대답이란, 매우 짧았다.


“쾅.”


영문 모를 한 음절.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찰나, 무슨 뜻인지 곧 알아챌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굉음이 울렸다.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이, 이런···!”


층 중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다시 한 번 소란이 일었고, 사람들은 상황 파악을 시작했다.


“저 위치는 여자 화장실이에요···!”

“소방관님! 불은···!”

“이미 인화성 물질을 잔뜩 쌓아둔 모양입니다! 당장은 더 불길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한계입니다···!”


관심이 닿지 않는 장소.

그런 곳에 불꽃을 배불리 하는 것들을 배치해뒀던 모양이다.

철저한 인간답게, 역시나 모든 준비를 해왔다.


이제 다음 시나리오에 들어섰겠지.

검은 외투를 벗어 던지고, 등에 걸친 백팩형 화염방사기를 내보였다.

손에는 어느새 확성기가 들려 있었다.

안주머니에 넣어두고선 여기까지 가져온 모양이다.


“괜히 제압 같은 헛짓거리는 생각하지 마. 그럼 진짜 돌이킬 수 없게 되거든.”


무감정한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서 퍼져나갔다.

그 순간,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제야 안 탓이다.

범인이 홧김에 저지른, 우발적 범죄 따위가 아니라고.


“이, 이유를 말하십시오!”

“글쎄. 누가 신생아실에 들어가더라고. 모가지를 성겅성겅 썰어버린다고.”

“···예?”


도플갱어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나온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화술을 겪어본 적 없는 탓에.


불가해가 지나간다.

침묵이라고 부르기엔 짧은 공백이 생겨났다.

그러는 사이 인질은 눈치를 보면서 움직였다.

물론, 우악스러운 손은 그 목덜미를 붙잡고선 난간으로 밀어붙이지만.


“어윽! 사, 살려···!”


겁에 질린 머리통이 난간 밖으로만 나왔다.

그건 보기만 해도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소방관만이 불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물만 뿌려댈 뿐이다.


“멈추십시오!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으로 일을 벌이신 건지!”

“······.”

“학생권 관련 사항 때문이 아닙니까! 저희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선다고, 일이 해결되진 않습니다···!”


저 멀리엔 아까 대화를 나눴던 교사가 있었다.

아마도 그 내용을 경찰에게 말해준 모양이다.


“이봐, 경찰 양반. 당신은 자기 자식이 학교폭력 피해자인 게 가슴 아프겠어, 아니면 가해자인 쪽이 괴롭겠어?”


학교폭력이라.

요즘 그 무게가 무거워진 단어였다.

그런 만큼 세상은 미성년자 범죄자에게 엄벌을 촉구하기도 했다.


“예? 그건···.”

“그게 망설여진다는 건, 알고 있다는 소리잖아. 가해자가 되는 건, 불행한 일이라는 걸 말이야.”

“···설마 가해자를 옹호하려는 겁니까?”

“안 돼?”

“당신은 선생님입니다···!”


들려오는 목소리엔 적의가 스민다.

방화까지 한 이유가 고작 가해자를 위한 일이냐는 어조다.


“왜? 가해자가 그렇게 좋은 일이야? 그럼 제 자식을 그렇게 키우지 그래?”


도플갱어는 당연하다는 듯이 긍정을 표했다.

사실 이 얼굴의 주인이 누구인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기가 책임을 질 필요도 없으니까 이러는 거겠지.


“그 뜻이 아니잖습니까! 죄를 지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부모가 잘못 키웠을 뿐이라도?”

“자기 손으로 저지른 죄입니다! 당연히···!”


그 말에 도플갱어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래. 너네가 신생아 목을 자르니까,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거야.”


도대체 무엇을 건드렸을까?

강렬한 분노가 저 안에서 느껴졌다.


“자기 손으로 저지른 죄? 정말 환경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그럼 방법은 간단하네. ‘막 태어난 애들 뇌 검사해서 안락사시키자.’ 그런 얘기지?”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 그래. 그게 아니라면, 따돌림당하는 애새끼들 옥상에서 뛰어내리든 말든 신경 안 쓰겠다는 말이겠지. 해결책은 떠오르지만, 자기 손은 더럽히기 싫으니까.”


천품과 환경.

하나는 타고나며, 또 다른 하나는 어른이 제공한다.

여기서 후자가 문제없다고 한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악인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른 존재라고.

만약 여기서 해결책을 묻는다면···,


“버러지 새끼들. 결국, 두 가지 다 하고 있지.”


도플갱어는 경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분노는 알겠습니다! 그러니 뜬구름 잡는 소리는 멈추시고, 요구 조건을 말씀해주십시오!”


경찰은 고개를 한 차례 흔들고서 소리쳤다.

합당한 일이기도 했다.

직책에 따른 행동이란 그런 법이니까.


“요구 조건이라···. 간단해. 자기 손으로 저지른 죄는 본인이 책임지자고.”

“아니, 방금은···.”

“무슨 연유에서든 자식 교육을 못 한 부모가 대가를 치러야지. 물론, 그 뒤에 있는 인간도 잡아야 할 거야. 못 살 만큼 세상을 팍팍하게 만들어서, 아이한테서 부모를 직장으로 빼돌린 인간도 말이야.”


도플갱어가 전에 그랬지.

신념이 있다면 존중하겠다고.

그러니 자기 차례가 왔을 때도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다 알면서도 입 다물고 쉬쉬했던 선생은 대가를 치러야지. 물론, 그 뒤에 있는 인간도 잡아야 할 거야. 젊었을 때는 촌지 받아 처먹다가, 늙어서 한 자리씩 해 먹고 있는 놈들 말이야.”

“잠깐, 그건···.”

“누가 어떻게 되든 관심도 없는 경찰은 대가를 치러야지. 물론, 그 뒤에 있는 인간도 잡아야 할 거야. 댁 뒤에서, 그런 직무 유기도 눈감아주고 라인 놀이를 해대는 돼지 새끼들도.”

“모함하지 마십시오!”

“법철학도 없는 판사도 대가를 치러야지. 교도소는 교화를 위한 장소라는 것도 잊고, 마지막까지 애를 방치했으니까.”


불길이 꾸역꾸역 기어 올라오는 건물.

이 위에서 도플갱어가 뜨겁고도 차갑게 지적했다.

아이들이 서로를 해치고, 죽이며, 자살하는 모든 것이 비겁한 어른들 탓이라고.


“자, 대가는 어떻게 치를래? 애들이 죽어 나간 일의 책임을 어떤 식으로 치르게 할 거지?”

“그건 억지입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을 어떻게 색출하라는 말입니까!”


냉소가 진해졌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사회지. 너희 모두 ‘항아리 밖의 손’이고.”

“그게 무슨···”

“일단 손모가지 하나는 여기 있네.”

“잠깐! 안 됩니다! 멈추십시오···!”


작가의말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데, 저는 딱히 오른쪽이나 왼쪽 같은 건 모릅니다.

그냥 방향은 내 앞입니다.

마침 교육청은 마음에 안 들어서요.

이 진심은 꾸준히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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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화. 테러리스트 24.02.29 17 0 12쪽
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18 0 12쪽
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1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24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1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0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4.02.25 19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18 0 11쪽
55 55화. 재회 24.02.24 19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17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21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24.02.23 17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0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17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22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2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25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4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24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3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1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0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1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4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37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38 1 13쪽
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0 1 12쪽
36 36화. 끊긴 필름 +1 24.02.05 42 1 13쪽
35 35화. 선물 무더기 +1 24.02.02 40 1 12쪽
34 34화. 인영이 주는 선물 +1 24.02.01 4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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