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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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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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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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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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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재회

DUMMY

포장된 음식은 옆 테이블 위에 두고서, 음식 그릇 하나만 유송 앞에 놓였다.


“최근에 알게 된 건데 아이한테는 함부로 안 하더라고요. 선택권이 없다고 했나?”

“아이요?”

“네. 그분이 한 말 중 하나가 ‘자기 신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아이한테는 뭔가 책임을 묻기 그렇다 보니, 봐주는 것 같아요.”


테이가 우연찮게 만들어낸 틈이다.

녹호 역시 변할 수 있고, 선행을 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어쩌면 이런 작은 조각이 모여 사람을 바꿀지도 모르지.


“제가 더 노력해봐야죠.”

“아가씨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걱정 많이 했는데.”


아주머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풀리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기색이다.

유송 역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걱정했다는 말이 이상했는지 잠시 컵을 빤히 쳐다본다.


“겨울에 슬러시가 잘 팔렸나요? 추워서 먹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은데.”


위화감이라도 들었을까?

갑자기 그런 의문을 꼬집는다.

확실히,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긴 했다.


기계는 전기를 먹는다.

그게 아니라도 음료수를 계속 부어야 하고 통도 세척해야 한다.

수익은 안 나면서 시간과 돈을 잡아먹는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꾸준히 슬러시를 팔아왔다니···.


“그···, 아들이 있었어요.”


역시나 이유가 있었다.

망설이는 입술에서, 도플갱어가 얽혀있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이체질이었죠. 길거리에서 뭘 함부로 못 먹였어요. 떡볶이를 보면서 눈을 빛내는데 떼쓰지 말라고 해야 했죠.”

“아···.”

“지금 제가 생각해봐도 참 심했어요. 겉모습만 예닐곱 살이지, 속은 고작···. 어찌 됐든 그게 너무 한이 되더라고요.”

“···그런가요.”

“네. 그래도 딱 하나, 먹일 수 있는 게 있었어요. 슬러시요. 그 작은 컵 하나 쥐여주고 길거리를 다니면, 그렇게 행복해하더라고요.”


아주머니가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도플갱어의 어머니 역시 마냥 괜찮은 시간을 보내오진 않았다.

아무리 괴물 같아도 제 자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저 어쩔 수 없어서 참고 살아왔을 뿐이다.


“저기요, 아가씨.”


주름진 손이 유송을 붙잡았다.

초라한 몸짓이기에 간절한 마음이 더욱 잘 드러났다.


“사람이 잘못을 하는 이유는 못 배워서 그래요. 누구나 잘하려고는 하는데, 다들 그게 잘 안 되는 법이잖아요.”

“······.”

“그건 못 가르친 부모 탓이니까···, 염치도 없는 부모 탓이니까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알았죠?”


슬러시.

이 차가운 음료수가 연결고리였다.

만약 살아있다면, 그리고 얼굴이나마 보고 싶다면 찾아오라고.

슬러시 한 잔만 시켜놓고 얼마든지 앉아있어도 되니까 언제든 찾아만 와달라고.

녹호가 처음 온 날부터 그렇게 말하고 싶었겠지.


“아휴, 내가 너무 붙잡았네요. 얼른 먹고 가봐요.”

“······.”

“아, 손님도 왔네···요?”


둘만 있던 공간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여자.

하지만 그 얼굴은 굉장히 익숙했다.

심지어 지금도 아주머니 앞에 앉아있었으니까.


“아주머니, 오랜만이에요. 요새 바빠서 통 못 왔어요.”

“···아가씨?”

“네, 다른 손님도 계셨네요?”


아주머니는 당황한 기색을 표했고, 공기는 답답할 정도로 어수선했다.

새롭게 들어온 유송이 뒤늦게야 분위기를 눈치채고선, 시선을 앉아있는 손님에게로 던졌다.

유리창에 옅게 비친 잔영은 분명···.


“···아, 말 안 했죠? 저 쌍둥이라서요.”

“그, 그렇죠?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고요.”


둘러대듯이 지나가는 말들.

그러는 사이, 앉아있던 유송이 손을 움직였다.

두 눈으로는 아주머니를 바라본 채 떡볶이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러자 변화가 시작됐다.

아름다웠던 얼굴에는 주름이 잡혔다.

머리카락은 푸석해지고 새하얀 새치가 듬성듬성 돋아났다.

그 모습은 분명···,


“엄마, 나야.”


아주머니가 거울처럼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


탄성 같은 단말마를 내뱉었다.

거울처럼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덜덜 떨면서 바라보았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그 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내가 미안해···. 염치가 없어서···.”


차마 만지지는 못했다.

그러다 깨지기라도 할까, 손끝도 건드리지 못했다.

너무나 애달파서 함부로 할 수도 없는 것, 그게 부모 마음이었다.


“이 모습 보이면 안 되는데. 계속 장사할 거야?”

“···아니! 문 닫을게! 그럼, 문 닫아야지!”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는 다급하게 일어섰다.

아들과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십여 년은 더 기다려왔던 순간이다.

어머니는 이 기회를 어떤 식으로든 망칠 수는 없었다.



***


분식집 안쪽.

여긴 아주머니가 지내는 공간이었다.

그 모습은 서주와 인영이 함께 살았던 집이 떠오른다.

시골에 오래된 집이 그렇듯, 많은 것이 옛날 물건이었다.


그런 공간에 유송과 아주머니가 마주 보고 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였다.

하긴, 드디어 통성명하게 된 아들이니 멍할 수밖에 없겠지.

이 와중에 화장실에선 거대한 몸체가 나왔다.


“급하게 산 옷이라, 영 불편하네.”


녹호였다.

평소와 달리, 셔츠는 몸에 꽉 끼었고 바지는 몸뻬를 입고 있다.

꼭 농촌 활동이라도 온 모양새였다.


“어째 맞는 옷이 이것뿐이야?”


역시나 마음에 드는 기색은 아니었다.

이게 이상한 복장이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잘 어울리십니다.”

“유송아, 말 함부로 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죄송합니다.”


무슨 뜻인지 뻔했다.

몸뻬를 입고 출퇴근하고 싶냐는 말이겠지.


“아들···, 이라고 불러도 돼···, 요?”


아주머니는 아주 조심스럽게 녹호를 대했다.

너무나 멀었던 시간이 새삼 코앞까지 다가온 기분이겠지.

더군다나 죄의식도 가지고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힘든데?”

“아···.”

“다른 사람한테 걸리지 않아야 해. 뭐, 조심한다고 약속하면 허락해줄 수 있지만.”

“조심할게! 그러니까 아들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


녹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내 아들···.”


아주머니가 다시 울음보를 터뜨렸다.


“눈앞에 두고서도 말 못 했어···. 너무 염치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못 걸었어···.”

“···괜찮아. 나도 똑같으니까.”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녹호가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다짐을 했는지, 떨리는 몸으로 제 어머니의 어깨를 다독였다.

어색하지만 마냥 싫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렇게 다독거리길 한참.

진정된 기색을 보이자 녹호가 장난처럼 입을 열었다.

평소의 모습과 함께, 어딘가 너그러운 기색이 섞인 모양새였다.


“계속 이렇게 있을 거야?”


그 말에 아주머니도 몸을 바로 세웠다.

계속 추태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 내 정신 좀 봐.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보여줄 것도 있으니까.”

“보여줄 거?”

“응.”


겨우 진정하고서 녹호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리고 구석으로 가서 신줏단지 모시듯이 꽁꽁 싸매둔 봉투를 내밀었다.


“엄마가 다 준비해뒀어. 네가 원할 때 언제든 돌아올 수 있게.”

“무슨 소리야? 벌써 돌아왔잖아?”

“아니, 진짜 아들로 지낼 수 있게···.”


채 말을 끝마치지 않았다.

그 대신 봉투 안에 든 문서를 꺼내서 그 앞으로 내밀었다.


“호적을 어떻게든 살려놨어.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안 되니까.”


녹호가 무슨 말인가 싶어서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놀란 눈빛으로 내용물을 살폈다.

안에 든 건, 다름 아닌 주민등록증과 통장이었다.

제 어머니가 한 말대로라면,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을 터인.


“어떻게···.”

“식당엔 외국인 노동자도 많이 오니까. 중국인 불법 체류자한테 부탁했어. 어떻게 안 되겠냐고. 다행히 그쪽도 좋다고 하더라고.”

“······.”

“그런데 얼마 안 지나서 사고가 있어서···. 아들은 신경 쓰지 마. 그냥 엄마만 믿고 편하게 쓰면 돼.”


듣는 둥 마는 둥 서류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의아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집중력이다.

그러다 띄엄띄엄 뭔가를 소리 내어 읽는다.


“장···, 천선?”


가게의 이름, 천선 분식.


“맞아. 내 아들, ‘천선’. ‘하늘이 내린 선물’.”


그건 다름 아닌 도플갱어의 진짜 이름이었다.


“그래서 여기 이름이···.”

“당연하지. 너는 내 자랑이었으니까.”


자식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거는 일.

부모가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자식을 내보일 때나 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어미에게 천선은 단 한 번도 숨기고 싶었던 적 없는, 자랑하고픈 아들이었다.



***


승용차가 저택으로 향했다.

당연히 녹호가 타고 있을 차량이겠지.

다만, 평소와 달리 골목에서 더 들어가지 않고선 멈춰 선다.


“저기가 지금 사는 곳이라고?”


다름 아닌 뒷좌석에 같이 타고 있는 사람 때문이다.


“응. 어쩌다 보니.”

“그래도 다행이네. 그나마 팔려 간 곳에서 홀대는 안 받았다니.”

“······.”

“그럼 거기서 아들 노릇을 하면서 지낸 거야?”

“맞아.”


녹호는 크게 내색지 않고 좌석에서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들이밀고선, 제 어머니에게 의견을 묻는다.


“정말 같이 안 갈 거야? 그냥 고용인이라고 얼버무리면 같이 살 수 있어. 물론, 그렇게 계속 아무 사이도 아닌 척해야겠지만.”

“엄마는 괜찮아. 그냥 계속 가게에서 지낼게.”


함께 살기로 한 건 아닌 모양이다.

확실히 그건 여러모로 잡음이 있겠지.

표면상 아무 사이도 아니니 행동거지도 조심해야 할 터였다.

혹여 방심하다간 다른 사용인이나 인영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니까.


“고집은···.”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아직 가게에서 지내는 게 편해.”

“뭐, 생각 바뀌면 말해.”


이제 뒤돌아서려던 녹호.

아주머니는 그 전에 커다란 두 손을 붙들었다.


“아들도 이제는 착하게 살아. 알았지?”


눈동자가 서로 마주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이 스쳐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의심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형편 좋은 그곳에서 편하게 살다가 몇십 년이나 지나서야 몰래 어머니를 확인한다니.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어쩌면 말 못할 일이 있었다고,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응, 알겠어.”


하지만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눈을 바라보면서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알았어. 착한 일 해볼게.”

“그래, 엄마도 우리 아들 믿어.”


낡은 손이 어깨를 두드렸다.

자그마한 격려였다.


“유송아.”


녹호가 몸을 일으킨 뒤, 뒷좌석 문을 닫았다.

그리고 운전석 유리를 두드렸다.


“예, 녹호씨.”

“잘 모셔드리고 와. 그리고 끝나면 누구도 거치지 말고 곧장 보고하러 오고.”

“네? 음, 알겠습니다.”


내려간 창문 틈으로 짧게 지시하고선 발길을 옮겼다.

성큼성큼 저택을 향해서.

역시나 보폭이 큰 덕에 초인종을 누르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야, 문 열어.”


작가의말

아아, 어무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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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0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4.02.25 18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16 0 11쪽
» 55화. 재회 24.02.24 18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15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19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24.02.23 17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18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17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22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1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25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4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24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32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1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0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1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4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36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37 1 13쪽
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0 1 12쪽
36 36화. 끊긴 필름 +1 24.02.05 42 1 13쪽
35 35화. 선물 무더기 +1 24.02.02 40 1 12쪽
34 34화. 인영이 주는 선물 +1 24.02.01 4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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