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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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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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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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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4화. 여고 앞

DUMMY

“저번에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세상 사람은 죄다 방관자라고. 그러니까 응징당해도 된다고.”

“그랬지.”

“정말 그렇게 하실 생각입니까? 사이비를 퍼뜨리고 권력을 휘어잡고?”


유송이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나눴던 대화가 못내 불안했던 모양이다.


“문제 있어? 다들 원하잖아?”

“그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많아. 그러니까 이렇게 살고 있지.”

“모두가 원하는 삶을 누르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불만족스러운 인생이 많습니다.”

“그럼 어떻게 살고 싶어들 하는데?”


귀찮다는 듯이 내뱉는 말.

대답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간 폭급한 분노가 쏟아질 터였다.


“흔히들 말하지 않습니까, 권선징악이라고. 다들 정의롭고 깨끗한 세상에서 살길 바랍니다. 녹호 씨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내가?”

“예.”


그렇게 말한 후 가지고 있던 종이봉투를 내민다.


“선배님께 받아둔 서류입니다.”

“지금 내미는 걸 보니, 뭔지 아나 보네?”

“대충 짐작하고 있습니다. 친아버지를 찾으시는 것 아닙니까.”


도플갱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원흉.

20년이 지난 지금, 잊지 않고 추적을 지시했다.


“부당한 일을 당해서 분노하신 것은 이해합니다. 복수심 역시 납득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정의롭지 않은 세상을 미워하니 말입니다.”


그 말에 녹호는 입을 가리면서 대꾸했다.


“···계속 말해봐.”

“사이비만큼은 참아주십시오. 그건 정말 아닙니다.”

“······.”

“그럼 신도들도 똑같은 일을 겪고 맙니다. 똑같이 녹호 씨를 원망하고 증오하다가 복수를 결심하고 말 겁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입을 막고 있던 커다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고개가 살짝 숙이고 차마 참지 못한 숨이 툭 튀어나온다.


“···푸흡.”


웃음소리.

유송이 바라지 않은 반응이었다.

결연한 얼굴은 당혹감에 금이 가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녹호는 배를 움켜쥐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비꼬거나 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웃음이 울려퍼졌다.

정말 재밌는 이야길 들었다는 듯이.


“크흐흐흐흑···! 아, 간만에 크게 웃었네. 후우···.”


한참을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제 다시 대화가 시작될 시간이다.


“야, 누가 복수를 정의 사회 구현하려고 하는 줄 알아? 그냥 X 같은 새끼 죽이고 싶으니까 일 벌리는 거지.”


사나운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너는 정당한 복수가 있다고 생각하냐?”

“당연히···”

“아, 그래, 그래. 맞아, 존재하지. 그렇다고 해줘야지.”


그 말은 꼭 정당한 복수는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니까 존중해주고 있잖아? 너희들의 천국 말이야.”


천국이라.

아까부터 비슷한 말을 했지.

모두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고.


“남을 괴롭히면서 어떻게 그게 천국입니까?”

“권선징악. 말했잖아, 어차피 다들 방관잔데 몇 명 조지든 말든 뭐가 문제야? ‘징악’이잖아?”

“그게 너무 가혹하다는···”

“그렇지, 억울할 거야. 자기 자신은 그렇게 불쌍하고 착한 존재니까, 남들도 내 의견에 따라야지. ‘권선’이라고 부를 만해. 그렇지?”


녹호는 짧게 비웃음을 흘렸다.


“나는 억울하고 남은 당할 만하고. 다들 그렇게 권선징악 속에서 살고 있잖아? 그럼 그게 천국이지, 아니면 뭐야?”


유송은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한 눈빛이다.

상식에서 벗어난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 어떻게 그게 천국일 수가 있습니까?”

“멍청하기는. 이 정도도 이해 못 해?”

“···예, 멍청하니까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녹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 아버지란 작자도 지 나름대로는 억울하다는 소리야.”


그 말에 유송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식을 버린 인간이 억울할 리가 없잖습니까?”

“남한테 가혹한 자세, 참 좋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 억울해하면서 들어 봐. 불쌍하고 착한 네가 그렇게나 듣고 싶었던 설명이잖아?”


비꼬는 건지 진심인 건지, 느긋이 말을 이었다.


“내가 태어났어. 그럼 아버지한테 아내가 뭘로 보이겠어? 마녀, 악마, 괴물···. 뭐, 그딴 거 아니겠어?”

“너무 말이 심하십니다.”


자신을 편들어주는 말.

하지만 그마저도 비웃고 말았다.


“그래? 너 같으면 평소처럼 살 수 있겠어? 아내랑 계속 살 비비면서 지낼 수 있겠냐고.”

“그건···.”


유송이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럽게 태어난 도플갱어와 그걸 낳은 아내라.

못해도 귀신 들린 인간쯤으로 느껴질 터였다.

같이 있다간 옮을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악마를 처리하긴 했어야지. 마침 적당한 때도 왔고.”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어떻게 자식을 팔아넘깁니까?”

“팔아넘기다니? 돈을 준다기에 겸사겸사 받은 거지.”

“그게 겸사겸사가 됩니까?”

“그럼 넌 받지 말든가.”

“예, 차마 못 받을 것 같습니다.”


녹호는 그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그래, 넌 절대 돈에 존엄성을 팔지 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거든. 돈에 인생을 팔고, 범죄를 방조하고 시체 유기까지 돕는 미친년을 말이야.”


유송은 그제야 표정을 굳히고 만다.


“어마어마한 쌍년이지?”

“저는···”

“아, 참고로 걔도 자기는 억울하다고 말할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자기 이야기를 이어붙이자 뭐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내 아버지라는 인간도 비슷할 걸? 웬 마녀한테 속아서 인생을 낭비한 피해자잖아?”

“피해자···, 입니까?”

“맞지, 피해자.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거잖아.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맞는 말이다.

그 일은 당사자에게도 비극이었다.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 사고는 모든 것을 망치고 말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는 없었고, 추억마저 더럽혀졌다.


“이제라도 새 출발을 해야지. 악마랑 마녀한테서 탈출해서.”

“그렇다고 해도 인신매매는 아니지 않습니까?”

“목적은 돈이 아니라 악마를 처리하는 거였지. 마침 원하던 사람도 있고 부잣집에 보내는 거니, 어련히 잘 풀릴까 싶었을 거야. 그래도 낳은 사람으로서 마지막 도리는 했다···, 이렇게 생각했으려나?”

“적어도 배는 곯지 않을 테니···.”

“맞아. 그런데 주는 돈을 거부하는 것도 바보짓이지. 아내였던 정을 생각해서, 위자료는 내줘야 할 테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당사자 입장을 추측한 얘기.

작은 머리도 곧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녹호는 의외로 제 아버지의 사정을 납득하고 있었다.

감정을 내려놓은 채 상황을 봤고, 옛날 사람에겐 당연했을 행동이라고 여겼다.

누그러진 분위기에, 유송도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녹호 씨는 아버님을 용서하실 생각이십니까?”


노란 머리카락이 홱 돌아갔다.


“아니? 내가 미쳤어?”

“예? 방금은···.”

“이 빡대가리는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사나움과 황당함이 그 얼굴에 공존했다.


“말했잖아, X 같으니까 복수하는 거라고. 정당하고 말고는 관심도 없어.”


녹호는 애당초 악인을 자칭하고 다녔다.

그래서 처음부터 말했지.

정당한 복수는 없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돌려주는 것뿐이라고.

당연히 도덕성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오해가 있었을 뿐, 나쁜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아, 그래. 이제 그쪽에 이입했구나?”


유송이 당황해서 요점을 잡지 못했다.

비웃음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 흘러나왔다.


“맞아. 아내가 악마를 낳았으니까 해야 할 일이었지. 마누라든 자식새끼든, 맞아 죽어도 싸지.”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그런데 자식이 돌아와서 복수하겠다니 얼마나 억울하겠어? 알고 보면 자기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 말이야.”


작은 입술이 닫혔다.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이해가 가는데 이런 비극이라니.


“남은 조져야 하고, 나는 억울해야 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그게 마음 편하거든.”

“···그래서 ‘천국’이라는 말입니까?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말입니까?”

“좋을 대로 생각해.”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던 사람을 진짜 악인과 엮는 건 과한 처사 아닙니까? 평범한 사람이 한 실수를 그렇게 힐난하는 건 잔혹하지 않습니까?”


유송이 계속 틈을 파고 들었다.

어쨌든 간에 도플갱어는 아버지의 사정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적어도 대화할 기회는 주셔도 괜찮을 겁니다. 만약 그런데도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다닌다면, 그때 포기하셔도 되잖습니까?”

“그래, 갑자기 괴롭히면 억울하겠지?”

“예, 그렇습니다.”


녹호는 다시 한 번 코웃음 쳤다.

커다란 손이 종이봉투를 열었다.


“그럼 그렇게 억울해하면서 살아. 나는 변명할 기회도 없었지만, 너넨 나불대야지.”

“아니, 그게···.”


서류를 꺼내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대화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보였다.


“그냥 우린 서로 처죽이면서 지내자고. 늘 그랬듯이 말이야.”



***


검은색 승용차가 여고 앞에 멈췄다.

곧 창문이 내려갔고, 사나운 미소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우리 아버지, 계 탔네? 여고생한테 둘러싸여서, 선생님 소리까지 듣고 사네?”


녹호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비아냥댔다.

저 안에 친아버지가 있었다.

심지어 선생님 직함까지 달고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유송 역시 좋지 않은 표정으로 중얼댔다.


“그래도 자기 자식을 팔아먹고선, 선생님 노릇을 하기는 좀···.”

“반대겠지. 선생으로 일하다가 사건이 터진 거야. 뭐, 이미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울 수도 없었을 테고.”


녹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정말 괜찮···. 아니, 복수는 하시니···.”


비웃음을 흘리던 입은 곧 침묵을 지켰다.

이내 고민이라도 하듯이 머리를 두드린다.


“들어가볼까···.”

“예? 여고에 말입니까?”

“왜? 문제 있어?”


평소처럼 여유로운 얼굴이다.

하긴, 교회로 쳐들어갈 때도 거침없이 나아갔지.

녹호라면 그럴 만도 했다.


“어떻게 얘기하면 됩니까? 학부모? 제자라고 둘러댑니까?”

“뭐가?”

“학교에, 그것도 여고면 경비가 막지 않겠습니까?”

“그냥 뚫으면 되지.”


막 움직이려던 차가 다시 멈췄다.

뭔가 상식이 어긋난 느낌이 풍겨온 탓이다.


“그러다가 경찰서에 잡혀갑니다. 치한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릅니다.”

“뭐? 왜?”

“설마 학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왜 조사도 안 하시고···.”


그랬다.

도플갱어는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그런 상식을 역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딴 건 누가 따로 안 적어주니까.”


이건 생각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상식이란, 당연한 일을 지칭하는 만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조사로 알아낼 수 없고, 직접 사회에서 오래 지내야만 깨달을 수 있다.


“마음대로 들어가서 휘저어선 안 됩니다. 학교는 그런 곳입니다.”

“쯧, 일단 근처 음식점으로 가자.”

“예. 저기 돈가스 집에 가겠습니다.”


차는 학교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주차장이 많진 않았지만, 한 군데 댈 곳은 있었다.

내려서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한적한 내부가 두 사람을 반겨줬다.


“알아서 시켜.”

“알겠습니다.”


녹호가 먼저 아무 자리에나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주위를 느긋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필요한 만큼 일상을 학습했다곤 해도, 아직 세상은 여전히 새롭겠지.


“여기가 장사가 되나?”


작가의말

악당에게도 사연은 있다!

물론, 나도 악당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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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1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0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4.02.25 18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16 0 11쪽
55 55화. 재회 24.02.24 18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15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19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24.02.23 17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18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17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22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1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25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4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24 1 12쪽
» 44화. 여고 앞 +1 24.02.15 3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1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0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1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4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3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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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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