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27 14:52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5,836
추천수 :
72
글자수 :
650,447

작성
24.02.01 15:10
조회
44
추천
1
글자
11쪽

34화. 인영이 주는 선물

DUMMY

***


“기적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현이 단상 위에서 말했다.

그 밑에는 신도들이 우러러보고 있다.

늘 그랬듯 존경이 가득하게 담긴 눈빛으로.


“사람마다 다른 대답이 나오겠지. 하지만 다들 인간이 불가능한 일 정도로 대답할 거라네. 다른 말로 하자면, 아버지의 힘이 더해져야만 가능한 행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기적이란, 그렇기에 기적인 법일세.”

“······.”

“하지만 그렇기에 기적은 함부로 벌여선 안 된다네. 눈앞에 기적이 벌어지는데 그 누가 아버지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명백한 증명 앞에 믿음은 존재치 않네. 오로지 앎만이 있을 뿐이지.”


그런 시선을 받으며 느긋하게 예배를 끝내간다.


“그것이 목자가 기적을 숨기는 이유라네. 그런 앎보다야 믿음이 훨씬 귀하기 때문이지.”

“아···.”

“혹 모르지. 자네들이 믿음의 영역을 넘어선다면, 아버지께서 내게 기적을 내보이라 하실지.”


예현은 천천히 계단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늘 예배는 이쯤에서 마치지. 다들 들어주느라 고생했다네.”


단상에서 내려오고선 신도를 직접 맞이했다.

금세 주변이 사람으로 북적댔고, 모두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꼭 위대한 사람이라도 영접한 듯이.

예현이 은연중에 예수를 자칭했기 때문이겠지.


“목사님,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예배도 좋았어요.”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목사님께선 정말···”

“오늘은 일찍 자리를 파하여 줄 수들 있겠나? ”


신도를 붙잡고 있진 않았다.

그런 일은 늘 위험성을 올리고 만다.

그리고 모작은 오래 볼수록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법이지.


“손님이 와서 말일세.”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짜 다른 용무가 있었다.

예현은 후드를 눌러쓴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다음에 봬요.”


다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선다.

서주 역시도 마뜩잖은 표정으로 함께.

그중 떠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 키 때문에 언뜻 남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네. 저번처럼 밖에서 눈치를 보다가 찾아올 줄 알았건만.”


하지만 얼굴을 드러내니 누군지 분명해졌다.

인영이 모습을 가리고서 예배에 참석한 것이다.


“서주에게 들키면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질 텐데?”

“······.”

“혹 예배를 들어야 할 이유가 있기라도 했는가 보군.”

“됐고, 얘기나 하죠.”


말투에는 적대감이 잔뜩 서려 있다.


“당신이 정말 재림예수라고요?”


그 말에 예현은 작게 미소를 흘렸다.

예배에서 했던 말을 꼬투리 잡는 것이다.


“글쎄, 마주치는 모두가 예수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애매모호한 말로···”

“길게 대화할 생각이라면 안쪽으로 가지. 늙은 몸이라,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아파서 말일세.”


인영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전에도 그랬듯, 대화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네에. 안으로 들어가죠. 해야 할 말이 많으니까.”



***


두 사람이 대화하길 한참.

인영만 성큼성큼 문밖으로 나섰다.


“당신이랑 더 대화할 필요도 없겠어요. 보면 볼수록 더 확실한 사이비니까.”


교회를 나가면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이제는 더 엮이기도 싫다는 태도였다.

서주가 빚 얘기를 한 순간부터 정해진 일인지도 몰랐다.

이곳에 갖다 바친 돈만 해도 몇백만 원은 될 테니까.


인영이 사라지고 예현은 느긋하게 교회를 정리했다.

불을 끄고 빈방에 누가 있진 않은지 확인한다.

평소에 하듯이 말이다.


“목사님?”


이제 정리가 막바지에 이를 때쯤,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니?”

“잠깐 지나가다가 보여서요.”


서주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옷차림 역시 상당히 가벼웠다.

정말 집에서 잠깐 외출했다가 들른 모양새였다.

겉보기로는 그랬다.


“나에게 거짓말은 하지 말렴. 그건 가장 의미 없이 죄를 짓는 일이란다.”

“···네?”

“정말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니.”


예현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께서 모든 걸 알고 있단다. 그리고 내가 알아야 할 필요한 일이 있다면 미리 알려주시지.”

“아···.”

“실망스럽구나.”


겁에 질린 어린 양이 저럴까?

서주는 결국 자기 표정을 깨뜨리고 말았다.

입을 설핏 벌어지고 두 눈에는 습기가 차올랐다.

어깨는 추위라도 타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미, 미안해요. 전 그저 목사님이 제 조카한테 너무 집중하는 것 같아서···”

“인영 양을 본받으렴. 그 아이는 너를 위해서 이곳까지 오지 않았니.”

“네, 네?”


말투는 여전했지만, 그 안에 담긴 온기는 상당히 식어 있었다.

듣는 입장에서는 서릿발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정도다.

애정이 클수록 냉기는 훨씬 더 짙겠지.


“혹여 내가 너한테 함부로 손이라도 댈까 걱정했겠지. 그게 진정한 사랑이란다.”

“걔는 방금 목사님한테 소리를 질렀는데···. 원래도 버릇없는···, 이름 있는 대학교 갔다가 더 건방져져서는···.”


서주는 억울하다는 듯이 변명했다.

두서없이 나오는 말에는 불안함이 파편이 되어 흘러나왔다.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모양이다.


“할 말이 끝났다면 이제 나가주렴. 교회 문을 닫아야 해서 말이야.”

“아니, 그게···.”

“나가라고 했단다.”


서주는 숨도 쉬지 못하고 몸을 굳혔다.

엄한 얼굴을 보니, 다시 한 번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겠지.


“얼른 돌아가렴. 조카 걱정시키지 말고.”

“목사님···.”

“서주야.”


차갑게 이름을 불러온다.

이제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계속 고집을 부렸다간 원망이라도 받을지 모른다.

그럼 죄 씻음을 받지 못할 테니까.



***


“진짜 더럽게 크네.”


인영이 저택 앞에서 중얼댔다.

오늘도 약속을 잡은 듯, 두 손에 종이가방을 들고서 기다리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두오가 현관으로 마중 나온다.


“안녕하세요.”

“예, 반갑습니다. 도련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마당을 지나 본관에 도착했다.

웬일인지 녹호는 거실에서 문서를 살피고 있었다.

공부라도 하는지, 펜까지 끄적이면서.


“도련님, 손님 모셔왔습니다.”

“그래. 고생 많았어.”


두오가 고개를 한 번 숙이고선 물러났다.

녹호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시선을 여전히 문서에 박고 있다.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인영은 멀뚱히 서서 쭈뼛댔다.

그래도 사람이 왔으니 인사는 나눌 줄 알았겠지.

녹호가 상식 외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은 모양이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알아서 의자에 앉고선 용건을 내뱉었다.


“세 가지를 가져왔어요. 우선, 이력서 먼저요. 아무래도 취업하겠다고 왔는데, 이 정도는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요.”


종이가방에서 L자 파일을 꺼내서 내민다.

이력서는 저 안에 있는 듯했다.

물론, 녹호는 아직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책장을 넘기며 하던 일을 계속할 뿐이다.


“다음은 증거를 가져왔어요.”


이력서 다음으로 꺼낸 물건은 다름 아닌 금속 막대, 녹음기였다.


“제가 김예현 목사를 고발한 이유가 싫어해서이기도 해요. 가족이 얽혀 있는데 당연한 일이고요.”

“······.”

“그런데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시잖아요, 그건. 이해관계만 맞으면 누구든 손을 잡을 수도, 반대로 끊어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녹호는 그 말에 책장에서 눈을 떼고 앞을 슬쩍 바라보았다.

여전히 크게 관심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들어는 보자는 느낌에 가까웠지.


“김예현 목사가 예배 중에 했던 말을 녹음했어요. 들어보면 알 거예요. 본인이 예수를 자칭하고 있다는 걸.”


서주에게 걸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예배를 참석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처음부터 예현과 대화할 생각 따윈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이상한 점을 포착하고 녹호에게 넘길 기회만 봤을 뿐이지.


“내가 이해관계만 맞으면 손을 잡거나 끊어버린다고?”


커다란 입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했다.


“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며칠 전에 만났을 때요, 거짓말한 걸 힐난하지 않았잖아요. 얄팍한 수작이 들켜서 문제였죠.”


인영이 예현을 사이비라고 지목했을 때, 녹호는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어디서 입사도 안 한 주제에 남의 손으로 자기 일을 처리하려고 하냐고.

상당히 불쾌한 기색이기도 했다.


하지만 거짓말 자체에는 너그러운 듯한 말을 내뱉었다.

솔직하게 말했다면 듣지도 않았을 거라고 했지.

수작질할 생각이라면 걸리지 않을 만큼 철저히 하라는 뜻이다.


“도덕이나 편견, 미련에 휘둘리시는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실질적인 이득이 먼저지.”

“······.”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증거를 가져왔어요. 합리적인 판단을 하실 수 있게요. 물론, 저도 그 과정에서 콩고물 좀 얻고요.”


당당한 태도.

그 분위기는 언뜻 녹호를 닮기도 했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는 모습이 그랬다.


“내가 그 신도면 어쩌려고 그래?”


그래서인지 녹호도 한결 가벼워진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는 없죠. 예배도 안 오셨잖아요?”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

“네, 항상 여유롭다가 제가 갔던 이틀 만이요? 그것 참 공교로운 일이네요.”

“흠.”

“게다가, 머리 위에 누군갈 모실 이미지도 아니시잖아요?”

“그건 그렇지.”


인영은 편안한 미소로 화답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다 잘 풀릴 것만 같았다.


“이제 마지막 선물이에요.”


종이가방에서 커다란 책을 꺼낸다.

낡은 표지는 척 봐도 20년은 될 법했다.


“제 부모님이 남긴 앨범이에요.”


가족 앨범.

선물로 가져왔다기엔 상당히 기묘한 물건이다.

심지어 이미 사진이 가득 차 있다면 더더욱.


“그래, 이모랑 같이 살고 있었지?”

“네, 어렸을 때 부모님 두 분 다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사진은 찰나를 찍는다.

이미 지나간 순간이 종이 한 장에 남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 얇은 코팅지가 가지는 가치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는 아주 귀중한 물건이에요. 선물이라곤 했지만, 적어도 제가 죽기 전에는 되찾아야죠. 그게 부모님에 대한 도리니까.”

“이걸 나한테 주는 이유는?”

“말뿐인 의리보다는 이쪽이 확실하니까요. 이러면 가족에게 대하듯이 할 수밖에 없잖아요?”


의리란, 꺼내 보일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녹호는 타인을 쉽사리 신뢰할 수 없었다.

유송이나 두오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인영은 이 점을 고민했고 결국 답을 찾아냈다.


“어때요, 이제 신뢰가 가나요?”


작가의말

사이비가 너무 사이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3 63화. 테러리스트 24.02.29 16 0 12쪽
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17 0 12쪽
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1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24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1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0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4.02.25 18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16 0 11쪽
55 55화. 재회 24.02.24 18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15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19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24.02.23 17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18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17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22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1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25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4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24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3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1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0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1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4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36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37 1 13쪽
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0 1 12쪽
36 36화. 끊긴 필름 +1 24.02.05 42 1 13쪽
35 35화. 선물 무더기 +1 24.02.02 40 1 12쪽
» 34화. 인영이 주는 선물 +1 24.02.01 45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