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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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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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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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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맛있네요?

DUMMY

평소엔 심부름시킬 일이 있을까, 식사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

애초에 계약 사항이 그랬고, 지키지 않을 시 해고당할 수 있다.

녹호가 도플갱어로 바뀐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부분이다.


“똑같이 알탕 두 그릇 준비하겠습니다.”


이변이라고 할 만한 일.

분명 그럴 이유가 있을 터였다.

예를 들어, 지금 오고 있을 손님이라든가.

마침 두오가 누군가를 데리고 들어온다.


“도련님, 손님 오셨습니다.”

“그래, 알았어.”


호리호리한 실루엣.

길쭉하게 뻗은 키 덕분에 빈약한 느낌은 없었다.

이마를 드러낸 생머리는 은근히 기가 세 보이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드문드문 봤지만, 벌써 익숙한 모습이다.


“박인영이라고 합니다. 문자로 말씀드렸다시피, 김예현 목사님 소개로 왔습니다.”


서주의 조카, 인영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그리고 다시 얼굴을 들어 올려 시선을 마주했다.

차분한 표정이다.

아주 잠시 동안은 말이다.


“그래, 오느라 고생했어.”

“예···, 그런데···.”

“왜? 할 말이라도 있어?”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린다.

저 느긋한 태도며, 어딘가 낯익기도 하겠지.

그러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면 입을 열었다.


“혹시 그날 이모랑 있었던 분이신가요?”


녹호가 서주와 소파에 누워있던 모습.

그걸 흐릿하게나마 기억해냈다.


“그래, 맞아.”

“하아···.”

“왔으니까 식사 먼저 하지. 음식, 준비해뒀거든.”


마침이라고 할까?

음식 카트가 식사실로 들어왔다.


“알탕 가지고 왔습···.”

“둘이 먹어. 난 끝났으니까.”


유송도 알아봤는지, 굳은 얼굴로 식탁을 차린다.

인영은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최소한 대화는 해볼 작정인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뭐야?”


그 앞에 놓인 알탕 한 그릇.

녹호가 먹을 때도 그랬듯, 시뻘건 국물이 끓고 새까만 덩어리가 알알이 떠다닌다.


“뭐긴 뭐야, 알탕이지.”

“어떤 알탕이 이렇게 생겼어요?”

“캐비어 알탕.”


인영은 그 끔찍한 외관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음식의 정체를 듣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재벌가는 원래 이딴 걸 먹나···.”


숟가락으로 캐비어를 뒤적거린다.

역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비주얼이다.

그러다 다시 녹호에게로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런데 진짜 뭐죠?”

“말했잖아?”

“아니, 뭔지는 알아야 먹죠.”


당연히 농담이겠지, 짐작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녹호는 같은 말을 해줄 생각은 없는 듯 손을 휘적댄다.

그러자 인영도 포기하고선 유송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기요, 이게 뭔지 알아요?”


유송은 텅 빈 눈으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캐비어 알탕···.”

“장난치지 말고요. 그리고 아까부터 뭘 그렇게 읽고 계세요?”

“···아무 생각 없이 먹기는 아까워서요. 어떤 맛인지 검색은 해보고 먹어야겠어요.”


한 끼에 한 달 식비는 될 정도로 비싼 음식이다.

그런 만큼 이따위로 먹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 절박한 검색은 곧 결실을 맺었는지, 휴대폰을 만지던 손이 수저로 향했다.

숟가락은 부들대며 캐비어와 붉은 국물을 떠서는 작게 벌어진 입으로 향했다.


“3대 진미답게 크리미한 맛···.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


읽어낸 설명 그대로 읊조린다.

하지만 그게 의미 있는 감상일 리 없었다.

캐비어가 가진 풍부한 향미는 이미 고춧가루 선에서 정리됐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인영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연이어 물었다.


“고춧가루 냄새밖에 안 나는데요? 굳이 음미해서 먹을 이유가 있어요?”

“···그야, 주방에서 얼마짜린지 들었으니까요.”

“얼만데요?”

“한 그릇에 100만 원은 가뿐히···.”


괴악한 비주얼을 지닌 알탕 추정체.

그런 음식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니, 믿을 수 있을까?

인영은 그 대답에 인상을 찌푸릴 뿐, 놀라지도 않았다.

역시나 거짓말을 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하지만 적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겠지.

방금 기미상궁이 식사를 시작했으니까.

인영도 이제 수저를 들더니, 조심스럽게 알탕을 한입 먹는다.


“···맛있네요?”


역시나 겉모습에 비해 나쁜 맛은 아닐 터였다.

캐비어는 다른 생선알에 비해 고소할 테고, 어울리지 않는 비릿함은 조미료가 잡아줬을 테니.

오히려 괜히 본연의 향을 느끼려고 하면 기분만 망칠지도 모른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먹는 유송처럼.


“무슨 용건으로 왔어?”


그러던 중 녹호가 입을 열었다.


“대충 사정이야 알지. 뭐, 경제적인 부분으로 왔을 테고.”

“······.”

“그런데 정확히 어떤 식인지는 모르겠단 말이야.”


밥을 먹던 인영은 잠시 동작을 멈췄다.

그럴 만도 했다.

가뜩이나 자존심 상할 만한 사항이었고, 녹호는 제 이모에게 몹쓸 짓을 했을지도 모를 사람이니까.

유송은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고선 한 발 빨리 입을 열었다.


“녹호 씨, 일단 밥은 다 먹고···”

“유송아.”

“네?”

“닥쳐.”


하지만 녹호는 태연하게 반박했다.


“나한테서 돈을 뜯어내고 싶었으면 뭔가를 제안해야 할 거야.”


인영이 음식을 천천히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을 팔아야겠지. 그런데 내세울 게 겨우 경력이나 전문지식이라면, 나한테 더 좋은 선택지는 널려 있어. 대충 졸업생 하나 주워 쓰면 되니까.”

“······.”

“그렇다고 알바 자리 하나 달라고 하기에는 성에 안 차겠지. 그 정도는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잖아?”


대학생 신분.

중요한 일을 맡기에는 경력이 없다.

적당히 머리는 좋을 테고 일단 맡겨두면 익숙해지겠지만, 그 정도는 누구든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희소성이 없으니, 월급 비싸게 주지 않을 일이다.


“그럼 둘 중 하나지. 아예 지저분한 일이나, 얼굴 팔리는 일이나. 다만, 후자를 하려면 식사하면서도 태연히 대화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먹다가 체하지나 않을까 싶은 분위기다.

하지만 녹호는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일일이 챙겨줄 정도로 다정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뿐이면 되나요?”

“아니, 그럴 리가 있을까. 구미가 당길 만한 조건이 더 있어야지.”

“그게 뭐죠?”

“글쎄? 뭘까···.”


아니, 어쩌면 모든 게 거짓말이고 그냥 괴롭히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토록 나른한 모습을 보면.

지금은 아예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인영은 그 정적을 내색하지 않고 참아낸다.


다시 식사를 재개하기도 그랬다.

결국, 가만히 녹호를 바라보기만 했다.

국이 식는 것도 두고서.


“···뭔가를 말해줘야 대답을 하지 않을까요?”


입을 연 사람은 유송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진행도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 쟤.”


녹호는 그런 유송에게 턱짓을 했다.


“집에 돈 잡아먹는 하마가 있지. 잘못하면 금세 말라죽을 만한. 그게 장점이야.”

“네? 그게 왜 장점이죠?”

“내가 손을 떼면 금방 말라죽거든. 이쪽이 목숨줄을 쥐고 있으니까 배신할 걱정이 없어지지.”


웬일로 유송한테 식사를 시켰나 했더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오직 예시로 보여주려고.


“이런 약점 덕분에 ‘신뢰’가 생겼지. 돈이나 노력으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장점 말이야.”

“장점···.”

“그래, 이해한 것 같네. 그럼 이제 말해볼까? 넌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인영은 그 얘기를 잠자코 들었다.

표정이 굳긴 했지만, 불쾌함까지 드러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단순히 고민하는 중일지도 몰랐다.


“저는···.”


그리고 오랜 생각 끝에 조심히 입을 열었다.



***


“하, 마음에 안 들어.”


녹호가 혼자 중얼거렸다.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서, 불쾌감이 여실히 드러났다.


“왜 그러십니까? 인영 씨, 나름 괜찮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유송이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늘 그랬듯, 대책 없이 밝은 방향으로.


“그게 괜찮은 대답이야? 겨우 ‘의리’가?”

“나름대로 증거도 대지 않았습니까? ‘사이비 교회인 거 알고도 움직였다. 이게 가족에 대한 의리다.’”

“······.”

“같은 편이 된다면 믿고 의지할 관계가 될 겁니다.”

“그건 가족이니까 위험을 감수한 거고, 나는 그럴 일 없잖아.”


중간에 한 번 침묵하긴 했지만, 대체로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그럼···, 내치실 생각이십니까?”

“······.”

“무엇 때문에 고민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예 마음에 안 들었다면 차라리 마음 편했겠지.

결과가 나왔으니, 다음 행동을 정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만큼이나 짜증을 내고 있다면, 고민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데리고 가면 좋지 않을까 하고.


“···날 설득하려면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알아챘어. 그렇다면 멍청이는 아니라는 말인데.”


녹호를 고민하게 만든 요소.

그건 아마 냉철한 영특함인 듯했다.

자신이 가진 의리라는 감정을, 타인이라도 된 듯 증거를 대면서 평가했으니 말이다.

공부해서 발전하는 부분도 아니라, 타고 나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유용하긴 하겠지, 어정쩡한 대졸보다야. 그리고 똑똑한 놈이 말하는 의리가 멍청한 놈들이 떠드는 소리보다는 훨씬 믿음직하고···.”


‘배신도 멍청한 놈이 자주 한다.’

그런 생각도 은근히 스민 듯했다.



***


허름한 집.

서주는 외출이라도 한 건지 보이지 않았고, 인영만 책상 앞에 앉아있다.

그 앞에 놓여 있는 물건은 다름 아닌 노트북이다.

기다란 금속 막대기가 USB 포트에 꽂혀 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증명됐나요? 제 의리 말이에요.’


스피커에서 인영이 했던 말이 흘러나온다.

녹호와 나눴던 대화였다.

그럼 저 금속 막대기는 분명 녹음기겠지.

보험 삼아 품에 넣고 갔던 모양이다.


‘하, 참나···.’

‘그쪽이 같은 편이 되어주시면 저도 최선을 다해서 의리를 보일게요.’

‘입사만 시켜주면 뼈를 묻겠다? 그 의리 참 믿을 만하네.’

‘뭐, 조언만 귀담아준다면 쉽게 같은 편이 될 수 있죠. 좋은 상사는 아주 귀한 존재니까요.’

‘조언? 말은 똑바로 해야지. 해줬으면 싶은 일이 있는 거 아냐?’


인영은 눈을 감고 그때 나눴던 대화를 귀에 담았다.


‘말해봐. 그게 뭔지.’


날카로운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김예현 목사, 사이비예요. 조심하시는 편이 좋아요. 금전 관계가 있으면 끊고는 편이 좋고요.’

‘그래, 대단하네. 면접도 통과하기 전에 그딴 부탁이나 하고.’

‘조언이기도 하죠. 사이비인 건 사실이니까.’

‘뻔뻔하다는 생각은 안 해? 자기 문제를 부탁하면서, 선심 쓰듯이 말한다니.’


듣고 있던 인영이 미간을 미미하게 떨었다.


‘···네. 거짓말을 했네요, 본의 아니게.’

‘이제야 제대로 말하네.’

‘앞으로는 솔직히 부탁할게요. 다음이 있다면요.’


스피커가 잠시 침묵을 뱉는다.

아직 듣지 못한 분량이 남았건만.

그러다 인영은 감긴 두 눈이 뜨고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냐. 들킨 게 문제지, 거짓말 자체는 상관없어.’

‘···네?’

‘솔직하게 말했으면 당장 쫓아냈다는 소리야. 남의 호의에 기댄다는 거, 무능한 데다가 눈치까지 없다는 뜻이잖아?’


녹음 파일은 여기서 끝났다.

하지만 인영은 처음으로 녹음을 되돌렸다.

꼭 다시 듣고 싶기라도 한 건지.


작가의말

영화에서 채끝살 짜파구리가 나와서 유행했죠?

솔직히 그거 보고 조금 '으잉?'스러웠습니다.

부자와 서민을 대조해서 비판하는 상징물인데, 이게 유행해서 문화처럼 된다니...

현실이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졌다고 할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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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6화. 장천선 24.02.25 16 0 11쪽
55 55화. 재회 24.02.24 18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15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19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24.02.23 17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18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17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22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1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25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4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24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3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1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0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1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4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3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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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0 1 12쪽
36 36화. 끊긴 필름 +1 24.02.05 42 1 13쪽
35 35화. 선물 무더기 +1 24.02.02 4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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