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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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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12.1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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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7. 동서남북

DUMMY

장원은 제법 높은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장원 옆에는 커다란 호수도 있었다. 그리 크진 않았지만 인공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크다. 산중턱에 자리한 산정호수山頂湖水인 것이다. 장원은 몇 채의 큰 전각들과 수십 채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상당한 규모의 것이었다. 장원은 높은 담에 둘러 쌓여 있었으나 호수와 잇닿은 부분은 담이 없이 호수 자체가 정원의 한 부분으로 생각될 만큼 자연스런 경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장원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인지 호수가 장원을 둘러싸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둘은 자연스레 어울렸다.

호수 중간에 조그마한 섬이 있었고 섬에는 예의 고즈넉한 정자가 한 채 놓여 있었다. 선경仙境이 따로 없는 광경이다. 이것이 선경이다 하듯이 정자에는 두 명의 노인이 수담手談을 즐기고 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에서 무림맹을 만든다고 합니다.”

선풍도골의 노인이 수담 중에 말을 뱉었다. 학창의를 갖춘 모습이 무림인이라기 보단 학자에 가까워 보인다.

“한 방 먹었구먼.”

맞은편의 노인이 바둑판을 보며 말한다. 선풍도골의 노인에게 하는 소린지 바둑이 그렇다는 것인지 알아 듣기 어렵다. 강인한 모습이다. 누구나 노인을 보면 첫 느낌으로 강인하다고 느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느끼고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사람이 이 노인이다. 이런 노인을 상대로 수담을 즐길 수 있는 사람도 맞은 편의 학창의 노인 정도일 것이다.

“마교가 변수였습니다.”

“그래, 항상 변수는 있는 법이지. 왕장로였소? 그 일을 담당한 장로가?”

“예.”

“왕장로라면 우직하겠군.”

“그렇겠지요. 상대가 순응하면 한 칸 뛰고 반발하면 끊어 싸우겠지요”

학창의의 노인이 바둑판을 내려다보며 바둑에 빗대어 왕장로의 성정을 말했다.

“이제야 말씀 드립니다만, 삼각 목걸이 하나가 나왔는데 크기가 한 치 반이랍니다. 사절이 가지러 나갔다고 합니다.”

학창의 노인이 화제를 돌려 목걸이 관련 내용을 말했다. 확실하지 않은 얘기는 회주에게 할 필요가 없었다. 목걸이는 회에서 찾던 것과 크기가 달랐다. 하지만 무정도의 죽음은 회주도 알아야 한다. 학창의 노인의 말은 보고라고 하기에는 한 발 빠져있고 한담閑談이라 하기에는 정중했다.

학창의 노인의 말에 맞은편 노인의 손이 바둑돌을 놓으려다 순간 주춤한 후 다시 돌을 놓았다.

“사절 씩이나?”

“무정도가 당했다고 합니다. 이황야 사람인 모양입니다.”

“무정도가?”

“···”

“이황야가 그리 움직일 사람이 아닐 텐데···”

노인은 연거푸 말꼬리를 올려 의문을 표했다. 노인에게 의문이 있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노인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대계大計를 세운 후 노인에게 의문은 없었다. 회를 만든 후 사람을 잃어 본적도 없었다. 무정도를 상대할 고수가 강호에 없진 않지만 흔하지도 않다.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이황야는 무리하게 움직일 사람도 아니다.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틀렸단 말인가?

어딘지 모르게 미세한 균열이 느껴졌다. 목걸이는 노인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노인은 약간 언짢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지었다. 얼마만의 언짢음인가? 자신에게 아직도 인간의 감정이 있음이 역설적으로 흐뭇했다. 균열은 메우면 될 것이다.


호수 끝자락 장원 마당에 두 사람이 다가왔다. 황장로와 횡이수전주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삼공자가 유명幽明을 달리했습니다.”

황장로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주저주저함을 싫어하는 회주다. 어려운 얘기지만 결론부터 말한다. 횡이수전주도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호수 중간에 있는 정자까지는 대략 이십 여장 거리다. 큰 소리로 말하면 들릴 거리나 조금 전 황장로의 목소리 정도는 들리지 않을 거리다. 그러나 황장로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이정도 거리는 아무 문제가 아니 되는 사람들이다.

황장로의 소리에 바둑을 두던 두 노인 중 학창의 노인이 그제서야 바둑판만 내려다 보던 고개를 들었다. 그만큼 놀란 것이다. 맞은편 노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바둑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함께 있었던 사절도 당해, 검절은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도 심각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황장로가 말을 이었다.

두 노인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학창의 노인은 고개를 돌려 호수 건너편 황장로를 쳐다보고 있었고 맞은편 노인은 여전히 바둑판을 보고 있다.

“사절과 유정검 그리고 삼공자께서, 무정도를 죽인 그 놈이 무한에 있는 이황야의 장원에 있다는얘기를 듣고선 목걸이를 찾고 무정도의 원혼도 달래기 위해 가셨다 오히려 당하셨습니다.”

황장로는 삼공자가 이황야의 냉보모에게 당했다고 보고하지는 않았다. 이미 그 놈이 그 놈인 것이다.

“현장에는 그 놈뿐만 아니라 개방의 무진신개, 이황야의 소노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만 검절이 소노에게 당한 반면 나머지 분들은 모두 그 놈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황장로의 보고가 계속 이어졌다. 정자의 두 노인은 아직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놈이 누구냐?”

학창의의 노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황야 측에서 확보한 고수라 짐작됩니다. 젊은 놈입니다.”

“허허 참~ 젊은 놈이라?”

학창의 노인이 헛웃음을 지었다.

“창절 등의 말에 의하면 그 놈의 무공이 신기했다고 합니다. 검을 휘두르니 먹구름이 일고 먹구름 속에서 섬광이 번쩍였다고 합니다.”

황장로의 말이 이어지는 순간 이제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맞은편 노인의 고개가 들려졌다.

“허허~ 그 친구가 역시 살아있었구나”

강인해 보이는 노인, 북천회北天會의 회주가 나직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장원의 귀퉁이 한곳에 작지만 운치 있는 화원이 있었고, 그 속에 조그만 건물이 한 채 있었다. 회주의 거처였다.

회주 거처 탁자에 두 개의 찻잔이 놓여 있고 회주와 맞은편에 학창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둘은 사절의 얘기를 직접 들은 후 자리를 옮겨 회주의 거처로 왔다.

이 곳에는 학창의 노인만이 드나들었다. 회의 태상호법이 지금 앉아 있는 학창의 노인이다. 회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필요한 일이나 지시사항이 있으면 언제나 학창의 노인에게 간단히 얘기했고 그나마도 대략적인 것이었다. 학창의 노인이 실제적으로 회를 이끌었다. 그렇다고 학창의 노인이 회의 모든 일을 직접 진두 지휘하는 것은 아니었다. 학창의 노인도 회주를 닮아 장로들이나 전주들에게 거의 모든 일을 일임하고 있었고 다만, 회주의 큰 뜻만이 회 내부에 잘 전달되도록 신경 썼다. 회주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삼공자가 그리 가다니 회주께 면목이 없습니다.”

태상호법이 머리를 숙였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도 아니다. 태상호법은 웬만한 일로는 회주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책임은 정말 큰일이 벌어졌을 때 지는 것이다. 그것이 태상호법의 자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공자의 죽음은 작은 일이 아니다.

“나는 내 운명이 어둡고 무겁다 여기고 있소. 피할 수 없는 일이오. 운명이란 것은. 그렇다고 내가내 운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오. 그 녀석을 보면서 밝음과 가벼움을 대신 채웠소. 내가 그 녀석에게 무공을 전념해 가르치지 않은 이유요. 무공을 많이 익히면 밝고 가벼워지기 어려운 법이지. 이젠 하늘이 내게 그마저도 허락치 않는 모양이구려. 허허”

회주의 자조 섞인 헛웃음이다.

태상호법이 재빨리 다른 얘기를 꺼냈다.

“일전에 말씀하셨던 그들입니까?”

태상호법이 회주에게 물었다. 지금은 적이지만 한때 회주와 동료였던 그들에 대해 그 놈이니 그분이니 하는 호칭이 어색했기에 조심스러웠다.

“그렇소. 사절 얘기로 보건대 동천東天의 후예가 분명하오.”

회주는 태상호법에게 하대와 반존대를 섞어 써왔다. 무거운 얘기일수록 존대에 가까워지는 회주의 버릇이다. 정자에서의 하대가 지금은 반존대 이상이다.

회주와 태상호법은 회로 돌아온 사절 중 창절과 권절에게 그 때의 정황을 들었다. 검절은 이미 죽었고 도절은 말을 하기에도 벅찬 부상을 입었다. 유정검은 회로 돌아오지 않았다.


회주가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태상호법께 옛날 얘기 좀 하려 하오. 일부는 태상호법께서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오.”

태상호법은 직감적으로 매우 중요한 얘기라고 느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선인仙人이 있어 네 명의 제자를 두었다오. 아주 오래 전 얘기지. 그 선인의 무공은 인세人世의 것이 아니었소. 그 선인은 네 명의 제자에게 자신의 비전을 나누어 전수하면서 말했지. ‘너희들은 스스로 세상에 나서지 말고 세상이 이치理致에 심히 어긋날 때에만 나서거라. 어긋남에 대항할 땐 서로 협력하고, 너희 중 누군가 어긋나지 않도록 견제해라. 각자가 가진 비전秘傳을 한 사람씩의 제자를 두어 전수하고 내 뜻도 함께 전하거라.’ 그러고는 선인은 사라져 버렸지.”

회주는 말을 잠깐 그치고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태상호법도 따라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비전은 이어졌소. 아무런 문제없이. 세상은 그들을 모르오. 딱 한번 그들이 세상에 드러났지. 이백여 년 전쯤에 당시 마교 교주였던 파천마제破天魔帝가 세상을 오시傲視하면서 중원무림을 발아래 두고자 출도했었소. 그는 마교 교주들 중 가장 강했다고 했으며, 중원 무림에는 그에 필적할 상대가 아예 없는 형편이었소. 그런 파천마제 앞에 네 분이 나타나셨고 파천마제는 그 분들 중 한 분도 넘지 못한 채 다시 청해로 돌아갔소. 중원 무림은 잘 모르는 사실이오. 네 분 중 한 분이 중원 무림에 교분이 두터운 친구를 사귀었고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모양이오. 그가 언제부턴가 네 사람의 전인들을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하늘이라는 의미로 동천, 서천, 남천, 북천으로 나누어 불렀고 그렇게 동서남북이 그들만이 아는 그들의 이름이 되었소. 아무튼 그 뒤에는 다시 그 분들이 세상에 나오시지 않았소. 그런데 내 대代에 이르러 문제가 생겨 다툰 후 네 사람은 서로 양패구상하여 흩어지고 말았소. 오늘 사절로부터 얘기를 들어보니 젊은 놈은 동천東天의 후인이 틀림없소”

태상호법은 회주의 과거 얘기를 오늘에야 구체적으로 처음 듣게 되었다. 태상호법이 아는 얘기는 회주의 얘기 중 마지막 부분이었다. 네 사람이 서로 다툰 일은 자신도 일부 관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근원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태상호법은 이제야 왜 회의 이름이 북천北天인지 알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와 태상호법이 그 놈들을 직접 감당해야 하오. 회는 지금처럼 장로들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놔두시오. 내가 아직 그놈들에게 드러나서는 안되오. 그러면 그놈들이 뭉칠 것이오. 그전에 은밀히 각개 격파해야 하오.”

“하오시면···”

“비록 세푼의 실력을 숨겼을지라도 아직 그 젊은 놈은 동천의 비전秘傳을 팔성 정도 밖에 익히지 않은 듯 하오. 사절에게 들어본 구름이나 섬광의 위력으로 볼 때 그러하오. 지금 그놈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오.”

태상호법이 회주의 얘기를 대꾸 없이 가만히 듣는다. 회주의 얘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놈이 이황야와 함께 있음이 신경 쓰이는구려. 동천은 결코 스스로 세상에 나올 성정이아니오. 더욱이 무림인도 아닌 이황야와 엮일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그 놈이 이황야와 함께 있다니 이상하구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오. 만일 동천이 이황야와 손을 잡은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우리의 계획을 생각할 필요가 있소”

말을 마친 후 회주는 목이 마른 듯 이미 식어버린 남은 차를 마저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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