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성묘 가서 생긴 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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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아부지, 다들 잘 있쥬? 근데 예전보단 귀신들이 더 잘 보이네유.
- 너가 저승 갔다 온 것도 있고, 지금 너 들어간 몸땡이가 개잖어. 개는 귀신 잘 봐.
- 옛날에 아부지랑 다닐 때도 산에서 종종 귀신은 봤쥬. 근데도 아부지 돌아가셨을 때는 지 눈에 안 보이셨잖유.
- 그려. 그랬지. 내가 그땐 여기 없었으니께 안 보인거지.
인한과 인희는 순덕이 한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만히 있자 순덕이 쳐다보는 곳에 뭐가 있나 싶어 같이 쳐다보았다.
인희가 의아한 마음에 물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 너그 외증조할아부지 오셨어.
“예?”
- 내가 저승 다녀와서 더 잘 보이기도 하구, 개 눈에는 귀신이 잘 보인다고 하시네.
인한과 인희는 그저 멀뚱멀뚱 순덕이 하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순덕이 귀신을 본다는 말에 소름도 올라왔다.
그래도 내색할 만큼 눈치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가 보여야 말이 통하지.
- 야야, 이게 얼마만이여. 흐음, 아휴, 좋-구나.
방장석은 마치 사람처럼 입마저 쩝쩝 대며 코로 연신 냄새를 들이켰다.
- 아후, 취헌다. 좋-구나. 앞으로 몇 달은 거뜬할 거여.
- 아니, 그럼 지가 몇 년에 한 번씩 가서 모셨을 때는 힘드셨겄슈.
- 얘기 했잖어, 차사 휴가 가면 내가 혔다고. 괜찮았구먼.
- 죄송해유. 근디 한 가지 의논드릴 게 있슈.
- 말혀봐.
- 지가 내후년에 저승을 가게 되면 애들이 아부지를 지대루 모시겄슈? 어째 절에라도 모실까유? 평생 흠향 걱정 안 허시게, 어뗘유?
- 니 생각대로 혀. 난 상관없어. 귀신이 흠향 안 한다고 죽는 거는 아녀. 배고파 그러지.
- 왜, 절에 모신다니 서운하셔유?
- 안 그려. 근디 너 내후년 오는 거는 확실 혀?
- 염라대왕과의 약속이유.
- ···그려?
어째 아버지의 반응이 묘했다.
‘표정이 왜 저러신댜?’
아버지의 반응에 순덕이 떠올렸던 의문은 옆에서 멀뚱거리는 눈으로 서있는 인한과 인희를 보면서 싹 잊혔다.
- 아부지, 손주들헌테 절 받으셔야쥬?
순덕이 인한과 인희에게 절을 시켰다.
- 인한아, 인희야, 어여 인사드려.
할머니가 시킬 때에는 항상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인한과 인희는 순덕의 말에 따랐다.
- 오냐, 그려, 그려. 으허허허. 이런 날도 오는구먼.
기분이 좋아진 방장석이 인희를 보더니 순덕에게 한 마디 했다.
- 순덕아
- 예. 이 아이는 동물과 인연이 많구먼. 평생 동물을 옆에 끼고 살 팔자구먼.
- 그려유? 그럼 인한이는유?
- 너 하는 식당 맡으면 되지 않겄어? 둘 다 올해만 잘 넘기면 별 일 없겄구먼.
- 아부지, 그런 것두 봐유?
- 저승 오면 누구나 자연히 보여. 순덕아, 오늘 잘 허면 새 식구 생기겄다.
- 예? 그건 또 뭔 소리래유?
- 있어봐, 좋은 일 있을 테니. 그리고 오늘 납골당은 가지마.
- 예? 아니, 아부지, 왜유?
- 너야 상관 없어두 애들 운 안 좋을 땐 가는 거 아녀.
이렇게라도 아들 내외를 보나 싶었던 순덕의 목소리가 실망으로 팍 가라앉았다.
- 그럼··· 언제 가유?
- 운 펴면, 올해 지나고 운 펴면 그때나 가.
- 오늘 납골당 가면 아들 얼굴이라도 볼 줄 알았는디···.
- 아무리 애들 부모라도 운이 안 좋은 때 만나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겄어? 힘들어도 다음에 봐. 내 말 들어서 손해 없다.
- 알겄슈···.
***
성묘를 끝내고 내려오는 순덕의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짐도 가벼웠다.
싸갔던 소주는 무덤 주위에 다 뿌렸고, 가져갔던 육포와 과일은 순덕이 이야기하는 곳에 놓았다.
인희가 이런 것을 여기 놔도 되느냐 물었더니 먹을 놈들이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인희는 산짐승이려니 했다.
인희가 챙긴 것은 빈 소주병과 사용했던 종이컵, 종이접시와 나무젓가락 등이었다.
인한과 인희에게는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서 어색하고 심심했을 텐데도 묵묵히 순덕을 기다려준 것이 더 고마웠다.
순덕이 남매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 추운데 힘들었지?
인희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괜찮아요. 덕분에 외할아버지 묘소가 어디 있는지도 알았으니 만족해요.”
- 그려, 그려. 그리 생각해주면 고맙지.
“에이, 할머니, 우리가 남인가요? 왜 그러셔요. 섭섭하게.”
인한도 거들었다.
인희가 순덕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니, 귀신도 보세요?”
- 아, 그거? 너그도 산에 오래 살면 자연 보여.
“그럼 산사람은 다 보나요?”
- 글쎄, 내가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봤던 거 같은디? 근디··· 나야 맨날 네 할아부지 뒤만 따라 댕겼으니 비슷한 사람끼리만 만났을 거 아녀. 못 보는 사람도 있지 않겄어?
“그럼 지금도 여기 어디에 보이세요?”
- 잉. 보여. 그런데 이상하게 꽤 많구먼.
인한이 놀래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할머니, 그럼 우리 해코지 하는 거 아녜요?”
- 그럴 힘이나 있겄냐? 아까 우리 음식 차리니께 쪼-금이래도 얻어먹으러 온 건디?
“아, 그래서 할머니가 음식 거기다 두라고 하신 거예요?”
- 그려, 그것도 있구, 거기 배고픈 산짐승도 있으니 귀신이 흠향하고 나면 나머지를 먹겄지.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인한이 갑자기 궁금한 게 많아졌다.
“할머니, 그럼 우리 사는 동네에도 있어요?”
- 있어. 가끔 봤구먼.
인한과 인희가 그 말에 놀란 토끼눈을 하고 서로를 보았다.
인희가 물었다.
“할머니, 그럼 그런 귀신들은 쫓아내야 하는 거 아녜요?”
- 뭐 땜시? 뭔 수로? 그네들은 그네들의 세상이 있는 거고, 우리는 우리 세상 사는건디 뭐 하러 간섭혀? 너한테 뭔 짓이라도 혔어?
“그건 아니지만 어떻게 귀신하고 한 공간에 살아요, 무서워서···.”
- 너나 다른 살아있는 사람한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면 간섭 못 하는 거여. 그 귀신이 거기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거 아녀. 오늘 빼고 내가 언제 귀신 얘기하디? 너는 너 세계나 신경 써. 죽은 귀신보다 산 사람이 무서운 법이여. 인두껍을 쓰고 귀신보다 못 한 놈들이 한둘이여? 인희, 너도 생각혀봐. 너는 이다음에 귀신 안 될 거 같어? 귀신 됐다고 이유도 없이 마구 쫓아내면 좋겄냐? 그것도 차별이여···.
잠시 말을 멈췄던 순덕이 다시 말을 이었다.
- 너 무섭다고, 너 싫다고 다 쫓아내면 그 세상은 행복할거 같냐?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여. 옛말에 꽃가마 속에도 근심 있다 혔어. 근심 없는 세상이 어디 있겄냐···.
인희는 속으로 말 꺼낸 것을 후회했다.
순덕이 말을 전달하는 방법을 깨우친 이후 잔소리가 늘었다.
‘저렇게 말하고 싶으셔서 어떻게 참았을까?’
좋게 생각하려 했지만 순덕의 잔소리가 계속 되는 동안 인희 머릿속에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다시는 뭘 물어보나 봐라.’하고 결심하는 인희였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 순덕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귀까지 쫑긋 세우고 코를 킁킁 거리며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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