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이 승용차 당신 것이 맞죠?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박 경사가 검은 모자의 뒤를 쫓아 나갔다.
그러나 박 경사보다 한 발 앞서 이미 순덕이 검은 모자의 뒤를 쫓고 있었다.
검은 모자의 발이 얼마나 빠른지 내심 달리기에 자신 있던 박 경사가 한수 접어주고 들어갈 판이었다.
“야, 이 개새끼야, 너 거기 안 서?”
- 미친 새끼, 너 같으면 서겠냐?
확실히 개보다 사람이 빠르기는 힘들었다.
검은 모자가 속으로 꿍얼거리며 뛰다가 왼쪽 바지자락이 덤벼든 순덕에게 잡히면서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악! 야! 이 개새끼야, 안 떨어져?”
검은 모자가 순덕을 오른발로 차서 떼어내려 했지만 워낙 재빠르게 움직이는 순덕이 이미 물었던 그의 종아리 바지자락을 놓았다.
순덕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 어디 덤벼봐, 이놈아! 내가 네놈을 아주 아작을 낼 겨! (으르르르르, 으르르르르릉, 컹! 컹!)
“아이씨, 정말 재수 없게스리···.”
검은 모자가 일어나려 버둥거리는 사이 박 경사가 도착해 아직 일어서지 못한 그를 덮쳤다.
검은 모자는 박 경사의 노련한 제압에 힘을 잃고, 앞으로 엎어진 자세로 수갑을 찰 수밖에 없었다.
“김종호,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당신의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알았어?”
박 경사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며 검은 모자를 일으켜 세웠다.
헐떡거리며 겨우 뒤쫓아 온 조 경장이 박 경사의 손에서 검은 모자를 넘겨받았다.
“아니, 왜 이렇게 빨라요? 우사인 볼트랑 친척이라도 돼요? 젠장,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박 경사가 조 경장에게 말했다.
“일단 차로 데려가. 식당에 들렸다 갈 테니 기다려.”
“넵.”
조 경장이 여전히 숨을 몰아쉬며 검은 모자를 앞세워 차로 데려갔다.
숨을 고른 박 경사가 순덕을 내려다보았다.
눈치 빠른 개 한 마리가 사람 둘보다 나았다.
박 경사가 순덕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고맙다. 네가 사람보다 낫다. 나중에 뼈다귀라도 챙겨주마. 가자.”
순덕이 뼈다귀라는 소리에 어이가 없어 박 경사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 집이 뼈해장국 집이여. 뭔 뼈를 챙겨. 내가 남 먹던 뼈나 먹을 걸로 보이는 겨? 이거이거, 사람이 그럼 못 써. 그러지 말고, 난중에 자주 와서 뼈해장국이나 팔아줘. 잉?’
생각을 마친 순덕이 앞장을 섰다.
당당한 모습으로 꼬리를 세워든 순덕의 모습은 개선장군과 다름없었다.
식당에 도착하자 인한과 인희, 양 주방장이 다 문 앞에 나와 있었다.
인희가 박 경사에게 물었다.
“잡은 거죠? 그 사람 맞죠?”
“가서 조사해봐야 알지. 그런데 너희 개 정말 개똑똑, 용감 그 자체다. 그 사람, 너희 개가 잡았어.”
검은 모자를 잡은 박 경사의 입에서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삐져나왔다.
“흰둥이가 잡았다고요?”
“그래, 그놈 바지를 꽉 무는 통에 잡았지 아니면 고생할 뻔 했어.”
인희의 눈가가 촉촉해지며 순덕을 향해 몸을 숙였다.
“할머니···.”
순덕을 끌어안는 인희가 내뱉은 말에 박 경사가 눈 가득히 의문의 담았다.
“뭐? 할머니?”
양 주방장이 거들었다.
“개 이름을 할머니로 바꿨대요. 그래야 오래 산다나, 뭐라나. 그것도 수컷한테 할머니가 뭐야, 할머니가. 그죠? 요즘 애들은 하여튼 알다가도 모르겠어.”
박 경사의 신경이 예민하게 움직였다.
며칠 전 집에 갔을 때에 보았던 자석 한글이 다시 떠올랐다.
- 박 경 사 보 여 주
비록 삐뚤빼뚤하게 맞춰진 글자였지만 충분히 뜻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개 이름이 할머니라니?
오늘 일도 그렇다.
이 개는 마치 김종호가 문으로 나갈 것을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딱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다.
거기다 자신이 문으로 들어서기 쉽게 비켜나 있었고, 김종호가 튀자마자 바로 추격했다.
이게 다 우연일까?
이거 신들린 개야, 아님 천재견인거야?
박 경사는 계속 분수처럼 솟아나는 의문에 저도 모르게 순덕의 얼굴과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형사 생활로 자리 잡은 습관이 어디로 가겠는가?
순덕은 박 경사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아주 순진한 척 연기를 했다.
‘저 아무 것도 몰라요.’하는 표정으로 고개까지 갸우뚱하며 꼬리를 치는 순덕을 보던 인한과 인희가 그만 동시에 푸흐흐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박 경사에게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말한다고 쉽게 믿어지겠는가?
자신들도 쉽지 않았던 일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남매를 쳐다보는 박 경사에게 인희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돌렸다.
“흰둥이를 할머니로 이름을 바꾼 이유가 정말 우리 할머니처럼 우리를 지켜주거든요. 행동이 사람보다 낫잖아요. 충분히 모시고 살아도 되겠다 싶어서 바꾼 거예요. 잘 해주고 싶어서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참 길게도 한다.’
속으로 말을 삼킨 박 경사가 차로 향했다.
이제 가서 취조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박 경사는 다시 떠올린 의문을 묻어두기로 하고 몸을 돌렸다.
“정말 여러 번 도움을 받았네. 고맙다. 그리고 할머니···? 고마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박 경사가 저만치 갔을 때 남매는 그만 희한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흐흐흐흐흐흐흐흐”
“프흐흐하하하하하하”
옆에서 지켜보던 양 주방장이 남매와 순덕을 번갈아 보며 안 됐다는 듯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래도 할머니가 뭐냐, 할머니가.”
그 소리에 순덕이 양 주방장을 노려봤다.
- 왜 안 돼? (으르르릉)
양 주방장은 순덕이 자신을 보고 으르렁거리자 뭔가 싸한 기운이 등줄기를 스치는 것 같아 몸을 한번 떨고는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화 내지 마세요. 양 주방장은 모르잖아요. 흐흐흐흐흐흐.”
인희가 또 웃어댔고, 인한은 그 모습이 웃겨 다시 따라 웃었다.
***
취조실에 앉은 김종호의 왼쪽 종아리에는 하얀 밴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상처가 크지는 않았으나 개 이빨에 긁힌 탓에 파상풍 주사까지 맞았다.
박 경사가 들어오자 취조실에 수갑을 찬 채 앉은 김종호가 껌을 질겅거리며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 상처부위를 어루만졌다.
“하, 그 개새끼, 더럽게 아프네. 경사님, 이거 주인한테 손해배상 청구해야 하는 거 아녜요?”
박 경사는 대답 없이 맞은편에 앉아서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이름”
“아시면서 또 뭘 물으시나.”
껌을 질겅거리는 김종호에게 끈기 있게 이름, 직업, 주소, 본적 등 기본정도를 받아 입력한 박 경사가 김종호를 쳐다보며 질문을 시작했다.
“2016년 12월 30일 새벽 6시 14분, 수봉북로 사거리에서 이지영이라는 피해자를 납치한 사실이 있습니까?”
“아뇨.”
“당시 어디서 무엇을 했습니까?”
“일도 없는 제가 어디서 뭘 했겠어요. 집에서 잤어요.”
박 경사가 인근 CCTV에서 발견한 회색 승용차 사진을 차례대로 내밀었다.
“이 승용차 당신 것이 맞죠?”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