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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이세계에서 나만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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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개.
작품등록일 :
2023.02.10 16:03
최근연재일 :
2023.03.20 21:30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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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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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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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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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돌아가고 싶어

DUMMY

“또···.”


또 다시 소중한 것을 잃고 말았다.

정말 이런 게 용사인 걸까?

무능력하고, 무력하게 소중한 이들을 잃게 되는 것이 용사라는 이름의 운명인 것일까?


고결한 이름의 그것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입 안의 비릿함이 피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환상을 보여주듯 하다.


“돌아가고 싶어.”


평화로운 삶을 살던 그 때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 순간으로,

피를 묻히지 않은 깨끗한 손으로.


하지만 돌아갈 수가 없다.

이미 돌이킬 수가 없어졌다.

시체를 짓밟고, 피바다를 헤쳐 나아가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

다시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손에 넣기 위해.

그 순간까지만 용사라는 이름을 입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손은, 이렇게 빗물에 씻겨 내려가듯 다시 깨끗해지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자힐···. 에반스님···.”


더러워진 손은 한 꺼풀의 장갑을 벗으면 깨끗해질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결코 돌아올 수 없다.

아무리 애원하고 애원해도.

유품처럼 선물 받은 소총도,

재가 되어버린 자힐도,

형체조차 없이 사라져버려 이젠 그 어디에도 없다.


“저- 괜찮으세요?”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워진다.


“자힐?”


지운은 언제나 자신이 지쳐 쓰러질 때 손을 내밀어주던 자힐의 모습을 떠올리며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눈앞에 서있는 사람은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그는, 그들은 지운을 향해 안쓰럽다는 얼굴로 걱정해왔다.


“이 마을의 주민이신가요?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는 걸치고 있던 옷가지마저 전부 타버린 지운에게 자신의 로브를 덮어주었다.


“레오! 이 풍경을 봐. 지금 이 사람한테 상황을 묻는 건 더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야.”


“아, 그런가?”


“일단 저쪽으로 가자. 저기에 천막을 치고 우리도 같이 쉬자.”


그 일행은 지운을 데리고 숲 안쪽으로 갔다.


우거진 나무가 잠시 비를 막아주었지만 장대같이 내리는 비를 막기엔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그들은 서툰 솜씨로 얼기설기 천막을 치더니 지운을 그 안으로 데려다 놓았다.

하지만 어두운 얼굴로 말없이 앉아있기만 해, 일행은 서로를 쳐다보다 따듯한 물을 끓여 지운에게 건넸다.


지운은 물잔을 받아들었지만 그것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침묵이 이어지고, 일행은 서로에게 눈치를 주며 떠넘기던 중 한 사람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저, 저흰 화이트 등급의 모험가예요. 이름은 이실라. 제 옆의 이 녀석은 라이, 저 앤 쥘라트예요.”

라리사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소년소녀들이 소개를 했다.

지운은 그들의 얼굴을 한번씩 을 쳐다보고는 툭 내던지듯 말했다.


“···지운.”


“지운? 이름이 특이하네요.”


대화가 끊기자 모험가 일행은 다시 한 번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러다 등 떠밀린 두 번째 희생자는 파티의 유일한 남자인 라이였다.


“음, 아, 저기, 지운. 네가 왜 그러고 있었는지, 마을은 왜 그렇게 된 건지 상황을 물어봐도 될까?”


말투는 상냥했지만 그 내용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옆에 앉은 이실라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라이는 이실라에게 입을 벙긋대며 항의했다.


지운은 그들을 보며 쓸쓸한 미소 지었다.

한눈에 봐도 허물없는 사이다.


‘자힐···.’


그 모습을 볼수록 자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의 일부가 묻어있던 손조차도 빗물에 씻겨 내려가 없다.


“크흠. 미안. 이 녀석의 무례는 대신 사과할게. 그보다 갈 곳은 있니?”


이들은 지운이 전소한 마을의 사람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지운은 그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진실이라는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초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긴 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보단 스스로를 용사라 말해도 될지 의문이 들었다.

그럴 자격이 없었으니까.


“저는 어디로 가야할까요?”


담담히 말하려 했지만 목이 메어온다.

일부러 괜찮은 척 미소 짓고 있지만 축 늘어진 눈썹은, 발개진 눈시울은 너무나도 애달파보였다.


***


“저, 저기-”


낯을 가리는지 도통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던 쥘라트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라이와 이실라는 그녀가 입을 열자 곧바로 투닥거리는 것을 멈추고 경청해주었다.


“갈 곳이 없다면 저희랑 다니는 건 어때요?”


쥘라트는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부끄러운지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당당히 의견을 내놓았다.

라이와 이실라는 그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랑 같이 다니자.”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지운. 너만 괜찮다면 우리와 같이 다닐래? 앞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줄게.”


“···난-”


불안하다.

불길하고 두렵다.

이들도 자힐과 에반스처럼 죽게 된다면 어떡하지?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면 노력과 발악보단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포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자 쥘라트가 작은 목소리를 쥐어짜며 얘기했다.


“거절하지 말아줘요. 저흰 지운을 돕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맞아. 이런 때일수록 옆에 사람이 있어줘야 한다고.”


“어째서···”


이유를 묻는 게 아닌, 혼잣말이 무심결에 튀어나온 것이었지만 그들은 주저 없이 대답해주었다.


“응? 그건 그냥 그것이 옳다고 생각할 뿐이야.”


“우린 곤란한 사람을 돕겠다고 약속했거든.”


“자신의 세계가 아닌데도 이곳을 구하러 오신 용사님들을 본받고 싶어요. 그 희생적인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사람들에게 베풀자고 결심했거든요.”


‘용사를···.’


지운은 쓰게 웃었다.

이런 게 용사라 했다면 저들의 환상을 깨부숴 버렸을 거다.

역시, 밝히지 않길 잘한 것 같다.


“고마워요.”


지운이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띠자 세 사람은 기대감에 부풀어 물었다.


“그럼 같이 다닐 거지?”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용사를 정말로 존경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다시 소개를 해볼까? 난 라이! 보다시피 검사지. 전위는 내게 맡겨두라고!”


“난 이실라. 주로 활을 쓰지만 단검도 써서 근접전도 가능해. 그리고 미래엔 엘타라님같이 훌륭한 궁수가 되는 게 꿈이야.”


“저는 쥘라트라고 해요. 현재 2서클 마법사고 대마법사가 되기 위한 수양을 쌓기 위해 모험을 하는 중이에요.”


세 사람의 소개가 끝나자 여섯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지운을 향했다.


지운은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부담이 느껴졌지만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서지운. 지운이라고 부르세요. 일단은··· 마법사입니다.”


“마법사라고요?! 세상에! 그 귀한 마법사가 우리 파티에 두 명이나 된다니!”


“그러게! 화이트 등급의 모험가 파티 중에서는 마법사가 한 명 있는 것만으로도 드문데.”


라이와 이실라가 기뻐하던 그때, 파티의 마법사였던 쥘라트는 소심했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눈을 빛냈다.


“세상에···! 어떤 마법이 특기인가요? 고유마나는 어떻죠?!”


지운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달려드는 쥘라트를 밀어내며 대답했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저는··· 공격마법도 쓸 줄 모르는 무능력한 사람이거든요.”


“어머! 그럼 인챈터인가요?”


기대를 갖지 말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쥘라트가 실망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공격마법을 쓰는 자신과 다름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동료이자 친구, 라이와 이실라는 쥘라트를 보며 “신났네, 신났어.” 라며 키득거렸다.


하지만 인챈트에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지 않기에 부정하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어느 마법에도 특별히 잘 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쥘라트는 묵언을 긍정으로 해석하고는 신나게 떠들어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비는 얼마 안가 그쳤다.


일행은 천막을 걷고 모닥불을 껐다.

장비를 챙긴 라이는 지운을 쳐다보며 잠깐 고민했다.


“이대로 모험···하기엔 무리겠지?”


이실라는 라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맞받아쳤다.


“당연하지. 네게 그 정도의 눈치는 있어서 다행이야.”


“뭐어? 너무한 거 아니야?”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아무튼, 도시로 돌아가자.”


모두가 출발하는 가운데, 지운만 홀로 우두커니 서있더니 말을 내뱉었다.


“제가 폐가 된 건가요?”


“무슨 그런 말을 해. 우리가 원해서 돕는 거지만,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도시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러니 자책하지 마.”


지운은 별안간 손을 움찔거렸다.

과거 자신이 했던 발언과 똑같은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이들은 아직 실패를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아, 순수하다.

고난도, 고행도, 슬픔도 맛보지 않은 깨끗함이다.

호의를 베풀어준 이들만큼은 결코 인간을 추접스럽게 하는 끔찍한 경험을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라이. 그 길보단 이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운은 자신을 돌아보는 라이를 향해 살풋 미소 지으며 손가락으로 길을 안내했다.

시체가 쌓인, 시체를 쌓아놓은 곳을 거처가지 않도록.


다행히 일행은 지운을 마을사람으로 알고 있어 길을 안내하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숲을 헤치고 큰 길까지 나왔지만 앞으로가 막막하다.

도시까지는 3일 밤낮으로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전투가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일행에겐 지겹고 지루할 뿐이었다.

그런 때에 뒤에서 들려오는 바퀴소리는 청각을 곤두세우게 하기 충분했다.


“마차다!”


저 멀리서 짐마차가 다가오자 세 사람은 방방 뛰었다.


마부가 태워줄지 어떨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뻐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마부는 의외로 흔쾌히 승낙했다.

똑같은 풍경만 보이는 데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조차 없던 그에게 모험가 파티는 때 좋게 나타난 길동무였던 것이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나야말로 적적한 참에 잘 된 일이지. 그보다 모험가 형씨들, 그 근처에 있었으면 사고 난 것도 봤나?”


“마을이 불탄 거 말이죠?”


“응? 마을이 불탔어?”


“그거 얘기하려던 게 아니었나요?”


“으응, 아니야. 그거 말고 내가 오면서 사고 난 마차를 봤거든. 불에 홀라당 타버린 마차를 말이야.”


“야영을 하다가 불이 옮겨 붙은 게 아닐까요?”


“에이, 그랬다면 바로 불을 껐겠지. 내가 볼 땐 분명 어떤 무시무시한 사건이 있던 게 분명해.”


마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쥘라트는 지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지운, 지운은 저 일을 알고 있- 어···.”


그녀는 지운의 표정을 보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차마 물어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지만, 그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어어!?”


마부가 소리를 지르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말은 울부짖으며 이리저리 버둥거리다가 멈춰 섰다.

거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마부를 당혹케 한 무언가는 아직도 앞에 남아있었다.

아니, 점점 이리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것은 자칫 들개로 착각할 만 했지만 겨우 들개 같은 짐승이 아니었다.


“모, 몬스터다!”

두려움에 목이 졸린 마부는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라이는 검을 뽑아들며 짐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아저씨는 거기 있어요. 도망쳤다가 오히려 노려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이미 도망칠 수도 없이 포위되고 말았다.


모험가 파티는 모두 마차에서 뛰어내려 마차를 지키듯 방위에 섰다.


무기가 없는 이상 지운은 자신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차에서 내렸다.

여차할 땐 몸으로 때우면 되니까.


“이런 젠장! 검은 발 자칼이라니.”


“어, 어쩌지?! 포위됐어!”


“일단 침착해!”


처음 보는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물어볼 여유는 없었다.

모험가 파티는 몬스터와 조우해본 적이 몇 번 되지 않았는지 상당히 허둥댔다.


그러던 중, 한 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을 포착했다.

지운은 곧장 [실드]를 펼쳤다.

마차와 모험가 파티까지 모두 씌워질 정도로 넓게 펼쳐, 그만큼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시하고 있던 한 놈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놈을 놓친 지운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자, 쾅! 검은 발 자칼이 돔 형태의 실드를 물어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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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고 싶어 23.03.20 8 0 12쪽
37 운과 나쁜 일이 일어남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23.03.19 15 0 13쪽
36 금기어 23.03.18 10 0 12쪽
35 이번엔 지켜냈어 23.03.17 11 0 13쪽
34 직무유기 23.03.16 12 0 12쪽
33 미심쩍은 23.03.15 14 0 12쪽
32 저거는 구할 수가 없겠네 23.03.14 14 0 13쪽
31 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 23.03.13 14 0 13쪽
30 좀 닥치고 있어봐 23.03.12 18 0 13쪽
29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 23.03.11 13 0 12쪽
28 구해낼 수만 있으면 23.03.10 14 0 12쪽
27 강탈 23.03.09 15 0 12쪽
26 슬라임 23.03.08 14 0 13쪽
25 정의의 용사(2) 23.03.07 14 0 12쪽
24 정의의 용사(1) 23.03.06 16 0 13쪽
23 죄인 에반스(2) 23.03.05 14 0 14쪽
22 죄인 에반스(1) 23.03.04 15 0 14쪽
21 도움요청 23.03.03 16 0 12쪽
20 자기합리화 23.03.02 19 0 12쪽
19 의도하지 않은 23.03.01 20 0 12쪽
18 내가 왜? 23.02.28 19 0 12쪽
17 원래 인생이란 생각하는대로 굴러가지 않는 법 23.02.27 18 0 12쪽
16 어쩐지 느낌이 쎄하더라니 23.02.26 25 1 12쪽
15 용사와 영웅 23.02.25 25 1 12쪽
14 파벌 23.02.24 27 1 12쪽
13 그래 너 잘났다 23.02.23 31 1 13쪽
12 짜증날 정도로 부러운 23.02.22 37 1 12쪽
11 깐족거림은 그의 아이덴티티 23.02.21 34 1 12쪽
10 설득과 협박은 종이 한 장 차이 23.02.20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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