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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이세계에서 나만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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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개.
작품등록일 :
2023.02.10 16:03
최근연재일 :
2023.03.20 21:30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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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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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수 :
214,405

작성
23.03.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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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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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의도하지 않은

DUMMY

지운은 손을 가다듬으며 긴장으로 바짝 마른 입술을 열었다.


“내가 왜?”


“이건 네게 주는 기회다. 그걸 놓고 꺼지던지, 아님 여기서 죽던지.”


“하핫! 웃기는 소리를 해대네. 그게 무슨 기회야, 협박이지.”


꿈틀!

남자의 이마에 툭 불거져 나온 혈관이 꿈틀거린다.

그를 비웃던 지운이 정지버튼을 누른 것처럼 돌연 웃음을 멈췄다.


“···.”


정적.

금방이라도 폭풍이 몰아칠 것 같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정적이 흐른다.

지운은 총구를 바닥으로 내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표정.


‘흥. 이제야 힘의 차이를 알았나.’


이번에는 남자가 지운을 비웃으려 했지만 팔을 휘두르는 지운의 모습을 보고 움찔 움츠려들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무언가.

텁.

반사적으로 잡아챈 그것은 지운이 들고 있던 총이었다.


“총을 넘긴 판단력은 칭찬할 만 하지만 그 태도는 거슬리는군.”


남자는 지운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지운은 양손을 들었지만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 와 진짜 이럴 줄 알았다니깐.”


“실성했나? 그러게 건방떨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늦었다.”


“건방은 당신네들이 떠는 거고. 왜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래?”


“이는 부당하지 않다. 축복자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지.”


“그런 권리는 아무도 주지 않았거든? 착각하지 말라고. 유치하게 편 가르기 하면서 용사를 학살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빌면 봐줄 생각이었다만, 생각이 달라졌다. 죽어라!”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방아쇠를 당긴다.

남자의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몸을 움츠린다.

그러나 총구와 일직선상에 놓인 지운만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틱.

뇌관을 때리는 공이가 볼품없는 소리를 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틱. 틱.

재차 방아쇠를 당겨 봐도 결과는 같다.

그 대신이라고 할지, 남자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이 새끼가 감히 바꿔치기를 해?!”


“달라고 해서 줬을 뿐인데 왜 바꿔치기라고 생각하는 거지?”


“발포가 안 되잖아! 이건 어떻게 설명할거지?”


“그걸 왜 내 탓으로 돌려?”


“뭐 이 새끼야?”


“그러게 사람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들었어야지. 거기 연구원이 계속 설명했잖아. 이건 마나로 사용하는 마도구라고.”


“화약을 사용하면 사용하기 더 쉽잖아! 지구에 있었으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당신 바보지? 화약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도 말했잖아. 우리가 아무리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라도 그 이상이 될 수 없다고.”


금방이라도 소리칠 거라 생각했지만 남자의 눈썹이 조금 씰룩거리기만 할 뿐 아무 반응도 없다.

그러다 은근히 옆 사람에게 몸을 기울이더니 작게 소곤거린다.


“···화약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뭐더라?”


“그거잖아요, 그거. 신법. 예파흐테가 직접 금지시켰다고 저 대머리 연구원이 얘기했잖아요.”


질문을 받은 사람도 똑같이 작은 목소리로 전해주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에반스가 ‘아직 대머리는 아니야!’라고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신법인지 뭔지 알게 뭐야. 마왕을 죽이는 게 가장 중요하니 여신도 납득해 줄 거라고. 하지만 넌 아니야. 내 심기를 거슬렀지.”


총을 바닥에 내던진 남자는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들었다.

돌진은 그야말로 순식간.

눈 깜짝할 새에 코앞까지 당도한 남자가 칼을 휘둘렀다.


“그러니 죽어!!!”


눈앞에 들이닥치는 남자의 기세에 지운의 몸이 움츠려 들었다.

캉!

그러나 겁먹은 것과 달리 지운의 주위를 감싼 실드가 검격을 막아주었다.


‘쪼··· 쫄았다아아! 실전은 처음이지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게 효과가 있어 다행이야.’


긴장을 놓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했다.


“죽어! 죽어! 크아아악!”


실드에 가로막혀 화가 난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검을 휘두른다.

카앙! 캉!

급조한 실드 치고 방어력이 상당했지만 울림이 심상치 않다.

곧 뚫릴 것 같이 위태하다.


‘다시 실드 치고 체력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다 막타 칠까?’


그건 영 좋지 않은 선택 같다.

이 남자 뒤에도 저렇게나 많은 축복자가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어중간한 마무리는 포기는커녕 더 집착해서 내 목숨을 노리겠지.’


그렇다면 본때를 보여주는 수밖에.

‘이놈은 위험하다!’ 라는 것을 머릿속에 새겨 만만하지 않게 여기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실드와 공격을 동시에 하는 건 힘들어.’


비교하자면 한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다른 손으로 네모를 그리는 것과 비슷한 강도다.

할 수는 있지만 어느 한쪽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다른 한쪽이 무너지게 된다.

그런 것을 실전에 사용한다면?

실드가 부실해지던지 마법이 부실해지던지 둘 중 하나. 아니, 둘 다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드에 문제가 생길 경우는 무엇보다 위험하다.

실드에 가해진 금이 점점 커져가자 지운이 혀를 차며 소리를 질렀다.


“자힐!!!”


지운의 뒤에 있던 자힐은 어느새 에반스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빼앗았다.

그리고 던진다.

···빛의 속도로.


‘아니 이 사람이?! 내가 받을 수 있게끔 던져야지!’


손으로 잡진 못했지만 다행히 잘 던져준 덕분에 몸으로 받아냈다.


“크하핫! 마지막 발악이냐!”


“발악인지 반격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


지운은 볼트를 당겨 탄창을 확인했다.

용사들이 2주동안 매일같이 찾아와서 실랑이를 해댄 덕분인지 확실히 장전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한텐 총알이 없어. 여기의 5발로 끝내야해.’


챙강!

실드가 부서졌다.

지운은 실드를 다시 생성하기보다 옆으로 굴러 내리찍는 검을 피했다.

머릿속의 시뮬레이션을 실현시킬 때다.


타앙!

일발.

허공을 가르고 나아가는 총알이 남자의 팔뚝을 스쳤다.

순간 움직임이 멈춘 남자는 자신의 팔뚝을 돌아봤다.

찢겨나간 피부.

그곳에서 흐르는 붉은 피.

뚜렷한 상처.


“죽인다···!”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직시한다.

사방을 향해 퍼지는 살기는 가시 같다.


“하핫. 순순히 죽어줄까 보냐.”


난 오래오래 살아서 반드시 지구로 돌아갈 거라고!


여유로운 척 했지만 절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축복자니 뭐니 유치한 편 가르기 같았지만 나누는 이유가 있었어.’


축복자와 사용자는 기본 능력치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였다.

거기다 축복자는 용사를 죽여 레벨까지 올렸으니 차이는 더욱 커졌다.

양학이라 할 정도로 압살해서 죽였지만 대인전의 경험까지 더해졌으니 이기기엔 더욱 어렵겠지.


반면에 지운은?

아직까지 망설임이 남아있다.


‘나쁜 사람이지만 죽이고 싶지 않아. 무엇보다 내겐 그럴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잖아. 압도적인 힘을 보여줘서 마음을 꺾는 수밖에.’


다치는 것 정도는 신관들이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

지운은 마음을 가볍게 먹었다.

그것은 한 번도 생사를 두고 싸워본 적 없는 자의 안일함.


“대쉬!”


남자가 또 다시 돌진하는 스킬을 썼다.


‘거리를 벌려야 돼!’


육체적인 힘으로는 상대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민첩하지도 않아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거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회피한다면 반격은 문제도 아니겠지만 그 간격을 모른다.


‘큭···! 이럴 줄 알았으면 체력단련이라도 하는 건데!’


“미꾸라지 같은 놈!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찰스! 클로이!”


관중처럼 형세를 가만히 지켜보던 축복자들 중 남녀가 합세했다.


‘이건 반칙이지!!!’


그러나 투덜댈 시간이 없다.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상대를 막아내려면 기동력을 봉쇄해야겠지.


탕!

이것으로 두 발.

하지만 다리를 쏜다는 생각은 가지지 않았다.

지운이 쏜 부위는 복부.

영화나 드라마 때문에 복부의 상처쯤은 쉽게 생각지만 과장에 불과하다.

일반인이라면 충분히 바닥을 구르고도 남는 고통.

게다가 마도총은 일반 총보다 위력이 훨씬 강하니 고통이 곱절은 되겠지.

그 결과 복부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남자는 달리다 말고 엎어져 바닥을 기었다.


‘주, 죽진 않았겠지?’


남자의 상태를 살피던 지운은 몸을 흠칫 떨었다.

싸우는 도중 한눈을 판데다 방심까지 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실드를 생성했지만 늦어버렸다.


뻑!

지운에게 달려들던 여자는 유려한 몸놀림으로 목덜미를 후려 찼다.


“윽-?”


얼마나 강하게 찼는지 지운의 몸이 인형처럼 날아가 선반에 부딪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지운의 머리 위로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움직임이 보이지 않던 몸은 말단부위부터 꿈틀대더니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으윽- 어지러워.’


자신이 순간 정신을 잃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야말로 일순.


‘그 정도의 방심도 용납하지 않는 다는 건가? 빡세네.’


지운은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장전했다.

손이 덜덜 떨리고 힘이 빠져 총구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단 한 방만 허용했을 뿐인데 타격이 심하다.


‘일단 방어를 먼저 하고 회복할까? 아니면 나도 공격해야 하나? 윽···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그거 한 방 맞고 나가떨어지다니, 역시 사용자는 약하군.”


“그래도 다른 쓰레기들보단 낫지 않아? 이렇게 다시 일어서니.”


“그건 그러네.”


두 사람은 지운을 앞에 두고 낄낄대며 조롱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제 상황이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지운의 행동은 최후의 발버둥.

반사 신경이 그리 좋지도 않은 녀석인데 총구까지 흔들리니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용사님의 보좌는 역시 신관이라 나서기 힘든가.’


가슴을 졸이던 에반스는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자힐을 쳐다봤다.

유일교는 평신관조차 모험가나 용병과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하다.

보좌신관으로 발탁된 자라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 테지만, 상대가 나빴다.

신관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신전의 규율에 묶인 몸.


‘여기선 내가 나서야 하나. 저 청년에게는 도움도 받기도 했고.’


결과는 아직 이지만 이렇게 찾아온 걸 보니 잘 해결된 거겠지.

에반스가 나서려하자 차분히 지켜보던 자힐이 몸을 움찔거렸다.


“프흐···”


그 순간 들려오는 실소.

위기에 몰려 실성한 것일까?

모두가 그리 생각했지만 지운의 눈빛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이봐,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아직! 안 죽었다고!!!”


탕!

3번째 격발.

총구가 흔들리는 바람에 남자와 여자 둘 다 맞지 않았지만 그 뒤에 서있던 축복자가 빗겨나간 총알에 맞았다.


“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이 고통을 호소한다.

하지만 지운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목표는 두 사람.

그 둘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클로이!”


“알았어 마이클!”


위기감이 생겼는지 두 사람이 동시에 달려든다.

실전도 처음인 지운이 다수를 상대하는 법을 알 리가 없었지만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총구를 틀어 여자를 향해 쏜다.

속도가 더 빠른 여자를 먼저 처치한 것이다.


‘공격이 뭔가 어설픈걸.’


모든 공격이 올곧다.

연계도 임기응변으로 시도한 것일 뿐, 직선적인 공격밖에 없어 예측하기 쉽다.

축복자가 사람을 많이 죽였지만 힘으로 찍어 눌러왔던 터라 한 번도 전투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다른 용사와 마찬가지로 전투에 있어서는 초보였던 것이다.


지운의 시선은 여자에게 머물지 않았다.

방심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반영된 행동이었다.

곧바로 몸을 틀어 남자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하지만 남자는 바로 앞까지 당도했다.

분노와 슬픔으로 일그러진 얼굴.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는 여자를 목격한 모양이다.


“으오오오오!”


분노를 담은 검을 있는 힘껏 휘두른다.


‘안 돼! 너무 가까워!’


안정적인 사격을 위해서라면 거리를 벌려야했지만 위기의 순간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은 본능.

생각의 통제를 받지 않는 몸이 움직인다.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아··· 안-”


타앙-

마지막 5발.

총구를 들이대고 있던 방향은 남자의 머리.

그곳에 남자의 머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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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돌아가고 싶어 23.03.20 7 0 12쪽
37 운과 나쁜 일이 일어남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23.03.19 15 0 13쪽
36 금기어 23.03.18 10 0 12쪽
35 이번엔 지켜냈어 23.03.17 11 0 13쪽
34 직무유기 23.03.16 12 0 12쪽
33 미심쩍은 23.03.15 14 0 12쪽
32 저거는 구할 수가 없겠네 23.03.14 14 0 13쪽
31 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 23.03.13 14 0 13쪽
30 좀 닥치고 있어봐 23.03.12 18 0 13쪽
29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 23.03.11 13 0 12쪽
28 구해낼 수만 있으면 23.03.10 14 0 12쪽
27 강탈 23.03.09 15 0 12쪽
26 슬라임 23.03.08 14 0 13쪽
25 정의의 용사(2) 23.03.07 14 0 12쪽
24 정의의 용사(1) 23.03.06 16 0 13쪽
23 죄인 에반스(2) 23.03.05 14 0 14쪽
22 죄인 에반스(1) 23.03.04 15 0 14쪽
21 도움요청 23.03.03 16 0 12쪽
20 자기합리화 23.03.02 19 0 12쪽
» 의도하지 않은 23.03.01 20 0 12쪽
18 내가 왜? 23.02.28 19 0 12쪽
17 원래 인생이란 생각하는대로 굴러가지 않는 법 23.02.27 18 0 12쪽
16 어쩐지 느낌이 쎄하더라니 23.02.26 25 1 12쪽
15 용사와 영웅 23.02.25 25 1 12쪽
14 파벌 23.02.24 27 1 12쪽
13 그래 너 잘났다 23.02.23 31 1 13쪽
12 짜증날 정도로 부러운 23.02.22 37 1 12쪽
11 깐족거림은 그의 아이덴티티 23.02.21 34 1 12쪽
10 설득과 협박은 종이 한 장 차이 23.02.20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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