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미친 이세계에서 나만 정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쓸개.
작품등록일 :
2023.02.10 16:03
최근연재일 :
2023.03.20 21:3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092
추천수 :
20
글자수 :
214,405

작성
23.02.22 21:30
조회
36
추천
1
글자
12쪽

짜증날 정도로 부러운

DUMMY

“입 닥쳐!”


“과민하게 반응하시는 걸 보니 확실하군요.”


옅은 조소는 감정에 기름을 끼얹었다.

퍽!

지운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주먹을 날려버렸다.

충격으로 베일이 풀어졌지만 그로인해 드러난 자힐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보좌해 드리기 전에 단련시켜 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하.”


지운이 뒤로 주춤 물러나자 자힐은 얼굴을 맞았을 때보다 충격받았다.


“죄송합니다. 주제넘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지운님을 위해 저지른 짓이니 부디 관용을 베풀어 주십시오.”


먼지가 쌓여 지저분한 바닥에 그대로 무릎 꿇고 빈다.

겉으로 보기엔 진심으로 뉘우치는 모습에 지운은 고뇌에 빠졌다.


‘씨발···.’


사람을 시험대에 올려 갖고 놀 듯 분석할 땐 언제고 이제와 사과라니?

충분히 화를 낼 만 한 상황이지만 지운은 그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

처음으로 호의를 보여주고, 처음으로 내 편이 되어준 사람이었으니까.

이성적인 판단?

모두가 남이고,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도 없는 세상에서 유일한 내 사람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일부터는 더 바쁘겠죠. 그러니까 갈아입을 옷 좀 사와요.”


딴청 피우듯 말하자 자힐이 반색했다.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청소도 좀 해놓고.”


이건 그냥 괘씸해서.

그러나 자힐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즉답했다.


‘남의 집이란 게 마음에 걸리지만 케이트씨도 깨끗한 집이 더 좋겠지?’


자힐에게 일을 맡기고 문손잡이를 잡자 버석거리는 먼지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래도 이미 더러워진 손.

문을 열려하자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뻑뻑하다.

힘껏 힘을 줘 문을 열자 곧장 실수했음을 직감했다.

바람이 일며 바닥에 깔린 먼지가 일제히 비상하기 시작했다.


“젠장. 오늘 잠자기 글렀네.”


콜록.


***


굴러다니는 잡동사니 중 청소용 마도구를 찾아낸 덕분에 청소는 그럭저럭 마무리 됐지만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먼지를 너무 많이 마셨나, 목 따갑다.”


불쑥.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힐이 물잔을 들이밀었다.

조금 놀랐지만 지운은 덤덤히 잔을 받아들었다.


‘뭔가 편한데?’


부려지는 삶을 살다 부리는 삶을 살게 되니 솔직히 너무 좋다!

짜릿해!

이런 기분 처음이야!


소파에 앉아 여유를 부렸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리를 떠는 진동이 점점 거세져갔다.


“케이트씨··· 왜 안 일어나시지?”


어젯밤 잠자러 들어간 케이트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자는 게을러 그런 겁니다. 그보다 식사하십시오.”


자힐은 어느새 부엌까지 점령해 간단한 음식을 차려냈다.

노릇하게 구워낸 토스트에 베이컨, 계란프라이까지.

그야말로 아침식사다운 메뉴였다.


“남의 집에서 이래도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달리 할 것도 없잖습니까. 그리고 신도는 용사를 성심껏 받들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게 이 상황이랑 맞는 건가요?”


개도 잘 짖으면 사람 말 같이 들리는 법이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방금 일어난 듯 케이트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눈까지 반쯤 잠겨있는 걸로 보아 잠에서 깨자마자 바로 나온 것 같았는데, 음식냄새를 맡고 나온 모양이었다.


“따듯한 밥 맛있다··· 헤헤.”


2인분밖에 만들지 않아 자힐은 제 접시를 뺏겼지만 잠자코 다시 불 앞에 섰다.


“많이 먹어두는 게 좋을 거예요. 이제부턴 체력싸움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이제부터···?’


“다 먹었으면 빨리 시작하죠.”


어느새 지운의 접시에 놓인 베이컨까지 먹이치운 케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끔하게 청소했던 기억은 또렷이 남아있는데 식탁은 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되었다.

뒷목을 부여잡는 자힐을 본 지운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부엌을 빠져나왔다.


“얼른 앉아요. 오늘은 서클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할 거예요.”


“아무리 천재라도 한 달은 걸린다면서요. 전 오늘로 이틀째에요. 시간상으로 따지면 하루도 안 됐다고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면 말도 안 꺼냈어요.”


서클을 이렇게 빨리 만들 수 있을 거라니.

그러나 동시에 잘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대신 그만큼 각오해야 할 거예요. 모든 과정을 끊이지 않고 이어가야 하니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해요.”


“이거 제대로 된 방식 맞죠? 좀 불안한데.”


“괜찮아요. 정 위험하면 손쓰면 되니까.”


손도 없는 사람이? 반문하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었던 사람이 이렇게 단기간에 마나와 감응할 수 있는 걸 보면 엄청난 재능을 가진 게 분명해요. 가능할 거예요. ···아마.”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네!

어이가 없어 소리치지도 못했다.


“잡설은 그만하고 시작하죠. 어제처럼 도움을 드릴 거예요. 그 방법이 효과적이니.”


“그- 하아. 그래요. 쇠뿔도 당긴 김에 빼는 게 낫죠.”


“집중을 놓지 마세요. 자아를 잃지 마세요. 한계를, 선을 넘어선 안 돼요.”


조금은 걱정하는 눈치인 케이트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창문을 통해 들려오던 아이들의 목소리와,

사람들의 대화소리,

마차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발소리가 사라지듯 적막감이 찾아왔다.


고요하다.

불안할 정도로 조용하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나는 여기에 존재하니까.


그리고 저기에 내 힘이 있다.

지난번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젠 알 수 있었다.

어둠.

그와 뒤섞인 보랏빛 오묘한 은하.

저것이 나의 힘. 마나라는 것을.


‘나를 유혹해 집어삼키려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어.’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음이 느껴졌다.


‘그 방법이 조금 잘못된 감이 있긴 하지만.’


은하수를 연상케 하는 마나가 내 주위를 둘러쌌다.

미안하다는 듯,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주어 고맙다는 듯 포근한 기운을 내뿜는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움직이지?’


인식은 했지만 움직이는 방법을 모르겠다.


‘음··· 의사가 있는 거 같으니 명령을 내리면 되는 건가? 움직여라!’


은하수처럼 움직일 땐 언제고 꿈쩍도 안한다.


‘익···! 움직여! 움직여보라니까?’


악에 바쳐 성질을 부려도 요지부동이다.


‘뭔데··· 왜 안 움직여? 제발 저쪽으로 가봐···! 어?’


마지막쯤엔 반쯤 포기하고 애원하자 마나가 움직였다.


‘오! 움직였다! 빌어야 움직이는 건가? 마나님! 움직여주세요!’


그러나 예상과 달리 마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쒸뿔···! 왜 또 안 움직이는 거야! 아까랑 뭐가 다른 거지?’


명령과 의지.

의사가 있어보였지만 어디까지나 물질에 불과했던 것.

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의지를 갖고 마나를 이동시키자 천천히. 그리고 유려하게 움직였다.

멀리서 바라보는 은하처럼.

아름답고 경이롭다.


‘움직이는 방법을 깨우치고 나니 이걸 어디로 이동시켜야 하는지도 알겠어.’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마나회로가 몸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근데 조금 이상하긴 하네. 분명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러나 함정이라기에 마나회로는 고속도로같이 훤히 뚫려있었다.

찬찬히 살펴봐도 깨끗하기만 했다.


‘좋아. 이대로 몸 안에 퍼져있는 마나를 마나회로에 올려놓자.’


주저 없이 회로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마나는 마나회로의 궤도를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어.’


몸 구석구석 퍼져있는 마나가 많다.

더.

조금 더.

모든 마나를 마나회로로 옮기고 나서야 진땀이 턱을 타고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걸로 완성은 아니었다.

서클.

심장에 마나회로를 둘러야 한다.

몸에 깃들어 있는 마나는 호흡하듯 자연의 마나와 순환이 가능하지만 인공적으로 형성된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

마나회로 자체가 기이한 기류를 형성해 자연적인 순환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환을 도와줄 에너지를 심장에서 얻는 거였지?’


심장은 마나회로의 순환을 원활히 하고, 그렇게 흐르는 마나는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것이 마법의 정수.


‘기뻐하긴 아직 일러. 진정하고 집중하자.’


숨을 단단히 들이켰다.

3단계는 이론상으론 매우 쉬웠다.

그냥 마나회로를 심장에 엮듯 한 바퀴 둘러주면 되니까.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심장에 큰 충격을 주기 때문에 위험하다.

바로 이처럼.


“커헉!”


붉은 피가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지운님!”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던 기운이 순간적으로 크게 날뛰는 것을 느낀 자힐은 지운의 의식을 깨우려 했지만 케이트에 의해 저지되었다.


“안 돼요! 지금 건드렸다간 폭주할 수도 있어요!”


“큿···.”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던 신관이 본 적 없을 정도로 불안해한다.

힐긋.

케이트는 베일에 가려진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초조함이 느껴졌다.


‘흐응.’


약간 흥미가 돋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지운의 마나가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안되겠어요. 베리어를 칠게요.”


주문을 외워 돔 형태의 장막을 쳤다.

그 덕에 날뛰는 마나의 영향이 차단되었지만 개입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되네···. 반쯤 골려먹을 생각으로 제의한 건데.’


물론 나머지 반은 훈련을 위해서였다.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어 채찍질로 사용한 방법이었는데 그걸 버젓이 성공해 버리다니.

아직 성공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쯤 되면 따 놓은 당상이었다.


‘용사라서 그런가.’


신의 축복받은 선택받은 존재.

범인이나 천재 같은 일반적인 기준에 대입하면 안 되겠지.

겨우 첫걸음을 떼고 있지만 금세 추월당해 개미와 사람만큼의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나도 팔만 온전했으면···.’


감각도 느끼지 못하고 불편한 의수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안전한 집과 돈, 신분까지 가졌지만 공허하다.

눈앞의 돈에 눈이 멀어 바보 같은 선택해 버렸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후회하지 않았을까?’


케이트는 공허하게 지운을 쳐다보았다.


피를 머금은 입술을 앙 다문 그는 고통스러운지 질끈 눈을 감고 있었다.

어둠으로 빚은 듯 새카만 머리칼을 가진 남자.

눈꺼풀에 가려진 그의 눈동자는 제 머리칼처럼 검었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검은색과는 달랐다.

검은색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릴 정도로 총기가 깃든 맑은 빛.

신념과 목표가 확고한 이들만이 가진 아우라.

청년이라 부를 나이였지만 앳된 얼굴은 세월의 풍파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도련님 같은 얼굴까지.

정말이지. 짜증날 정도로 부러웠다.


“우욱!”


또 다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심장은 터질 듯 뛴다.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러나 심장에 엮기 위해 마나회로를 통제하면 할수록 더욱 미친 듯이 날뛰었다.


쿵!

번개를 맞은 듯 머릿속이 새하얗게 얼룩진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제어의 끈을 놓치자 마나회로가 발광하며 심장에 충격을 가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만 심장에 가해진 충격과 내상으로 마나회로를 제어하기는커녕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위험하겠지. 그렇지만···.’


생명이 위험해지는 수준이라면 케이트가 도와줄 테니까.

대신 큰 고통은 뒤따르겠지만.

안심하고 정신을 놓으려는 그 순간, 연회장의 광경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사람들이 방관했다.

위기의 순간 인간은 언제나 혼자.

여차할 때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씨발. 씨발! 씨발!!!’


될 대로 되라.

남아있는 한 방울의 힘까지 짜내 마나회로를 움직였다.

멋대로 움직이자 쑤셔진 칼날이 몸 속을 휘젓는 느낌이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도 없었다.


‘내 힘을 내가 못 다루는 게 말이 되냐!’


마나회로를 심장과 엮으려던 것이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


‘이런 젠장 망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친 이세계에서 나만 정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했습니다. 23.03.06 14 0 -
38 돌아가고 싶어 23.03.20 7 0 12쪽
37 운과 나쁜 일이 일어남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23.03.19 15 0 13쪽
36 금기어 23.03.18 10 0 12쪽
35 이번엔 지켜냈어 23.03.17 11 0 13쪽
34 직무유기 23.03.16 12 0 12쪽
33 미심쩍은 23.03.15 14 0 12쪽
32 저거는 구할 수가 없겠네 23.03.14 14 0 13쪽
31 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 23.03.13 14 0 13쪽
30 좀 닥치고 있어봐 23.03.12 18 0 13쪽
29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 23.03.11 13 0 12쪽
28 구해낼 수만 있으면 23.03.10 14 0 12쪽
27 강탈 23.03.09 15 0 12쪽
26 슬라임 23.03.08 14 0 13쪽
25 정의의 용사(2) 23.03.07 14 0 12쪽
24 정의의 용사(1) 23.03.06 16 0 13쪽
23 죄인 에반스(2) 23.03.05 14 0 14쪽
22 죄인 에반스(1) 23.03.04 15 0 14쪽
21 도움요청 23.03.03 16 0 12쪽
20 자기합리화 23.03.02 19 0 12쪽
19 의도하지 않은 23.03.01 19 0 12쪽
18 내가 왜? 23.02.28 19 0 12쪽
17 원래 인생이란 생각하는대로 굴러가지 않는 법 23.02.27 18 0 12쪽
16 어쩐지 느낌이 쎄하더라니 23.02.26 24 1 12쪽
15 용사와 영웅 23.02.25 25 1 12쪽
14 파벌 23.02.24 27 1 12쪽
13 그래 너 잘났다 23.02.23 31 1 13쪽
» 짜증날 정도로 부러운 23.02.22 37 1 12쪽
11 깐족거림은 그의 아이덴티티 23.02.21 34 1 12쪽
10 설득과 협박은 종이 한 장 차이 23.02.20 39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