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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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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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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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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2)

DUMMY

인형은 총 20기 였다.

예전에 인형에게 연대 규모로 쫓긴 적이 있는 벨리안느의 입장에서는 소규모의 부대로 치부를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타하란과 그의 병사들 이었다.


‘또.... 나 때문에...’


벨리안느는 너무나 큰 절망감과 자기혐오에 빠졌다.

인형 20기와 타하란의 20명의 소대원들.. 승산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목숨을 잃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오로지 자신 때문에 벌어졌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다.


“인형이 온다고 했나?”


다른 사람들이 벨리안느가 말을 했다는 자체에 놀라는 사이에 타하란은 사태를 빨리 알아차리고 그렇게 다그쳤다. 타하란의 말을 들은 다른 부대원들은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칼을 빼들었다.


“어디에서? 규모는?”


“이십...”


벨리안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자신의 정면을 가리켰다. 그러자 모두들 새하얀 눈 밭 위에 어둠이 짙게 내려진 빈 공터를 바라보았다.


“자.. 잠시만요. 어떻게 이 아이가 인형이 온다는 것을 아는 겁니까?”


그나마 정상적인 뇌 활동을 하고 있던 사빈이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타하란은 말 없이 벨리안느를 바라볼 뿐이었다.


‘역시 대륙의 공적이란 말인가....’


타하란은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벨리안느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그 생각과는 다른 말이 나왔다.


“나는 이 아이가 마법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얼음과 눈 뿐인 숲에서 살아남기 힘드니까. 그런데 사실인가 보군..”


타하란은 끝까지 그녀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아직까지 확실한 증거가 없었고, 전투에 앞서 대륙의 공적이 살아있다는 말로 부대원을 혼란에 빠뜨려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타하란은 계속 떠오르는 이 여자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잊기 위해, 또 자신의 부대원들의 목숨을 위해 명령을 내렸다.


“인형 이십 기다. 정신들 바짝 차려! 신체활성화 마법들을 준비하고.... 모두들 뭉쳐 있어라.”


그의 명령에 분대원들은 각자의 주머니에서 신체향상 구슬을 꺼내들고는 언제든지 깨뜨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 벨리안느를 중심으로 원을 만들며 종점 방어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고, 타하란이 몇몇 부대원들을 재배치 시키는 것을 끝으로 그들은 완벽한 전투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그렇게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신체활성마법 구슬을 깨뜨릴 준비를 한 채, 타하란과 그의 부대원들은 주위를 살폈다.


쥐 죽은 듯한 고요와 숲속에 내려 앉은 어둠, 그리고 가끔씩 들리는 다른 대원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모두들 벨리안느가 가리켰던 방향을 노려보면서 눈을 부라렸고, 칼 끝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인형의 발소리는커녕 동물의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서로를 바라보다 의아한 표정으로 벨리안느를 돌아보았다.

인형의 존재를 의심하는 그들과 달리 벨리안느는 인형들이 언제쯤 도착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백 보폭..’


사빈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벨리안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타하란 마저 긴장을 늦추고 벨리안느를 노려보았다.


‘사십 보폭..’


이제야 수많은 발소리들이 들려왔고, 나무들로 가려진 곳에서 눈의 파편들이 튀어올라왔다.


‘이십 보폭.’


인형들의 힘찬 발돋움에 눈보라가 일어났고 그 때문에 그쯤 돼서야 인형들의 윤각이 드러났다.


‘왔다.’


벨리안느는 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으며, 인형 20기가 하늘과 땅 모두에서 튀어 올라왔다.


/////////////////


엘제어 나쉽은 자신에게 주어진 두 명의 호위 병력을 벨리안느의 눈 폭발로 잃은 것으로 만족해야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연치 않게도, 벨리안느가 일으킨 눈 파도라고 불러야 할 것에서 살아남아 복귀 도중, 이 근방을 떠도는 유포레아스 공화국 소대를 발견했고, 이들을 이용해서 다시 벨리안느를 잡을 생각을 한 것이었다.


물론 엘제어가 지난날 유포레아스 공화국이 인형 연대를 투입하고도 벨리안느를 잡지 못한 것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엘제어는 그 이유 때문에 희망을 가졌다. 연대를 투입하고서도 잡지 못한 벨리안느를 단 두 명의 호위병으로 잡을 뻔 했기에 필시 벨리안느가 심리적, 혹은 물리적인 이유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꺼려한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엘제어 나쉽의 그런 기대는 단박에 깨져버렸다. 인형들도 마력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벨리안느의 위치는 대충 파악 할 수 있었지만, 일반 인간의 경우에는 달랐다. 그래서 엘제어는 벨리안느만의 마력을 감지 한채 그녀 혼자만 있을 줄 알았던 자신을 저주하며, 눈 앞에 나타난 월연방국 병사들의 모습에 모든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아직 공격하지 마십시오.”


엘제어의 명령으로 돌격하던 유포레아스 공화국의 소대는 월영군 소대와 몇 발자국 간격을 가진 채 멈추어 섰다. 그러자 두 병사들 사이에 전투의 외침대신 침묵이 찾아왔다. 엘제어는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은 채, 월영군 병사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미 그들은 신체향상마법을 복용한 뒤였고, 모두들 칼을 치켜세운 채 언제든지 달려들 태세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그들보다 머리하나가 더 작은 벨리안느의 모습이 눈에 띠였다.


“당신들이 보호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십니까?”


엘제어는 벨리안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타하란이 그녀를 좀 더 깊숙이 숨긴 뒤 말을 이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유포레아스 공화국의 병사들이 분명한데.. 인형들도 그렇게 말을 잘 할 줄 아나?”


타하란의 외침에 엘제어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같은 종족인데 말을 못할 것까지 있겠습니까.”


“함부로 같은 통속에 집어넣지 마라.”


“그렇다면 그녀를 돌려주셔야죠.”


엘제어는 자신의 말에 월영군사들이 크게 술렁거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그녀가 인형일리는 만무했지만 마법을 감지하지 못하는 저들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고, 게다가 대륙의 공적 벨리안느라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했다.

만약 벨리안느라는 사실을 밝힌다면 월연방국은 물론이고 일리오스 제국마저 큰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엘제어 자신이 받은 명령을 이행하는데 어려워 질 것이었다.


“이 아이가 인형이라는 거냐?”


타하란은 그 인형의 말에 조금 늦게 반응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그 인형의 말이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그렇게 믿지 않고 있었으니 그다지 크게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몇 일 전 저희 분대에서 나간 녀석이죠. 그러니 저희에게 곱게 돌려보내 드리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로 피 볼일도 없으니까요.”


부드러운 웃음을 띈 채 엘제어는 자신의 요구상황을 전달하고, 동시에 협박까지 했다.


“인형의 말은 믿을 수가 없지. 10년 전 무혼반란 때 이미 너희들이 입증해서 만인이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다니 유감이군요.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여자애를 넘겨주지 않으면 당신들은 모두 죽을 것이라는 저의 말.... 적어도 그 말은 믿어도 좋습니다.”


순식간에 유포레아스 공화국 병사들과 월영군 병사들 사이 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나 곧 현실을 직시한 월영군 중 한명이 타하란에게 조심히 말을 걸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중대장님.”


그 조심스러운 한 마디에 모두가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타하란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 이전부터 타하란은 진짜 벨리안느일 경우와 반대로 인형일 경우를 생각해 보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이 아이가 인형이라면 지체 없이 공격을 했겠지. 물론 이런 식으로 등장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몰래 숨어있다 마법으로 기습 공격을 한 이후 격파를 시켰을 것이다.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고.”


엘제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이 인형과 여러번 교전이 있는 자임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그런 가공할 만한 기회를 날려버리고,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은 이 아이의 신변이 저들에게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지.”


“좋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저 아이는 우리 유포레아스 공화국에 필요에 의해 생포 혹은 사살해야 하는 아이입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저희가 제시하는 조건은 똑같습니다. 저 소녀를 저희에게 주시면 순순히 물러나도록 하지요. 하지만 아니라면, 모두 몰살 시킬 것입니다.”


엘제어의 말에 타하란은 소녀가 벨리안느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처형당하는 것을 바라보았지만 이렇게 벨리안느는 분명 살아있었고, 인형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쫓고 있는 상황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백부장의 명령이다, 목숨을 걸어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타하란의 그 말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벨리안느가 재빨리 월영군과 인형들 사이로 뛰쳐나갔고, 그렇게 전투 직전의 깨질듯한 긴장감을 되살리며 소녀가 그들 중간에 섰다.


“해치지 않을 것이지?”

벨리안느가 불안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미 안면이 있는 엘제어에게 말을 건넸다.


“순순히 가시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엘제어가 그렇게 말을 하자, 벨리안느는 고개를 돌려서 월영군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들 중 자신에게 가족 초상화를 보여준 사빈과 눈이 마주쳤다.

타게테스라는 이름의 딸을 가진 아버지..

벨리안느는 긴장감에 가득 차 있는 사빈의 눈을 바라보며, 일단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월영군들이 물러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할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서 물러들 나세요!”


벨리안느가 월영군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그것은 엘제어나 타하란에게 절충안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월영군이 있으므로 벨리안느의 무지막지한 마법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엘제어였고, 타하란 또한 벨리안느라는 확신이 든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두 집단은 서로의 의사를 분명히 확인하는 긴장감 가득한 침묵을 가졌다. 그 침묵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벨리안느는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순간 팽팽해진 활시위가 끊어지듯 침묵의 균형이 무너졌다.


“공격해!”


타하란의 몸이 먼저, 이어 명령이 뒤따랐다. 그와 거의 동시에 엘제어 또한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엘제어와 타하란은 벨리안느를 향해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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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4장 - 개벽(開闢)_1화_ 선고 (1) 20.06.05 66 4 10쪽
34 3장 - 효시(嚆矢)_5화_전조_(2) +2 20.06.04 67 4 12쪽
33 3장 - 효시(嚆矢)_5화_전조_(1) 20.06.03 60 3 12쪽
32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2) 20.06.02 60 3 7쪽
31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1) 20.06.02 63 3 9쪽
30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3.끝) +2 20.06.01 60 3 9쪽
»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2) 20.06.01 61 3 11쪽
28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1) +2 20.05.31 65 4 8쪽
27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2) +1 20.05.29 71 4 12쪽
26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1) 20.05.29 73 4 7쪽
25 3장 - 효시(嚆矢)_1화_무언 마법사의 조우 20.05.28 77 4 10쪽
2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끝) 20.05.28 83 3 11쪽
2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4) +1 20.05.25 89 5 10쪽
2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3) 20.05.25 85 4 9쪽
2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2) +2 20.05.22 91 6 7쪽
20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1) 20.05.22 94 5 8쪽
19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2) 20.05.21 109 5 10쪽
18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1) +1 20.05.21 102 7 7쪽
17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6화_ 거점 투입 20.05.19 115 5 11쪽
16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5화_담소 (談笑) +1 20.05.18 131 6 10쪽
15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4화_월몰 기도식 20.05.18 119 6 9쪽
1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2) 20.05.16 133 5 10쪽
1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 20.05.15 177 8 9쪽
1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2화_흠결 20.05.15 174 6 7쪽
1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1화_만인의 죄인 20.05.14 282 7 12쪽
10 1장 - 악몽(9) 20.05.14 248 6 12쪽
9 1장 - 악몽(8) 20.05.13 258 6 11쪽
8 1장 - 악몽(7) 20.05.13 288 7 8쪽
7 1장 - 악몽(6) 20.05.12 300 7 7쪽
6 1장 - 악몽(5) +2 20.05.12 399 1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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