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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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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8,238
추천수 :
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1.05.1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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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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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DUMMY

시기상 월영시에는 봄비가 내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 월영시에 내리는 비는 생명의 씨앗보단 겨울의 마지막 입김을 간직하고 있었고, 때문에 창밖의 도시 풍경은 생명력을 잃고 물속에 잠긴 도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오직 도시 중심에 우뚝솟은 진월대만이 침강하는 이 도시의 유일한 생존자처럼 빛을 뿜으며 존재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진월대를 물끄럼히 바라보던 바르나프는 자신의 집무실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널부러진 서류 더미와 책들.

그리고 책속에서 찢겨 나온듯한 종이 조각들과 아무렇게나 적은 메모지.

뭔가를 필사적으로 찾으려한 자신의 흔적들을 바라보며, 바르나프는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살아남은 자에 대한 남겨진 자의 원망인 걸까? 아니면 함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 걸까?


그 질문에 쉽사리 답할 수 없었던 바르나프는 대신 자신의 이 행동의 계기가 된 사건을 떠올렸다.


달무리 작전 중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삼 백명의 용병단.

그다지 조직적인 군대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유사시 든든한 자원이 될거라 생각한 그들이 월광국의 고위사제 백이십일 명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고위 사제들과 함께라...”


그렇게 바르나프의 생각은 용병단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제들로 옮겨갔다.


“말도 안되지... 암...”


월연방국의 건국과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위 사제들.

그 만큼 실력 또한 출중한 사제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대가가 바로 자신의 용병단의 목숨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단 한명의 사제가 백이십일 명의 고위 사제를 처분하는데 시간을 벌 용도로 삼백명의 용병들이 사용된 것뿐이었던가.


그 자조적인 생각과 함께 떠오르는 이름.


‘트리스트 듀에.’


그랬다.


바르나프는 지난 몇 달 동안 그 한 사람의 정체를 알기 위하여 이토록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문서에도 월연방국의 사제로 임명되기 전의 트리스트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나름 안면을 튼 다른 사제에게 물어봐도 아는자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 방법밖에 없는 것인가.’


하지만 그 최후의 방법을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치 그런 바르나프의 결심을 시험하듯 집무실 밖에서 한 전언이 전달되었다.


“가주님. 어떤 사제 분께서 오셨습니다.”


“마침 나도 나가려든 참이니 올라오실 필요 없다고 전해라. 지금 바로 내려갈테니.”


마음을 굳힌 바르나프는 노력의 잔해들이 널린 집무실 밖으로 나와 진월대를 향하기로 했다.


/////


바르나프가 현관으로 나서자 제일 먼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고 있는 거대한 현월수 두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날카롭고 거대한 이빨 사이로 내뿜어지는 하얀 입김.


다가오는 이의 모든 행동을 노려보는 노란 눈동자의 그 존재들은 비속에 가라앉은 월영시를 배회하는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나름 그 야수들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바르나프였음에도 선뜻 다가가기 힘들었고, 그 사이 현월수의 존재감에 묻혀 있던 뒷편 마차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름 병부사 대행이란 직책을 티내고자 현월수를 몰고 왔는데 그리 편하지는 않군요.”


“··· 전쟁터로 가실 것이 아니면 말을 이용하시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을 것이오, 바카릿 사제.”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더욱더 현월수들과 친해져야겠습니다. 일단 마차에 오르시지요.”


그의 말에 따라 마차에 오르던 바르나프는 뒤늦게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리고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 사제께서 어디 전쟁터라도 가신다는···?”


“여차하면 병부사로서 전방으로 갈 수도 있으니 해본 말입니다.”


뭔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사제를 추궁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 바르나프는 마차 좌석에 앉은 뒤, 바카릿 사제를 물끄럼히 바라보았다.



페니탈 파트마 사제를 대신하여 현재 병부사를 책임지고 있는 자.

풀어헤친 긴 곱슬머리에 처진 눈꼬리, 그리고 마른 체구.


선하고 낙천적인 인상의 그는 어느 재정론 사제와 비슷하게 젊은 편이었고, 비록 만나본 것은 몇번 안되었지만 열정적인 사내였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던 바르나프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의 바카릿 사제는 뭔가에 쫓기는듯 초조해하며, 잔뜩 조바심을 내는 모양새였서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트리스트 사제의 명인가?”


“예.. 진월대로 오라는.”


“무슨 일 때문인지 귀뜸 해줄수 있소?”


“전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요세 일이 너무 바빠서 제가 맡은 일 말고는 신경쓸 겨를이 없긴 해서··· 일단 출발하시죠.”


그의 말이 끝마치자마자 현월수는 격하게 덜컹거린 뒤 빠른 속도로 나아갔고, 그 바람에 두사람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그렇게 현월수가 바르나프 가옥의 정문을 지날 때쯤, 바르나프는 바카릿 사제가 맡고 있는 일들 중에서 자신의 일과도 관계 있는 일을 주제로 대화를 재개했다.


“연방국민총각성화(聯邦國民總覺醒化)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고 있소?”


“다음달 월영시를 시작으로 6개월내 월연방국 전체로 마무리한다는 목표이지요.”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인데. 그렇게 힘의 집결이 실현되는 것인가.”


연방국민총각성화.

일체주의자들이 힘의 집결이라고 일컫는 그 일은 월연방국 시민들 모두에게 각인진을 부여하는 것으로, 그것의 완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바르나프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즉, 6개월 뒤면 ‘대륙통일 전쟁’을 일으킬 가장 기초적인 기반이 갖춰진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힘의 집결이라..”


그 일체주의자들의 염원에 대해서 생각하던 바르나프는 실소와 함께 그렇게 중얼거리는 바카릿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게 쳐다본 그의 모습은 마치 어렸을적 철없는 꿈에 대해 회상하듯 공허하면서도 냉소적이어서 의문을 더하는 것이었다.


“..이런 변환들이 일체주의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소?”


“예.. 그렇긴 그렇습니다만... 예전에 말씀드렸던가요? 제가 일체주의에 가담한 이유가 사회 변화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반드시 일어날 변화에 걸고 싶어서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하네만.”


“예. 그래서 이렇게 변화를 실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그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야 하는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앞으로 벌어질 일이 너무 거대해 아무리 손으로 만져보고 위를 쳐다봐도 무엇인지 모를 정도니까요. 마치... 장님이라도 된듯이.”


자신이 느끼는 현 상황과 다를바 없는 그의 말에 바르나프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마차 밖으로 흔들거리는 진월대를 바라보며, 자조섞인 대답 밖에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적어도 한 사람은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지 않겠나?”


“예..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또 다시 예상밖의, 자극적인 말에 바르나프는 눈이 휘둥그레져 바카릿 사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카릿 사제는 경외심이 가득찬 눈동자로 차창 넘어 우뚝솟아 있는 진월대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유일하게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자가 안내하는 목적지는 도대체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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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21.05.17 38 0 8쪽
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123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2) 21.04.30 43 0 7쪽
122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21.04.28 41 0 9쪽
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0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119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3 1 10쪽
11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59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4 1 12쪽
116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1 1 9쪽
115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0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2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4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6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4 2 9쪽
110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3 2 10쪽
109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4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1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4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7 2 7쪽
102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8 2 8쪽
101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5) +1 20.12.02 50 2 11쪽
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99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1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97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2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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