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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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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9
추천수 :
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0.10.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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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DUMMY

칼빈 초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한지 3일째 되는 날 밤.


카니엘과 벨리안느는 노빌리스크까지 반나절 정도 남겨둔 곳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료라고 해봐야 월영군 전투 식량밖에 없었기에 평소 저녁 준비라면 그리 할 것도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벨리안느의 제안으로 전투 식량의 주 반찬인 오물(Omul)조림을 물에 푼 뒤, 이동중 채취한 냉이와 산갓을 넣어 만든 신메뉴가 등장했던 것이었다.


단단했던 고기 살이 풀어지고, 어느 정도 국물이 우려나오자 긴장감 속에서 카니엘이 한입 맛을 보았다.


“오! 괜찮은데? 좋은 제안이었어, 이자벨.”


소금기 가득한 식단을 이어가던 중 시원한 국물 맛을 본 카니엘이 그렇게 칭찬했고, 그 말에 상대방은 무표정을 유지했으나 내심 크게 흡족했는지 귀는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럼 먹어볼까?”


굳게 닫힌 입.

그와 대조적으로 달아오른 귀와 새로운 음식에 대한 기대로 반짝이는 눈빛.


카니엘은 동행자의 그 의외의 모습에 웃지 않으려 노력하며 식사의 시작을 알렸고, 그러자 굳게 닫힌 입술마저 활짝 열리면서 거칠게 움직이는 손에 의해 음식들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결국 카니엘은 큰 웃음을 한번 터트린 뒤, 부끄러워하면서도 음식과의 사투를 멈추지 않는 그녀를 뒤따르기로 했다.


///


식사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기 전의 짧은 휴식 시간.

나름 왁자지껄했던 저녁 식사가 끝나자 언제그랬냐는 듯이 두 사람 사이에는 지난 여정 대부분을 함께한 침묵이 다시 흘렀다.

붙임성 없는 카니엘의 성격 때문이라 탓 할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러기에는 대화 상대인 벨리안느의 입이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편이었다.


그렇게 과묵한 소녀와 붙임성 없는 소년은 초봄의 기운이 가득한 초원 위에서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받으며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무리 침묵에 익숙해졌더라도 내일이면 도착할 목적지와 그 동안 고생한 일에 대해 한 마디하지 않을 수 없었던 카니엘이었다.


“드디어 다 왔네. 정말.. 수고했어. 물론 여기서 벨로나 단장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더 힘든 여정을 준비해야겠지만.”


“······”


카니엘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벨리안느는 예상대로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일단 내일 노빌리스크에 도착하면 방부터 알아보자. 몸에 벤 이 냄새부터 깨끗이 씻어내야지 벨로나 단장님을 찾으러 돌아다녀도 욕을 안먹을 듯 하니까.”


“······”


이전과 똑같은 침묵이 흘렀으나, 그 속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카니엘이었다.


비록 말대답은 없더라도 보통 고개 정도는 끄덕여 주곤했던 그녀였으나, 지금은 얼굴을 무릎팍에 파묻은 채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디 몸이라도 좋지 않은 것일까 걱정이된 카니엘은 자세히 상태를 살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이상 어쩌할줄 몰라 그녀에게 다가가 볼지 말지 머뭇거릴 때였다.


“카니엘.. 궁금한게 있어.”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살며시 들며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뭔데?”


“벨로나랑...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는지.. 사실대로 말해줄수 있어?”


“······”


반란에 대한 언급 일체 없이, 그저 임무 때문에 벨로나와 함께 월영시를 나왔다고 설명했던 카니엘이었다.


돌이켜보면 근거가 너무나 빈약한 이야기였음에도 당시 이자벨은 납득하는 듯 했고, 때문에 여태껏 그럴싸한 또다른 이유를 생각해 놓지 못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정말 오랜만에 그녀가 건넨 질문이었기에 거짓으로 답하기 껄끄러웠고, 그 복잡한 감정속에서 잠시 망설인 뒤, 카니엘은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월영시에서 반란이 일어났었어. 사제들의 권력 싸움 비슷한 것 같은데.. 그 권력싸움 틈바구니에 벨로나 단장님이 끼게 되었고, 결국 반란 세력들이 반란에 성공하는 바람에 잠시 월영시를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된거지.”


“그렇..구나.”


카니엘의 예상과 달리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래서 대답을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질문을 이해를 못한 것인가 의문을 가질 때였다.


“내가.. 궁금한건.. 그.. 관계야. 벨로나와 너랑.. 어째서...”


“아! 나랑 단장님이 무슨 관계이길래 함께 월영시를 나오게 되었냐는 거지?”


고개의 작은 끄덕임을 본 카니엘은 잠시 동안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해보니까 어이가 없긴 하네. 네 말대로 일개 병사에 불과한 내가 어떻게 월영군 최고 단장과 함께 이토록 큰일에 휘말리게 되었지? 단지 벨로나 단장님과 가까이 있었을 뿐인데 말이야.”


카니엘이 웃으면서 설명을 했지만 벨리안느에게는 명확한 설명이 아니었다.

때문에 씁쓸하면서도 무언가 재밌다는 미소를 띄우는 카니엘을 보면서 직접적인 질문을 던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가깝다면..여..연인이라던가?”


“음? 아니, 아니! 그런 가까움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었다는 말이었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 해석에 카니엘은 놀란 나머지 극구 부인한 뒤 추가 설명까지 이어갔다.


“그러니까.. 정말 개인적인 친분은 그렇게 두터운 편은 아니긴 했었는데... 이런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월영시에 있을 때 내 별명이 ‘인형 파괴자’였거든?”


“인형 파괴자?”


“응. 만나는 인형들을 모두 파기한다고 해서.. 아무튼 그 이유로 단장님이랑 공적인 이유로 많이 만난 편이었지. 그러다 우연이 겹치면서 반란 세력이 단장님을 협박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어쩌다보니 감금된 단장님을 구출하는데 동참하면서 같은 배를 타게 되었네.”


“충성심 때문에 그런일을 한거야?”


“그것도 있겠지만..솔직히 벨로나 단장님이 나랑 비슷하다는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어. 그래서 도와줘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동질감?”


벨리안느가 카니엘을 빤히 쳐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단장님과 나 사이에 상흔이 하나 이어져 있거든.”


“상흔?”


“응. 단장님의 동생분과 내 친형이 친한 사이였다 들었거든.”


“..그럼 형은 무혼반란 때..?”


벨로나의 동생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벨리안느였다.

때문에 상흔이 이어졌다는 말과 연계해서 어렵지 않게 카니엘 형의 죽음도 유추할 수 있었고, 대답 또한 예상 가능했기에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기어들어가다시피 했다.


“응.. 무혼 반란 때, 가사 일을 돕던 인형에게 죽임을 당했지.”


거기 까지였다.

벨리안느가 용기내어 벨로나와 카니엘의 관계를 물었던 진짜 이유.


혹시 단지 임무 때문에 함께한 사이라면, 그리하여 이 임무가 끝나면 멀어질 관계라면, 벨로나에게 어떻게 부탁을 해서라든지 카니엘에게는 이자벨 베로에로 기억되고 싶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작은 희망도 그녀에게 과한 것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벨로나의 처지는 예전 같지 않은 듯했고, 카니엘 또한 그런 그녀를 따라 여정을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자연히 벨로나와 카니엘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었고, 이자벨 베로에가 아니라 대륙의 공적, 벨리안느 이얀의 모습은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아무튼 그랬어. 벨로나 단장님이나 나나 인형들에게 소중한 것을 잃고 복수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검을 잡고 있어서 왠지 단장님이라는 직책도 멀게 느껴지지는 않더라고.”


그런 벨리안느의 마음을 알턱이 없는 카니엘의 말에 벨리안느는 울음이 터질뻔 했다.


비록 이자벨이라는 이름으로 한 여행이었지만, 살아서 처음으로 느껴본 지난 몇일간의 감정들이 복수를 하겠다는 카니엘의 말에 난도질 당한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무혼반란의 원죄인 신분은 어떻게도 벗어날 수 없는건가.’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 단 한사람이라도 자신과 함께한 순간을 소중히 여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으나 그것 마저 하늘은 허락하지 않은듯했다.


그렇게 옆에 있는 카니엘 또한 훗날 함께 한 모든 순간을 부정하고 역겨워할 것을 생각하자 견딜수가 없었고, 그러자 선택은 하나 밖에 없는듯 보였다.


‘카니엘의 곁을 떠나자.’


필시 카니엘보단 마법감지가 가능한 자신이 먼저 벨로나를 찾을 것이며, 그렇게 카니엘과 벨로나가 만나지 못한다면 정체를 들키지 않을 것이라.


하지만 과연 그것이 최선인지, 홀로 남게된 카니엘은 또 어떻게 될 것인지,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그가 벨로나처럼 자신을 용서해 주지는 않을지, 수만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벨리안느의 그 모든 고민을 날려버리는 현상이 그녀에게 주어진 특별한 감각 끝에서 감지되었다.

마력 기운을 지닌 2개의 물체가 느린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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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21.05.17 38 0 8쪽
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123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2) 21.04.30 43 0 7쪽
122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21.04.28 41 0 9쪽
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0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119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3 1 10쪽
11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59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4 1 12쪽
116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1 1 9쪽
115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0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2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4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6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4 2 9쪽
110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3 2 10쪽
109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4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1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4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7 2 7쪽
102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8 2 8쪽
101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5) +1 20.12.02 50 2 11쪽
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99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1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3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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