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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8,262
추천수 :
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1.04.01 13:07
조회
60
추천
1
글자
7쪽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DUMMY

노빌리스크를 떠난 뒤, 신체 향상을 포함하여 쉴새 없이 남쪽으로 이동한 카니엘과 벨리안느는 어느덧 도시의 불빛은 찾아볼 수 없는 이름 모를 초목 지대를 걷고 있었다.

달빛에 그림자가 생길 정도로 깊은 어둠이 내려서야 걸음을 멈춘 두 사람은 아직 안전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내일을 위해 근처 수풀지에서 야영키로했다.


“말해. 그 소년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널 뒤쫓고 있는 건지.”


기본적인 숙영지를 조성을 마친 뒤, 카니엘은 자리에 앉자마자 그 동안 꾹참고 있던 질문을 이자벨에게 던졌다.


“......”


하지만 그 질문에 벨리안느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좋아.. 또 말할 수 없다 이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로 깊어지는 불신.

이자벨을 쫓는 소년과 노빌리스크에서 난동을 피우던 인형은 무슨 관계인 걸까?

소년이 인형이었다면 자신은 왜 폭주하지 않았던 것이며, 아니라면 그 소년의 신체향상 능력은 뭘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대체 미드갈과 마지막에 나눈 대화는 또 뭐란 말인가.


“미안해.. 하지만..”


“하지만?”


머리속이 복잡하던 카니엘은 저도 모르게 날카롭게 답했고, 그런 카니엘에게 벨리안느는 진실을 말할 용기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미안. 나중에 반드시 다 말해 줄게. 하지만 지금은..”


“... 그 나중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기 전이길 바래. 지금도 네가 했던 말들 중에 사실이 있었는지 계속 의심하고 있으니까.”


차라리 화를 내며 자신의 말에 반박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이자벨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인채 입술을 질끈 깨물 뿐이었고, 그 모습에 속이 터질 듯 갑갑해진 카니엘은 차라리 그녀를 등지고 돌아 누워버렸다.

그러면서도 이자벨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기대했지만 그녀는 숨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침묵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진 침묵에 카니엘이 누적된 피로에 눈이 감길 무렵, 벨리안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지 수천번 망설이고, 고민하고 있었다.


카니엘의 마음을 돌려볼 적당한 거짓말을 해볼까도 했지만 어짜피 벨로나를 만나면 드러날 진실이었기에 그를 두 번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 것인데, 그 결과로 카니엘과의 여정이 끝나는 것은 더욱더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답없는 악순환에 터져버릴 듯한 머리 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존재가 있었다.


스쳐지나가듯 목격한 아르센의 얼굴.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9년이란 시간이 흐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그 얼굴에 여태까지의 원망은 사라져 버리고 서로가 소중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듯했다.


‘하지만 아르센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을 후회하며, 다른길을 걷기로 하지 않았던가.’


특히 지난 몇일 간 노빌리스크에서 지내면서 벨리안느의 그런 마음은 더욱 강해졌고, 그래야지만 사람들에게 아니, 카니엘에게 용서를 구할 최소한의 자격이 생길 것만 같았다.


때문에 벨리안느는 당장 지쳐 쓰러질 상태임에도 눈을 부릅뜨고 깨어있었다.


아르센과 오래 함께 했던만큼, 아니 그를 만든 창조자로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할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마력 감지능력 끝에서 마력 기운 하나가 감지되었다.


북서쪽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그 마력에 자신의 맥박 또한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벨리안느는 불안한 시선으로 카니엘과 마력의 접근 방향을 번갈아 보았다.

그렇게 쏜 화살 마냥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오던 마력은 일정한 거리에 접어들자 갑자기 접근을 멈췄다.


그리고 이어진 세번의 짧은 마력 응축


일리오스 제국의 실험실에 갇혀있던 벨리안느를 대신해 바깥 세계를 돌아다니던 아르센이 사용했던 소통 수단.


‘지금 돌아갑니다.’라는 뜻의 그 마력 움직임.


벨리안느는 또 다시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곧 자신은 나약하고 어리석었던 어린 소녀가 아니라는 것을,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무혼 반란을 일으키자 속삭였던 그 말처럼 계획된 것일 수도 있음을 생각했다.


‘다른 길로 들어설 시간이야.’


계속되는 그 마력 움직임은 잠시 신경을 끈 채, 벨리안느는 자신의 다짐을 좀더 확고히 하기 위해 카니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렇게 잠들었는지 꼼짝하지 않는 그를 잠시간 바라보던 벨리안느는 이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소리 없는 발걸음은 북서쪽,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향했다.


///


모레밭 위에 듬성 듬성 자라난 잡초들.

이따금씩 평원 위에 파도처럼 솟아난 낮은 둔덕들.

이미 지나쳐오며 지겹도록 봤던 풍경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벨리안느는 만일을 대비해 주변 모든 마력을 감지하고 있었고, 그렇게 느껴지는 세상은 눈으로 보는 것과 전혀 달랐다.


열을 빼앗겨 빠르게 식어가는 대지.

그 위를 소용돌이 치는 차가운 대기의 흐름과 그 역정을 피해 풀잎 사이로 숨은 수분들.


마치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듯 불안정한 마력 흐름속에서 표류하던 벨리안느는 문득 정선을 차리고 현실속 풍경을 바라보았을 때 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광활히 펼쳐진 평원은 거짓하나 숨길 것 없이 가슴을 열고 밤하늘의 달을 품고 있었고, 때문에 아직은 볼수 없을거라 여겼던 그 존재의 형태를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랬다.

이 드넓은 공간에서 헤멜 필요도 없이, 서로가 내뿜는 마력에 이끌리듯 그렇게 두사람은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그 존재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벨리안느의 발걸음은 멈춰 버렸기 때문에 먼저 움직인 것은 상대방쪽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그가 다가올 때마다 벨리안느는 자신의 심장이 미친듯이 고동치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동시에 왠지 모를 두려움에 아르센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 희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르센이길 바라게 되는 모순적인 감정에 허우적거릴 때였다.


마침내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거리까지 다가온 그 존재.


그리고 마음속에서 휘몰아치는 그리움인지, 분노인지, 허탈함인지 알 수 없는 그런 감정들.


‘아..!’

두 눈동자를 통해 각인된 아르센의 얼굴.


13살 소녀의 기억속에 새겨진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그가 달빛을 받으며 벨리안느와 마주했다.


“오랜 만이야. 나의 주인, 벨리안느 이얀..”


그 한마디에 이상하게도 벨리안느의 고동치던 심장이 멎어버린 듯 갑자기 고요해졌다. 때마침 공터 주위에 불던 바람도 멎어버려 풀잎이 사그락 거리는 소리 또한 멎어버렸고, 그렇게 모든 소리가 달빛을 따라 세상에서 사리진 듯했다.


“...나는 네 주인으로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냐.”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 끝에 벨리안느가 건넨 첫마디.


아르센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어렸을 적 목소리보다 훨씬 차분하고 어른스러워진 목소리에 지나간 세월을 느끼고는 희망대로 되지 않을것이라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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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21.05.17 38 0 8쪽
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123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2) 21.04.30 43 0 7쪽
122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21.04.28 41 0 9쪽
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2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119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3 1 10쪽
»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61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5 1 12쪽
116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1 1 9쪽
115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2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4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5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6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5 2 9쪽
110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3 2 10쪽
109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5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2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7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9 2 7쪽
102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8 2 8쪽
101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5) +1 20.12.02 52 2 11쪽
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99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2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97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4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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